글/ 중국 대법제자 후이쯔(慧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법이 있기에, 그러한 대법제자들은, 무릇 그가 여러분과 연락하든 연락하지 않든, 오직 그가 대법의 형세를 알 수 있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인터넷 봉쇄를 돌파할 수 있으면, 그는 모두 형세를 따라올 수 있는데, 신이 관할하고 있기 때문이다.”[1]
나는 10여 년 전, 현재 사는 이 도시로 이사했고, 2012년에 다행히도 대법 수련으로 돌아왔다. 현지 수련생을 만나지 못해 줄곧 개인수련 상태에 처해 있다가, 사존의 자비로운 가호로 법공부를 고수하고 밍후이왕을 통해 사부님의 정법 형세를 알게 되면서 온갖 방해와 난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사부님께서 명시하셨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2] 대법제자는 반드시 매일의 법공부를 보장해야 하는바, 이 일념이 매우 명확하고 확고했기에 법공부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고, 법공부가 마음에 와닿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대법이 주는 정념(正念)과 법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
법공부가 꾸준히 계속되면 수련 중의 변화는 조용히 일어난다. 예를 들면 자신에게 좋지 않은 사람 마음이 나타날 때 쉽게 알아차리고 제거할 수 있다. 이 마음 중에는 다른 동료의 아이 근황을 물어볼 때 감춰진 질투심, 학생의 중복 질문에 대답할 때의 짜증, 학생들의 평가를 받을 때의 명(名)을 구하는 마음, 명품 가방을 들었을 때의 과시심, 다른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읽고 자신이 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스스로 이유를 찾아내려는 마음, 이기심과 선하지 못한 마음 등등이 있다. 어떤 마음은 매우 완고해서 자신이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그것들이 튀어나오며, 때로는 억누를 수 없기에 고민된다.
어느 날 놀랍게도, 어떤 집착이 생겨날 때 그것을 누르고 싶으면 눌러버릴 수 있고, 쉽게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마음들은 약해지고 나는 강해졌는데 정말 신기했다! 그리하여 법공부에서 방심하지만 않으면 자신의 정념이 점점 강해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정말로 “착실하게 수련하는 자는 구하고자 집착하지 않아도 스스로 얻을 것이며, 일체 공(功), 일체 법은 모두 책 속에 있는 것이라, 대법(大法)을 통독(通讀)하면 스스로 얻을 수 있다. 배우는 자는 스스로 변하니 반복적으로 통독함이 이미 도(道) 중에 있는 것이다.”[3]
법공부에 잇따른 또 다른 숨은 변화는 마음가짐이 갈수록 평온해지고 언행이 점점 이성적으로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진상을 알릴 때 너무 당당하던 모습이라 효과가 크게 떨어졌던 것 같다. 지금은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이성적으로 되면서 최대한 천천히, 느리게, 그리고 대법제자의 선한 모습을 체현해 낸다. 사람들에게 사당(邪黨)의 각종 악행을 들려주면서 우리는 증오나 불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진실을 깨닫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됐다. 따라서 반드시 마음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상의 소위 우마오(五毛: 중공의 인터넷 댓글부대)와 대법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반인에 대해서 차츰 경멸과 증오, 적대적인 관점과 정서가 없어졌다. 진정으로 원망도 원한도 없이, “수련인은 적이 없으며”[4]를 해냈다. 자신과 일반인의 관계를 잘 바로잡을 줄 알고, 그들이 전문적으로 대법을 박해하러 온 마(魔)가 아니면 수련인은 마음에 자비를 품고 그들 역시 구원을 기다리는 생명으로 간주해야 한다.
최근의 예를 들면, 2015년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한 후 나는 매번 고향에서 고속철을 탈 때마다 파출소 공안에게 강제로 휴대폰 번호를 남겨야 했고 사진을 찍혔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워서 정념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협조했다. 이후 몇 차례에서는 그 배후에 있는 사악의 요구에 부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정념으로 배척했다.
이번에도 역전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압박감을 느꼈지만 별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그런 투쟁심과 적대의식이 없이, 그들도 진상을 모르는 일반인으로 대했다. 무사히 역에 들어가자 젊은 공안이 나에게 다가와 인사부터 건넸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가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자 나는 당당히 신분증을 건넸다. 그는 신분증을 받아서 사진을 찍고(지금 깨달았는데 어떠한 차별적인 방법도 인정하지 말아야 함), 자신 없는 목소리로 휴대폰 번호를 물었다. 나는 조용히 내 휴대폰 번호를 불러야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아, 그렇죠. 그러세요 그럼”이라고 말하며 떠났다. 이전의 그런 대립적인 정서와 장면은 나타나지 않았다. 유감스러운 것은 아직 그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법공부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념이 강화되고 있었다. 사람들과 교제하고, 스쳐 지나가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선의를 발산할 수 있었다. 수련인이 질투심, 쟁투심, 이익심을 닦아 버리고 나면 그 마음이 깨끗해져 주변인들에게 편안하고 안정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내가 왕래하는 일반인들로부터 받은 피드백이다. 외국인 강사 동료 몇 명은 내가 파룬궁 신앙자라는 것을 알고 모두, 어쩐지 내가 항상 친절하고 평화롭게 느껴진다(kind and peaceful)고 말했다. 평소에 왕래가 별로 없던 동료도 사실을 알고는 내가 선량한 인상을 남겨 준다고 말했다. 몇 명의 일반인 친구도 늘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때때로 나를 만나 한담하면서 반 농담조로 말한다. “항상 네게서 올바른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동료들의 피드백은 나에게 격려가 되어 수련에 대한 자신감을 증강시켰다.
이런 것들은 모두 내가 수련하면서 경험한 것으로, 법공부가 주는 기묘한 변화들인데 말할 수 없이 절묘하다. 아직도 많이 있는데 더 말하지 않겠다.
나에게는 아직도 많은 사람 마음과 집착이 있는데 깨끗이 닦아 버려야 한다. 예를 들면 고생을 두려워하고 편안함을 좋아하며, 일할 때 어떤 때는 치밀하지 못하고, 참견하기 좋아하며, 수구(修口)하지 않는 등이다. 하지만 법공부를 늦추지 않으면 향상될 수 있고 심성관(心性關)을 잘 넘을 수 있으며 수련의 길을 바르게 잘 걸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승님의 가르침을 기억하자. “대법(大法)을 잘 배우려고 한다면 어떠한 목적도 품지 말고 배워야만 비로소 옳은 것이다. 『전법륜(轉法輪)』을 한 번 읽을 때마다 좀 명백해졌다면 바로 제고한 것이며, 당신이 한 번 보고 나서 혹시 단 한 가지 문제라도 명백해졌다면, 그 역시 진정으로 제고한 것이다.”[5] “사실 당신은 수련 중에서 바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수련되어 올라온 것이다. 기억하라. 구함이 없어야만 스스로 얻게 된다.”[5]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사부를 모시다’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세간을 향해 바퀴(輪)를 돌리노라’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법을 배우다’
원문발표: 2020년 9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9/15/4118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