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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표현을 보고 자신을 찾고 닦다

글/ 뤄메이(若梅)

[밍후이왕] 어머니는 강인한 여성으로, 반평생을 지도자로 지내면서 안팎에서 책임자의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는데, 80세가 다 되어서도 모든 일을 결정하신다. 나는 전염병 발생 기간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나는 평소에 혼자 생활했는데 이렇게 나에게도 심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1. 자아를 표현하다

어느 날 어머니를 목욕시켜드리고 나도 씻었다. 어머니는 내 등을 밀어주시면서 “그래도 엄마가 있는 게 좋지!”라고 하셨다. 나는 “그럼요. 속담에도 사람은 엄마 앞에서 영원한 어린애라 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관념에서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온 것은 나를 돌봐주려고 온 것이지 내가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마음속엔 나는 언제나 보호가 필요한 아이였고, 어머니의 ‘위치’는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런 자아를 표현하는 마음이 내게도 있고 숨겨져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신을 찾아보니 이런 표현은 법을 실증할 때 나를 수동적으로 만들었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게 했다. 예컨대 수련생이 병업(病業) 가상에 대해 나와 교류하고 싶다고 나를 찾으면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듣기 좋은 구실을 대는데 “나 스스로도 많이 부족하고 당신과도 잘 모르는 사인데 가서 무슨 말을 하겠어요!”라고 했다. 사실은 자아를 생각하는 마음이 장난을 친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가도 될 일이고, 내가 가는 것보다 더 효과가 좋을지도 몰라.’

그러나 나를 표현할 수 있을 때, 예를 들면 수련생이 컴퓨터 시스템을 설치해 달라고 하면 이건 내가 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은 못하니까 나는 기꺼이 하려고 했다. 그 자아를 찾으니 깜짝 놀랐다. ‘법을 어느 위치에 놓았는가? 평소에는 법을 실증해야지 자신을 실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늘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의 표현은, 환희심, 질투심, 편안함을 구하는 마음 등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의 문제를 주의해야 한다. 당신들은 법을 실증하는 것이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대법제자의 책임은 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법을 실증하는 것 역시 수련이다. 수련 중에서 곧바로 자아에 대한 집착을 스스로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반대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실증하는 이런 문제를 조장해서는 안 된다. 법을 실증하고 수련을 하는 것은 역시 자아를 제거하는 과정이므로, 그렇게 했다면 당신은 비로소 진정하게 당신 자신을 실증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최후 속인의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속인의 일체를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속인으로부터 걸어 나올 수 있다.”[1]

나는 얼마 전 퇴직했는데 마음의 준비가 있었으나 업무를 인계하고 열쇠를 내놓을 때 마음이 허전해지면서 더 이상 사람들에게 중시받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뿌리 깊은 자아의 관념이 작용하고 있었다.

2. 당(黨)문화의 표현

어머니와 나 두 사람이라도 매끼 무엇을 먹을지 어머니가 결정하셨다. 하루는 어머니가 옥수수죽을 끓이겠다고 하시면서 “옥수수 반 공기에 물 여섯 공기를 부으면 딱 좋아.(어머니는 전기밥솥 사용법을 모르심)”라고 하셨다, 내가 “엄마, 그렇게 많은 물을 붓지 않아도 돼요. 전기밥솥에서 잡곡 죽 메뉴에 놓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는 불쾌한 기색으로 얼굴을 옆으로 돌리셔서 나는 급히 하려던 말을 억지로 삼켰다.

어머니를 보면서 얼마 전 내가 수련생에게 내 생각을 강요한 당(黨) 문화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연은 이렇다.

한 수련생이 진상 달력을 배포하다가 납치됐다. 수련생들은 곧 일체가 되어 구조에 나섰다. 한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A 수련생의 남편(수련생임)의 삼촌이 국보대대 대장인데 우리가 그를 찾아가 납치된 수련생의 상황(당시 이 수련생이 자백하지 않았으며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음)을 알아보고, 또 그에게 진상을 알리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A의 집을 찾았다. A는 실명으로 납치된 수련생의 소식을 밍후이왕에 올렸는데, 납치된 수련생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밍후이왕에 실명을 철회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비록 보완 조치를 취했지만, 나는 조금 유감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용건을 간단히 설명하자 A는 불쑥 “수련은 누구에게 부탁하거나 뇌물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나는 “동수님, 우리는 동수님의 삼촌에게 부탁을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동수님의 삼촌을 구하려고 왔어요”라고 감정적으로 말했다. 당시 분위기가 갑자기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자신의 강압적인 말투를 깨닫고 덧붙였다. “수련은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단지 건의할 뿐입니다. 계속 협력해서 발정념을 합시다!”

나는 저녁에 법학습 팀에서 이 문제를 내놓고 나에게 무슨 집착심이 있는지, A는 왜 ‘협력’하지 않는지 수련생들이 나를 도와 교류해주기를 요청했다. 한 수련생은 “언니의 출발점은 수련생을 구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당문화가 너무 강해서 그 수련생은 언니와 교류할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다른 수련생은 “말하는 태도와 말투도 신경을 써야 해요. 자신이 옳다는 생각에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수련생은 “조금 급한 데다 납치된 수련생과 정까지 있어 조바심을 냈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를 드리며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드렸다. 나는 억울한 마음도 사라져 버렸고, 당문화를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다짐했다.

3. 자신에게서 찾고 자신을 수련하다

전통문화에서는 백 가지 선(善)에서 효를 으뜸으로 친다. 대법제자로서 ‘효순(孝順)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어떤 수련생은 병든 부모를 자진해서 돌보면서 보통 사람의 상태에 부합해 몸소 대법을 실증하고 있다고 여겼지만 결국 세 가지 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 어떤 수련생은 중생을 구하고, 구세력의 교란을 부정하며, 부모님께 적절히 시간을 안배하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물론 우리는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기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모두 마땅한 것이다.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부모에 대해, 자녀에 대해서도 모두 잘 대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이 마음은 곧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모두 자선지심(慈善之心)이고 자비(慈悲)이다.”[2]

여기에 ‘사람에게 잘해준다’에서 ‘사람을 선하게 대하다’로, 또 ‘동정하는 마음’에서 ‘자비로움’에 이르기까지 수련자가 감성에서 이성까지 심성이 향상되는 과정이다. ‘자비’라면 자기 어머니뿐 아니라 전 세계 어머니들에 대한 자비이자 중생에 대한 자비일 것이다.

어머니가 입원하셨으니 하나뿐인 딸인 내가 당연히 돌봐드려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정을 내려놓으면서도 지극히 보살펴드릴 수 있을까? 나는 자신에게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며 조급해하지 말고 마음을 움직이지 말라고 요구했다. 가능한 시간이 있으면 사부님의 설법을 청취했고 환자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래서 편히 먹고 편히 잘 수 있었다. 어머니가 퇴원하실 때 나는 체중이 줄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1㎏이 더 늘었다.

어머니의 표현은 나의 거울이다. 어머니가 까맣게 탄 냄비를 철 수세미로 문질러 하얗게 만드신 것을 보고 낡은 물건을 버리기 아까워하는 내 마음을 찾았다. 어머니가 아래층 단지의 황폐한 꽃밭에 채소를 심는 것을 보고 나 자신의 이익심을 찾았다. 젊다는 소리를 듣고 싱글벙글하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나의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싶은 마음과 색심을 찾았다. 나는 어머니의 표현을 보면서 나 자신을 수련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 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원문발표: 2020년 9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9/20/4099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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