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2016년 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만났습니다. 올해는 저에게 아주 특별했는데 제가 미국 석사과정에서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영광스러웠고 또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배운 것을 미래 사회에 보답할 수 있도록 과학과 기술을 배우는 데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첫 학기에 파룬따파와 인연을 맺게 됐고, 제 목표는 180도 바뀌어 수련이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됐습니다.
1. 수련 중 진보와 퇴보의 시험
수련을 시작한 이래로 저는 잠을 줄이고 매일 연공을 견지했습니다. 처음 2년은 매일 일찍 일어나 먼저 발정념한 다음 1시간 연공하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점차 연공의 효과를 느꼈고 활력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매일 연공해도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일상을 소화하는 것도 벅차, 업무 이외의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참여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저는 반드시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두 가지의 선택만 있었습니다. 하나는 수면시간을 늘리고 연공과 대법 일에 참여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면시간을 줄이고 연공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저는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매일 두 시간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해도 피로를 풀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이 공을 어떻게 전하라면 당신들은 그렇게 따라서 하라. 보증하고 해로운 점이 없고 오로지 좋은 점만 있을 뿐이다. 당신들은 너무 바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데, 사실 당신들은 휴식을 잘 못할까 두려워한다.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수련은 가장 좋은 휴식이다. 당신이 잠을 자도 다 도달하지 못하는 휴식에 도달할 수 있다. 내가 연공하여 너무나 지쳤기에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1]
전화로 새벽 연공팀에 가입해 참여하자 즉시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가부좌하고 정공을 연마하자 두뇌가 매우 맑아졌습니다. 물론 가끔 이렇게 가부좌하고 연공 하기는 쉬웠으나 장기간 견지한다는 건 다른 일이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제가 가부좌하고 정공할 때, 무거운 압력이 제 주의식(主意識)을 잃게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정공 중에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입니다. 제가 밀레르빠 부처님의 수련 이야기를 읽은 것을 기억하는데 동굴에서 11개월 동안 자지 않았으나 줄곧 매우 또렷한 의식을 유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도 심신의 피로와 싸워 이겼기에 편안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밀레르빠 부처님의 수련에 대한 강인한 의지는 저를 격려해 줬습니다. 저는 다섯 가지 공법을 잘 연마할 것이며 더 큰 돌파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런 압력의 교란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고 최후까지 견지하며 어떻게 되는지 보겠다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가부좌할 것이며, 모든 주의력을 집중해 여기 바르게 앉아 정공을 연마할 것이고, 하품이 얼마나 나와도 이런 상태를 깨뜨리지 않겠다고 결연하게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정말 효과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유지하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한 압력이 점차 사라지고 깊이 입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같은 깊은 입정이 불과 5분 정도였지만 두 시간 동안 다섯 가지 공법을 끝내자 대뇌가 매우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공이 가장 좋은 휴식이라는 법의 함의를 깨달았습니다.
2. 병업을 제거하고 선한 마음을 수련하다
매일 행복하게 다섯 가지 공법을 두 시간에 걸쳐 2주간 했을 때 저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병업관을 만나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사상경지가 조금이라도 제고되어 올라왔다면 자신의 나쁜 것들도 이미 조금 버린 것이다.”[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보니 저는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의 함의를 조금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눈이 불편했습니다. 컴퓨터 화면을 볼 때마다 오른쪽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따끔거렸습니다. 그러나 제 일은 오랜 시간 컴퓨터 화면을 봐야 하기에 겨울 모자를 써서 가리기로 했습니다.
점점 오른쪽 눈 주변에서 고름이 흘러나와 관자놀이와 머리 쪽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귀 뒤에서 목과 아래턱 경계 쪽으로 알 수 없는 작고 단단한 혹이 많이 난 것도 느껴졌습니다. 그 뒤 이틀 동안 고름이 더 많이 흘러나왔고, 제 오른쪽 머리는 바늘로 계속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가장 심할 땐 오른쪽 눈에서 계속 눈물이 흘러나와, 쓰고 있던 가리개용 모자까지 축축이 젖었습니다. 운전할 때도 한쪽 눈으로만 볼 수 있었기에 시야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자신의 많은 부족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정상적인 눈이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의 어려움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운전하실 때, 어떤 상황에 대처하시는 방식 때문에 좀 짜증이 났던 것을 기억합니다. 지금은 제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데, 다행히 이런 방식으로 당시 저의 선하지 못했던 생각이 드러나게 됐습니다. 저는 자신의 용량을 늘릴 수 있게 됐고, 선한 마음이 병업을 극복해야 하는 수련생들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다른 수련생을 돕는 것이란, 그들의 처지에 대해 최대의 선심으로 이해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병업 상태에 처한 수련생을 단순히 수련을 잘못해 누락이 있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서운 발상이며, 돕는 것이 아닌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우린 모두 미혹 속에서 수련하기에 누구도 사물의 진실한 모습이나 뒤에 가려진 근본 원인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하물며 우리 자신도 집착과 사람의 관념이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서로 도와야 하며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3. 발정념의 위력
그날 저는 정상 출근했으나 집에 돌아와서는 대법을 실증하기 위한 항목을 할 기운이 없었습니다. 션윈(神韻) 홍보는 매우 중요한 단계로 곧 진입하게 되는데 제가 맡은 일을 완성하지 못하면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엉겁결에 “매시간 발정념을 하겠다. 필요하면 더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앉아서 20분간 발정념을 하자 효과가 분명했습니다. 제 기분은 상쾌해졌고 고통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번 또 한 번 반복해 발정념했으며 ‘이제 일할 수 있겠다’고 느껴질 때까지 발정념을 하고 대법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고통이 거의 없이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까지 아주 잘 잤습니다. 깨어보니 저는 ‘이제는 좋아졌으며 앞으로 더 좋아질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전날의 결과를 돌아보면 결국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 대부분의 시련을 제거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사부님의 불은호탕(佛恩浩蕩)에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점차 회복됐는데 고름과 종기가 사라지고 눈에는 붉은 실핏줄만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이번의 시험을 겪고 나서 저는 신사신법(信師信法)에 더욱 확고해졌으며 속인과 수련생에 대해 더 큰 자비심도 수련해 낼 수 있었습니다.
4. 개인의 이익 문제에서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다
혹독한 시험에 부딪힐 때마다 저는 생활 속에서 무엇이 진정 중요한 일인지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여유로워지면 속인의 소망, 유혹과 욕망이 제 머릿속에 항상 떠올랐습니다. 저는 유혹받기 쉬운 젊은이였기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특히 남성 청년, 그는 여전히 속인사회 중에서 한번 분투해 보려 하고 또한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고 한다!”[2]와 같았습니다. 저는 반복적인 사상 교란을 배척하는 데는 상당한 자기 단속과 신념이 있어야 함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無求而自得)”[3]로 항상 자신을 일깨웠습니다.
명문대학에서 인기 학과(전공)를 마치고 졸업할 무렵 저는 구직 시험에 직면했습니다. 추천으로 제 분야에 맞은 일자리를 찾았지만, 월급은 사람들이 제가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액수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월급은 좀 적었지만 제가 여기서 일하면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고 게다가 일자리를 찾느라 시간을 더 낭비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미 정법(正法)의 의의를 이해하고 있고, 자신이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받아들였는데 자신이 개인적 이익을 비교적 담담하게 볼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고, 제 업무 능력과 공헌은 금방 인정받았습니다. 자신도 이미 작은 공로가 있다고 생각했고 사장에게 매주 4일 근무를 희망한다고 신청했습니다. 신청은 받아들여졌고, 저는 온전히 3일의 시간을 대법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저는 그동안 더 많은 법공부를 하고 대법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이런 배치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사장은 제 업무에 대해 만족했기에 몇 달 후 5일 근무로 되돌아오면 보수를 올려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종 사부님의 가르침을 따랐는데 사부님께서는 “연공인은 확실하고 확실하게 말한다. ‘속인은 속인이 추구하는 것이 있지만, 우리는 추구하지 않고, 속인에게 있는 것을 우리는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우리에게 있는 것은 속인이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다.’”[2]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예의 바르게 거절했으며 자신의 결정에 기뻐했습니다. 시간은 우리 대법제자에게 가장 귀중한 자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저와 이력이 같은 사람을 채용하자 마음이 다시 움직였습니다. 일련의 문제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기능을 비교하고, 보수를 비교해 보며 자신의 능력에 맞는 보수를 받고 있는지 계산해봤습니다. 이때 저는 거듭 자신을 일깨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2]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사부님께서 이미 명시해 주신 말씀을 잊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진수(眞修)제자여, 내가 당신에게 가르친 것은 수불수도(修佛修道)하는 법(法)이건만, 당신들은 속인 중의 이익이 손실됨으로 인해 오히려 나에게 괴롭다고 하소연할 뿐, 자신이 속인 중의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함에 대해서는 괴로워하지 않는데, 이것이 수련인가?”[4]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이 과정에서 저는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며 점차 자신의 이익에 대한 집착을 담담히 여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수련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욱 가벼워졌습니다. 제 겉모습은 그대로지만 제 마음은 놀라울 정도로 편안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저는 속인 중의 어떠한 집착이나 유혹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수련되지는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젊은 사람은 자신을 파악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당신이 보라. 그는 평소 아주 좋으며, 속인사회 중에서 무슨 능력이 없을 때, 그의 명리심은 아주 담담하다.”[2]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았습니다. 저는 아직 어떠한 속인의 이익에도 동요하지 않을 만큼 제고되지는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의 집을 금으로 지었다 해도 당신은 마음에 두지 않고 아주 담담하게 여긴다.”[3]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제가 정말 금으로 지은 집에서 살고 있다면 자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젊은 수련생들에게 이득을 얻는 부분의 유혹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일깨워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수련을 첫 자리에 놓아야 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정진실수(精進實修)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진정하게 대법을 실증할 수 있습니다. 제가 체득한 것은, 사회와 대법에 대해서도 직무와 책임을 다할 때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고,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저는 영주권 비자와 후원 신청에 대해 그냥 한번 문의했는데 바로 일이 처리됐습니다. 저에게는 입고 먹는 걱정도 없고 법을 외우고 대법을 실증할 시간도 충분한데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5. 지혜는 협력과 정체(整體)에서 나온다
작년 여름 저는 대법 일에 참여하는 데 대한 관념이 크게 바뀌게 됐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빠른 학습능력, 소통 능력과 어떤 기술·기능에 숙달된 것에 득의양양해 하며 기뻐했습니다. 유럽에서 돌아와 여름을 보내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우리가 서로 협력하는 것이야말로 지혜가 생기는 진정한 원천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우리 지역의 수련 환경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동서양 수련생 간에 서로 의견이 다르고 오해가 많았습니다. 고정된 큰 법공부팀이 없었고 대법을 실증하는 일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수리가 필요한 오래된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해 연락이 없었던 유럽 친구들과도 만나서 그들에게 제가 시작한 수련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저는 어머니와 아주 훌륭한 팀을 꾸렸습니다. 당시 그곳의 수련 상황을 고려해 우리는 자체적인 자료점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옛날 자료들 대신 새로운 전단과 포스터를 다시 디자인했습니다. 인쇄기가 고장 나면 함께 해결방안을 찾았습니다. 각개 진상 거점의 활동에 부단히 참여함으로써 점차 지역 수련생들과 연계됐고 법학습 시간을 늘리자 수련생 간의 이해도 향상됐습니다. 물론 그사이 적잖은 심성 마찰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전단을 디자인하려고 앉았을 때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는데, 그때 어머니께서 “나는 전단에 이것이 있어야 하고 저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어떤 주제는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는 등의 지적도 있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좋지요. 그런데 그렇게 잘 아시면서 왜 직접 하시지 않나요!’ 하는 생각이 들거나,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써넣을지 말씀해 주셔야지요!?’ 따위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부정적인 생각은 매우 천박한 것임을 의식하고 그것을 없애 버리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일단 이런 좋지 않은 생각을 깨끗이 제거해 버리자 좋은 생각이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바른 사유를 수련하자 사람의 관념과 세상에 대해 분개하고 증오하던 습관이 더는 사상에 영향 주지 않게 됐습니다. 우리는 하루 동안에 두 종류의 언어로 전단을 디자인해냈습니다.
시험은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우리가 아파트를 수리할 때 4분의 3의 이웃이 반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수도관 교체를 도와줬습니다. 이때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이 천장에서 물이 샌다고 문을 두드렸고, 우리는 또 위층에 있는 집에 가서 우리 집 천장에서 물이 샌다고 문을 두드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법학습을 통해 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내려놓고 조화로운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큰 항목을 조율할 만큼 자신의 사고와 논리력이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실내장식조차도 조화롭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실내장식을 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전체적인 조정 역할을 하셨고 저는 구체적인 작은 일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톱질하기, 드릴링, 페인트칠과 같은 것인데 우리는 손발이 잘 맞는 작은 정체(整體)였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 진상 자료점도 성장했으며 진상 자료와 진상을 말하는 경험도 늘었습니다. 현지 수련생 모두 용기를 얻었는데 지지 서명을 하는 사람 숫자가 대폭 증가했고 주말마다 파룬궁을 배우는 새로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형 법공부팀이 다시 시작됐으며 계속 새로운 수련생이 법공부팀에 참여함에 따라 우리는 4개 언어로 ‘전법륜(轉法輪)’을 읽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시 태어난 듯했고, 처음같이 수련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전반 수련 과정 중에 제가 해야 했던 일은 끊임없이 부정적인 사람의 관념을 버리고, 자기 실증을 피하며, 아울러 수련생을 포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제 자리에 이르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2]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더욱 깊이 깨닫게 됐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일하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지만 가끔 긴장감이 교차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아버지는 재혼하셨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의 후처에 대해 자비심으로 대하지 못하셨습니다. 저는 두 가정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지 항상 얽매여 있었고, 저의 어떤 결정들은 심지어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목소리를 높이실 때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는 데 특별히 주의했고, 어머니의 정서가 격해지면 저는 냉정함을 유지하며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어머니가 다시 감정을 통제하실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앉아서 법을 공부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수련과 안으로 찾음을 견지하며 자기 의견을 고집하지 않았고, 자신의 이해나 생각이 더 낫다고 서로 비교하지 않으며 모순을 넘어 조화롭게 잘 지내게 됐습니다.
유럽 여행은 저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저는 진정하게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고 대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만 진상을 알릴 때 더욱 큰 작용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았습니다. “젊은이는 마음이 모두 조금 들떠 있어서, 조용해지지 못한다. 대법제자라, 무엇을 하려면 착실하고 착실하게 잘해야 하는바, 당신은 수련인이다.”[5]
서로 협력하고 아울러 꾸준히 법을 배워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법을 실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견정실수(堅定實修)하여 사부님께서 경문 ‘이성(理性)’에서 말씀하신 “최후시기 구도의 사자(使者)”[6]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적절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북미 제1기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 저서: ‘시드니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진수(真修)’
[5]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 저서: ‘이성(理性)’
(2020년 청년 대법제자 인터넷 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20년 6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6/6/4071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