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영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수련을 시작한 지 22년이 넘었으며, 그동안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병약한 저를 건강한 사람으로 변하게 해주셨습니다! 이기적이던 저를 타인을 위해 배려하고 문제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을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하게 해주셨습니다. 22년 동안 대법의 초범함을 무수하게 경험했고, 사부님께서 항상 곁에서 저를 보호해 주시고 계심을 수없이 경험했으며, 사부님의 위대함과 자비를 수도 없이 체험했습니다! 오늘은 수련 속에서 체험한 저의 두 가지 문제만을 교류하고자 합니다.
매체 일을 하면서의 체득
2019년 9월 저는 희망지성의 생활 중심 음식 판매대 업무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좋은 음식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으며, 기껏해야 미식 애호가에 불과했습니다. 편성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시작할 때는 심한 압박을 느꼈고, 제가 발표한 조리법의 조회 수(클릭 수)가 겨우 몇십 건인 것을 보면 더욱 막막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정력과 시간을 들여서 한 일인데 보는 사람은 매우 적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미식 코너는 사람을 직접 구할 수 없고, 진상을 알려 직접 사람을 구하는 다른 항목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며 한때는 그만두려고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끊이지 않고 매일 반복됐지만, 자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대법제자가 어려움에 부딪혔다고 도피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몇몇 큰 매체는 모두 시작부터 그런 곤란에 처했었고, 그렇게 많은 대법제자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곤란을 극복하며 의연히 견지했기에 비로소 오늘의 이런 성적이 있게 된 것입니다. 많은 대법제자가 한 일은 이전 사람이 한 적이 없는 것이기에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더구나 어느 신이 “이런 일을 나는 하지 않겠다”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렇게 하는데도 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못 하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레시피에 관심이 많은지, 저는 조회 수가 많은 국내의 몇몇 인기 요리 사이트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보고 몇 가지를 찾아내어 수정해서 발표했으나 반응은 여전히 밋밋했습니다. 몇 가지 요리법의 조회 수가 낮은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저를 더욱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매기마다 주방 요리비결 프로그램에 무엇을 써야 하는 가였습니다. 보통은 방송프로가 나갈 때가 되어도 저는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한번은 제가 레시피를 정리하는데 요리사가 요리를 시연하면서 몇 가지 요리 기법을 설명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저는 즉시 한 편을 썼고, 반응이 좋아 조회 수도 단번에 1천 건이 넘었습니다. 1천 건의 조회 수는 매체로 말하면 매우 적지만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제가 레시피를 정리할 때마다 요리사가 요리하는 중에 몇 가지 기법과 비결을 소개해 주어서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매우 걱정했던 저에게 이 프로가 단번에 아주 쉬워졌습니다. 게다가 이런 소재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고 계심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미식 코너가 사람을 직접 구하는 작용은 할 수 없기에 저는 레시피에 음식의 문화적 배경을 조금 넣어서 이 작디작은 요리법을 통해 인류가 전통문화의 길로 되돌아가도록 안내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저를 괴롭게 하는 문제는 어떻게 차차 국면을 열어 더욱 많은 사람이 저의 미식 프로그램을 보고 우리 사이트를 방문하도록 하여 진상을 알게 하고 구원받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숫자로 나타낸다면 바로 조회 수지만 어떤 레시피가 사람을 끌 수 있는지 저는 확신이 없었으며 알지도 못했습니다.
글에 대한 조회 수를 높이는 관련되는 요소는 매우 많습니다. 예를 들면 글의 제목, 내용, 실용성 등등입니다. 처음에는 제목이 사람을 끌어들이게 하려고 많은 시간을 들이며 온갖 지혜를 짜냈으나 매력적인 제목을 생각해내지는 못했습니다. 때로는 한나절이나 생각해서 발표 이후에도 번복하여 수정했습니다. 목전에 와서야 비로소 약간의 법칙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페이스북에서 일부 미식 그룹에 가입하는 것을 배웠고, 이런 곳에서 자신의 레시피를 광고할 기회가 생겼으며, 이제 조금씩 인기를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이른 아침 페이스북을 열면 저의 레시피 아래 몇십 명의 ‘좋아요’ ‘공유’ ‘댓글’을 볼 수 있었고,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시며 인연 있는 사람을 데려와 우리 사이트에 오르게 하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점점 널리 알려지고 요리법의 인기도 높아짐에 따라 저는 매 편의 레시피를 어떻게든 조회 수 5백 건을 초과하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제가 이 목표를 위해 노력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사용하고 있던 두 개의 페이스북 계정이 갑자기 봉쇄되었습니다. 이전에도 두 번 봉쇄된 적이 있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풀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의 한 달이 되도록 봉쇄됐고, 게다가 저의 다른 페이스북 계정 하나는 아예 취소당했습니다. 이는 저의 손발을 묶은 것과 같았기에 저는 먼저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조회 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는 다시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야 했지만 잠시 멈추고 안으로 찾아봐야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타나는가?’
저는 먼저 이 일로 인해 자신이 심하게 동요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 개의 계정이 봉쇄된 이후 며칠 동안 기분이 매우 가라앉았는데 이런 정서로 인해 몸은 매우 피곤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제가 우선 깨달은 것은 사부님의 말씀대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이를 해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속인의 수단에 너무 의지하며 자신은 대법제자이고 신통이 있음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매우 강한 환희심을 보았는데 조회 수가 높으면 기뻐하고 낮으면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제 정서는 매일의 조회 수에 따라 동요하며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페이스북 봉쇄를 통해 사부님께서 저의 사(私)적인 마음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제가 기뻐한 것은 조회 수가 높았기 때문이지 많은 중생이 우리 사이트 방문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깊이 숨겨진 이기심이었습니다. 깨달은 이후 저는 조회 수가 많다고 다시 기쁨이 느껴질 때면 이런 생각을 바로잡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저는 페이스북에서 사람이 많은 미식 그룹을 찾아서 가입할 때, 조회 수를 높이는 데 도움을 받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적고 불과 몇백 명이더라도 가입을 신청하는데, 그 몇백 명이 무수한 중생과 상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저는 이전에 레시피를 낼 때, 제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고, 제가 무엇이 좋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내보냈지 독자가 무엇을 원하고 그들이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는 생각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철저히 바꿔 항상 독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하자 조회 수도 돌파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남편과 산책하다 어떻게 해야 조회 수가 늘어나게 할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당신의 심성이 제고되면 조회 수도 올라갈 거예요”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남편의 입을 빌려 저를 점화해 주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미식 코너의 조회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데다 레시피 선택에서도 저에게 작은 경험들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갈 길이 멀고, 계속 심성을 향상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저의 코너가 사람들에게 더욱 만족스러운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
지금 중공 바이러스(코로나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매체에서 사람 구하는 일이 더욱 절박하게 보입니다. 어떻게든 저의 미식 코너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을 우리 매체로 데려와 진상을 보게 하는 것이 제가 노력하는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저의 수련에서도 큰 돌파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속인의 처지에서 그들의 관심사를 더욱 많이 생각할 수 있어야만 사람 구하는 길도 더욱 넓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혈육 간 정의 고비를 넘다
2018년 3월, 84세인 아버지는 말기 암 진단을 받았고, 의사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좀 믿기 어려웠습니다. 평소 아버지는 건강하셨고, 게다가 어머니께서 세심하게 보살펴드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법(正法)이 끝나면 부친을 뵐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이것은 사람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집엔 남동생이 한 명뿐인데, 그는 과분한 사랑을 받아서 문제를 처리해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부친이 병이 나기 전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84세의 고령임에도 아버지가 직접 처리하셨습니다. 어머니도 이미 연세가 많으셔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셨고, 당시 집안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때 어머니와 남동생은 매일 저에게 전화하여 귀국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아버지도 제가 돌아와서 묘지를 마련하고 사후(死後)에 안장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아버지는 일생 강직하고 꿋꿋하셨고, 허리를 굽히신 적이 없었습니다. 문화대혁명과 같은 그런 간고했던 시기에도, 더욱이 자신의 아이를 보살펴 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도 사당(邪黨)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수련한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갇혔을 때, 한번은 부친께서 노동교양소로 저를 보러 오셨고, 저에게 유엔에서 제 상황을 보려고 사람을 파견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수많은 노동교양소가 어떻게 수련생을 박해하는지 조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친이 듣고 나서 말씀하시기를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 맞아 죽더라도 반드시 그들을 폭로해 전 세계가 알게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부친은 수련하지 않으셨는데도 이런 말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부친은 도리어 저에게 애걸하셨는데 저는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뜻을 진정으로 알게 됐습니다.
저는 정이 깊은 사람이라 이런 상황을 마주하고 거대한 압력을 느꼈습니다. 커다란 압력으로 인해 제 뒷등이 극심하게 아파왔습니다. 친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저는 어느 경로로 귀국하며, 귀국 후 부딪힐 수 있는 여러 정황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주변의 수련을 하지 않는 친구도 의견을 주었으며, 어쨌든 생각할 방법은 모두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걱정되는 것은 귀국해서 체포된다면 제가 당시 참여하고 있는 중요한 매체 항목의 작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2005년 저는 중공의 박해로 두 번이나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습니다. 출국 후엔 서방사회의 주류 매체와 TV에 중공의 파룬궁 수련생 박해에 대해 많은 폭로를 했으며, 이 때문에 중국 대사관, 영사관과 국내 공안의 주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저의 컴퓨터도 서방 매체에 박해를 폭로한 것 때문에 여러 번 공격을 받았고, 전화 협박도 받았습니다. 저는 제가 감시 대상 명단에 올라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식의 책임과 효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법의 중요한 항목인데 당시 저는 이 관(고비)을 넘기가 몹시 어렵다고 느껴졌습니다. 당시 이런 큰 걱정 때문에 자다가 놀라 깨는 일이 잦았고, 다시 잠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며,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 능력으로는 전혀 견뎌낼 수 없었습니다. 깨어난 후 저는 사부님의 법을 한번 한번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간섭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지할 수 없다. 아내와 자식, 부모형제를 포함한 그들의 운명, 그것이 당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1]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칠정육욕을 끊어버릴 수 있는가 없는가, 담담히 여길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당신이 그런 것들에 집착한다면 당신은 수련해 내지 못한다.”[1]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
그 시기 저는 마음이 괴롭기만 하면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외웠습니다. 제가 가장 간고한 시기에 처해 있을 때 션윈(神韵)이 영국의 다른 도시에서 마지막 공연을 했고, 거기 가서 저는 션윈을 보았습니다. 이번 션윈은 이전에 봤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감수가 있었습니다. 제1막부터 계속 눈물을 흘렸고, 마차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 갑자기 신성함과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제 생명은 이미 어떤 사람에게 속하거나 어떤 가정에 속한 것이 아니며, 제 생명은 이미 대법에 속하며 우주에 속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션윈을 보기 시작한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션윈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감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로서 신성한 사명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단원들이 감사의 인사와 작별인사를 할 때는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웠고, 통곡할 뻔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도 저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제 뒷등의 극심했던 통증이 없어진 것을 의식했고, 사부님께서 감당해 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전에 마난에 부딪히면 언제나 자신이 관을 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사부님께서 저에게 수련을 잘하려는 소원이 있음을 보시고 이런 물질을 떼 주셨기에 이 관을 넘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션윈 공연을 보고 나서 저는 부모님이 충격이 클지라도 귀국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어떤 일을 하든 가장 먼저 대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자신의 수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우주의 무량한 중생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전에 저는 줄곧 정법이 빨리 결속되기를 바라며 귀국하여 가족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귀국하지 않기로 한 이후 이런 생각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중공 바이러스가 지금도 온 세상을 해치고 있습니다. 정법이 하루 결속되지 않으면 그 하루는 곧 중생에게 희망이며, 저에게는 수련을 잘할 기회의 하루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스스로 다그쳐 잘 수련하여서 되도록 빨리 법의 표준에 도달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칭호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020년 희망지성 수련심득 교류회 발언고)
원문발표: 2020년 6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6/18/4078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