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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외우는 가운데 집착심을 찾다

글/ 후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내가 불법적으로 감금됐던 감옥에서 나오자 한 수련생이 내게 관심을 가지며 법을 외우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법을 외울 수 있을까? 나는 나이가 많고 기억력도 좋지 않았다.

나중에 법 외우기에 대한 수련생의 글을 밍후이왕에서 읽었는데, 70~80세의 노년 수련생이 법을 외웠을 뿐 아니라,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젊은 수련생 못지않게 했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웠다. 나는 그 글을 읽고 또 읽었는데, 그것이 진정한 정법시기(正法時期) 대법제자라고 생각했다.

작년 4월 17일, 나는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새벽 6시 발정념을 마치고, 곧바로 1시간 동안 법을 외웠는데, 한 문장씩 외웠다. 때로는 한 단락을 외우는 데 이틀이 걸렸고 가끔은 하루에 한 단락을 외웠다. 날마다 힘들게 외웠지만, 아주 느렸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외우면 언제 다 외울까?’ 한 수련생은 조급해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외우라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한테 조급증이 있는 것 같으니 마침 이걸 수련하면 되겠다.’

나는 법 외우기를 멈출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법을 외우려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나의 대뇌를 조정해 주셨다. 어느 날, 내 머리가 어찌 된 일인지 너무나 어지러웠다. 머리는 너무나 불편했고, 대단히 어지러웠다. 그러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하는 것은 모두 정상이었고,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좋은 일이며, 사부님께서 나의 법 외우기가 너무 느린 것을 보시고 나의 대뇌를 조정해 주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확실히 사부님께서 내 머리를 조정해 주셨고 며칠이 지나자 일체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과연 법 외우기는 확실히 빨라졌다. 지금 나는 시간이 있으면 많이 외우고, 시간이 적으면 적게 외운다. 가끔 하루에 몇 단락을 외우기도 한다. 작년 4월 17일부터 올해 2월 22일까지 ‘전법륜’ 한번을 외웠는데, 열 달이 넘도록 착실하게 외웠고, 한 문장, 한 문장씩 외웠다.

현재는 외우는 속도가 많이 빨라져 두 문장씩, 가끔은 세 문장씩 외운다. 두 번째 외우기는 2월 23일부터였는데, 4월 2일까지 이미 제5강을 외웠고, 나아가 내가 어떤 것을 잘하지 못했는지, 어떤 마음을 반드시 버려야 하는지 분명히 알게 됐다.

올해 설 연휴에 아들과 딸이 모두 휴대폰을 갖고 놀았는데, 내가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았다. 아들은 휴대폰을 하면서 상대방을 욕했고, 딸은 사당(邪黨)이 지어낸 유언비어를 보고는 그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것이 너희들을 속이는 것이며 너희들을 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딸은 내 말을 듣고 나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가끔은 논쟁을 하다 기분을 상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제3강을 외우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 장(場)은 어째서 아직도 아들을 제약하지 못할까?’ 나는 아들을 불러 내가 법을 읽는 것을 들려주었다. 이후 아들은 사람을 욕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나는 원래 혼자 사는데 새해를 맞아 아이들이 온 것이었다.

한번은 아들이 휴대폰에서 사당의 거짓 선전을 보고는 나에게 가져와 보여 줬다. 내가 그것이 가짜라고 말하자 아들은 단번에 화를 냈다. 당시 나는 내가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고 아들과 논쟁을 벌였는데, 둘 다 몹시 기분이 상했다. 딸이 옆에 있다가 말했다. “엄마, 엄마도 다투네요!” 며느리는 아들을 불러내 데려갔다.

그때 이후로 며느리는 날 상대하지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나를 이렇게 대하면 나중에 네가 얻은 며느리도 너를 이렇게 대할 거야.’ 딸이 말했다. “엄마도 똑같아요. 뭐 하러 다퉈요? 오빠가 몇 마디 하고 싶어 하는데, 그냥 하게 하면 안 돼요? 구태여 얼굴을 붉히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떠들어서 기분만 망치네요.” 나는 딸에게도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딸이 말했다. “엄마, 잔소리하지 말고, 가서 법공부나 하세요.” 나는 곧바로 법공부를 하러 갔다.

마침 제4강을 배우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법 속에서 명명백백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20여 년 동안 수련을 했으면서 여전히 속인과 다투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생각했다. ‘나는 어째서 아직도 이렇게 완고한 집착을 갖고 있을까?’ 나는 그 관을 넘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했고 그들을 보기 민망했다. 나는 이것이 심성과 집착의 문제일 뿐 아니라, 정도 섞여 있음을 깨달았다. 만약 정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다투지 않았을 것이었다.

나는 수련하면서 줄곧 원한심, 쟁투심, 질투심, 좋은 말을 들으려는 마음, 체면을 세우려는 마음, 색욕심, 그리고 정에 대한 집착을 버려왔다. 그러나 심성을 시험하는 일을 만날 때마다 사람 마음에 제압당해 쟁투, 질책, 원한의 소용돌이에 빠졌고 늘 다른 사람이 눈에 거슬렸다.

나는 밍후이왕에서 ‘고개 숙여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다’라는 글을 읽었는데, 느끼는 바가 몹시 컸다. 수련생은 이렇게 썼다. “때때로 내 잘못이 분명한데, 마음속으로는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생각하니 나도 그렇지 않은가? 나는 마음속 완강함으로 인해 누구도 내 실수를 인정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누구에게도 사과하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사당 문화의 주입으로 형성된 완강한 마음, 독선, 타인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는 등, 그로 인해 갈등을 만날 때마다 사람의 마음이 건드려졌고, 그럴 때 나타나는 변명, 쟁투, 질책, 분노와 원망 등의 표현은 완전히 ‘진선인(真·善·忍)’을 위반한 것이었다. 그럴 때는 내 잘못이든 아니든, 내가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것을 할 수 없었다. 마음속 완강함은 사당 문화의 주입으로 형성된 경쟁 관념, 체면, 좋은 말만 들으려는 마음, 허영심, 명리(名利)심, 질투심 때문이었다.

이번의 법 외우기를 통해 나는 이런 마음을 모두 찾아냈고 그래서 반드시 수련해 버려야 했다. 나는 딸에게 말했다. “내가 잘못했다. 너희들과 다투지 말아야 하는데, 사실은 정이 훼방을 놓은 거야.” 딸은 웃었다. 나는 다시 한번 며느리에게 사과했다. 며느리는 괜찮다며 내가 건강하기만 하다면 자기들은 안심이라고 말했다.

나는 현재 그들을 아주 깊이 이해하며 사당이 나를 박해할 때 그들도 아주 많은 것을 감당했다. 내가 알기로 그들은 두려워하며 걱정한다. 내가 법을 외우고 나서야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사당 문화의 해독이 나에게 그렇게 강렬하게 집착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마음속의 사당 문화 독소를 반드시 철저히 제거해 대법 수련 속에서 자신을 순정하게 하고, 군림하려는 마음을 버리며, 성실하게 자신을 잘 수련해 조사정법(助師正法)의 사명을 완수할 것이다.

법 외우기도 마음을 닦는 과정이다. 법을 외우고부터 내가 모순을 만나거나, 마음에 매듭이 생겼을 때, 사부님의 법 한 단락이 머릿속에 들어와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법 외우기는 나를 법에 더욱 잘 동화될 수 있게 하고, 내가 법에 더 잘 동화되면 내 수련을 더욱 잘 이끌어 매 한 층차에서 자신에 대한 요구와 표준에 도달하게 하며, 진정하게 사람으로부터 걸어 나와 진정하게 신으로 수련하게 한다.

최근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점화(點化)가 분명히 느껴졌다. 진상을 알려 그들이 삼퇴하면 다시 그들에게 호신부를 주는데, 어떤 사람은 양손을 합장하면서 깊은 감사를 표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입을 열자마자 당신이 나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있느냐고 말한다. 내가 그에게 탈퇴 이야기를 하고 나서 호신부를 주면 그는 거듭 감사를 표한다. 그때 나는 나에게 고마워하지 말고, 당신이 선량하기에 대법 사부님께서 나에게 당신을 구하게 하신 것이니 대법 사부님께 감사를 드리라고 말한다. 그는 좋다며, 감사를 표한다! 또 한번은 내가 한 사람에게 이야기하는데, 다른 한 사람이 계속 옆에서 듣다가 내가 진상 자료를 그 사람에게 주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이 좋은 것을 나에게도 줄 수 있나요?”라고 말하는 등등이다.

때로는 나의 용량을 늘려 나를 바로잡아야 한다. 당연히 가끔 법을 외울 때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곧바로 다시 외우며, 마음을 고요히 해 그 구절이나 그 단락의 법을 잘 외울 수 있을 때까지 외운다. 가끔은 일부 생각이 나올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해야 할 일이 떠올라 빨리 가서 하고 다시 법공부를 하자는 생각이 나온다. 내가 알기로 이것은 교란이며, 이것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내가 따라간다면 그것은 술수를 써서 나에게 이 일을 생각하게 하고, 저 일을 생각하게 하는데, 그러면 곧 사악에게 붙잡히게 된다. 물론, 가끔 내 마음을 건드리고 가끔은 그런 염두가 몹시 강한데,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늘이 무너져도 법공부를 마치고 나서 할 것이다.” 그러면 좋지 않은 생각은 즉시 사라진다.

진정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와 법 외우기를 할 때는 단정한 자세가 장시간 변하지 않는다. 한번은 내가 새벽 5시에 가부좌를 해서 정공을 마치고, 6시 발정념을 하고, 이어서 법 외우기를 9시까지 하고 나서야 다리를 내려놓았다. 줄곧 앉은 자세를 바꾸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전에 없던 일이었다. 이전에는 두 시간 동안 가부좌를 하면 견디기가 어려워 다리를 내려놓았다. 게다가 이전의 불량한 마음도 아주 적어졌다. 나는 이것이 대법의 아름다움이 몸에서 체현된 것임을 안다.

나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을 외울 때 한없이 미묘(美妙)함을 느끼며, 매일 내가 가장 행복하고 바라는 것은 바로 가부좌를 한 채 고요한 마음으로 법을 외우는 것이다. 20여 년간 수련하면서 고요한 마음으로 법 외우기를 하고, 법공부를 하는 가운데 깨달은 법리 자체가 나에게 대법을 확고히 믿게 했다. 나는 법을 잘 배워야만 가장 좋은 수련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음을 안다.

이상은 현 단계에서 나의 깨달음이며, 약간의 체험에 불과하니 만약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발표: 2020년 8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8/20/4086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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