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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와 ‘위사’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남편과 ‘선타’와 ‘위사’ 관련 화제로 교류하면서 감수가 깊었다. 대법제자는 사명을 지닌 생명으로서 ‘선타’와 ‘위사’를 어떻게 인식하냐가 중요하게 느껴졌다. 일전에 집착심에 대해 교류할 때 남편은 남을 위하는 생명일수록 속인의 집착이 적으며 마음속엔 ‘선타’만 있고 ‘위사’는 거의 없어 속인의 집착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었으며 자신의 수련상태 반영이기도 했다. 한동안 혈육의 정에 얽매였을 때 머릿속엔 온통 집안일과 자녀에 대한 정으로 꽉 차 있어서 대법과 중생 구도와 관련된 일은 생각할 겨를이 없거나 아예 생각지 않았다. 이때 생존은 바로 혈육의 정(위사)을 위해서며 ‘선타’(중생)를 위함이 아니어서 생존의 의의는 아주 작은 범위에 국한됐다.

‘위사’는 구 우주의 생명의 본성이며 대법제자는 구 우주에서 생성된 생명이어서 당연히 ‘위사’의 표현이 있다. 수련하면서 점차 ‘위사’를 버려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1] 완전히 ‘선타’하는 생명이 돼야 한다.

‘선타’의 생명은 마음속에 우주와 중생을 담아 말겁 시기에 우주와 중생을 구하려는 원대한 목표와 사명을 지니고 있으며 우주와 중생의 안위를 위함이 생존하는 진정한 의의이고 목적이다. ‘위사’의 생명은 마음속에 자신의 작은 가족과 혈육의 정을 담고 있어 자신의 가족만 생각해 마음이 매우 좁다.

‘자아’도 ‘위사’이며 ‘선타’의 표준에 도달하려면 먼저 ‘자아’에서 빠져나와 수련을 통해 버려야 하며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1] 그래야만 ‘선타’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지만, 실제 행하기는 몹시 어렵다!

사부님께서 ‘홍음’에서 말씀하셨다. “진정으로 대법을 수련하나니 오로지 이것만이 큰일이로세. 대법에 동화하나니 언젠가는 기필코 성취하리라”[2] 우리는 대법을 위해 온 생명이기에 생존의 의의는 대법만을 위한 것이며, 대법이 없으면 ‘대법제자’라는 신성하고 위대한 칭호를 가질 수 없으며 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진수하는 대법제자의 마음속엔 대법이 항상 첫 순위여야 한다.

저의 옅은 인식이므로 부당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법을 얻다.

 

원문발표: 2020년 8월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8/10/4102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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