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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껍데기 이야기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마늘쪽이나 볶음 요리를 하고 남은 생강 덩어리가 담긴 전복껍데기가 주방 창틀에 놓여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서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정말 대법을 수련했기에 이 일체가 변한 것이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차근차근해야 한다. 나에게는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는데, 집에서는 막내로 위로는 나를 포함해 누나가 둘이 있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성격이 좋지 않았는데, 건강도 그렇게 좋지 않아 늘 병을 달고 살았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많이 끌려다니셨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집이 가난해서 맛있는 것이라곤 없었고, 조금이라도 맛있거나, 쓸모 있거나, 재미있는 것이 생기면 동생이 몰래 먹거나 훔쳤다. 처음에는 누가 했는지 몰라 우리 셋이 늘 의심을 받았다. 동생은 또 늘 밖에서 말썽을 일으켰고, 담배와 술에 중독되는 등 불량스러웠다. 늘 학교에 가기를 싫어해 책가방을 큰 나무 위에 숨겨 놓고는 작은 식당에 가서 일했다. 당시 식구들은 동생이 중학교를 졸업하기를 바랐는데, 어머니는 학교에 가라고 구슬리면서 날마다 우리 몰래 동생에게만 용돈을 주셨다.

어머니가 그렇게 동생 편을 들었지만, 그는 누구든 눈에 거슬려 했고 늘 난폭하고 억지를 썼으며 고집이 심했다. 어머니는 아무도 저 고집을 못 꺾는다고 했고, 우리도 동생을 꺾을 방법이 없었다. 어머니와 가족들은 동생을 위해 마음을 얼마나 써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는 원망의 씨앗이 심어졌고 그를 아주 싫어하게 됐다.

한번은 동생을 위해 호적을 옮겨 주었는데[당시에는 대업증(待業證, 취업 대기자 증명)이 있어야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음], 사실은 담당자가 나에게 주려고 한 것을 내가 동생에게 주라고 한 것이었다. 동생의 호적을 옮기려고 내가 자전거에 어머니를 태우고 함께 가는데, 비좁은 내리막길을 빠른 속도로 내려가니 정신이 하나도 없고, 어쩔 줄을 모르다가 어머니와 함께 큰길가에 넘어졌다. 어머니는 별일이 없었고 팔꿈치와 손의 살갗만 조금 벗겨지셨지만, 나는 자갈이 깔린 인도에 넘어져 정신을 잃었다. 결국, 지나던 마음씨 좋은 운전사가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나는 사고 기억이 거의 없었다. 내가 전체 과정을 반복해서 생각해 봤지만, 넘어지는 순간만 생각하면 머리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나고서야 정상으로 회복됐다. 그 당시 내 얼굴은 피범벅이 됐고 이마 두세 곳에 상처가 나서 10여 바늘을 꿰맸는데, 지금도 흉터가 보인다. 얼굴 전체가 부어서 눈도 잘 보이지 않았고 코와 입도 부었다. 남자친구(현재의 남편)가 자신의 여동생과 친구를 데리고 병문안을 왔을 때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모두 뒤돌아 눈물을 흘렸다. 내 얼굴, 입, 코에 모두 상처가 났었는데, 지금은 흉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당시 겨우 스물두 살이고, 한창 멋을 내기를 좋아할 때라 정말 두려웠다! 다행히 얼굴은 망가지지 않았다. 이후에 동생은 배은망덕하게 말했다. “누가 누나한테 내 일을 하라고 했어?! 내가 엄마하고 같이 가면 될 것을 뭐 하러 갔어?” 심지어 참기 어려운 막말까지 했다. 내 마음속에는 동생에 대한 원한이 가득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넌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나한테 이런 악담까지 하는구나.’ 나는 ‘얼굴이 망가질 뻔했다.’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무서웠다.

나는 가정을 이룬 후, 비록 마음속으로는 동생을 원망했지만, 부모님을 봐서 남편과 여동생이 여러 차례 남동생의 취직과 생활비를 도와줬다. 그러나 애써 일자리를 찾아줘도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고 다시 집안에 틀어박혀 부모님의 마음에 짐이 됐다. 그렇지 않으면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자리를 찾아줘야 했다. 이렇게 반복하니 주변 친구들에게도 모두 폐를 끼쳤다. 그러나 그는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잘 대해줘야 하고,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체면을 특별히 중시했고 자존심이 강했는데, 매번 다른 사람이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눈빛만 심상치 않아도 내가 잘못한 것을 깨닫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하고부터 동생에 대한 나의 원망이 점점 사라지고 차례차례 연마됐는데, 그건 정말 살을 도려내고 뼈에 사무칠 정도로 쉽지 않았다!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들겠다.

나와 남편은 이전에 작은 식당을 운영했는데, 하루는 동생이 와서 식당 종업원과 손님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한바탕 악담을 퍼부었다. 동생은 또 큰소리를 치면서 손으로 나를 때렸는데, 식당 종업원들도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너무나 창피해서 입으로 몇 마디 반격했다. 나는 화가 나고 분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네 누나인데, 어떻게 우리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날 업신여길 수가 있어? 집안이 불화하면 다른 사람이 업신여기는데, 이건 다른 사람한테 웃음거리 아냐?’ 나중에 자세히 생각하니 틀린 것이었다. ‘나는 수련인이 아닌가? 이건 내 심성을 제고시켜 주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나를 도와 허영심과 체면을 버리게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동생처럼 행동한다면 나는 또 그런 속인보다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분한 마음이 여전히 치솟았다.

또 한번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인데, 동생은 모든 것이 내가 처리를 잘못했기 때문이고, 모두 나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 세 명은 친구와 함께 밥을 먹는데, 마침 동생이 나타나서 우리가 함께 먹자고 했다. 그 식당은 내가 일하는 건물 아래층에 있었고, 우리 회사에서 임차한 곳이었는데, 마침 내가 건물 내 비용(임대료, 수도, 전기와 기타 비용) 징수를 책임지고 있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늘 그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나는 식당 종업원들과 잘 아는 사이였다. 나와 동생 사이에 내 아들이 앉아 있었는데, 동생은 밥을 먹다가 아들을 사이에 두고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또다시 심한 욕을 퍼부었다. 온갖 듣기 힘든 욕설에다 그야말로 저주해 죽일 듯했다. 앞에 앉아 있는 남편과 남편 친구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당시 내 얼굴은 완전히 빨개져 마치 크게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식당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모두 이쪽을 쳐다봤다. 내가 가볍게 몇 마디 해명해도 나에게는 말을 못 하게 했고, 우리 둘 사이에 아들만 없으면 곧장 나를 때릴 듯이 하면서 고함을 지르다가 말했다. “철든 네 아들 얼굴을 봐서 널 안 때릴게.” “네 꼬락서니를 봐. 네 아들보다도 못해.” 남편이 동생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뭘 어쩌려고? 소리 좀 낮춰.” 나는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정말 억울했다. 눈물을 머금고 참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지?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할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정말 가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것처럼 견디기 어려웠다. 이 정(情), 이 체면을 구하는 마음, 이 허영심, 이 자존심, 이…….

한번은 고모가 우리 집에 와서 한동안 묵으셨다. 동생과 올케가 다시 초대하니 고모는 온 김에 동생네 집에 들르겠다고 하셨고, 동생과 올케가 우리 집에 와서 고모를 모셨다. 고모는 나에게 함께 가자고 했고, 나는 원치 않았지만, 고모의 얼굴을 봐서 함께 동생네 집으로 갔다. 나는 가자마자 채소를 따고 요리를 도왔다. 그런데 동생이 반대하는 바람에 나는 채소를 다듬어 놓고 소파에 앉아 고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동생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화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다시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오라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식사만 기다리네.” 말을 할수록 거칠어지고, 말을 할수록 소리가 커지더니 온갖 내 흠을 들추어냈다. 나는 다시 관을 넘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온갖 묵은 이야기에다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까지 전부 나왔다. 나는 다시 극한의 인내심을 동원했다. 밥그릇을 내려놓고 가고 싶었지만, 고모가 여기에 계시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당시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마디 했다. “내 평생에 다시는 너희 집에 안 오고, 너희 집 밥그릇에도 손을 안 댈 거야. 내가 한 말을 기억하길 바란다.”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억울해서 울기 시작했다. 고모가 나를 달래니 더 마음이 아팠다. 자신을 완전히 속인으로 여겼다. 나중에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한신이 치욕을 참아낸 이야기를 생각하며 자신을 질책했다. 아직도 이 모양이고 참지 못하는데, 정말 아직도 속인보다 못하다니 수련인 대열에 낄 수 있을까? 왜 내려놓지 못할까? 나중에는 동생을 원망하는 마음이 다시 올라왔고 한참 동안 동생과는 왕래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부모님이 모두 안 계시니 동생과 왕래하지 않을 거야.’ 동생이 내 마음을 완전히 상하게 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도 내려놓지 않았는데, 법공부를 통해 천천히 바로잡혔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것들은 모두 내 마음이 조성한 것 아닌가? 동생은 나의 제고를 도우러 온 것이 아닌가? 나는 어째서 밖으로 밀어내지? 우리가 전생에 어떤 은혜와 원한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내가 갚을 빚이 있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업력이 누구에게로 떨어지면 바로 그가 괴롭기 때문인데,”[1] 내가 어떻게 해야 나에 대한 동생의 원한을 풀 수 있을까? 나는 먼저 그가 틀린 것이 아니고 내가 틀린 것으로 관념을 바꾸어야 했다. 내가 어렸을 때 동생을 좋아하지 않았고, 동생을 원망했는데, 이건 질투심이 아닌가? 다른 사람을 돕고 나서 고마워하기를 바라는 마음, 보답을 바라는 마음. 나의 허영심, 체면이 너무나 강했다. 동생은 계속 나의 제고를 도와주었는데, 나는 항상 밖으로 밀어냈고 많은 기회를 모두 놓쳐버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1] 동생에 대한 나의 원망이 그렇게 깊고, 그렇게 오래됐으니 동생의 명백한 일면이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1]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정념은 세상사람을 구하는도다”[2] 당신의 적을 사랑하지 않으면 원만할 수 없다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고, 더구나 그는 나의 가족이다.

나는 적극적으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관심을 보여주었고, 나와 남편이 운영하는 산장에 동생을 초대해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더위를 피하고, 밥을 먹였으며, 하는 김에 녹색 과일과 채소를 들려 보내 가족에게 주게 했다. 처음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오라고 하니 거북해했고 큰 관심이 없었다. 동생은 몇 차례 초대하니 조금 부드러워졌고, 올 때마다 우리에게 먹을 것과 생필품을 갖다 주었다. 우리는 먼저 고마움을 표하고 완곡하게 말했다. “물건을 가져올 필요는 없어. 다 있는 거야. 우리가 한 가족이니까 예의를 갖출 필요는 없어.” 동생과 우리의 대화는 상당히 정중해졌다. 동생은 때때로 자신의 이전 잘못을 반성하기도 했는데, 거의 나와 비슷해졌고 특히 나에게 사과까지 했다. 이전의 동생에게는 이런 일이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일이었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내 좋지 못한 마음들이 제거된 것을 알았다. 나는 제고되어 올라왔고 내 이쪽이 바로잡히자 그도 바뀌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3]와 같았고, 우리가 바쁠 때는 동생이 가끔 도와주었다. 우리가 바쁘지 않을 때는 동생 내외가 함께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었으니 동생은 우리 집 단골손님이 됐다. 거의 매번 올 때마다 나는 NTD TV를 틀어 동생에게 보여줬다. 우리는 함께 식사하고, 함께 시청하고, 함께 토론했다. 내가 동생에게 진상용 탁상달력을 주려고 하자 남편은 동생이 반대할 것을 걱정해 주지 말라고 했다. 내가 동생에게 주니 기뻐하며 말했다. “나는 좋아.” 비록 이전에 삼퇴했지만 진상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특히 올케까지 지금은 모두 바뀌었다. 동생은 내 수련을 아주 잘 이해하며, 내가 거의 매일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안다. 동생과 남편은 장난삼아 말한다. “또 출근해야 해?” 내가 돌아오면 말한다. “퇴근했어?” 동생은 또 전염병 기간에 전화를 걸어 농담했다. “봉쇄 구역에서는 외출해 출근할 수 없으니 우리 누나한테 복직 증명서를 발급해줄 방법을 생각해야겠네.”

한번은 동생이 혼자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었는데 특별히 나에게 주려고 가져 왔다며 커다란 전복 하나를 주었다. 다른 사람이 처가에 보낸 자연산으로, 한 사람당 하나씩 받았는데, 자신의 것을 먹지 않고 특별히 나를 위해 냉장고에 남겨뒀다고 했다. 내가 감동한 것은 단지 전복 때문이 아니었고 내가 대법을 수련해 그렇게 많았던 좋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고, 마음을 느긋하게 갖고,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자비로 대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나와 동생의 은혜와 원한을 없애도록 나를 도와주셨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 2-법정건곤’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

 

원문발표: 2020년 7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7/31/4081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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