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희망지성과 인연을 맺다
나는 1998년 5월에 법을 얻었고 모든 대법제자들처럼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의학 방면의 일과 컴퓨터를 다루는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내 생각대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나의 첫 직업은 컴퓨터를 점검하는 일이었고 미국에서 처음 일한 곳은 진료소였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것은 나중에 진상 알리기를 더 잘하라고 배치된 것이었다.
2000년, 어느 우연한 기회에 나는 로스앤젤레스 비디오제작팀에서 일하게 됐다. 당시 팀 관리자는 내가 컴퓨터 다루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매우 간단한 편집을 시킬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자판을 한번 누르면 잘라내기를 표시하고 연속 몇 번 잘라내기 동작을 하면 완성된 것이고 다음 파일을 출력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간단하면 좋아요.” 나는 대답했다. 하는 일이 진상 알리기와 관련된 일이기에 이렇게 나는 우리 매체에 들어서게 됐다.
희망지성에 들어간 것은 이끌려 들어간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로스앤젤레스의 희망지성 책임자와 매일 아침 공원에서 연공했다. 어느 날 그녀가 모모 씨는 좋은 소재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지금 동영상을 제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희망지성에서 먼저 오디오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나는 모든 기연이 보기에는 우연한 것 같지만 모두 이미 다 배치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프로그램 제작에 대해 나는 자신이 참여한 프로그램이 진상 알리기 작용, 속인을 도와 미혹을 풀어주고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에서 속인에게 도움이 되고 속인이 신을 믿는 저지선을 향상할 수 있길 바랐다. 만들어낸 프로그램이 후세 사람의 참고가 되는 것이 나의 소원이었다. 이 원칙에 따라 내가 선택한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매우 명확했지만, 나의 문장력은 한계가 있었기에 프로그램 원고를 구성하는 방면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늘 답답해서 머리가 몹시 아팠지만, 더 좋은 원고를 구성하지 못해 종종 푸이스(副意識)가 어디 갔나? 왜 나를 도와주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사람의 대뇌는 정말 매우 이상하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줄줄 말할 수 있지만, 글을 쓰려 하면 멍해진다.
사실 내가 생각해 내지 못할 때 가부좌 중이나 법 공부할 때면 머리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일부 떠오른다. 예컨대 타이틀을 제작할 때 그녀는 당신에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준 다음 한 장면이 나오거나 갑자기 당신에게 한 가지 문제를 제시하여 이 문제를 즉시 원고에 넣을 수 있게 한다. 나는 실제로 열심히 법 공부, 연공하면 법에서 답안을 주는 것을 체험했다.
난관을 넘은 체득
법을 얻은 후 몇 년은 ‘내가 수련 성취하지 못하면 누가 수련 성취하겠는가’라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 나는 수련이 너무 쉽다고 생각했다. 그저 집착심을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나의 가장 큰 장점은 마음이 넓은 것이다. 이전에 점쟁이를 만났는데 나에게 여성 중에서 보기 드물게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에게 심성관은 무슨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한동안 나는 아무런 관도 넘지 않아 심성관을 넘는 수련생을 매우 부러워했다. 관을 넘지 않으면 제고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전에 여러 번 사부님께 ‘왜 그들은 그렇게 많은 관을 넘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없습니까, 사부님께서 저를 관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말했다. 결과 큰 관이 생겨 관을 넘는데 1년 넘게 걸렸다.
그 1년 넘는 시간에 내심의 고통은 가끔 있었다. 법리적으로 자신의 업력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현실은 매우 잔혹했다. 한 사람이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한 무리 사람이다. 그때 갑자기 타심통(他心通) 공능이 나왔다. 일부 수련생이 속으로 무슨 생각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를 다 알았다. 게다가 모두 나를 자극하는 말들이었다. 나의 마음이 괴롭지 않을 수 있는가? 그때 나는 생각나는 모든 집착을 모두 내 몸에 대조해보고 그것을 찾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어느 날 차를 몰고 가는 길에 머리에 매우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그 생각을 따라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귓가에서 확실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부님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1] 당시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시시각각 나를 지켜보고 점화해주신 사부님의 자비로움에 감사드렸다. 그때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에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줄곧 나를 점화해주시고 하나의 집착에서 하나의 법리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법리에서 더 높은 경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한 걸음씩 나를 도와 제고시켜주시고 나를 사람으로부터 걸어 나오게 했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한 수련생에게 이메일을 쓰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한 장면이 나타났다. 내가 속인 중에서 줄곧 자랑스럽게 여겼던 ‘의(義)’자가 다른 한 공간에서는 ‘사(私)’자로 나타났다. 당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 속에서 나는 주위에 누구도 나보다 정의와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내가 자신과 타인을 가늠하는 표준이었다. 누가 나보다 강하면 나는 정말 감탄할 것인데 내가 감탄할만한 사람이 정말 많지 않았다. 속인으로부터 대법 수련에 들어서서까지 이 생각을 줄곧 바꾸지 않았다. 그러다 그 장면이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보물로 여겼던 그 ‘의’가 원래 큰 집착이라는 것을 의식했다. 원래 이 ‘의’에는 강한 ‘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정 속에 담겨 있으면서도 완전히 몰랐다.
사부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이 층의 이치를 알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인간 세상의 이 정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이 난관을 1년 넘게 넘었지만 내심으로는 나를 제고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있어 고마웠다. 다른 사람이 소위 나를 ‘불공평하게’ 대하고 내 마음이 괴로울 때 나는 수련생들이 선(善)으로 나를 대하길 기대했다. 그래서 그때 나는 자신에게 일깨워주었다. 내가 예전에 다른 사람을 잘 대하지 않았기에 오늘의 응보가 있게 된 것이기에 나는 앞으로 큰 선을 닦아내야 사부님의 제자가 되고 조사 정법, 중생 구도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며칠 전, 막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꿈을 꾸었다. 꿈에 한 프로그램 사회자가 한 책임자와 말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다른 한 수련생과 프로그램을 녹화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사회자가 나에게 지금 모모 씨가 방송국에서 제1인자가 될 수 있다면 지금 녹화할 자격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 녹화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우리는 오늘 녹화하지 않아도 되니까 내일 다시 보자고 말했다.
나는 입으로는 개의치 않은 것처럼 표현했지만 속으로 매우 불편했다. 이때 다른 한 책임자가 이 장면을 보고 내 옆에 걸어와 괜찮냐고 묻고 나를 안아주었다. 당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억울한 모습이었다. 사실, 꿈에서 나는 억울한 것이 아니라 체면과 존엄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꿈에서 깨어난 후 눈을 떠 보니 1시간도 채 못 잤다.
나는 이 꿈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1시간도 자지 않았는데 이렇게 또렷한 꿈을 꿀 수 있을까? 게다가 나는 이미 오랫동안 꿈을 별로 꾸지 않았다. 설마 이 꿈이 나를 점화해주신 건가?
그날 밤, 나는 정말 진지하게 생각했다. 사실 실생활에서 나는 자신이 중요한지, 유명한지를 중시하지 않은 것 같지만 체면을 중시했다.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줄곧 존재한 문제다. 법을 얻기 전에 나는 꾸지람을 듣거나 비난을 받으면 다른 사람이 보지 않았다면 쉽게 내려놓았다.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쁜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유독 잘 넘기지 못한 것이 체면이다. 다른 사람이 들었거나 보았다면 나에게는 큰 상처였다. 나는 이 때문에 오랫동안 생각했고 누가 들었다고 생각할 때마다 며칠 동안 괴로웠다. 1년 넘게 걸린 큰 난관 역시 이 방면의 요소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 너무 체면이 서지 않은 것이다.
사실 수련한 후 많은 난관과 어려움은 전생에 빚을 진 것이라고 여겼기에 이해한 후 마음도 차츰 평온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사실 많은 집착이 가려져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 수련은 사실 많은 방면의 수련이 있다. 한 난관이 왔을 때 하나의 집착만 제거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체면을 중히 여기는 것은 실제 자아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내 이미지를 더 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나는 거의 표창과 칭찬 속에서 지냈다. 나는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적어도 느낌은 괜찮았다. 대법에서 수련하는 중에 법의 나에 대한 요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종종 무의식중에 자아에 빠져 있었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거짓말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성실하지 않고 진실하지 않으면 노발대발했다. 내가 체면을 중히 여기는 것도 사실 나의 좋지 않은 일면을 다른 사람 앞에 보여주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 역시 ‘성실하지 않은’ 표현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속인 중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을 당신에게 모두 내려놓게 해야 한다. 어떠한 집착심이든 당신에게 있기만 하면, 각종 환경 중에서 그것을 닳아 없어지게 해야 한다. 당신에게 곤두박질치게 하고 그 중에서 도(道)를 깨닫게 하는데, 바로 이렇게 수련해 온 것이다.”[2] 나는 이렇게 사부님께서 이끌어주셔서 한 걸음씩 더듬거리며 자신의 수련의 길을 성취했다.
맺는말
최근 중공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서 기승을 부려 사람들은 다 집에서 격리되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열이 났다. 나는 평생 고열로 그렇게 괴로운 적이 없었다. 온몸의 뼈, 관절이 다 아파 걷기조차 어려웠다. 나는 주위 속인이 알까 봐 두려웠다. 같이 사는 집주인이 알면 큰일이다. 그날 나는 문을 닫아걸고 법 공부하고 연공했지만, 머리에는 나의 이 두려운 마음, 속인이 알면 어쩔까 하는 마음도 ‘누락’이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두려운가? 정정당당하게 모든 것을 대면하면 속인의 오해를 사지 않을 것이다. 다음날 나의 몸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집주인도 와서 나에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몸이 좀 불편했는데 이미 나았다고 바로 알려주었다. 그녀는 즉시 말했다. “모모 씨는 매일 연공하는 것이 좋은 거예요. 나도 모모 씨를 따라 배워야겠어요.”
나는 종종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무엇이 사람인고 온몸에 정욕이로다 무엇이 신인고 사람마음이 없도다 무엇이 부처인고 선과 덕이 거대하도다 무엇이 도인고 청정한 진인이로다”[3] 종종 이 법으로 나의 생각, 언어, 행위를 대조한다. 나는 아직 제고할 점이 매우 많고 많은 집착을 버려야 하지만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사부님께서 나에게 안배한 수련의 길을 잘 걸으면 사명에 어긋나지 않고 서약을 실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2-슬퍼하지 말라’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사람과 각자의 구별’
(2020년 희망지성 수련심득교류회 발언고)
원문발표: 2020년 6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6/20/4078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