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헤이룽장(黑龍江) 무단장(牡丹江)시 하이린(海林)시에 거주하는 파룬궁(法輪功)수련생인 여자 의사 왕수쿤(王淑坤. 66)은 2020년 6월 말 “병원장 호출”이라는 거짓 연락을 받고 병원에 출근했다가 대기 중이던 악경(사악한 경찰)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악경은 29년간 자신의 억울함을 진정하며 집에만 있던 남편 위샤오펑(於小鵬)이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말하라며 혹독하게 구타했다. 결국 왕수쿤은 구타당한 며칠 뒤인 지난 7월 2일 새벽 억울하게 사망했다.
하이린시 팡싱(方興) 주택단지에 사는 왕수쿤은 하이린진 병원에서 퇴직했지만, 병원 측의 요구로 계속 내과 의사로 근무하던 중 우한 폐렴(중공 바이러스)로 출근하지 않고 있었다. 2020년 6월 말 왕수쿤은 하이린진 병원 당위서기 한옌(韓豔)으로부터 “천광췬(陳廣群) 병원장의 호출이니 병원으로 나오라”는 전화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갔다가, 악경에게 위협과 무자비한 구타를 당했다.
왕수쿤은 병원장의 호출이 다시 출근하라는 것으로 알고 병원에 갔는데, 도착해서야 거짓 호출이라는 것을 알았다. 병원에는 하이린시 제1파출소 악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악경은 그녀에게 수련을 포기한다는 ‘삼서(三書)’를 쓰라고 했으며, 또 남편 위샤오펑도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음을 승인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왕수쿤은 악경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다.
악경은 왕수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며 ‘삼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하면서 “서명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증언을 받을 것이고, 동시에 남편 위샤오펑도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증언을 받겠다”고 위협했다. 무자비하게 구타당한 왕수쿤이 심한 다리 부상으로 너무 고통스러워 집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악경은 2일 뒤 다시 보자고 말했다.
그날 왕수쿤이 병원에서 구타당할 때 병원 관계자 그 누구도 나서서 구타를 만류하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서야 풀려난 왕수쿤은 구타로 인한 통증이 매우 심해 계단을 기다시피 올라가 집에 돌아왔다. 그녀는 성격이 강한 남편이 악경을 찾아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빌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남편에게 구타로 입은 상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외출했다 돌아온 남편이 왕수쿤의 신체 여러 곳이 멍든 것과 골절된 무릎뼈, 전신이 땀에 푹 젖은 모습을 보았다.
잔혹한 구타로 심신에 극심한 충격을 받은 왕수쿤은 7월 1일 오후부터 뇌출혈 증상이 나타나 구역질이 나고 어지러웠다. 그녀는 2020년 7월 2일 오전 4시 25분에 갑자기 사망했는데, 이는 구타에 의한 뇌출혈로 사망한 것이다.
7월 4일 왕수쿤의 시신은 하이린시 장의사에서 화장됐다. 남편 위샤오펑은 아내의 관에 엎드려 통곡하며 “아내는 억울하게 죽었다. 아내의 죽음은 억울하다. 나는 (아내를 죽인)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오열했다. 가슴을 찢는 남편의 울음소리는 현장에 있던 모든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왕수쿤이 사망한 뒤 경찰은 남편 위샤오펑을 찾아와 “왕수쿤의 사망사건을 인터넷에 올리지 말라”고 요구했다.
왕수쿤은 2010년 출근길에 하이린시 공안국보안과 딩화(丁華)에게 불법적으로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한 뒤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악경은 그녀를 노동교양소에 감금시키려고 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노동교양소 측이 수감을 거부하자, 사악한 국가보안은 악경과 결탁해 1만 위안을 갈취한 뒤 풀어준 바 있다.
이번 왕수쿤의 박해 사망 사건은 29년 전 있었던 남편의 의료사고 사망 사건의 연루가 발단이었다. 29년 전 하이린시병원 외과 의사로 재직 중이던 위샤오펑은 당시 한 경찰이 노래방에서 어떤 사람과 시비가 붙어 다투다가 권총으로 위협하자, 상대방은 흉기로 경찰의 허벅지를 찔렀다. 부상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급히 하이린시 병원으로 후송해 응급처치하는 과정에서 마취가 잘못돼 사망하고 말았다. 당황한 병원장 롼위린(欒玉琳)이 당직의사 위샤오펑에게 “환자가 대동맥까지 깊게 다쳐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사망했다”는 허위진단서를 작성하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그는 병원장의 말을 듣지 않았다. 병원장은 위샤오펑에게 구두로 직위해제 명령을 내렸고, 그는 병원에 출근하지 못해 한때 개업을 한 적도 있었다.
위샤오펑은 그때부터 29년간 자신의 억울함을 진정하며 세월을 보냈다. 직장이 없이 진정만 하다 보니 몇 년간 수입이 없어, 아내 왕수쿤은 퇴직한 뒤에도 계약직으로 병원 근무를 하면서 생활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위샤오펑은 자신의 억울함을 베이징 관할 당국에 계속 청원했는데, 하이린시 측은 사람을 붙여 적극적으로 그를 막았다. 어느 날 진정을 막으려는 자들에게 심한 구타를 당해 실신했고, 그들은 위샤오펑이 죽은 줄 알고 교외로 끌고 가 몰래 매장하려고 했을 때, 위샤오펑이 갑자기 깨어나는 바람에 놀라 그대로 버려두고 갔다. 고집이 센 위샤오펑은 그 일이 있고 난 뒤에도 진정을 멈추지 않았지만, 29년 동안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
위샤오펑은 그 때문에 하이린시 공안부의 골치 덩어리로 지목됐다. 그들은 위샤오펑의 아내 왕수쿤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구실로 왕수쿤을 수차례 박해하면서 남편 위샤오펑도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승인하게 만들려고 획책했는데, 마음대로 위샤오펑을 구금하려는 속셈이었다.
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정치 깡패집단이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실시한 “때려죽여도 상관없고, 때려서 죽으면 자살로 처리하라”는 정책에 따라 위샤오펑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승인만 있으면 마음대로 감금해 해치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왕수쿤이 갑자기 사망함에 따라 생전에 많은 증거, 박해당한 상세한 과정과 박해자의 구체적인 정보를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선악에는 반드시 인과응보가 있기 때문에 박해한 자는 천벌을 면할 수 없다.
원문발표: 2020년 7월 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7/8/4087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