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밍후이문장 교류모음글 “수심단욕(修心斷欲)”을 반복적으로 듣고 안을 향해 찾으면서 나는 정, 욕, 관념 및 자아에 대해 일부 인식이 있어 써내어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최근 한동안 사상 속에서 늘 색정, 원망 등 좋지 못한 것들이 들끓었다. 비겁하고 더럽지만 억제하지 못했고 배척하지도 못했다. 주의식도 자신을 상관하지 못했고 늘 좋지 못한 것에 따라 허튼 생각을 했다. 법 공부, 연공에도 엄중한 교란을 조성했고 수련상태는 아주 좋지 못했다. 며칠 전 한 수련생도 자신에게 색정에 집착하는 문제가 있다고 얘기했을 때 나는 비로소 경각성을 높이게 되었다. 정, 색욕 이 문제를 잘 정시(正視)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밍후이왕에서 “수심단욕” 문장 교류모음글을 다운받아 반복적으로 들었고 주의식이 천천히 청성해지고 정념도 점차 생기는 것을 느꼈다. 수련생들의 심득체험을 듣는 과정 중에 이는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안을 향해 찾게 했다. 나는 정과 욕이 모두 삼계 내의 물질임을 인식했다. 내가 전에 그것을 제거하지 못한 것은 그것이 좋다고 여기고 그것들이 내가 아님을 분간하지 못하고 그것을 자신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색욕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수련인에게 엄중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청성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또 구세력의 박해가 있었기 때문에 계속 그것들에 의해 끊임없이 교란받은 것이다.
바로 내가 스스로 색욕심의 근본을 찾았다고 여기고 있을 때 하루는 아침을 먹는데 왼쪽 눈앞에서 갑자기 “자아” 두 글자가 튀어나왔고 아울러 그 “아”가 특별히 크게 확대되었다. 나는 영문을 몰랐고 색욕심이 자아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계속 안으로 찾고 이 문제를 내가 아직 투철하게 깨닫지 못했다고 점화해주신 것이라고 알았다.
오후에 나는 계속 교류모음글을 들었고 한 여성수련생의 체험을 들은 후 갑자기 나의 색욕심의 배후에는 자아에 집착하는 근본 집착이 숨어있음을 깨달았다. 전에는 그것이 너무 깊게 숨어서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청년제자로 결혼을 안 하기로 했지만 내심에서는 여전히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잠재의식 속에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죽어도 변치 않는 사랑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나를 사랑해주고 죽도록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싶은 환상이 항상 있었다. 표면에서 나는 비록 결혼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정에 대한 집착을 진정으로 투철하게 보지 못했고 내려놓지도 못했다. 거기에 자기 수련에 대해 느슨해져 점차 미혹되었다.
낮에 일하다가 업무가 없으면 주변 속인들과 같이 핸드폰을 하고 동영상을 보고 소설과 드라마를 보았고 저녁에 집에 와서 비록 법 공부를 했지만 단지 형식적이었다.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가끔은 심지어 법 공부도 하지 않고 핸드폰을 하고 완전히 자신을 속인과 혼동하였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자신이 본 것들은 틀림없이 정과 사랑에 연관된 것들이었다. 이는 나의 정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러나 그것의 배후에는 지극히 깊이 숨어있는 자아가 있었다.
나는 이 “자아”가 사랑받고 주목받고 생각해주고 보호받고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찾아냈다. 이것은 자신의 느낌만 염두에 두고 자신이 편안하다고 여기는 것만 느끼려고 했다. 그것은 정의 배후에 숨어있었고 나의 정에 대한 집착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한 동경하는 사랑을 추구하는 과정 중에 만족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독신이고 현실생활에서 이 자아와 정은 만족되지 않았기에 나는 정진하지 못했다. 주의식이 강하지 않을 때 그것들에게 통제당했다. 온라인에서 정신적으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을 찾았다. 내가 이런 이른바 충실한 사랑을 묘사한 소설과 영화, 드라마를 끊임없이 볼 때 이 자아와 정에 에너지를 끊임없이 수송한 것이고 끊임없이 그것들을 키우고 그것들을 강화한 것이다.
왜 이런 자아가 있는 것인가? 세상 사람들은 주목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데 이는 정상적인 심리상태이다. 그러나 내가 자신을 찾아보니 이 정상적인 심리적 수요 이외에 다른 한 원인은 바로 아버지가 일찍 사망한 것에 연관되었다. 비록 아버지가 세상에 계실 때 관계도 매우 서먹서먹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얼마 받아보지 못한 것 같았다.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갈망은 아주 깊이 숨어있는 알아채지 못한 집착이었다. 그리하여 성장한 후 이 갈망은 나도 모르게 사랑에 대한 동경으로 옮겨갔다. 사랑에서 이성의 사심 없는 보호와 사랑받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사부님의 설법을 진지하게 보고 교류모음글 “수심단욕”을 반복적으로 듣는 과정 중에 나는 지금의 사람들이 정과 사랑, 욕, 성에 대한 인식이 모두 구세력이 변이시켜 사람에게 강제로 주입한 것이고 정상적인 인류의 혼인 및 양성 관계에 대한 인식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구세력은 현대인의 정, 욕 등에 대한 집착과 추구를 강화하고 확대시켰다. 심지어 사람으로 하여금 혼이 빠지게 할 지경에 이르게 했다. 그것들은 매체, 영화, 드라마, 서적, 온라인 등 일체 사회적 자원을 통해 사람에게 이런 타락한 관념을 주입했고 인류를 변이시켰는데 이로써 대법제자와 인류를 훼멸하려는 목적에 도달했다. 지금의 영화와 드라마 속에는 모두 대량의 현대 변이관념이 가득했고 내가 이런 것들을 볼 때 바로 이런 변이관념에 오염되고 변이되었다. 동시에 그 자아와 정에 대한 집착 역시 이 과정 중에서 끊임없이 확대되고 충족되고 키워졌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관념이 형성되면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데, 사람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의 사상을 좌우지할 수 있다.”[1] “사람은 主元神(주왠선)에 의해 주재(主宰)되어야 하는데, 主元神(주왠선)이 마비되어 관념으로 대체된다면, 그럼 당신은 무조건적으로 투항한 것이 되어, 생명은 이러한 것들에 의해 좌우지된다.”[1] “하지만 후천적인 의식관념을 타파하기란 아주 어려운데 이것이 바로 수련이기 때문이다.”[1]
사부님께서 이렇게 개시하셨다. “사람은 세간에서, 그는 단지 생명의 과정을 향수(享受)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과거에 사람은 아주 가련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람은 이 세간에서 그는 단지 생활과정 중에 사람에게 가져다 준 감수를 향수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이 표현은 비교적 정확하다. 무슨 뜻인가? 사람은 자신이 자신을 주재하고 있고, 내가 무엇을 하려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즐기는 중에서 후천적으로 양성된 습관과 집착으로서, 느낌을 추구할 뿐이다. 진정하게 작용을 일으켜 무엇을 하고자 하는 배후의 요소는, 사람의 습관, 집착, 관념, 욕망 이러한 것을 이용해서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진정한 인체는 바로 이러하며, 단지 생활과정 중에서 가져온 느낌을 향수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에게 단 것을 주면 당신은 단 것을 알고, 당신에게 쓴 것을 주면 당신은 쓴 것을 알고, 당신에게 매운 것을 주면 당신은 매운 것을 알고, 당신에게 고통을 주면 당신은 괴로움을 알고, 당신에게 행복을 주면 당신은 기쁨을 안다.”[2]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적인 집착인가? 사람은 세상에서 많은 관념을 양성했으며, 관념에 이끌려 동경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인연에 따라 인생의 길과 인생 중의 득실(得失)이 결정되는데, 어찌 사람의 관념으로 인생의 매 과정을 결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런 이른바 아름다운 동경과 소원 역시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고통스럽게 집착하는 추구가 되었다.”[3]
이전에 나는 늘 내가 이런 사람을 좋아하고 나는 그런 사랑을 갈망하고 나는 이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나를 사랑하기를 바라고 나는 어떻게 어떻게 하고 싶다는 등의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었다. 지금 나는 이런 것들이 모두 정과 자아에 대한 집착임을 의식했다. 아울러 “이러한, 저러한”이 바로 후천 관념이고 그것들은 모두 진짜 나(真我)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갈수록 느낄 수 있었는데 자아에 대한 집착은 각 방면에서 체현되었고 사람의 일사일념 속에 체현되어 있었다. 나의 이른 바 그러한 아름다운 동경과 갈망은 모두 이런 것들의 이끌림 하에 일종의 인생의 느낌을 추구하는 것이었고 단지 허황한 느낌이었으며 겨우 이뿐이었다. 법리를 알고 나서 나는 비로소 사람이 진짜로 매우 가련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한 수련인으로서 만약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으면 진짜 나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이런 가짜 나(假我)에 통제당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더 가련한 것이다!
사부님 설법에서 나는 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진짜 나를 찾고 후천적 관념과 자신을 분간하여 후천적 의식의 관념에 교란받지 않고 이끌리지 않는 것이라고 의식했다. 매번 좋지 못한 사상업력과 관념이 나타날 때 안을 향해 잘 찾고 뿌리를 파고 자신에게 왜 이런 좋지 못한 것들이 나타나는지를 물어야 한다. 자신이 아직 의식하지 못한 무슨 집착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아닌지. 동시에 그것이 진짜 내가 아님을 분간해야 하고 그것을 배척하고 그것을 억제하고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의 주의식을 끊임없이 강화하는 과정이 바로 주동적으로 수련하는 과정이다. 가끔 이런 색정과 자아의 집착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때 마치 사부님께서 나무의 나이테를 말씀하신 것처럼 층을 나누어서 밖으로 밀어내고 매번 이런 좋지 못한 것들이 나타날 때 역시 우리가 그것을 붙잡고 그것을 닦아서 없애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가끔은 정의 집착과 사상업력이 와서 교란할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나는 이런 것들을 모두 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아니고 나는 갖지 않겠다.” 가끔 이런 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우연히 나도 생각하는데 우리의 진아 본성은 남녀, 부부에 대해 어떠한 개념과 집착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지금 우리의 육신은 단지 옷 한 벌에 불과한데 하물며 옷 한 벌의 좋고 나쁨 아름답고 추함에 도를 넘게 집착하겠는가.
청정한 무위의 상태에 들어갈 수 있었을 때 나는 정, 색, 욕 이런 것들이 다른 공간에서 모두 물질임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나는 정의 밀도가 무척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끔 내가 염두를 움직이지 않을 때 그것이 진짜로 내가 아님을 느꼈다. 나에 대해 작용을 일으킬 수 없었지만 내가 한 가지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염두를 움직이면 곧바로 그것에 의해 좌우지 되었다. 나의 현재 층차에서 깨달은 것은, 우리가 완전히 정을 제거함에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인데(모든 정을 가리킴), 왜냐하면 그것은 신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념으로 대할 수 있고 되도록 정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욕과 색은 사람의 육신이 가져온 물질 요소이고 수련인이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정, 욕, 색의 배후에는 또 구세력의 사악한 배치와 박해가 있고 그것들은 대법제자의 생생세세를 배치했고 주도면밀하다. 이런 집착의 배후에는 모두 그것들이 강제로 가한 배치와 확대시킨 요소가 있고 또 색마 등 더럽고 저질적인 타락한 생명의 교란이 있으며 이런 것들은 모두 우주 정법이 승인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똑같이 승인할 수 없다. 반드시 철저하고 단호하게 발정념하여 제거해야 한다. 구세력이 색정 이 방면의 배치와 박해에 관하여 수련생들이 “색욕심 배후의 구세력의 배치를 똑똑히 인식하다”란 교류문장을 볼 것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이 수련생이 이 방면에서 쓴 것이 비교적 청성하고 전면적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수련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이런 관념과 집착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최근에 법 공부를 강화하고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겨냥성 있게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나와 같이 어느 방면에 교란이 비교적 강한 수련생은 법을 잘 배우는 기초에서 겨냥성 있게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듣기를 건의한다. 이렇게 하면 자신이 하루빨리 집착을 찾아서 제고할 수 있도록 도움받을 수 있다.
이상은 단지 현 단계의 개인적인 깨달음이고 만약 적절치 못한 곳이 있으면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권2)’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
원문발표: 2020년 6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6/26/4081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