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 전에 수련생과 교류한 후에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은 거의 모든 집착심의 특성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법리를 자기의 관념대로 인식해 집착심을 찾아도 그것을 건드리거나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독선은 관념과 집착심이 제거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으며, 독선을 포기하는 것은 자기의 이런 인식, 저런 인식을 내려놓는 것으로서 이것이 진정으로 수련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정진하는 조건이다. 수련한 시간이 길든 짧든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며 대법제자의 수련 표준이 있다. 수련해 도달한 층차가 다르고 인식이 다르며, 신사신법하고 경사경법하는 표현도 다르며, 수련해 집착을 제거하는 것에 대한 인식과 의지도 다르다.
1. ‘독선’의 형성과 연화
사부님께서 “집착을 가지고 법을 배우는 것은 진정한 수련이 아니다. 하지만 수련 중에서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점차 인식하여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적인 집착인가? 사람은 세상에서 많은 관념을 양성했으며, 관념에 이끌려 동경하는 것을 추구한다.”[1]라고 명시하셨다.
사람은 출생 후에 눈, 귀, 입, 코로 현실 사물을 느끼고, 사유가 생기기 시작하며 점차 개인 관념이 형성된다. 개인 관념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자기 혹은 타인의 이익에 부합되는지를 판단하는 독선적인 특성이 있는데, 관념이 형성되면 곧 자기가 옳은 줄 알게 된다. 이런 독선은 반대로 개인 관념을 보호해 개변하지 못하게 하거나 의문시하는 것을 막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일이나 생각, 견해가 틀린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 사람은 즉시 반박한다. 당신이 한마디 하면 그는 열 마디를 하려고 하는데, 1초도 걸리지 않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변명을 시작한다. 이럴 때 수련인으로서 사부님의 시사 ‘논쟁하지 마라’를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개인 관념은 각종 사람 마음을 형성하는데, 독선은 각종 사람마음을 보호하고 감싼다. 어릴 때부터 본 것, 들은 것, 생각한 것, 느낀 것, 자기가 원하는 것, 다른 사람이 가강한 일체는 모두 자기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새로운 관념이나 지식을 지도하고 받아들이는 표준이 된다. 그것을 철저히 인지하지 못하면 수련은 본질에 닿기가 쉽지 않다.
2. ‘독선’의 운용과 해로움
“그래도 나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이것은 문제를 지적당한 수련생이 항상 말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한마디이다. 정과 관념으로 자신의 집착, 생각과 이익을 보호하는 이것은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수련할 소원만 가지고 피동적으로 수련하는 것일 뿐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이 당신을 건드려야 개변할 것인가? 다른 사람이 왜 당신을 개변시켜야 하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누군가를 강제로 수련하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독선은 사람마다 다 있다. 관념의 지시로 사람은 자기의 모든 사유 언행과 집착이 옳은 것이고 자기에게 부합된 것이라고 여기게 되고, 자신의 층차에 대한 법의 요구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독선적인 사람은 자신의 집착을 발견하지 못해 법 공부해도 법을 얻지 못하게 된다.
사부님께서 “나에게는 책 몇 권이 있고 또 녹음테이프, 비디오테이프가 있다. 당신이 한 번 보고 들은 다음, 일정 기간 지나서 다시 보고 다시 들으면 보증코 당신에게 또 지도 작용이 있음을 당신은 그 속에서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하더라도 끊임없이 당신에게 지도 작용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법이다. 이상이 연공(煉功)해도 공이 자라지 않는 두 가지 원인이다. ‘고층차 중의 법을 모르고서는 수련할 수 없으며, 안으로 수련하지 않아 心性(씬씽)이 수련되지 않으면 공이 자라지 않는다.’ 바로 이 두 가지 원인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우리가 매일 배우는 법은 인간 이 한 층에서의 대법의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우리가 끊임없이 심성을 제고하고 법 공부, 수련하는 중에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법의 배후 내포를 점화해주시면서 끊임없이 고층차로 수련하게 하는 법이다. 우리는 인간 이 한 층에서 최고의 불법과 법이 표현되는 속에서 깨달으며 수련하고 끊임없이 제고하고 있다. 어느 한 층차로 수련되면 사부님께서 더 높은 한 층의 법을 점화해주심으로써 우리가 한 층 더 높은 층차에서 수련하도록 지도해주시는데, 층층이 이러하다.
우리가 제고하지 않으면 사부님께서는 더 높은 층차의 법을 우리에게 점화해주시지 않을 것이며, 그 한 층에 도달하지 못하면 더 높은 층의 법리를 점화해주셔도 깨닫지 못한다. 법 공부해도 법리가 펼쳐지지 않고, 배운 것은 인간 이 한 층에서 마땅히 알아야 할 이치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층차와 오성을 언급하는 것을 피하는데, 깨달음(悟)은 중요하며, 우리의 전반 수련 과정에 관통되어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점화해주시거나 법리를 펼쳐주셔도 깨닫지 못하면 법으로 수련할 수 없다. 어떤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저에게 점화해주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사부님에 대한 큰 불경(不敬)이다. 당신이 깨닫지 못한 것을 어찌 감히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지 않으셨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교류한 후에 결국 그날 밤 꿈을 꿨다. 꿈에서 사부님께서 오토바이를 타고 그녀를 보러 가셨는데, 그녀는 즉시 짐을 한 보따리 들고 질척질척한 길에서 사부님을 쫓았지만,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부동한 층차의 독선은 일정 층차의 수련인을 가로막아 단지 표면의 각종 집착심만 닦아 없애게 하는데, 안을 향해 찾을 필요가 있는 더 깊은 층차의 각종 집착심은 여전히 독선이 감싸고 있다.
독선의 지시하에 자신을 귀정(歸正)하면, 자신의 귀정이 법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여겨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는데, 이것은 법과 표면적인 정신으로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주요 원인을 덮어 감추는 것이다.
한번은 아들과 함께 일을 했는데, 작은 일 때문에 여러 차례 아들의 방법이 옳지 않다고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아들은 듣지 않고 결국 화를 내며 일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는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일하는 방법은 내가 옳아. 아들한테 기술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내가 옳아. 인간의 이치로 봐도 내가 다 옳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련인의 각도에서 보면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아들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아들은 “그냥 엄마 방법이 맞아.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엄마 말만 들었어. 엄마는 뭐든지 옳잖아. 엄마는 잘못한 적이 한 번도 없지.”라며 나를 책망했다. 20대인 아들은 상처받아 울며 “나 안 해. 갈 거야.”라고 했다. 내가 사과했지만, 아들은 듣지 않고, 차비도 받지 않았으며,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나는 아들에게 계속 사과 메시지를 보냈는데, 한 번 보낼 때마다 아들은 한 마디씩 비꼬았다. ‘부모가 아들한테 사과하는 법이 어디 있어? 엄마가 옳다니까. 엄마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엄마도 사과할 줄 알아?’ 꼬박 이틀간 나는 아들에게 계속 사과했지만, 아들은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는 말을 보내왔다. 나는 사과를 할수록 나의 잘못을 명백히 알게 되었고, 부동한 층차에는 부동한 인식이 있으며 받아들이는 능력도 다르다는 것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자신의 인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면 상대방을 매우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 잘못했다. 잘못했다. 내가 정말 잘못했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원용하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선(善)이다. 선이 있어야 자비를 말할 수 있는데, 어떤 일이든 반드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
질투, 총명, 교활, 자기를 감싸는 것(보호하는 것), 과시, 조급함, 쟁투, 거짓된 언행, 줏대 없는 등등은 독선의 특성이 보호하는 극단적인 집착심의 표현이다.
3. 독선을 깨끗이 제거하다
많은 사람이 관념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것을 어떻게 닦아 없애야 하는지를 모른다. 관념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닿지도 않으며, 독선의 보호를 받고 있으므로 자신의 사유 언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독선과 자신의 모든 관념을 내려놓고 법에서 자신을 귀정하고, 부동한 층차에서 독선의 전체적인 체계를 타파하면 모든 집착심이 직접적으로 폭로되어 제거되는데, 무슨 이 집착 저 집착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매 집착을 제거하려면 독선을 내려놓아야 하며, 매 집착을 형성하는 관념을 깨끗이 제거하는 동시에 매 집착 자체를 송두리째 뽑아버릴 때까지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오직 독선의 형성, 연화, 해로움을 인식하고 그것을 진정으로 제거해야만 대법의 정화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법 속에서 승화할 수 있으며, 천만년 기다린 기연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가장 미시적이며 가장 본질적인 곳에서부터 우리를 개변시키시며, 시작하자마자 우리에게 수련하여 원만할 것을 원하신다. 바로 우리가 수련하길 원하는지 반본귀진 하고자 하는지를 보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 ‘정진요지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走向圓滿)’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0년 6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6/19/4077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