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 호주보도국 취재 보도) 1999년 5월 2~3일, ‘전 호주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가 시드니 달링 하버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었다. 그 당시 호주, 미국, 캐나다, 스웨덴, 태국, 일본, 뉴질랜드, 싱가폴, 홍콩, 마카오,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에서 2700여 명이 참석했고, 사존이신 리훙쯔(李洪志) 대사님의 설법과 문답 풀이를 들었다.
사존께서는 키가 크시고 위용이 있으셨으며 심오한 내용을 알기 쉽고 생동감 있게 설법하셨다. 자비로운 웃음, 우렁차고 친절한 목소리, 분명한 말투로 끝없이 심오한 우주의 법리를 말씀하셨는데 수련생들의 마음속에 깊이깊이 새겨졌다. 설법하실 때 사존의 무량한 자비가 우주를 꿰뚫었고 그 자리에 있는 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오랜 세월의 서약은 제자들 마음속에 은연중에 되새겨졌고 수많은 사람이 온 얼굴에 눈물을 흘렸다.
이는 사존께서 세 번째로 호주에 오셔 설법하신 것이다.(후에 출판된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대다수의 신 수련생에게는 사존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존께서 직접 말씀하신 법과 문답 풀이를 들을 수 있어 불은호탕(佛恩浩蕩)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의 참뜻을 깨닫게 되고 수련의 진기(眞機)를 깨닫게 되는데 얼마나 행운인가. 이 진귀한 기연은 인생을 개변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미 한동안 수련했던 노 수련생에게는 이번 시드니법회는 진정으로 정진실수(精進實修)하는 새로운 기점이 되었다.
21년이 지나갔고 세월은 이 영원한 기억을 지우지 못했다. 사존께서 설법하실 때의 가르침 그리고 대법제자들이 온몸과 마음으로 느낀, 있어 본 적 없었던 홀가분함과 희열, 생명들이 구도 된 후의 그러한 즐거움은 마치 어제 발생했던 것 같았다.
서양인 대법제자, 리 대사님은 중생을 구도하는 명사(明師)이시다
호주 파룬따파협회 대변인이자 시드니 서양인 대법제자 존 델러는 1999년 5월 2일 시드니 법회에서 사존의 설법을 경청한 소감을 회고할 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리 대사님의 설법을 경청할 때 그가 이 세계에 오셔서 중생을 구도하는 명사라는 것을 즉시 알았습니다.” 그는 말했다. “회의가 끝날 때 저는 회의장을 떠날 수 없었어요. 일종의 밝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고 선과 자비를 품은 느낌이 저를 감싸주었어요.” 그는 무척 감격하며 말했다. “제가 처음 ‘전법륜(轉法輪)’을 읽으며 ‘진선인(眞·善·忍)’ 우주 특성에 대해 읽을 때 마음이 단번에 열렸습니다. 파룬궁이 사람마다 그 속에서 이익을 얻게 하는 공법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법륜’ 이 책은 진짜로 매 사람의 마음속까지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생명의 더 심층의 의미를 이해하게 합니다.”
멜버른 서양인 대법제자 재닌 랭킨은 법을 얻은 지 3개월이 지나서 사존을 뵙고 사존의 설법을 듣게 되었다. 무척 아름다운 정경을 보았는데 그렇게 진귀하고 또 신성했는바 그 기억은 마음속에 깊이깊이 새겨졌다.
그녀는 16세부터 생명의 경지를 승화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저는 그 당시에 사람 이 한 층보다 높은 경지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생명이 세상에 올 때 반드시 그의 진정한 뜻이 있다고.” 랭킨은 모든 것을 쏟아붓고 전 세계를 돌아다녔으며 각종 수련방법을 시도했다. 50세가 되어도 여전히 방법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저는 똑똑히 느꼈는데 세상이 후퇴하고 도덕 수준이 타락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내면은 이미 보편적인 가치와 순진한 천성을 점차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기억나는데, 1999년 2월의 어느 날, 멜버른의 첫 번째 파룬따파 연공장에 처음 갔었죠. 온몸이 거대한 에너지에 감싸졌고 비할 바 없이 격동되었고 저는 자신이 마침내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눈물을 금할 수 없었고 오랫동안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대법 사부님께서는 호주에 오셔 설법하셨고 처음에 랭킨은 여행 비용 등의 원인으로 시드니법회에 참석하려는 계획이 없었다. “하루는 갑자기 마음속으로 깜짝 놀라게 되었는데 한가지 염두가 저에게 알려주기를 마땅히 가서 참가해야 한다고 알려주었죠. 저의 경비, 이런 난제도 해결되었습니다.” “법을 얻은 지 3개월이 되었던 저는 사존께서 입장하시고 앉으시는 것을 보고 저는 또 한 번 온몸이 즐거움으로 충만되고 비할 바 없이 격동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의 내심은 이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16살부터 찾기 시작했던 신성한 대법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존께서 강단에 앉으신 후 저는 깜짝 놀랐는데 사존의 몸 전체가 투명했습니다. 무척 미묘했고 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죠.” 그녀는 회고하며 말했다. “사존께서는 설법하고 질문에 해답해주실 때 법공부의 중요성을 말씀하셨고 진선인의 수련원칙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저한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내용이었습니다.”
“시드니법회에 참가하기 전 사존께서는 저의 천목을 열어주셨고 저는 매우 많은 층의 입자와 매우 많은 미묘한 정경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존께서 책 속에서 말씀하신 것이 모두 진짜라는 것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법회에 참가한 후 저의 천목은 닫혔습니다. 그 후 제겐 진정한 실질적 수련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죠.”
랭킨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사존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진귀한 대법을 전해주셨고 몸과 마음의 승화를 얻게 해주셨습니다. 정말 내심 깊은 곳의 은혜와 감격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 몇 해 동안 정진하여 착실하게 수련하는 동시에 그녀는 여러 가지 홍법과 진상 알리기 항목에 참가했다. “저는 멜버른의 중학교 초등학교에 연락하고 있습니다. 학생과 교사들이 우리와 나눔을 통해 무엇이 진정한 영원함인지를 알고 더 나아가 ‘진선인’ 원칙과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알기를 바랍니다.”
브리즈번 화인 대법제자, 시드니법회 이후 연공장이 신속하게 증가하다
브리즈번 화인 대법제자 월리엄 뤄는 1998년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고 그해 싱가폴법회에 참가했으며 현재는 퀸즐랜드 파룬따파학회의 주요 협조인이다.
그해 사존께서 호주에 오셔서 설법하시는 전후 그 진귀한 나날에 그는 접대에 참여했고 내심에서 존경과 은혜로 충만되었다. “그 당시 겪은 많은 일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셨고 너무나 자비로우셨습니다. 신 제자로서 늘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퀸즐랜드 대법제자의 혜택이라고 느끼는데 시드니법회를 개최하기 반년 전인 싱가폴법회가 시작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사존께서 설법하신 후 법회에 참가했던 수련생들은 팀으로 나누어서 교류했고 사존께서는 강단에서 내려오셔 첫 번째 팀에 참가하셨습니다. 아울러 현장에서 수련생의 질문에 해답해주셨는데 바로 퀸즐랜드 수련생들이 있었던 팀이었습니다. 후에 몇몇 수련생들이 저한테 알려주었는데 그들은 각자가 경건하게 사존께서 브리즈번에 오실 것을 요청드렸다고 했습니다. 사존께서는 하나하나 모두 허락하셨습니다.”
“1999년 시드니법회 이전에 저는 깜짝 놀랐는데 사존께서 먼저 브리즈번에 오시기로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호주에 도착하는 당일 사존께서는 여정의 피곤함을 마다하시고 수련생의 요청에 허락하셨습니다. 그날 퀸즐랜드의 수련생들과 만났습니다. 1999년 4월 28일 오후, 작은 회의실 한 칸에 퀸즐랜드 3대 도시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 찼고 그 자리에 있던 수련생들은 모두 격동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사존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설법하셨고 수련생들의 질문에 답해주셨습니다.”
사존께서 브리즈번에 머문 짧고 또 진귀한 며칠 동안 월리엄은 사존께 몇 가지를 여쭤볼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모두 신 수련생이라 제기한 문제가 모두 아주 얕았습니다. 그러나 사존께서는 무척 인내심 있게 하나하나 해답해주셨습니다.” 그가 말했다. “똑똑히 기억나는데 저는 사부님께 법리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여쭤보았습니다. 사존께서 해답해주신 대략적 뜻은, 당신이 정념으로 가서 법을 깨닫기에 어떻게 해도 맞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많은 것을 단번에 알게 되었고 바로 정념으로 가서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진선인에 부합되면 이탈하지 않는 겁니다. 사존의 저에 대한 이 일깨움은 지금까지 마음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아울러 이렇게 오랜 세월 무척 수혜를 받고 있습니다. 매번 어떠한 모순에 부딪혀도 저는 모두 이 원칙으로 가늠했고 내심에서 정념으로 대하고 해결했는지, 사람의 관념 혹은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지를 가늠했습니다.”
“그 며칠 동안 운좋게 사존의 가르침을 듣게 되었고 사존께서는 수련생들이 법공부를 잘하고 하루빨리 법에서 제고하여 이후에 일면을 감당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존의 점화에 따라 저희는 단체 법공부를 강화했습니다.”
그는 사존께서 퀸즈랜드 일부분 수련생들에게 이번 설법을 해주셨고 행운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던 브리즈번 수련생들은 그 당시 연공장의 보도원들이었다고 말했다. 20여 년 동안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진상을 알리고 반(反) 박해 활동을 했고 절대다수는 지금까지 수련을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드니법회가 끝난 후 더 많은 세인이 파룬궁을 알게 하기 위해 수련생들은 상의한 후 이런 결정을 했다. 브리즈번에 원래 있었던 유일한 농장(뉴팜) 연공장에서 40여 명의 수련생들이 집 부근에서 각자 연공장을 설립하는 것이다. 윌리엄이 말했다. “그 당시 새 연공장은 약 20개 정도 증가했고 퀸즐랜드의 연공장 수보다 더 많았습니다. 20년 동안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견지하고 있는 연공장은 그 당시 설립된 연공장들입니다. 그 사이에 신 수련생들은 끊임없이 가입했습니다.”
멜버른 화인 대법제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경험
멜버른 한 독립화인매체의 총재였던 샤오중화(肖中華)는 시드니법회에 참석하기 전에 갓 다섯 가지 공법을 배운 상태였다. “법회에 참석한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저의 의문을 해결한 것입니다. 사부님의 해답이 저에게 주신 감수는 무척 특별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샤오중화는 그 당시 시드니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했고 몇 가지 기공을 배웠었는데 은연중에 수련법문을 찾고 있었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파룬궁을 알게 되었고 대략 동작도 배웠는데 그 당시 무척 옅은 인식이었다. 그러나 파룬궁 사부님께서 호주에 오셔 설법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기차를 타고 와서 참석했다. “저의 자리는 뒤에 위치하여 강단과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부님이 잘 보이지 않았고 큰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근데 무슨 원인인지 모르겠는데 사부님을 뵙자마자 매우 격동되었고 특별한 감동을 느끼면서 눈물이 끊이지 않고 흘러내렸습니다.”
“그 당시 사부님 설법을 들을 때 마음속으로 한 가지 염두가 있었습니다. ‘사부님은 바로 신이시다. 오로지 신만이 이러한 자비로운 눈빛이 있고 일반 사람은 이런 눈빛이 없다. 틀림없이 신이시다.’”
그는 말했다. “법회 다음날 질의 응답하실 때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한테 쪽지를 제출하라고 하셨고 저는 종이를 가져오지 않았고 또 팬도 없었습니다. 또 좌석이 중간에 있었고 그 당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질문을 스탭에게 전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로지 머릿속에서 자신의 질문을 생각하고 다른 것을 할 수가 없었다. “근데 놀랍고 신기한 것은, 현장에서 유사한 질문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지만, 사부님께서 관련 없는 한 가지 문제에 답해주실 때 저의 이 문제도 해답해주신 겁니다. 아울러 사부님께서 이 문제를 설명하실 때 마치 사부님의 눈빛은 이렇게 먼 거리에 있는 저를 보고 계시는 것 같았고 저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시간은 저에게 지금까지 기억이 생생하고 마음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렇게 먼 거리를 두고 강단의 사부님이 보셨을 때 저는 객석의 한 개 작은 점에 불과할 뿐입니다. 사부님의 목소리와 눈빛 모두 저를 향하여 말씀하셨고 일종의 메시지가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나는 당신의 질문을 해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법회가 끝난 후 또 한 가지 특별한 경험이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젊은 부부 한 쌍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그날 법회에 참가했는지 물었고 그들은 그렇다고 말했어요. 아울러 저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고 두 집이 가깝게 있었는데 그들은 이미 한동안 수련을 했고요.” “저는 매우 기뻤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 그 지역에서 저는 누구도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잘 된 거죠. 그들은 법을 얻은 지 한동안 지났고 그 후로 저는 그들 집 근처의 공원에 가서 그들과 함께 공을 배우고 연공했습니다.”
샤오중화는 그 후로 진정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이번 법회에 참석한 경험은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사부님의 지혜, 자비는 연이어 내심에 강한 감동을 주었는데, 오로지 신만이 이러한 자비로운 눈빛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몇 해 동안 수련을 단호히 하는 신념이 조금도 동요된 적이 없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에 부딪혀도 내심에서 사존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진리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마난과 좌절에 부딪힐 때 법을 떠나면 괴로웠습니다. 법공부할 때 사부님께서는 책 속에서 모든 것을 알려주셨어요. 자기 주변에서 발생하는 이 일체는 모두 원인이 있는 것이고 모두 수련 과정 중에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고 마난이 없으면 어떻게 수련하나요? 마난이 없으면 자신의 집착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고 괴로우면 바로 집착심에 의해 괴로운 겁니다. 끊임없이 법공부하면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일체가 모두 천기임을 갈수록 알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끊임없이 사부님의 설법에 대해 이해가 깊어지는데 비록 여전히 옅을 때도 있지만 내심에서 저는 알게 됩니다. 오로지 사부님의 법만이 일체를 해답해줄 수 있고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자신이 부딪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존의 호주 설법을 세 차례 경청하고, 시드니 화인 대법제자들이 사존의 은혜를 회고하다
시드니 화인대법제자 뤄밍창은 호주에서 세 차례 사존의 시드니설법을 들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노 수련생이다.
그 당시 경험을 회고하면서 그는 감격이 끝이 없었다. “그 한동안은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고 사부님께서 몸소 이곳에 오실 수 있다니. 우리는 사부님께서 저희한테 이후에 어떻게 더 잘하고 대법을 더 잘 알릴 것인가를 알려주시기를 매우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사부님께서 시드니에서 질문에 설법하실 때 또 다른 공간의 매우 많은 일을 말씀하셨고 바로 이 공간에서 펼쳐진 일은 사실상 다른 공간과 모두 연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부님의 해답은 우리가 법에서 매우 많은 비교적 명석한 이해가 있게 했습니다. 이어서 저는 뉴질랜드에서 열린 법회에 참석했고 또 한 번 사존의 설법을 경청했습니다.”
뤄밍창은 1996년 초에 ‘전법륜’을 읽기 시작했고 그 당시 그는 다른 문파의 기공사였다. “저는 사부님의 책을 읽은 후 사부님께서 다른 기공 속에서 연공하고 병 치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 일부 해석할 수 없는 문제를 ‘전법륜’에서 전부 해석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심오한 원인과 법리도 알려주셨는데 저는 사부님에 대해 무척 탄복했고 너무나 대단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사존께서 몇 차례 호주에 오셨고 저는 모두 사존을 뵙고 수련 중에서 부딪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저는 자비로운 사존께서 매 수련생의 수련상태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 사부님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것에 다행스러웠고 저는 진정한 사부님을 찾았습니다.”
그는 회고하며 말했다. “그 당시 인상이 매우 깊은 하나의 수확은 바로,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우리 생명은 멀고 먼 우주의 변화 과정 중에서 산생되었지만 갈수록 불순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가장 좋고 가장 원시적이고 순정한 생명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만약 금의 순도로 비유한다면 바로 24K의 완벽하게 불순물이 없는 순도다. 어떻게 해야 비로소 진정으로 가장 좋은 생명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저의 이해는 이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할 수 있는가 입니다. 신사신법할 수 있을 때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최후의 결과는 바로 가장 완벽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심을 했죠. 자신은 반드시 대법을 끝까지 수련하겠다고.”
“20여 년의 모진 비바람 속에서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저를 보살피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자신의 수련 상황에 근거하여 각종 방식으로 제자를 점화해주시고 끊임없이 제자에게 수련의 신기함과 미묘함을 펼쳐 보여주셨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멜버른 대법제자, 사존게서 의혹을 풀어주셨고 20년간 정진하여 착실하게 수련하며 법을 실증하다
올해 70세인 멜버른 대법제자 안젤라는 말레이시아에서 왔고 전에 독실한 불교 거사였다. 1999년 2월 ‘전법륜’을 읽고서 많은 의혹, 예를 들어 절에서 출가인들의 각종 있어서는 안 되는 언행을 본 후의 의혹들이 모두 해결되었다. 그러나 불교를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주저했다. 가족의 만류를 마다하고 남편과 함께 그해 5월의 시드니법회에 참석했다. 자비로운 사존께서 그녀의 질문에 해답해주셨고 이후로 정진하는 대법제자가 되었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부처님을 믿거나 도를 닦습니다. 그래서 일가족 네 명은 호주에 이민 온 후 얼마 안 돼, 저는 절에 가서 자원봉사를 했고 아울러 매우 수고스러웠습니다. 아침에 아들딸을 학교에 보내고 즉시 절에 가서 일을 했고 아이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 거의 한 시간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했습니다. 아이들을 집에 데려온 후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모두 치우고 정리한 후 다시 야근하러 회사에 나갔죠. 그 당시 주동적으로 야간 간호사를 신청했는데 낮에 절에 가서 일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루 24시간 연속적으로 돌아갔고 거의 수면시간이 없었는데 5년을 이렇게 보냈죠. 그 결과 건강 상태가 갈수록 더 나빠져 가장 엄중한 것은 장기간 수면이 부족해서 두통이 생기고 또 담결석까지 걸려 수술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어요.”
“전에 함께 절에 행사에 참가했던 한 언니가 1997년부터 더는 절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전화를 걸어 언니의 상황을 물었더니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절에서 자원봉사를 매우 열심히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아마도 기연이 닿지 않아서인지 파룬궁의 상세한 상황을 저한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1999년 1월에 절에 있는 비구니 스님들이 이익을 위해 다투는 각종 표현을 보고 싫증나고 실망하여 안젤라와 남편은 절을 떠나기로 했다. “그래서 저는 이 언니에게 그녀의 사부님은 누구이신지 알아보았고 언니는 저에게 ‘전법륜’ 한 권을 주었고 다섯 가지 공법을 보여주었습니다.”
‘전법륜’을 읽은 후 자신이 절에서 본 것과 목격한 것을 결합하여 안젤라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들이 모두 진짜라는 것에 탄복했다. “전에 저는 절에 출가한 이런 사람들이 왜 자그마한 일 혹은 이익으로 인해 모순이 끊이지 않는가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전법륜’을 본 후 모두 알게 되었죠.” “2월경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시드니에서 법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고 저는 바로 신청했습니다. 그 당시 친구 가족한테서 오는 압력이 아주 컸고 그들은 모두 나에게 참가하지 말라고 말렸죠. 특히 말레이시아의 오빠는 말레이시아 당국 신문을 보고, 중국에서 온 거짓 내용에 속아 여러 번 국제전화를 걸어 저한테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내심 이미 단호해졌고 그들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미 파룬궁의 신기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 연공할 때 저는 머리 주변에 한 물체가 회전하는 것을 느꼈고 또 아주 강한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사부님께서는 파룬으로 지극히 모자란 수면으로 인해 손상된 저의 대뇌를 조정해준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 외 담결석도 치료하지 않았는데 나아졌습니다.”
“시드니법회 회의장에서 나와 남편의 자리는 강단에서 매우 멀리 떨어졌지만, 사부님께서 회의장에 들어오시자 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고 사부님 설법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신 수련생으로서 저는 그 당시 왜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는지 몰랐습니다. 후에 사부님 각지의 설법에서 알게 되었는데 이는 자신의 명백한 일면이 사존의 위대함과 법회 현장에서의 장관과 수승함을 보았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사존께서 몸소 설법하시는 것을 경청할 수 있는 기연이 비할 바 없이 진귀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죠.”
“다음날 법회에서 무척 운 좋게 사존께서는 제가 제기한 불교 관련 질문에 답해주셨고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수련을 위해 책임져야 한다는 법리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사부님의 해답은 저의 일체 우려를 내려놓게 했습니다. 그 후로 남편과 함께 전일하게 대법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법을 얻어 수련한 지 1년 이후 한차례 차 사고가 발생했고 온 가족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했다. “그날 오후 저는 학교에 아들을 데리러 갔고 그다음 다시 딸을 데리러 갔습니다. 길에서 차 경적 소리도 없이 차 한 대가 뒤를 쫓아오다가 제 차와 부딪쳤어요. 저는 차에서 나올 수 없었는데 나와 아들은 모두 다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집에 있는 다른 차 한 대를 운전하여 딸을 데리러 갔습니다. 그날 밤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외출할 때 갑자기 차 한 대가 도로에서 역주행하여 저희를 향해 달려왔고 저는 운전하는 남편한테 피하라고 다급하게 알려주었어요. 거의 피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차는 길 건너편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온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차 사고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 사이에 두 차례 무척 위험한 차 사고가 일어났고 우리는 모두 목숨을 앗아가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부님의 법신은 두 번이나 우리를 보호해주었습니다.”
위험하면서도 신기한 경험은 이 부부가 신사신법에서 더욱 확고해지게 했고 수련에도 더욱 정진하게 했다. 날마다 연공하고 법공부하고 20년 동안 중단한 적이 없었다. 만약 우연히 어느 하루 연공을 하지 못하거나 혹은 법공부를 하지 못하면 다음 날 그들은 반드시 보충했다.
올해에 안젤라는 말레이시아 고향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70세 생일파티를 했다. 친구들은 네 살 더 많은 오빠가 더는 외출하여 여행하지 못하지만, 안젤라와 남편은 여전히 젊은이들처럼 해마다 바다 건너 국제 법회에 참석하는 것을 보았다.
“저희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이 매우 젊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나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것 또한 수련인 몸에서의 초범적인 표현입니다. 친구들은 저희가 같은 나이 또래의 가족과 비교해서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보았는데 젊고 또 활력이 있어 보였죠. 그래서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저희는 독립적이고 감히 할 말을 하는 신문사에서 멜버른 몇 개 지역에서 신문을 배포하는 자원봉사 일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10여 년 동안 하다가 후에 또 각종 대법활동을 개최하기 전의 준비업무와 활동이 마감된 후의 정리 업무를 책임졌습니다. 책임자들 중의 한 명이었죠. 한번 시작하니 10여 년이고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준비 업무에는 현수막, 자료 전시대 설치 등등을 포함합니다. 큰 상자를 옮기기도 하는 데 힘이 들지 않습니다. 가끔 아침 7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삐 보내야 마감합니다. 서로 다른 활동에 준비 업무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똑같이 자질구레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써 행할 때는 사존께서 가지해주시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고 비로소 이렇게 순조롭고 그렇게 질서정연한 것을 느낍니다. 많은 시기에 길을 걸어도 힘이 들지 않고 마치 떠다니는듯한 느낌으로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깊은 은혜를 느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 항상 저희를 보호해주시고 오로지 정진하여 착실히 수련하고 엄격하게 자신한테 요구하는 것만이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0년 5월 19일
문장분류: 온고명금>사부님의 은혜를 회억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19/3875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