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국은 오래된 문명 예의지국이다. 예로부터 위아래 질서가 있고, 노인을 존경하며 어린이를 사랑하는 미덕이 있다. 사람은 도덕 윤리, 각종 보편적인 가치관을 따라야 한다. 예를 들면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등이 있지만 중국공산당(중공)이 중국의 전통문화를 파괴한 후부터 가정 윤리가 비뚤어졌다.
예를 들어 정치 운동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폭행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식이 노인을 부양하지 않는 것도 보편적이다. 지금은 아들이 결혼하면 서로 “손자 생겼어요?”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손자 됐어요?”라고 묻는다(역주: 다른 사람 밑으로 들어가 시키는 대로 하는 신세가 되는 것을‘손자가 됐다’고 표현함). 물론 농담일 뿐이지만 이 농담에는 윤리의 혼란함이 있다.
나는 허베이(河北) 농촌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선량하셨으며 나도 선량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효도하고 시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그때가 닥치니 현재 환경에서 정말 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대법의 지도하에, 나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사상 경지를 높였다.
1. 효성을 다하며, 시어머니를 선하게 대하다
시댁에는 아들이 셋이 있고 남편은 둘째다. 우리 둘은 대학에 붙은 후 도시에서 일하며 생활했다. 시아버님은 암에 걸리셨지만 고생하지 않고 돌아가셨고, 60대의 시어머니는 혼자가 되셨다. 이 연령대는 혼자 살아도 큰 문제가 없지만,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어머님은 늘 멍하셨고 혈압이 높으셔서, 아주버님이 어머니를 모셔다가 함께 식사하고, 밤에는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 주무시게 했다. 그러나 얼마 후 형님과 시어머니 사이에 갈등이 생겨 어머님은 더는 식사하러 가지 않으셨다. 셋째 아들 부부는 어머니께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시어머니를 뵈러 갔는데, 시어머니의 모습은 많이 변해서 마치 동네 바보처럼 멍하니 마을 입구에 초라한 행색으로 앉아 계셨다. 평소에 꾸미기 좋아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우리를 보더니, 시어머니는 우셨다. 집에 가서 밥솥에 있는 밥을 먹어보니 쓰고 짜서 넘길 수가 없었다. 내가 남편에게 어머니를 모셔가자고 하니, 어머님은 그제야 얼굴에 웃음기를 띄웠다.
친정에 가서 부모님께 이 일을 알리니 아버지가 걱정스럽게 “셋째도 상관하지 않고 첫째도 밖으로 밀어내는데, 넌 생각을 잘해야 한다. 모셔갔다가 나중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면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가족들은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세 아들이 똑같이 모셔야지. 한 집에 일 년 아니면 몇 개월씩 모셔. 네가 효심이 있으면, 너의 집에 오시는 그 기간에 시어머니께 잘해드리면 돼. 아무 상의도 하지 않고 노인을 데려가지 마. 나 같으면 그렇게 안 할 거야. 나중에 귀찮은 일이 생길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해 보았는데 현재의 이 상황에서 세 아들이 돌아가면서 모시면 어머님이 너무 고생이 많으실 것이다. 나는 대법을 배웠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다. 그들은 원래 어머니와 함께 있기를 원치 않는데, 번갈아 모신다고 해도 좋아할 사람이 없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내가 모시면 모두가 다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시어머니의 다른 면을 보기도 했고, 남편은 매일 같이 어머님께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 화목하지 않은 가정환경에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남편처럼 그렇게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화가 나 있었고 때로는 하는 말도 부드럽지 않았다.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니 대법이 내 마음을 안정시켜주었고, 예전의 고집스러운 관념을 바꿔주었으며, 사부님 말씀대로 하니 내 마음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한동안 마음을 조정하고 나는 정말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로 여기고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남편은 어머니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고, 내가 말려도 당당하게 “엄마 같은 사람은 이렇게 대해줘야 해”라고 말했다.
어머님은 우리가 아무리 말려도 남이 버린 병, 합판 등 쓰레기를 주워오셨다. 한번은 지하실로 내려가다 계단에서 넘어져 뼈가 부러져 거동하실 수 없었다. 남편이 어쩔 수 없이 휴가를 내고 어머니를 간호했으며, 나도 낮에 출근하고 밤에 간호해드렸다. 어머니를 위해 대소변을 처리할 때 항상 구역질이 나왔다. 어머니는 움직일 수 없으시기에 감염되지 않게 자주 닦고 씻겨드렸다. 이렇게 대소변을 받아내며 물과 밥을 챙겨 드리고, 몸을 뒤집으며 깨끗이 씻겨드리고 세심하게 돌봐드리니, 어머니는 집에 문병 온 이웃에게 “우리 며느리가 딸보다 낫다”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신 지 10여 년이 됐다. 돌아가시기 직전에야 우리는 시어머니를 고향으로 다시 모셨다. 그 기간에 가끔 큰아들 집에 가 계셨지만, 형님과 맞지 않아 매번 기분이 상해서 집으로 가셨다.
2. 고집스러운 어른을 포용하다
‘나는 시어머니를 포용할 수 있고 친딸처럼 대할 수 있다. 우리 부모님께는 더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그렇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심성을 제고할 기회임을 깨달았다.
친정 부모님은 현에 사는 여동생 집에 있었지만, 그 집은 철거되어 부모님과 여동생은 우리 예전 집에 들어가 살았다. 어머니는 여든이 넘었고 병도 생겼다. 수술해 장을 반 미터 잘라냈고, 매일 설사를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른다. 처음 2년간은 여동생이 두 분을 모셨다. 나중에 내가 퇴직하고 여동생은 딸네 집으로 가고, 그러면서 내가 부모님을 모셔왔다.
대학에 간 후부터 나는 30여 년을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았다. 명절에 한 번씩 다녀가면 기쁘게 갔다가 기쁘게 돌아와, 참을 수 없는 어떤 일도 없었다. 하지만 장시간 함께 생활해보니 포용하지 못 하는 일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비위생적인 습관, 일할 때 잘못된 절차 등은 아무리 말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화를 내며 말하고 가르쳐드려도 아버지는 듣지 않으셨다. 늘 이렇게 화를 내면 어떻게 하지? 나는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변화시키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바꿔보자. 참지 못하는 것은 포용심이 부족하고 도량이 부족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나의 기준에 맞추지 말고,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하게 놔두자! 그다음 아버지가 더럽힌 것을 깨끗이 닦고, 아버지가 잘하지 못한 것은 도와드리자. 그러면 아버지도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환경에서 살며, 늘 누구 마음에 들지 않을까 긴장하며 사실 필요가 없다.’
나를 바로잡으니 기분이 좋아지고, 아버지도 기분이 좋아져 가정 분위기가 좋아졌다.
3. 어른 공경을 해내다
우리 집 화장실 천장은 늘 젖어 있었다. 처음에는 물이 새는 줄 몰랐는데, 나중에 심해져서야 위층에서 물이 샌다는 걸 알게 됐다.
천장이 젖어 있을 때, 나는 부모님께 화장실 쓸 때는 문을 닫고, 쓰지 않을 때는 열어서 말리자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들어가면서 문을 닫지 않으시고 나오실 때 문을 닫아놓으시며 늘 반대로 하셨다. 내가 여러 번 알려드려도 귀찮아하시며 감시한다고 짜증 내셨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처음에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원망이 섞인 참음이었다. 시간이 길어지니 폭발해 큰 소리로 나무랐다. 매번 화를 내고 나면 후회가 됐는데, 왜 또 참지 못했을까! 그제야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일의 옳고 그름이 중요한가? 아니면 마음의 선악이 중요한가? 화를 내는 것은 사람의 표면적인 옳고 그름을 중시해, 마성(魔性)의 발작, 혹은 악의 표현이라는 것을 아예 의식하지 못했다. 화를 내서 타인을 질책해 내가 속이 시원해졌다. 이것은 사람이 속인 사회 중에서 형성된 악습이다.
다른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은 좋지 않은 마음이고 화도 내기 쉽다. 타인의 행위, 능력이 자신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해,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왜 심성을 지키지 못했는가? 평온한 마음을 지키지 못했는가?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깨끗하지 않고 마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격렬한 분노를 참고 분출해내지 않았다. 그때 머릿속에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은 중독을 말하는데 나는 여러분에게 무엇이 중독인지 알려주겠다. 사람들은 의학상으로 은호(癮好)신경이 자극되고 아주 발달되면 바로 중독이라고 여기는데, 사실은 아니다. 무엇인가? 당신 신체 속에서, 시간이 길어지자, 당신의 형상과 똑같은 당신이 누적됐는데, 오히려 그것으로 구성된 것으로, 당신을 통제했다. 그것은 아주 강한 집착으로 구성된 당신의 형상이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그렇게 강하게 당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주 강한 마음으로 형성됐기 때문이다.”[1] 정말 위험하다! 내 마음속에는 이미 점점 강대한 마(魔)의 ‘자아’를 키우고 있었다. 통제하지 못하고 감히 아버지에게도 화를 냈다. 수련인으로서 어떻게 된 일인가? 우리는 누구나 존중하며 잘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자신의 아버지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즉시 고쳐야 한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부모님의 옳고 그름을 현대의 관념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부모님에게 매일 혼나는 기분을 견디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돼 전전긍긍하게 살며, 존엄이 없고 성취감 없이 약간의 평온도 찾지 못하게 해드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전통적인 위아래의 질서에 따라 각자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존경과 효도를 다 해야지, 부모의 머리 위에 서서 호통쳐서는 안 된다. 대부분 자녀는 효심은 갖고 있지만 순종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고집스러운 노인을 대할 때면 더욱더 그렇고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더 어렵다. 순종하지 않으면 존경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연결된 것이다. 만약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른께 웃는 얼굴을 보이고 어른께 위안을 드려야, 진정으로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한 것이다. 대법의 지도로, 사부님의 점화로, 최선을 다한 수련으로 나는 해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설법: ‘2019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5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26/4067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