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저장(浙江)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봉제 일을 7년~8년 했다. 주문이 있을 때는 연속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면서 일했고 주문이 없을 때는 오랫동안 일이 없어 한가했다. 근무시간이 불규칙했기에 근무시간이 일정한 직장으로 옮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엔 친척의 소형 의류 프린팅 공장에서 한동안 관리를 했었다. 공장의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책임졌고 월급은 7천~8천 위안(한화 약 119만 원)이었다. 현재의 사람들은 모두 유행을 추구하고 의류디자인은 모두 마성이 있어 이상하다. 또 한 남성복 회사의 의류에는 전문적으로 독사, 맹수, 해골 등 무늬를 프린팅해주었다. 나는 그런 것들은 모두 의류업계에서 인류사회를 파괴하는 마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종래로 직접 하지 않았다. 사장님(기독교 신자)에게 그런 것들은 사람들을 해치고 우리 본인도 해칠 수 있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다. 그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지금 이게 유행이고 돈을 벌 수 있는데 우리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할 거야.”라고 말했다. 후에 나는 그 업종은 물에 대한 환경오염도 아주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때문에 나는 사장님의 거듭되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 일을 그만두었다. 남편은 안타까워하면서 “당신은 40이 넘었는데 어디에 가서 그렇게 좋은 직업을 찾겠어요?”라고 말했다.
며칠 후, 단오절에 시누이가 아버님을 보러 왔다. 그녀는 내가 취업 중이라는 것을 알고 나더러 그녀가 일하는 기계공장에 가보라고 했다. 그녀는 회사의 주요 책임자였는데 그곳은 오랫동안 합당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일한 사람들은 모두 2, 3개월도 못하고 갔다면서 남자들은 월급이 낮다고 하고 여자들은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한다고 했다. 근무시간은 8시간인데 일당은 140위안(한화 2만3천 원) 이라고 했다. 내가 전에 하던 일에 비하면 월급이 아주 낮았지만, 작업시간을 고려하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기에 나는 가보기로 했다.
다음 날 공장에 갔는데 사장은 없었다. 공장은 3개 층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주 특별했다. 1층은 용접과 분사를 하는 곳으로 사용하고 3층은 반만 사용했는데 조립하고 4층은 4분의 1을 사용하는데 아르곤 용접과 드릴 작업 및 조립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채용하려는 직원은 바로 4층의 조립공이었다. 4층은 대부분 시간 혼자서 일한다. 다른 층의 사람들은 거의 오지 않아 매우 조용한 환경이었다. 공장의 기술공은 전부 7명(안전을 위해 아래에 가명을 쓰려고 함)인데 각자가 맡아서 해야 하는 일이 있기에 사장은 4층에서 고정적으로 일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작업대 위의 공구를 보니 보지도 못한 것이 많았다. 샘플을 보니 5kg은 족히 되어 보였는데 수십 개의 부품으로 조립된 쇳덩어리였다. 가볍고 부드러운 옷감을 다루던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시누이한테 가능한지 알아보고 사장께 말씀드리라고 했다. 시누이는 대뜸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미 몇 사람이 왔다가 갔으니 올 사람은 더 없다는 것이었다. 시누이는 사장은 걱정하지 말고 다음 날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첫날은 7시 30분에 출근했다. 시누이는 나에게 포장 일을 시켰다. 작년에 주문받은 1200대 분량인데 6월 말이 되어도 발송하지 못해 먼지가 가득하다고 했다. 한 상자에 200개씩 6상자를 2㎥ 가까이 되는 큰 나무 상자를 포장해야 했다. 나는 속으로 ‘어제까지도 포장한다는 말이 없었는데 이렇게 무겁고 양도 많으니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했다. 시누이는 옆에 있는 한 무더기 상자 간지를 당겨오면서 “오늘은 이것만 하면 돼.”라고 말했다. 간지는 가로 4개, 세로 5개가 한 세트인데 한 상자에 7세트가 들어간다. 6상자니 모두 42세트를 꽂아 넣어야 했다. 시누이는 말해주고는 3층으로 내려갔다. 9시쯤에 나는 시누이가 누구와 다투는 소리를 들었는데 금방 조용해졌다.
화장실은 3층에 있었다. 간지를 거의 다 꽂았기에 화장실에 갔다 오면서 포장 주머니를 가져왔다. 시누이는 내가 간지를 거의 다 꽂았다는 말을 듣고 굳었던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전화를 해서 운반공에게 4층에 올라가서 나무 상자를 박으라고 했다. 시누이가 그 운반공을 부를 때 순수(順叔)라고 불렀다. 순수는 상자 하나를 박은 후 망치를 바닥에 던지고는 가버렸다. 나는 혼자서 포장하기 시작했는데 상자는 크고 키가 작아 한 발이 상자 안에 들어가야 제품을 넣을 수 있었다. 나는 상자가 더러워질까 봐 종이를 깔고 신발을 벗고 밟았다. 나는 한 대씩 포장이 끝나는 대로 바로 나무 상자에 넣었다. 부품 하나가 5kg이 넘었기에 두 손으로 들어야 했다.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때 한 사람이 올라왔다. 그는 자신을 샤오천(小臣)이라고 소개하면서 공장에서 용접을 빼고는 모두 할 줄 안다고 했다. 그의 얼굴은 누랬다. 그는 내가 포장한 제품들의 개수를 세면서 나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그는 “주요 관리자가 시누이잖아요. 사장님이 4층에 남자를 쓰겠다고 하자 당신의 시누이는 당신이 파룬궁을 수련하기에 부지런하고 고생을 견뎌낼 수 있으며 책임감도 높기에 남자보다 못하지 않다면서 사장님과 내기를 했어요. 일주일이면 작업량으로 알 수 있다고 했어요. 방금 당신의 시누이가 사장님과 다툴 때 우리 몇 명은 현장에 있었어요. 모두 당신이 불가능한 일을 한다고 하니 조롱거리가 생겼다고 구경하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도 당신은 아주 빨리 하는 거예요. 전에 일하던 남자는 휴대전화를 하면서 일을 했는데 하루에 40여 개의 간지도 넣지 못했는데 당신은 반나절에 그가 이틀 동안에 한 일을 다 해냈네요, 4층에는 감시카메라도 없고 관리자도 없는데 이렇게 빨리할 필요가 없어요. 천천히 하세요. 1200대를 7일에 다 한다 해도 아주 빨리 하는 거예요. 알았죠? 가요, 점심시간이에요.”라고 말했다. 후에 그는 나와 동갑이라고 했다. 그는 십 대 때부터 타지에서 돌아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했고 멸시도 많이 당했다고 했다. 그런 환경에서 날카롭게 단련돼 공장에서 가장 까칠한 사람이고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았고 매사에 손해 보지 않았으며 말로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일을 가장 거칠게 하면서도 작은 이익을 챙기길 좋아했다. 그러나 그는 아주 효도했고 가정을 책임졌다. 그가 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여러 가지 공정에 대해 익숙했기에 사장은 그를 계속 쓰고 있었다.
오후에 내가 3층을 지날 때 시누이는 순수에게 상자 2개를 더 박게 안배해달라고 했다. 시누이는 창문을 열고 1층에 대고 “순수 씨, 4층으로 가세요.”라고 외쳤다. 그녀는 나를 따라 4층으로 올라왔다. 그녀는 포장된 상자를 보더니 작은 소리로 나에게 “어차피 돈은 시간으로 계산하니 머리를 써서 천천히 해요.”라고 말했다.
순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일하면서 욕을 중얼거렸는데 망치로 쾅쾅 내리치면서 화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자세히 들어보니 한번 칠 때마다 한마디씩 파룬궁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있었다. 파룬궁 분신자살, 파룬궁은 인정이 없다 등등. 그녀가 상자를 거의 다 박은 것을 보고 나는 “순수 씨는 파룬궁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알려줄게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내 조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공부를 많이 했고 대학교도 나왔어요. 동북으로 시집가더니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오지 않았어요. 양심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듣고 나서 마음이 아주 무거웠고 숨김없이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의 조카에게 반드시 고충이 있을 거예요.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진상을 알렸기 때문에 전에 불법으로 2년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어요. 그동안 우리 부모님은 정신적 타격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 아빠는 나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식사할 때 빵이 땅에 떨어져도 의식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늘 눈물을 흘리셨어요. 만약 그 당시에 우리 부모님에게 급한 일이 생겼어도 나는 강제로 감금되었기에 가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가 인정이 없어서가 아니고 중공이 좋은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전문적으로 좋은 사람만 박해하기 때문이에요. 생각해보세요. 당신의 조카는 불효자인가요?”
순수의 표정이 좀 무거워지더니 회상하기 시작했다. “우리 조카는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귀엽고 영리해서 모두 아주 좋아했어요.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어요. 가족들은 몇 년 동안 아무도 그녀의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 그녀는 의학을 전공했어요.” 나는 그녀를 위로하면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조카에게 부득이한 고충이 있어서 그럴 것이니 아마 좀 지나면 소식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중공이 대법과 대법제자들을 박해하는 기본진상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녀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는 중공이 나쁘다는 것은 벌써 알고 있었어요. 우리 할아버지는 지주였는데 모함을 당해 고깔모자를 쓰고 비판을 받았어요. 가산도 전부 빼앗겼어요. 나는 형제가 다섯인데 모두 공부를 못했어요. 어려서부터 배불리 먹지 못했고 신발도 없었어요. 지금 우리는 모두 60세가 넘었는데 아직도 나와서 막노동을 하고 있어요.” 그녀는 말하고 말하다가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얼른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은 명석한 사람이잖아요. 오늘 파룬따파의 진상을 들었으니 더는 파룬따파가 나쁘다고 말하지 마세요.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면 복을 받을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고 다시 상자 4개를 더 박고 나서 망치를 작업대에 살며시 놓았다. 가면서 그녀는 필요하면 아래층에 대고 부르라고 했다.
나는 이틀 동안에 포장을 전부 마쳤다. 오랫동안 체력노동을 하지 않았기에 온몸의 근육이 아팠다. 저녁에는 돌아눕기도 힘들었다. 허리가 아프고 두 손에는 물집이 몇 개나 잡혔다. 남편은 하루에 고작 그 돈을 받고 그렇게 힘들게 할 거면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며칠 적응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셋째 날 출근하자 3층의 부자 두 명을 뺀 모든 동료가 4층으로 올라왔다. 그들은 내가 포장을 마쳤다는 말을 듣고 믿기지 않아 확인하러 올라왔던 것이었다. 사장은 포장된 여섯 개 상자를 보고 마음에 드는 눈치로 나를 몇 초 동안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내려갔다. 시누이는 우쭐하면서 나에게 웃어 보이고는 따라 내려갔다. 샤오천은 시큰둥하면서 “대단해!”라고 했다. 순수는 “작년에 남자 둘이서 3일 동안에 한 일을 여자 한 명이 이틀에 다 한 거예요. 파룬궁은 정말 대단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저도 많이 힘들었는데 연공을 하니 체력이 회복되었어요.”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알겠다는 듯이 웃었다.
계속해서 샤오천은 나에게 조립하는 것을 가르쳐주었는데 그는 정말 뜸을 들였다. 분명히 간단한 조립방법인데도 일부러 복잡하게 했다. 포장하면서 그 일은 쉽지 않고 부품도 모두 외부에서 가공해 오는데 대부분이 불량이어서 고쳐서 사용해야 한다면서 탁상드릴을 다룰 줄 아는지, 광택기를 다룰 줄 아는지에 관해 물었다. 내가 모른다고 하자 그는 우쭐대면서 “이 부품은 작년에 한 고객이 반품해서 사장님은 손해를 많이 봤어요. 고객이 까다로워서 사장님이 직접 엄격하게 검사해요. 월급이 낮고 일이 힘든데 왜 높은 월급을 놔두고 이 일을 하려 하나요? 그리고 늦지 않았으니 시누이한테 말해서 배우지 못하겠으니 그만두겠다고 말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당신네 몇 명은 모두 이 공장에서 오래 근무했다고 들었는데 왜 사장님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샤오천은 “이 공장은 발전이 없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여전히 이 규모예요. 만약 내가 다른 공장에서 했더라면 벌써 선생님이 되었고 제자가 몇 명 생겨서 일하지 않아도 됐을 거예요. 내가 떠나지 않는 것은 여기가 자유롭고 한 것만큼 받으며 출근카드를 찍지 않고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데 아무도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구속을 받지 않기 때문이에요. 관리하는 사람이 없기에 물건이 잘못되면 고철무더기에 던지면 돼요. 이 공장은 관리가 따라가지 못해요, 만약 당신이 여기서 오랫동안 일할 생각이라면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낮에는 천천히 하고 저녁에 3시간 30분 더하면 80위안(한화 1만 3천 원)을 받을 수 있어요,”라고 했다. 샤오천은 끊임없이 그의 ‘경험’을 나에게 전수해주었고 나는 예의 있게 그의 말을 끊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 같아요.” 그는 “괜찮아요, 내가 사장님에게 가서 지체된 시간만큼 받으면 돼요.”라고 말하면서 부품을 조립했다 뜯었다 두 번 반복하고 나에게 알겠냐고 물었다.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복장을 제작하는 일에 비하면 아주 간단했다. 나는 공구를 들고 하나를 조립했는데 톱니바퀴가 빡빡하게 물려서 찍찍 소리가 났다. 나는 그에게 왜 소리가 나는지 물었지만, 그는 나 스스로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는 한 시간이 거의 되는 것을 보고 내려갔다. 나는 제품을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했지만, 톱니가 여전히 빡빡했다. 뒤집어보니 케이스가 톱니에 닿아있었다. 일자 드라이버를 사이에 끼우고 다시 돌려보니 아주 원활하게 돌아갔다. 나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점심시간 전에 시누이와 샤오천은 내가 몇 대나 포장했는지 보러 올라왔다. 한 팔레트 36대를 금방 포장한 것을 보고 시누이는 놀라며 소리쳤다. “너 오늘 쉬어도 돼! 이전대로 라면 너의 일당을 초과했어.” 샤오천은 손을 내밀고 몇 대를 돌려보더니 모두 아주 잘 돌자 시누이를 보면서 말했다. “당신의 올케가 이 일을 정말 잘했네요.” 시누이는 기뻐하면서 말했다. “우리 사장님한테 가서 시간으로 계산하지 말고 개수로 계산하자고 말하자, 이전의 그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일했는데, 온종일 휴대전화를 하고 시간을 보냈어.” 사실 나는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해 사장님이 주는 월급에 부끄럽지 않게 하려 했고 진선인의 표준으로 가늠했다. 이 때문에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후에 시누이는 나를 데리고 사장님에게 개수로 계산해 줄 수 있는지 물으러 갔다. 사장님은 그 제품은 주문량이 많지 않아 나의 포장속도라면 일감이 모자란다면서 부품조립이 끝나면 나머지 시간에 천천히 기술을 배울 것을 건의했다. 그래도 할 일이 없으면 위층에서 휴식하라고 했다. 월급은 매월 20위안(한화 약 3천 원)씩 더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기술은 샤오천이 책임지고 가르쳐주게 했다. 샤오천은 사장이 나에게 월급을 올려준 것을 알고 마음의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오래 했어도 사장은 종래로 주동적으로 월급을 올려주지 않았고 모두 그 자신이 졸라서 조금씩 오른 것이라고 했다. 내가 오자마자 월급이 올라 좀 질투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절반만 가르쳐주었다. 어떤 때 몰라서 물으면 그는 잘 가르쳐주지 않고 늘 나에게 “당신은 자리를 찾아 앉아서 스스로 생각해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샤오천의 바르지 못한 처세와 태도는 비록 작은 이익은 얻을 수 있지만, 오히려 가장 소중한 덕을 잃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의 누런 얼굴과 매몰찬 표정에서 나타났다. 그가 부모님에게 효도하기에 내심은 그래도 선량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언행으로 그를 감화시켜 이익만 추구하는 잘못된 관념을 바로 잡게 인도해주는 것이 그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매일 효율적으로 열심히 나의 일을 한 후, 공장을 정리하고 깨끗이 쓸었다. 각종 공구를 나란히 놓은 다음 위, 아래층을 한 바퀴 돌면서 내가 도울 일이 있는지 보았다. 정 없으면 카드를 찍고 퇴근했다. 어떤 때 일이 없으면 연속 2, 3일씩 공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법 공부를 했다. 그날 샤오천은 탁상드릴로 구멍을 넓히는 것을 가르쳐 줄 때 나에게 “당신은 너무 멍청해요. 이전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하면서 일을 했기에 하루에 몇 대밖에 조립하지 못했어도 한 달에 십 며칠은 잔업을 해서 한 달에 6천 위안 넘게 받았어요. 힘도 적게 들었고요.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 손해가 커요. 당신은 잔업을 하지 않더라도 낮에는 나와야지요. 카드를 찍고 4층에서 휴대전화를 하면 좋잖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련하여 진정한 좋은 사람이 되고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며 이기적인 마음을 제거하고 다른 타인을 위하는 생명이 되라고 가르치셨어요.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요. 또한, 우리 대법제자들은 모두 휴대전화를 갖고 놀지 않아요. 우리는 위챗도 하지 않고 시간이 나면 법 공부를 해요. 대법제자는 이 탁세 중의 정련(淨蓮)이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또 그 기회에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한 구절을 외웠다. “이 우주 중에는, 잃지 않은 자는 얻지 못하고 얻으려면 곧 잃어야 한다는 이치가 있는데, 당신이 잃지 않으면 당신으로 하여금 강제로 잃게 한다. 누가 이런 작용을 하는가? 바로 우주의 이 특성이 이런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얻으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1]
후에 나는 여러 번의 기회에 사부님의 법을 그에게 외워주었다. 그가 듣는 것을 보고 나는 그에게 각종 진상 영상을 보여주었다. 서서히 나는 그에게서 일부 기뻐할 만한 변화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나에 대한 존경심이 보였고 나와 말할 때 그렇게 각박하지 않았고 서 있는 자세도 많이 단정해졌다. 그는 다 쓴 드릴과 칼날도 잘 정리해 놓아두었다. 전에는 공구들을 쓰고 난 후에는 전부 사라져서 다시 쓰려면 다시 받아와야 했고 큰 드릴 십여 개는 쇠를 깎은 부스러기와 함께 고철로 팔았다. 그러나 지금은 땅에 떨어진 나사, 나사받이 같은 작은 물건도 쪼그리고 앉아서 줍는다. 규격을 살짝 벗어난 부품도 내성이 되면 줄로 살짝 그어서 사용했다.
나는 그에게 삼퇴하고 평안을 보장받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삼퇴하여 생명을 구하고 평안을 보장받은 밍후이왕의 많은 사례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는 전에 단, 대에 가입했었는데도 태도를 표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전에 어떤 일에 손해를 봐서 쉽게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날, 우리가 함께 새로운 제품을 조립하고 있을 때 나는 그를 포기하기 싫어서 다시 말했다. 나는 “내가 보니 샤오천은 아주 선량하네요, 우리 사부님께서는 인연 있는 사람을 한사람이라도 누락시키지 말라고 했어요. 지금 우리가 동료가 되고 대법 사부님의 법을 들을 기회가 있게 되었는데 이게 얼마나 큰 인연인가요! 우리는 진심으로 세인을 구하는데 아마 전에 우리는 약속했을 거예요. 나더러 당신이 위험에 처해있을 때 반드시 구해주라고요! 당신이 오늘 단, 대에서 탈퇴하겠다는 한마디만 한다면 당신은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 되고 무수한 생명이 당신을 위해 환호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는 진지하게 나를 보면서 “당신은 이미 삼퇴를 시켜준 게 아니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놀라면서 즉시 그에게 물었다. “난 아직 당신의 이름을 모르는데요.” 그는 이름을 말했고 나는 진짜 이름으로 탈퇴할 것인지 물었다. 그는 진짜 이름으로 탈퇴하겠다고 했다.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종래로 생각지도 못했었다. 전에 그는 정말로 태도를 표시한 적이 없었다. 그 후 그는 오래된 친구처럼 내가 출근하기만 하면 올라와서 도울 것이 있는지 보았고 나를 더 존중했으며 작업방법을 남김없이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샤오원(小文)은 공장의 용접공이다. 그는 각종 용접기술에 능하고 연봉이 십여만(한화 2천만 원) 위안이 넘는다. 그의 옷차림은 아주 그럴싸했다. 출근할 때도 연한 남방을 입고 브랜드 신발을 신었다. 그의 아내는 2년 전에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고 고향으로 갔다. 그는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났고 나가서 놀기 편하게 대출받아 차를 샀다. 이 사실은 모두 그가 통화하는 것을 내가 들은 것이다. 사연은 이러했다. 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매일 점심에 집에 가서 밥을 먹는 대신 밥솥을 가져와 밥과 반찬을 해 먹었다. 설거지가 끝나면 작업대 옆에 앉아서 발정념 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을 동료들은 아무도 몰랐다. 그날 점심에 내가 금방 설거지를 마치고 앉았을 때 샤오원이 전화를 하면서 위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가 물건을 가지고 금방 내려갈 줄 알았는데 큰 종이를 찢어서 팔레트 위에 깔고 누워서 다리를 꼬고 전화를 계속했다. 만약 내가 그의 사생활을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그는 창피해서 여러 사람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고 예전의 군자의 풍모를 유지하지 못할까 봐 소리를 내지 않았다.
샤오원에게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용접을 할 때면 꼭 음악을 들었다. 모두 마성이 아주 강한 빠른 음악이었다. 그는 평소에 1층에서 작업하기에 나에겐 방해가 되지 않았지만, 월말이면 며칠 동안 4층에 와서 스테인 케이스에 용접을 하는데 이틀 후면 올라온다. 나는 평소 밍후이왕에서 내려받은 교류문장을 MP3로 듣는데 보아하니 이어폰을 써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상황은 나의 예상 밖이었다. 샤오원은 60cm 정도의 큰 스피커를 가지고 와서 음량을 크게 틀었다. 음악 소리는 500㎡ 되는 넓고 텅 빈 작업장을 진동했고 스피커 주변의 바닥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샤오원은 일하다가 지치면 일어서서 빠른 음악에 맞춰 이상하고 희한한 춤을 췄다. 용접할 때의 연기가 제때에 배출되지 못해 온 공간에 가득해서 몹시 숨이 막혔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샤오원에게 음악 소리를 낮출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그건 안돼요, 그렇게 하면 일을 하면서 졸려서 용접을 잘못하면 어떻게 해요?”라고 했다. 나는 참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환경에서 나는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하고 샤오원에 대해 반감이 생겼다. 우리 연공인은 독한 연기가 우리 몸을 상하게 할 수 없기에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 마성의 음악은 확실히 내가 배척하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샤오원이 매번 몸을 일으켜 움직일 때면 나에게 미안하다는 손짓을 했는데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나는 그가 그런 상태에 통제당해 빠져나오지 못하고 이용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정말로 아주 가련하다고 생각했다.
그날, 나는 그가 스피커를 켜기 전에 나의 것을 틀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동의했고 나는 MP3를 켜고 내려받은 전통문화 편을 틀었다. 맑고 깨끗한 새소리가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나오자 샤오원은 확실히 놀랐다. 사회자의 그 온화하고 아름다운 목소리, 상화하고 감화력이 있는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깊이 깨닫게 하고 선량한 본성으로 돌아가게 하는 이야기를 서술할 때 샤오원의 영혼은 깨끗하게 씻기고 있었다. 그날 오후에 그는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고는 일어나서 춤을 추지 않았다. 퇴근할 때 그는 좀 조심스러워하며 나에게 물었다. “이런 내용은 정말로 교육적이네요, 어디에서 내려받은 건가요?” 나는 이런 내용은 우리 대법제자들이 정리하고 녹음 제작한 것인데 사람들에게 우리 중화민족의 5천 년 전통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게 계발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놀라움에 탄복하면서 말했다. “우리 고향의 한 대학교 교수는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였기에 교수직을 해임당하고 판결을 받았어요. 그 일은 우리 고향을 아주 떠들썩하게 했어요. 사람들은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면 완고해지고 정치를 한다고 했어요, 지금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 않네요.” 나는 얼른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중공 사당의 가짜, 악, 투쟁의 본질과 중공은 무신론을 선전하여 사람들의 도덕적 양심을 손상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샤오원은 “공산당은 악해요. 당신이 좋든 나쁘든 순종하지 않으면 죽이고 순종하면 당신이 나쁘다 하더라도 살려주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봐요, 그것은 극도로 사악하지 않아요? 당신은 그의 조직에 가입한 적이 있어요?”라고 묻자 그는 가입한 적이 없다고 했다. 어릴 적에 장난이 심해서 붉은 넥타이도 매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럼 정말 좋네요. 머리 석 자 위에 신령이 있으니 이후에 아내한테 잘하고 두 아들이 있으니 가정을 지탱하는 대들보로써 자신의 가정을 책임져야 하고 두 아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듣고 나서 어리둥절해 하다가 나에게 두 손을 모아 예의를 표하는 시늉을 했다. 그 후 그는 스피커를 끄고 MP3로 방송을 들었다. 매번 음량을 조정하고 나에게 승인받은 후에 앉아서 일했다.
3층의 부자 중수(忠叔)와 샤오빈(小斌)을 말해보자. 중수는 근면 성실하고 성격도 아주 좋다. 샤오빈은 30세인데 아주 멋지고 옷차림도 아주 멋스럽다. 그는 기술이 높고 손발이 빨라 혼자서 두 사람의 일을 했다. 본래 다섯 명이 하던 일을 그들 부자 둘이서 도맡아 했다. 그 때문에 사장님은 그들을 아주 중시했다.
샤오빈은 젊고 활력이 넘쳤으며 일도 잘하는데 좀 오만했다. 내가 3층에 갈 때마다 그들과 인사를 하면 중수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아는 체를 하는데 샤오빈은 얼굴에 싫어하는 기색이 가득하고 머리 한 번 들지 않았다. 그날 나는 탭 드릴이 필요해서 3층에 갔는데 드릴을 넣어둔 공구 상자의 열쇠를 찾지 못했다. 중수가 도와서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그는 샤오빈에게 물었으나 샤오빈은 담배를 물고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작업대에 올리고 휴대전화를 하고 있었는데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중수가 두 번이나 물었으나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중수는 미안해하며 나에게 “우리 아들은 내 친아들이 아닌 것 같아요. 나는 아이가 셋인데 딸과 큰아들은 모두 철이 들었고 말을 잘 듣는데 얘만 달라요, 어릴 때부터 장난이 심하고 말썽만 일으켰어요. 어릴 때 나는 그를 매달아 놓고 때렸지만 아무리 때려도 소용이 없었어요. 방법이 없어 중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데리고 출근했어요. 지금 두 아이의 아빤데 봐요, 아직도 이 모양이에요.”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중수 씨 그건 샤오빈의 어릴 때 일이잖아요, 지금은 일을 얼마나 잘합니까? 공장의 주력이어서 사장님도 좋아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그와 상의하잖아요, 젊은 사람들은 모두 개성이 있는 거예요.”라고 말하자 중수는 웃었고 샤오빈은 다이를 힐끗 보았다. 뜻인즉 거기에 열쇠가 있다는 것이었다. 중수는 머리를 치면서 “그래요, 내가 놓은 거예요. 아, 까먹었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3층에 내려가서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왔다. 그렇게 그들 부자를 도와 일해도 샤오빈은 나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나는 개의치 않았고 도와줄 수 있으면 힘껏 도왔다. 매번 일을 마치면 나는 자발적으로 기계 아래위의 철편들을 깨끗이 치웠고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쓰고 난 공구는 원래 위치에 놓아 그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날 아침에 출근 시간을 10분 앞두고 중수는 밀차를 가지러 4층에 올라왔다. 내가 일을 시작한 것을 보고 머리를 들어 시계를 보더니 “이 며칠 이렇게 일찍 일을 시작하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 물건을 급하게 해야 하기에 아침에 좀 일찍 나와서 한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개수로 계산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당신은 급한 것을 상관하지 말고 못 하면 잔업을 해요, 잔업비도 있는데요.”라고 말했다. 나는 좀 빨리하면 물건을 뽑아낼 수 있다고 했다. 중수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70세가 다 되었는데 당신 같은 여인은 처음 봐요. 현재 사회에서 당신 같은 사람은 찾기 어려워요, 내가 보기에 당신은 인내심이 좋고 성실하며 또한 총명해서 무엇이나 한번 보면 잘 해요. 당신 남편은 참 복이 많네요. 당신은 나의 큰아들과 동갑인데 우리 며느리는 당신보다 못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모두 우리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거예요. 요구에 따라 하려면 아직 멀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파룬궁, 알아요.”라고 말하면서 밀차를 밀고 갔다. 사실 나는 줄곧 그들 부자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려 했지만, 그들이 일할 때 사용하는 전동기구 소리가 너무 크고 샤오빈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고려해 적당한 기회를 봐서 진상을 알리려고 했다.
시간은 빨리 흘러 어느덧 연말이 다가왔다. 모두 마지막 주문을 다그쳐서 하고 있었다. 중수 부자는 연 며칠 잔업을 계속했다. 어렵게 사장이 요구한 제품을 포장까지 마치고 쉬려고 했지만, 업무부에서 전화가 왔다. 급하게 마친 그 제품들은 담을 컨테이너를 꺼낼 수 없어서 시작도 하지 않은 다른 한 제품의 컨테이너를 꺼냈으니 급하게 그 제품 80대를 해달라고 했다. 이틀 안에 반드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배가 없다고 했다. 그것은 그들의 평소 작업량의 두 배에 달했다. 그 일로 중수는 화가 나서 그는 손에 들었던 공구를 던지면서 화를 내며 욕을 했다. 심한 거친 욕을 계속해댔다.
사장도 급해서 전 공장의 인력을 집합시키고 3층에 가서 돕게 했다. 회계도 올라왔다. 직접 일을 하지 않던 사모도 올라와서 회계와 함께 종이 상자를 붙였다. 모두 각자의 솜씨를 발휘했다. 3층은 한순간에 아주 떠들썩해졌다. 사장은 가끔 조심스럽게 왔다 갔다 하면서 직원들에게 담배를 건넸다. 중수는 나에게 그를 따라다니면서 뒤에서 미끄럼방지 나사를 조이게 했다. 키가 작아 꼭대기까지 닿지 않자 중수는 플라스틱 의자를 옮겨주면서 나더러 디디고 하라고 했다. 나는 두 손은 위로 올리고 머리를 쳐들고 해야 했다. 비게 차의 구조는 위가 무겁고 다리 부분이 가벼워서 나사를 조일 때 힘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조심하지 않으면 차가 밀려서 넘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되고 돕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것이 된다. 의자를 디뎠기에 땅처럼 그렇게 단단하지 않았다. 그 일을 하는 것은 좀 힘들었다. 그래도 오전엔 모두 의욕이 넘쳤지만, 오후에는 둘이 지각했고 세 시도 되기 전에 사모와 회계는 더는 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시누이도 자리를 찾아 기대섰다. 중수 부자 두 명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속도가 느려졌다. 나도 아주 많이 지쳤지만 속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서 중수 뒤를 따라가면서 계속하고 하고 있었다.오후 5시에 모두 연달아 퇴근했다. 나는 중수의 거듭된 재촉 하에 8시까지 하고서야 퇴근했다.중수 부자는 밤을 새우면서 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중수의 큰아들도 와서 도왔다. 샤오빈은 아침밥을 사러 갔다가 돌아와서 나를 보자 태도가 180도 바뀌었고 이전에 싫어하는 기색이 없이 웃으면서 말끝마다 리(麗) 누나라고 불렀다. 모두 멈추고 휴식할 때 샤오빈은 “리누나, 우리 집도 신앙이 있었어요. 우리 온 가족은 2년 전에 기독교를 믿었는데 그해 아버지가 집을 짓자 교회에서 몇 사람이 찾아와서 아버지에게 집을 지을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천당에는 무엇이나 다 있기에 일도 할 필요가 없다면서 천당에 모두 안배해놓았다고 했어요. 우리 아빠는 그들과 싸웠고 그때부터 우리는 믿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모두 듣고서 크게 웃기 시작했다. 샤오빈은 이어서 “누나가 오자, 누나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정상인지 아닌지 몇 달 동안 쭉 지켜보고 있었어요. 누나는 누구보다 정상이고 누구보다 명백하게 살아요. 말해 봐요. 그런데 파룬궁은 무엇 때문에 ‘천안문 분신자살’을 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듣고 나서 속으로 기뻤다. 모든 동료가 있으니 그것은 하늘이 준 좋은 기회였다. 나는 “그것은 중공의 자작극이고 파룬궁에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지요. 전 국민이 파룬궁을 증오하게 하려고 수많은 거짓말을 꾸며내서 국민을 속였어요. 내가 분신자살의 몇 가지 의문점부터 이야기할게요. 돌발 상황에서 감시카메라에 찍혔는데 어찌 줌 기능이 있고 세부묘사도 하고 대사까지 넣을 수 있어요? 휘발유를 사람의 몸에 뿌리고 1분 동안 탔는데 머리카락이 타지 않을 수 있나요?” 내가 아직 다 말하지 않았는데 샤오빈은 “일리가 있네요, 내가 이렇게 총명한데 속았어요. 원래 우리 모두 속은 거예요.”라고 말했다. 샤오빈의 형은 “나는 현재 국제적으로 아주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고 능력이 있는 중국 사람들은 모두 외국에 가서 정착하고 있으며 당신네 사부님께서도 돌아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 사부님께서 돌아오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중공 이 정권과 그 우두머리들이 좋은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사부님을 질투하는 거예요. 우리 사부님께서는 사람들을 구도하러 오신 거예요. 시시각각 우리 중국 사람들을 걱정하시기 때문에 거짓말에 미혹되어 불법(佛法)을 적대시하는데 도태되지 않도록 우리더러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라고 한 거예요. 중국공산당은 서양에서 온 유령이에요. 우리는 중화의 아들딸이지 마르크스 레닌의 아들딸이 아니에요. 우리 중국에 이미 3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람을 해치는 이 조직에서 탈퇴했어요. 오늘 여러분들도 탈퇴하세요.”라고 말하자 중수는 “나는 붉은 넥타이를 맨 적이 있어요. 탈퇴할게요.”라고 말했고, 샤오빈은 “저는 ‘오염’되지 않았어요. 저는 결백해요, 나의 아내도 결백해요,”라고 말하고 나서 샤오천과 샤오원을 잡아당기면서 “당신들도 빨리 태도를 표시하세요, 하늘이 우리를 기다리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어요. 하늘 문이 곧 닫혀요.”라고 하자 그들은 웃으면서 벌써 의사표시를 했다고 했다. 샤오빈은 “이번 설에 고향에 가서 모든 친척과 친구들에게 이 진상을 알릴 거예요, 나도 중공의 죄악을 폭로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샤오빈의 오성은 정말 괜찮았다.
그날, 공장에서 전기회로를 수리하느라고 차단기를 내렸다. 점심밥을 하지 못하기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모두 차에서 내린 후 말하고 웃으면서 길 건너편의 음식점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종합집법(綜合執法)이라고 표시된 전동차 한 대가 “띠” 소리를 내면서 경찰 4명을 싣고 빠르게 우리 앞을 지나갔다. 샤오빈은 무심결에 한마디 했다. “날강도, 공산당 날강도, 이렇게 대낮에 법을 집행하는 거야? 맨 날 백성들의 머리에 올라타 권세를 부리고 있어.” 자리에 앉은 후에 모두 한마디씩 했다. 샤오천은 작은 소리로 “옆자리에서 들을지도 몰라요.”라고 했고 샤오원도 “사복경찰이 있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중수는 “맞아요, 밥 먹자고요.”라고 말했다. 모두 자가용이 있었기에 나는 준비한 차량용 호신부 고리를 나눠주면서 “여러분 새해 편안한 귀성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라고 말했다. 모두 기뻐하면서 두 손으로 받아 쥐고 자꾸자꾸 보았다. 중수는 “이것이야말로 정말 소중한 보물이야! 좋아! 정말 좋아!”라고 칭찬했다.
일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내가 점심밥을 먹고 있을 때 사모가 와서 내가 밥 한 공기와 채 썬 감자볶음 한 접시를 먹고 있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 시누이에게서 채식한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모두 며칠 못할 줄 알았었는데 우리보다 몸이 더 건강할 줄은 몰랐어요. 봐요, 나는 매일 산해진미에 보조식품까지 먹는데도 기색이 당신보다 못해요. 매일 활기찬 당신을 보면서 나도 당신과 함께 공을 배우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요, 파룬궁을 수련하면 몸이 건강해질 수 있고 도덕이 승화될 수 있어요. 이 점은 모두 보아낼 수 있지요.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당신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더 많이 주세요. 파룬따파는 좋아요. 당신이 수련하면 체험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사모는 “당신의 몸이 부럽네요. 보아하니 한 사람의 건강한 몸은 보충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수련해내는 것 같네요. 여기서 오랫동안 일하세요. 내년에 우리가 다른 부품을 안배하면 당신은 개수에 따라 돈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면 한 달에 최소 6천 위안(한화 약 102만 원) 이상은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나는 당신의 사회보험금을 내줄 거예요. 당신과 같은 좋은 일꾼은 반드시 남게 할 거예요.”라고 말하고 나서 손을 흔들면서 갔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음에 두지 않으니 세상과 다툴 것 없도다.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니 미혹되지 않는 도다. 들어도 듣지 못한 듯이 하니 그 마음 혼란하지 않도다. 먹어도 음미하지 않으니 입의 집착 없도다.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 늘 도(道) 중에 있도다. 고요하되 생각지 않으니 현묘함을 알 수 있도다.”[2]라고 알려주셨다. 나는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했고 간소하고 홀가분하게 살았으며 이익상에서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세상과 다투지 않는 태도는 오히려 세인들의 인정과 존중을 받았다.
제자에 대한 자비로운 사부님의 가르침과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시 : ‘홍음-도 중에서’
원문발표: 2020년 5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22/4066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