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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인 수련이 따스한 봄바람과 햇살을 동반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성장하면서 좋은 학교를 나와야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고 출세할 수 있으며 비로소 마음에 드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만나게 되어 점차 세상에 온 목적을 알게 되었고, 지난 일을 비롯한 일체의 일들이 인연임을 알았고, 미래의 사명과 책임을 알았으며, 세상의 애증을 이해하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맑아지자 두려움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담담하게 보였다. 내가 누구인지, 천만년의 윤회, 기다림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며 또 미래를 알게 되면서부터 마음은 천지 만물을 수용할 만큼 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영원하고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사부님께서 자애롭게 영원히 나를 보호해주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늘 잘 하지 못한다며 자신을 질책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오늘 또 잘 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일, 오래되도록 바로잡기 힘든 각종 나쁜 버릇, 되풀이해서 저지르는 집착, 입을 열기만 하면 속인처럼 말하고, 생각하기만 하면 속인의 마음인 것을 탄식했다. 그러므로 매번 집착이 후회되어 입을 때리고 싶도록 부족했지만. 그 무엇도 회귀(回歸)하려는 나의 의지를 흔들지는 못했다. 집착심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고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이기심이 벗겨지면서 조금씩, 하루하루 좀 더 잘해서 전진할 수 있었으므로 조금씩 바꿀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더는 이 우둔한 제자 때문에 상심하시지 않게 해 드리고, 이 제자로 인해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되도록 노력하고자 했다.

26년간 나의 수련 길을 돌이켜 보면 대법 수련으로 성장한 발자국을 볼 수 있다.

시댁의 가족

남편은 고아이고 5남매다. 누나들은 내몽골 또는 산시(山西)의 외진 곳에서 생활하는데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20년 전 우리가 장사해서 저축한 돈이 좀 있게 되자 남편은 누이들을 모두 고향으로 데려오겠다고 했을 때 나는 두말하지 않고 그들이 살 집을 사고 살림을 장만하는 등 그녀들을 위해 모든 준비를 했다. 누나들은 남동생의 아내가 고관의 딸로서 유세를 떠는 고약한 여자가 아니고, 사심이 없는 자상한 여자라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후에 우리가 교외에 별장을 샀는데, 평일에는 퇴직한 두 누이가 살면서 집과 마당을 가꿔주었다. 우리는 주말이 되면 별장에서 함께 다 모이게 되는데, 나는 시누이들이 마음 쓰는 것을 덜어주기 위해 정원사와 집을 청소하는 도우미를 불러 일을 시켰다.

주말마다 가서 보면 시누이들이 식사한 그릇들이 싱크대에 널려 있는 걸 보게 되는데, 그녀들은 “좀 있으면 아줌마가 치운다.”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소매를 걷어 올리고 설거지를 해서 정리했다. 내가 그 집에 가게 되면서부터 일하는 아줌마가 한 명 더 느는 셈이 되었다. 사실 나는 일반들이 보기에 귀한 공주다. 시누이들이 베이징으로 와서 살 수 있도록 내가 집을 사주었고, 그녀들의 자식도 우리 회사에 취직시켜 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공치사나 군림하려 들지 않았고 오히려 계속 일을 하며 그들을 보살펴주었다.

남편은 미식가다. “국수는 반드시 어느 집의 것이어야 하고, 고기는 꼭 어느 집의 어떤 부위여야 한다.”는 등등 음식 재료에 요구가 엄격하다. 30분을 걸어나가야 삼륜차를 부를 수 있는 거리지만, 바람이 불고 비가 오거나 아무리 춥고 덥더라도 나는 불평 없이 시장에 가서 음식 재료를 사는 일을 담당했다. 음식 재료 중에는 간식을 위한 각종 과일도 있어야 하지만, 시누이들이 다음 주에 먹을 식재료까지 사와야 했다. 채소 장수는 내가 주방 일을 하는 사람인 줄 안다. 그렇게 16년이 흘렀고, 그렇게 별장을 팔 때까지 쭉 이어왔다.

매년 시누이들의 생일도 챙겨주고 설 등 명절에도 선물을 준비해주었다. 시누이들은 처음에는 나에게 정중하게 대하더니, 나중에는 동생 대하듯 하면서 속내를 말하고, 자신들의 좋지 않은 집안일도 털어놓았는데, 심지어 나의 남편에 대한 불만도 말했다. 그녀들은 “만약 어머니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부지런한 며느리를 좋아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남편은 늘 나보고 “민며느리 같다.”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나의 부지런함이 시누이들을 서서히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또 타인의 처지를 이해할 줄도 알게 되어, 내가 먹을 수 있도록 과일도 남겨주고, 나를 도와 일부 가사도 분담하기 시작했다.

시누이들은 나의 대법 수련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불법(佛法)을 배우는 사람은 대개 생활이 여의치 못해 염세주의에 빠진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올케는 무엇이든지 풍족해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데 왜 그런 걸 하죠?”하며 의문을 가졌다. 그러던 중 내가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납치된 후 시누이들은 내 머리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며 늘 몰래 관찰하면서 논의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익 앞에서 내가 취하는 태도와 처세를 보았다. 나는 적당한 시간을 이용해 시누이들에게 대법 진상을 말해주었다. 그녀들은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을 하나하나 알게 되었고, 모두 중국공산당 조직인 당, 단, 대에서 탈퇴한 후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했다.

둘째 시누이는 내 아들에게 “너는 나중에 연애할 때 적어도 너의 엄마 절반만이라도 좋은 자질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번은 둘째 시누이가 나의 친정엄마와 이야기를 하다가 “하늘 아래 올케처럼 좋은 며느리, 좋은 어머니를 찾기 어려워요. 우리는 정말 너무 운이 좋아요.”라고 감개무량해 했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

나는 수련한 지 26년이 되는데 건강할 뿐만 아니라 실제 나이보다 20여 세나 젊어 보인다. 아들과 함께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누나로 여길 정도다. 부모님도 모두 82세인데 60대로 보인다. 어머니는 아직도 시간제로 일하면서 출장은 물론 각종 모임까지 참석하며, 아버지도 가끔 출장강의를 하므로 부모님의 건강한 젊은 모습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동년배들은 이미 귀와 눈이 어둡고 등도 굽어 출근 같은 건 말할 수도 없는 상태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1]는 것이 나의 부모님에게서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약을 드시는 것은 고사하고 어떤 건강식품도 드시지 않아 동년배들이 많이 부러워한다.

내가 진상을 알리다가 파출소에 납치됐을 때, 부모님은 큰 문제가 생길 것을 두려워해 나에게 대법 수련을 그만두라고 권했지만, 나의 반석 같은 마음과 수련으로 성품과 건강이 좋아진 것을 보고 진심으로 탄복했다. 두 분은 중국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나에게 시간을 다그쳐 연공을 잘하라고 말했다.

82세인 어머니의 쌍둥이 언니는 대법 수련자다. 그는 수십 킬로그램의 무거운 짐을 혼자 비행기를 갈아타며 세관을 통과하여 미국을 갔다. 모두 대법의 은덕이며 신적(神跡)이 아닐 수 없다.

아들의 여자친구

한번은 대학 2학년인 아들이 휴가를 떠나기 전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는데 그녀와 함께 비행기 편으로 돌아오겠다.”라고 해서 공항에서 만났는데, 그녀의 첫인상이 좀 드세 보였다. 여자애의 부모는 일찍이 이혼했는데 아버지가 그들 모녀를 버리고 홍콩으로 갔으며, 나중에 딸이 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아버지는 딸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혼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여 딸은 어머니 사업을 도와야 했다. 그녀는 그런 성장배경으로 성격이 독립적이어서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매우 재간이 있었으므로 아들은 그녀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으며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그녀가 여름에 프랑스로 수업하러 갔을 때 여러 사람이 움직여야 했고. 많은 돈을 지급해야 했다. 그런데도 여자아이는 아들에게 늘 이래라저래라 하며 명령조로 크게 말했다. 내가 만약 대법 수련 전이었다면 그런 여자애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은 고관집 자식이고, 부잣집 자식으로 풍요를 누리며 보배처럼 보호를 받고 자란 몸이다. 그러나 지금 가정도 별로 볼 것이 없고,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배경도 없어서, 나의 아들과 환경이 비슷하지도 못한 한 여자가 이래라저래라 명령조로 하는 꼴을 본다면 보통 사람이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타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갚을 것이 있으면 갚고, 그들의 은원관계가 어떻든 말든 나는 단지 관객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1년이 채 안 된 어느 날 저녁 아들은 그녀와 헤어졌다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인연에 따라 만나고 인연이 아니면 갈라선다.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라. 네 인생에서 만나야 할 여자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야”라고 말해주었다.

흥미로운 일은 두 아이가 헤어진 후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나에게 사업상의 문제를 말하면서 쑥스러워서 부탁은 하지 않았다. 나는 직접 그녀에게 연락해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말하라. 우리는 친구가 아닌가. 아이들의 일은 그들의 일이므로 우리의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듣고 매우 감동했다.

아들은 대학4학년 때 대만에서 불법(佛法)을 믿는 착한 여자, 삶의 반쪽을 만났다. 모든 것이 우연인 것 같지만 신의 인도로 한걸음 한 걸음씩 걸어온 것이다. 그 여자아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나는 천목으로 그녀의 원신이 아름다운 봉황인 것을 보았다. 그녀의 취미도 봉황의 일부 특징에 부합되고 있었다. 생명은 참으로 경이롭다.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앉는다고 한다. 한 번은 그들과 해변과 숲 중 어디로 갈 것인가를 논의하던 중에 아들이 조용히 내게 “그녀는 숲을 제일 좋아한다. 숲의 나무 냄새를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지금 나의 눈에는 주위의 중생,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 나의 자녀처럼 느껴진다. 아들의 여자친구(이미 결혼함)를 딸처럼 아끼며 관심을 두었다. 그녀는 어떤 때 자기 어머니보다 나와 더 가까웠다. 다른 사람들이 보아도 우리는 딸과 엄마처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즐겁게 말하며 걷는다. 뒤에서는 두 남자가 따라다니고 있고. 나는 친구에게 “나의 딸”이라고 첫 소개를 했다. 그럼 친구들은 “당신들의 네 식구가 부럽다.”라고 한다. 이 ‘딸’은 션윈(神韻)을 참 좋아한다. 내가 만약 나중에 딸을 낳게 되면 꼭 중국 고전무용을 배우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슨 시어머니, 며느리인가…… 내 수련의 사전에는 오직 자애(慈愛)와 무사(無私) 속에 사부님과 뭇 신이 계시고 나와 나의 중생이 있을 뿐이다.

봄날의 느낌

두 아이는 여름방학 때 돌아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우리는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자연히 많은 일이 생길 수가 있다. 나는 수련자이기 때문에 모든 일에서 따지지 않고, 이익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으며, 편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애들에게 “나는 어떻게 하든 다 좋다.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 돈은 내가 대되 참견하지 않겠다. 모두 너희들 의견대로 따라 하겠다.”라고 했다. 그랬는데도 며느리 될 애는 꼭 나와 함께 웨딩드레스와 예식장을 고르려 하고, 예식장에 관련한 서비스업체를 선별하는 등 일체의 세부계획까지 나와 협의하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계획과 절차를 협의하면서 대만의 예법의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님에게 차를 따른 것에서부터 식사 그리고 과정에서 때에 따라 옷을 3회 갈아입어야 하고, 세 벌의 옷을 대여해야 하는데 1만~2만 위안이 든다고 했고, 그 외 사진 촬영, 예식장 대여, 식사와 음료, 대만에서 온 하객들의 숙박과 관광비 등등 적어도 20만 위안(한화 약 3386만 원)이 소요된다.

대만에서 결혼식을 하면 식사 한 번으로 끝나지만, 신부 댁이 결혼식을 중국에서 하기로 했으므로 상황이 달랐다. 중국에서 결혼식을 거행하게 되어 대부분의 큰 비용을 전부 신랑 측이 부담해야 한다.

한 번은 연공할 때 각종 사람 마음이 나왔다. 만약 내가 그들의 요구에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하게 대하며 따지고 들면서 그런 결혼식을 거부하는 문제까지 떠올리게 되었고, 그래서 며느리 될 여자의 실망 어린 표정과 눈물을 흘리는 모습까지 떠올랐다. 또 그녀의 가족이 우리 가족에게 주는 불쾌감과 갈등, 심지어는 충돌 등등까지 떠올랐고, 결국 고부간의 갈등원인이 되는 것도 떠올랐다. 과연 그런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란 말인가?

나는 갑자기 “좋은 말 한마디가 엄동설한을 녹이고, 악담이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게 한다.”는 속담이 문득 생각났다. 곧이어 사부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가를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을 행하라고 가르치셨다! 일체를 타인을 위하라고 가르치셨다! 무사무아(無私無我)하라고 가르치셨다! 마음속에서 일체의 중생을 자신의 가족과 아이로 본다면 무슨 모순이 있겠는가? 무슨 충돌이 있겠는가? 화목하고 평화로워서 기쁨만 펼쳐질 것이다.

만약 우리 매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 순선한 사존의 제자가 순진한 심태로 생활 중에서 중생에 관심을 가져 그들의 부족함을 포용하고 그들의 잘못을 받아들인다면 세상에서 제일 큰 역량이 아니겠는가. 그 역량은 일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의 중생을 향한 그 힘은 법에서 오는 것이고, 위대한 사존의 가르침에서 왔다고 알려준다면 누군들 법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기꺼이 법에 탄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런 법리를 깨달은 후 개인의 득실을 더는 생각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회사를 차린 이후 모든 경리는 남편이 관리해왔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구상을 하며 시행하다 보니 수입이 없게 되었고, 결국 우리는 현재 다른 회사에 취직해서 매달 고정된 월급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 결혼식으로 나의 반년 치 월급을 써버렸다. 매달 월급으로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고, 집안 살림을 해야 하는 비용 등등은 계산에 넣지도 않은 것이다. 이 장부는 총체적으로는 도저히 맞출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어떤 득실의 계산도 생각하지 않은 채 오직 신부와 신부 댁 가족만 생각했다. 진심으로 딸 같은 신부를 위해 혼수를 마련하면서 자애로운 엄마가 딸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기로 했다!

그 후 며느리는 늘 나에게 진지하게 “어머니, 어머니는 선녀세요?” 하고 묻는다. 그럼 난 ‘너야말로 속세에 내려온 선녀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맺음말

따스한 봄바람과 햇살은 누구나 바란다. 마음의 아름다움은 봄바람보다 따스해서 햇살처럼 편안하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수천만 명의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가 정법의 혜택을 받고 있고, 사존의 가르침으로 ‘진선인(眞·善·忍)’의 이념으로 우주 대도(大道)를 이행해 무수한 중생에게 행복과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만약 당신도 따스한 봄바람과 햇살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싶다면 반드시 ‘진선인’의 우주 법리를 인정해야 한다. 만약 당신도 타인의 삶 중에서 천사가 되고 싶다면 우리 모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는 길을 함께 걸어가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원문발표: 202051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1/4043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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