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쑹바이(松柏)
[밍후이왕] 중국 인터넷에서 우한 폐렴(중공 바이러스)의 정황에 대한 발언은 사람마다 조심스러워졌다. ‘단계적 승리를 거뒀다’는 정부의 선전과는 다른 ‘중공에 대한 국제사회의 책임 추궁’에 조금이라도 공감하기만 하면 ‘매국노’, ‘남에게 약점을 준다’는 딱지가 언제든지 붙는다.
중공(중국공산당)은 그들의 전문가에게 우한 폐렴이 4월에 일단락됐다고 말하라고 했지만, 양식 있는 의학 전문가들은 전염병이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중공은 300명의 나팔수 기자를 우한에 보내 미화했지만, 진실을 밝히는 작가의 일기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됐다. 중공 바이러스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수천 명의 ‘우마오(五毛: 중국 댓글부대)’가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중공이 만든 폭도
문화대혁명 시기에 거의 모든 사람, 천진난만한 어린이까지도 ‘타도하자’ ‘ 기름에 튀기자’ ‘비판해 넘어뜨리자’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망신 주자’ ‘만 사람이 밟아서 영원히 살아나지 못하게 하자’ 등 구호를 외쳤다.
‘문혁’으로부터의 언어폭력이 잠복되어 내려오다가 여러 해 후에 이런 터무니없는 형태로 요괴를 방출하고 있다.
중공이 만든 ‘사이버 폭도’
사이버 폭도는 속칭 ‘우마오’, ‘우마오당’, ‘사이버 폭도’로 불린다. 중공은 그들을 인터넷 논설위원, 인터넷 평원, 민정원이라고 부른다. 우마오당은 중국공산당에 고용되어 중국 정부에게서 나온 거짓말과 정치선전을 복제 살포하고 네티즌들을 감시한다. ‘우마오’라는 호칭은 이들이 댓글 하나를 달면 ‘우마오(5毛: 1위안의 절반)’를 번다는 뜻으로, 이들을 비꼬는 말로 쓰인다. 우마오는 일반 네티즌으로 가장해 중공을 옹호하는 내용을 자주 발표해 중공을 비평하는 목소리를 포위 공격하거나 다른 인터넷 전파 전략을 구사해 인터넷 여론에 영향을 주며 통제 조작하려고 시도한다.
2018년 이후, 중공 정법(政法)위원회는 ‘정법 인터넷 논설위원’의 본격적인 창설을 제안했다. 이들은 “강철 같은 정법 인터넷 논설위원 건설을 잘하고 잘 사용하는 것은 인터넷 의식 형태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요구이며 당과 국가사업 큰 국면의 요구”라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2019년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 기간 중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중국 배경을 갖고 여론을 유도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계정을 대량으로 차단하거나 삭제했으며, 이 중 트위터는 약 20만 개의 관련 계정을 처리했다고 발표했다.
2020년 4월 5일, 중국공산당이 또 사이버군을 조직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공이 31개 성(시구)을 비롯해 중앙 직속 기관, 국가기관, 중앙기업, 신장병단(新疆兵團) 등 8개 기관 단위에 내려진 임무에 따라 고등교육 기관에서 인터넷 지원자를 400만 명을 모집하고, 다른 직장에서 623만 명을 모집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중공 선전부와 정법위가 조직한 우마오당은 선전부와 정법위 산하의 현 공안국, 검찰원, 법원, 사법국의 관련 인원으로 구성된 ‘전문 대오’를 비롯해 향진 인터넷 인원까지 망라했다.
우한 폐렴이 전 세계로 확산됐을 때, 중공은 해외 방역이 곤경에 처했으며 중국만이 가장 안전하고 치료도 무료라고 선전했다. 인터넷에서 애국주의를 외치던 중공을 믿던 젊은이들이 해외에서 역병을 피해 중국 본토로 들어왔지만 들어오자마자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했다. 그들이 올린 비디오를 보고 진실을 알게 된 해외 젊은이들도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고 손을 뗐다.
전 세계에서 중공에 책임을 추궁하는 가운데 각 성(省), 현(縣), 시(市)의 거대한 ‘우마오’ 대오는 해외 민중의 사상과 여론을 통제할 수 없게 됐다.
중공은 인해전술을 채용해 해외 지원자를 모집해 새로운 ‘우마오’ 훈련으로 그들이 ‘대중 언어’와 ‘공식 용어’를 파악하고, 각 언론 공간에서 ‘긍정적인 면을 홍보하고 여론 유도’를 하게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중국 철건 네트워크(鐵建網絡) 선전원의 강습 시간에는 ‘의식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주제로 삼고 있는데, 실제로는 ‘세뇌 선전’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오감(五感)’을 기준으로 하고, 즐거움을 술로 삼으며, 두려움을 칼로 삼고, 부호를 깃발로 삼는 것이다.
‘인터넷 평가원 내부 자료’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은 사이버 군대를 동원해 미국이나 대만의 방역을 비난하고 ‘바이러스는 미국발’이라고 선동하는 놀라운 가짜뉴스를 만들어 민중의 이목을 혼란시키고 여론을 선도했다. 중공이 더 큰 규모의 ‘우마오’를 모집하려는 진정한 목적은 전 세계가 중공의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 끝까지 발뺌하려는 의도다.
중공의 일파만파로 번지는 사이버 폭격 속에서 중국 민중은 정말로 미국이 도탄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있고, 중국이 우한 폐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위험이 잠복해 있는지는 모르고 있다.
46년 전의 한 장면
사실 문혁(文革) 기간 중, 중공은 언론 통제와 세뇌 선전에 이미 체계적인 운용이 있었다.
‘광시(廣西) 문혁 기밀 기록 자료’에 의하면, 1974년, 난닝시에서는 문혁 ‘비림비공(批林批孔-린뱌오를 비판하고 공자를 비판) 핵심 학습반’을 개최했다. 웨이궈칭(韋國淸) 광시(廣西)자치구 제1서기가 직접 참석했는데, 학습반에는 각 지역, 시 책임자와 지역 직속 기관, 군 지도자, 그리고 지·시·현의 홍보기관장이 참석했다.
학습반에는 다음과 같은 명확한 홍보 요구 사항이 있었다.
1. 신구사회의 추억 대비
2. 문혁 부정의 언동에 대한 추억의 대비
3. 전문 간행물의 출판은 3단계로 진행한다. 1단계에서는 4사(집안 역사, 마을 역사, 공장 역사, 개인 성장사)를 운용해 비판 대상자가 ‘문혁’을 배반한 역사를 파낸다. 2단계에서는 ‘3대비’ 방법을 사용해 비판 대상자에게 죄를 씌우고, 동기를 조사하며, 사실을 찾아낸다. 3단계에서는 ‘삼자경’, ‘증광현문’ 등을 비판하고, 민중이 많이 읽었던 전통문화 서적 리스트를 입수해 비판한다.
1974년 한 해 동안 광시의 성도 난닝시에서는 문혁의 민의를 유도하는 이론 대오에 1만 8000여 명이 참가했다. 아마추어 이론 학습팀이 2600여 개로 늘어 7만 4537명에 달했으며, 편집한 문장이 2764편, ‘비림비공’ 이야기 2244편, 군중 보고 2천여 회, 청중이 24만 9000여 명에 이르렀다.
7~8세 초등학생들까지 무대에 올라 공자를 비판하는 강연을 했는데, 초등학교에만 73명의 이야기 강연자가 있었는데, 운동의 심도와 넓이가 유례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짓말과 폭력은 항상 함께한다. 광시 문혁에서 도대체 몇 명이 죽었는가? 문혁 연구학자 옌러빈(晏樂斌)의 글에 따르면, 광시에서 문혁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14만 명이라고 한다. 이 중 이름과 주소가 있는 비정상 사망자는 8만 9700명, 실종이 2만여 명, 이름 없는 사망자는 3만여 명이다. 그는 “당시 위궈칭(韋國淸)과 그의 친구인 허란카이(何嵐凱) 최고인민법원 부원장이 사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광시 문혁에서 15만 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광시자치구 당위 제1서기이자 광시군구 제1정위인 웨이궈칭은 문혁에서 시종 무너지지 않았는데, 그가 대표하는 국가 기계[군(軍), 경찰(문혁 당시 군이 장악했음), 민병]가 반란운동 중에서 결코 무너지지 않았음을 상징한다.
1976년 광시에서 차출된 ‘정치 오뚝이’ 웨이궈칭이 1989년 사망 당시 중공은 ‘오랜 시험을 거친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라고 추앙했다.
웨이궈칭이 한 손으로 붓대를 잡고, 한 손으로 총대를 움켜쥐고 문혁 언론 학습반부터 군을 지휘해 문혁 학살에 가담해 만들어 낸 것은 반인륜적이고 흉악한 멸종 범죄가 아닌 것이 없지만 중공의 가림막 아래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20년째 계속되고 있는 또 다른 문혁
우한 폐렴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은폐와 기만으로 대응 시기가 늦어져 전 세계가 피해를 입고 있다.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책임 추궁에 직면해 중공은 어떠한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으며, 어떤 기회라도 찾아 ‘죄에서 벗어나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 한다.
이와 동시에 또 다른 ‘문혁’식의 박해가 지금도 중국에서 20여 년간 매일 일어나고 있지만 수많은 중국인이 중공에 속아 진상을 모르고 있다.
1999년부터 시작된 파룬궁 박해에 중공 장쩌민 정부는 국민 총생산치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재력을 소모해 박해를 진행했다.
또 중공은 문화선전, 여론에 상상하기 힘든 재력, 물력, 인력을 투입했다.
1999년 ‘7.20’부터 시작해 중공 두목 장쩌민이 직접 예산을 지급하고 직접 지휘해 파룬궁에 먹칠하고 죄를 뒤집어씌웠다. 정치국부터 각 부서, 학교, 공장, 시골에 이르기까지 큰 모임, 작은 모임을 열어 모두가 ‘태도를 표시’하고, ‘규탄’했는데 천지가 암흑으로 변해 문혁이 재현된 기세였다.
1. 미디어 업계와 국가 홍보 기기
중국에는 공산당이 장악한 2000개 신문, 8000개 잡지, 1500개의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국, 1000여 개의 사이트가 있다. 중공이 파룬궁 탄압을 시작한 후 이 매체들이 기세 사납게 거짓말을 날조했다. 예를 들어 인민일보는 박해가 시작된 첫 달에 파룬궁을 비방하는 347편의 글을 올렸는데, 매일 10여 편에 달한다.
2002년 4월 25일부터 2003년 말까지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CCTV)은 ‘초점방담(焦點訪談)’ 등 뉴스 프로그램에서 332개의 파룬궁을 비방 모함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중국 반XX 협회‘는 파룬궁을 반대하는 30여 편의 영상을 편집했는데 한편에 100만 위안(1억7천2백만 원)을 썼다. 전국 각 성과 시 지역에서 파룬궁을 반대하는 대형 전시회를 진행했으며, 각종 전시판, 책, CD, 소책자, 포스터 등을 찍어 배포한 것을 합치면 엄청난 양이다.
2. 교육계·지식계가 전쟁터로 변하다
천즈리 교육부 장관이 강압적으로 대학교에 인터넷 차단 기술을 개발하라고 요구했고, 각종 반(反)파룬궁 연구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학교 안팎에서 파룬궁을 비방하는 각종 행사를 진행했다. 2001년 2월 6일 하루 동안 전국 100개 대도시의 거의 1000개 아파트단지의 800만 청소년들이 50만여 점 포스터, 1000만여 점 홍보자료, 200여 차례 집회를 진행했는데 이날 재료비가 150만여 위안(약 2억 5천만 원)에 달했다.
2001년부터 쓰촨성은 성 사회과학원에 파룬궁을 비방하는 ‘연구’비용을 매년 100만 위안을 조달했다. 장쩌민은 또한 각지에 ‘반XX 협회’를 설립하도록 명령했으며, ‘중국 반XX협회’는 거의 1000여 차례의 전시회, 1000여 회의 보고회, 좌담회를 열었으며, 영상작품 30여 편을 편집했다. 2004년 이후 막대한 비용으로 중국 재외공관을 통해 국내외에서 반(反)파룬궁 사진전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3. 해외 선전에 거금 투입
투자, 중국과의 비즈니스, 미디어 광고 구입, 무료 프로그램 제공 등을 미끼로 중국어와 외국어 매체를 통제하고 침투시켰다. 2001년 미국 제임스타운 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주요 4종의 중국어 신문인 ‘세계일보’, ‘성도일보’, ‘명보’, ‘교포신문’ 들은 모두 중국 본토의 직간접적인 통제를 받았다. 이 매체들을 모두 매수하는데 중공은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CCTV-4와 CCTV-9 위성 중계를 위해 위성을 8기에서 37기로 급히 늘려 중국공산당 내부에서조차 이에 대해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40여 년 전의 문화대혁명부터 20여 년 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지속하는 파룬궁 박해, 그리고 세상을 속이고 있는 우한폐렴, 중공의 ‘가짜, 악, 투쟁’ 공산당 문화는 전 세계인에게 화를 입히고 있는데 오늘에 이르러 바로 한 걸음씩 본색이 드러나고 있으며 숨을 곳이 없게 됐다. 중국공산당의 벽 밖의 정상적인 세계는 중국공산당 악의 실체를 알게 됐으며, 그 안에서 사는 많은 민중은 아직도 진실을 모르고 있다.
9평 편집부에서 출판한 ‘9평 공산당’은 “중국 인민들이 모두가 마음속으로부터 공산당의 억지와 사설(邪說)을 부정하고, 자발적으로 당문화를 깨끗이 제거하고, 자신의 관념과 생활 속 여러 방면에서 공산당 사교의 영향을 깨끗이 제거한다면 공산당의 의식형태는 붕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공산당은 곧바로 인민들이 자구(自救)하는 중에서 해체될 것이다”라고 썼다.
원문발표: 2020년 5월 2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2/4046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