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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에 대한 자비를 나타내다

글/ 중국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몇 년 전, 설을 앞두고 잘 아는 노년 남성 수련생 A에게 갑자기 병마의 교란 현상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즉시 그의 집에 갔다. 수련생 A는 뇌졸중의 가상상태였다. 정신이 맑지 않고 바보처럼 웃으며 기억을 잃었다. 말을 해도 소리를 내지 못하고 손이 떨려 단추도 못 채우며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했다. 이런 상태는 여러 수련생이 도와서 함께 법 공부하고 발정념(發正念)해야 하지만 A 수련생의 가정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자녀들이 별로 지지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말했다. “우리 부부가 다 수련하니까 우리 집에 와요.” 택시에 노 수련생 부부를 태워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우리 부부는 박해로 직업이 없다. 남편이 외지에서 막노동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단칸방이고 주방과 화장실은 세 집이 함께 사용한다. 나는 집안의 유일한 침대를 병마의 교란을 받는 A 수련생 부부에게 양보하고 나와 남편(수련생)은 마룻바닥에서 잤다. 매우 작은 공간에서 낮에 수련생들이 와서 법 공부하고 발정념하고 또 야근하는 남편이 쉬기도 해야 했다. 게다가 설 앞이라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구체적인 문제는 모두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일념뿐이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이며”[1] 나는 더욱 많은 수련생이 우리 집에 편하게 와서 병업 중의 수련생에게 도움이 되고 그의 수련에 도움이 되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수련생 A가 온 후 나는 잠을 매우 적게 잤다. 낮이든 밤이든 거의 정각마다 발정념을 했다. 매일 세끼 밥을 짓고 A와 함께 법 공부했다. 병업 중의 A는 처음에는 그다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저녁에 일어나서 발정념하라고 하면 별로 내키지 않아 했고, 아침에 연공하라고 해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A 수련생이 일어나지 않으니 그의 아내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 마음의 동요도 있었다. ‘이렇게 정진하지 않으면 상태를 바꿀 수 있겠는가?’ 안을 향해 찾아 이렇게 생각하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이 얼마를 할 수 있든지 요구하지 말고 자신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요구해야 했다. 나는 수련생의 이러한 부족한 부분을 보지 않고 그의 좋은 점만 보았다. 비록 A 수련생의 정신 상태가 그다지 맑지는 않았지만, 법 공부한다고 하면 즉시 똑바로 앉는데 사부님을 존경하고 법을 존경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법 공부할 때 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눈은 책을 뚫어지게 보며 열심히 배웠다.

두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지 않으면 낮에 시간을 내어 연공을 보충하라고 했다. 그들을 이해해 주고 강요하지 않았다. A 수련생이 말을 하지 않으면 아내 수련생과 교류해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점에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고 서서히 자신을 바로 잡게 했다. 나는 밤 12시 발정념을 끝내고 바로 연공했기에 거의 자지 않거나 매우 적게 잤다. 우리는 매일 법 공부하고 연공하고 발정념 했다. 그래서 A 수련생은 빠르게 호전되었다.

사흗날 A 수련생은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똑똑하지 않지만 자기 뜻을 표현할 수 있었고 손 떨림도 많이 나았다. 닷새째 날에는 손도 떨지 않고 말도 똑똑히 하며 생각도 많이 분명해졌고 바보처럼 웃지도 않았다. 그에게 설은 어디에서 쇨 건지 물었더니 집에 돌아가서 쇠겠다고 했다. A는 법을 읽을 때도 모두와 함께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수련생들과 소통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데리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갔다. 그들에게 적합한 장소들을 찾아 배포하게 했다.

7일이 되자 A는 거의 정상으로 회복됐다. 이날, 설 전날인 섣달 29일에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만약 법리를 말하라고 하면 나는 정말로 무슨 법리를 말할 줄 모른다. 나는 우리가 동수(同修)이기에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련생에 대한 마음가짐은, 그들은 수련인이지만 모두 다른 상태에 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자비로움의 한 가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은 생활이 어렵고 집도 작지만, 우리 부부는 모두 수련하고 수련생들도 우리 집에 오기 좋아한다. 이것이 바로 가장 좋은 조건인바,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다. 우리는 바로 타인을 위하는 생명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해한 자비이다.

또 한동안 지나 A 수련생은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 집에 교류하러 왔다. 나는 수련생이 나은 것을 보고 내심의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와 대법의 박대정심(博大精深) 함에 깊이 감사드린다. 우리는 정법시기(正法時期)의 대법제자로 될 수 있는 행운을 지녔다. 이 만고의 기연을 더욱 소중히 여길 것이다.

1. 정념(正念)으로 사악한 요소에 통제당한 사람을 구하다.

이 20년 동안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는 일을 나는 생활 속에 녹여 넣었는데 기쁘고 위안이 되기도 하며 아쉽기도 하다. 대면하여 진상을 알린 중생 중에는 경찰, 교사, 공장장, 서기, 군인, 학생, 농민, 노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있었다. 어떤 이는 진상을 똑똑히 알아듣고 정말로 매우 감동했다. 나도 그들을 대신해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렸다. 동시에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보호에 감사드렸다. 하지만 신고하고 협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속아 넘어간 사람, 그들이 구원됨으로써 대법의 신성한 위엄과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더욱 실증했다.

설날 전 하루,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갔다. 한 건물로 들어갔는데 위로 올라가는 계단 바닥에 찢겨서 망가진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스티커가 매우 많았다. 마음이 아파 얼른 허리를 구부리고 한 조각 한 조각 주웠다. 위층에서 언제 중년 여성 한 명이 내려왔는지 살피지 못했는데,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이건 모두 당신이 붙인 거군요. 파출소로 갑시다.” 그리고 단번에 나를 붙잡고 아래층으로 끌었다. “여기에 파룬궁(수련자)이 하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평소에 자료를 배포하면서 두려운 마음도 조금 있었고 썩 안정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확고해지고 두렵지 않았다. ‘그녀가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죄를 짓게 할 수 없다.’ 마음속으로 강하게 발정념을 하면서 자비롭게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이 진상 자료가 좋다는 것을 압니다. 그 때문에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이 일념이 나오자 상황은 단번에 바뀌었다. 먼 곳에서 한 남자가 걸어왔고, 나를 잡아끌던 여성은 그 남자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선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며칠 후면 설인데 관둬요! 이런 걸 상관해서 뭐해요?” 선념(善念)의 장(場)이 단번에 우위를 차지했다. 사악의 요소에 통제당한 여성은 단번에 수그러들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 말했다. “당신의 선행은 복을 받을 겁니다.” 그는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떠났다.

나는 돌아서서 여성에게 말했다. “파룬궁은 좋은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말한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중공이 우리에 대해 요언을 날조했습니다. 불공평한 대우에 우리는 평화롭고 이성적으로 진상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무엇인지 알리는 겁니다. 선악에 응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중국공산당의 한마디 거짓말을 믿었는데 한쪽 말만 들으면 사리에 어둡고 자신을 망칠 수 있습니다. 나는 정말로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고 자신에게 여지를 남기십시오! 좋은 미래가 있을 겁니다.” 이때 그녀는 전혀 사납게 굴지 않았고 선한 마음이 점점 올라왔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 여기서 말하지 말아요. 여기는 지역사회와 너무 가까워서 그녀들에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기쁘고 안심이 되어 말했다. “나는 정말로 당신을 위해 기쁩니다. 당신이 착한 편을 들었으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입니다. 힘으로 당신은 나를 이기지 못할 겁니다.”

함께 20여 미터 걷고 나서야 나는 장갑 한 짝이 조금 전 그곳에 떨어졌다는 것을 발견하고 돌아가서 가져오려 했다. 그녀가 말했다. “돌아가지 마세요. 내가 가져올게요. 그들에게 발각되지 말아야 해요.” 나는 그녀가 진상을 안 후의 선행을 보고 위로해 주었다. “아무 일 없을 거예요. 나는 사부님이 보호해 주십니다. 오늘 당신의 선행은 나의 사부님도 아실 겁니다. 당신은 복을 받을 겁니다.” 혼자 돌아가서 장갑을 찾고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아직도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손을 흔들며 그녀와 작별했다.

나는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이라 힘으로 당신은 나를 이길 수 없어요.’ 그렇다.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는 것은 정념이고 자비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정말로 곤란 앞에서 염두가 아주 바르면, 사악의 박해 앞에서, 교란 앞에서 당신이 정념으로 단호하게 말한 한마디는, 사악을 즉석에서 해체할 수 있으며, (박수) 사악에게 이용된 사람이 고개 돌리고 도망가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종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교란을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할 것이다.”[2] 정말로 정념으로 배후의 사악을 해체할 수 있는데 그 사람의 힘이 세다 한들 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오로지 구원 될 뿐이다. 나는, 대법제자는 법에 동화되어야만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자신을 성취할 수 있으며 법의 위력이 비로소 드러난다는 걸 깨달았다.

이 사건을 통해 안으로 찾아,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데 급급하고 두려운 마음과 임무를 완성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제자를 위해 또 한 번 난(難)을 막아준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2. 나를 박해한 사람을 자비롭게 대하다

한번은 수련생에게 자료를 가져다주다가 납치당했다. 경찰은 나를 국보대대로 보냈다. 국보대대는 우리 시의 비교적 외진 단지 중의 한 건물을 비밀 수용지로 삼아 대법제자들을 박해했다.

국보대대 직원이 나에게 자료의 출처를 말하라고 강요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들은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고 온갖 방법으로 나를 박해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한 손은 위에서 한 손은 아래에서 등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고 책상에 눌렀다. 그리고 팔이 평평해지도록 뒤에서 수갑을 당겼다. 관절은 즉시 탈구됐고 팔이 끊어진 것 같았다. 나는 그래도 꿈쩍하지 않고 절대 수련생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손을 다시 등 뒤로 채우고 수갑에 밧줄을 묶었다. 밧줄의 다른 한 끝은 천정의 쇠파이프를 넘어 국보 직원의 손에 쥐어졌다. 그들이 힘주어 당기자 탈구된 두 팔은 등 뒤에서 머리 위로 당겨졌다. 온몸이 허공에 뜬 채 두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고통은 말할 수 없었다. 이런 고문이 반 시간 넘으면 온몸의 관절이 불구가 된다. 나는 단번에 기절했다. 경찰은 찬물을 끼얹어 나를 깨우고 다시 밧줄을 당겼다. 나는 또 기절했고 그들은 재차 나에게 찬물을 끼얹어 깨웠다. 몇 번 기절했는지 모르고 얼마나 오랫동안 시달렸는지 모른다. 그들은 끝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국보 직원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자 나를 납치한 경찰에게 돌려보냈다. 경찰들은 나에게 위험이 생길까 봐 두려워 병원에 보냈다. 당시 나는 온몸이 검은 자주색이었는데 한 곳도 원래 피부색이 없었다. 나는 의사에게 진상을 알리고 말했다. “저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저를 이 지경으로 박해했습니다.” 의사는 사실을 알고 경찰에게 나의 부상이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손과 몸에 여러 곳이 골절되고 심전도 등 검사도 매우 위험해 간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내가 이 지경이 되자 어느 구치소나 노동교화소에 보내자니 받지 않을 것 같고, 집으로 돌려보내자니 폭로될까 봐 두려워 마지막에 세뇌반에 보냈다.

나중에 안을 향해 찾으면서 자신이 수련을 너무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으로 찾을 줄 모르고 자신을 수련할 줄 모르며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생각해 온종일 기세 좋게 일을 했다. 이 와중에 또 환희심이 나왔다. 그들이 나를 이 지경으로 박해했으니, 어디에도 받지 않을 것이고, 나를 집에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 마음이 일어나자 나는 세뇌반으로 보내졌다.

세뇌반에서 악인은 나에게 세뇌녹음과 동영상을 듣고 보라고 강요했지만 나는 듣지도 보지도 않고 단식으로 반 박해에 들어갔다. 악인(惡人)은 억지 수단이 안 되니 이번에는 온화한 수법으로 바꿨다. 위선적인 사오(邪悟)자에게 나를 ‘전향’시키게 했다. 법을 깊게 배우지 않았기에 위선의 가짜 이치에 대해 똑똑히 알지 못했고 또 사람의 집착이 있어서 고문에서는 머리를 숙이지 않았지만, 위선에 속아 타협하고 말았다. 그 후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내가 관련 수련생에 대해 말하지 않았기에 집에 돌아온 후에도 국보대대에서 계속 우리 집에 와서 자료의 출처를 캐물었다. 나는 협조하지는 않았지만, 법리가 똑똑하지 않아 사악의 빈틈을 탔다. 공간장이 깨끗하지 않아 돌아온 후 두려운 상태가 나타났다. 심지어 집에 숨어 있는데도 너무 무서웠다. 어떤 때는 무서워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지막에는 남편(수련생)에게 출근하지 말고 외출도 하지 말고 온종일 나와 함께 있어 달라고 했다. 결국, 남편은 나를 호되게 꾸짖었다. “당신은 나를 출근 못 하게 하면 안 되지!”

나는 그제야 생각났다. 나에게 법이 있지! 남편에게 기대면 안 되지! 어째서 이렇게 겁을 먹었지? 법 공부를 해야지! 법 공부를 통해 자신을 개변해야지! 나는 대량으로 법 공부를 하고 동시에 연공도 많이 했다. 매일 아주 조금 잠을 잤다. 당시 각 지역 설법과 신경문이 많지 않아 나흘 만에 전부 통독하고 매일 ‘전법륜’을 배우는 수량도 보장했다.

나흘 후 두려운 마음이 없어지고 매우 편안해졌다. 두려운 마음뿐만 아니라 무슨 미움, 원망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매우 강한 자비심과 선념(善念)이 나왔다. 즉시 나를 박해한 사람을 찾아가 진상을 알리고 싶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의 매듭을 알았기에, 어떻게 해야 대법이 나에게 준 지혜와 자비로 그들을 구할 수 있는지 알았다. 내 마음은 정말로 그들을 걱정하고 그들을 생각했다. 그들이 더 이상의 악행으로 자신을 망치지 않기를 바랐다.

이지는 나에게 냉정하라고,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에게 썼다. 초고도 필요 없이 일필휘지로 썼는데 매우 유창했다. 마음으로 쓴 편지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박해에 참여하지 말고 아름다운 미래가 있길 바랐다.

동시에 내가 박해당한 진정한 원인도 찾아냈다. 마음을 닦지 않고 안으로 찾지 않았으며 법으로 다른 사람을 대조했다. 자료점의 수련생과 갈등이 있고 간격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집념에 집착하고 자신이 높고 크다고 생각했으며 다른 사람에게 큰소리로 이래라저래라 했다. 당 문화는 내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게 하고, 자아가 매우 강하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화를 내게 했다. 하지만 법은 나에게서 부족함을 찾고 자신을 바로잡게 했다. 원망과 증오가 없어졌다. 자애로운 마음에 선한 생각이 떠오르고 동정 속에서 슬픔이 나왔다.

우리의 마음속에 진정으로 법이 있을 때 그 선(善)은 자연스레 드러나게 된다. 한번은 거리에서 걷다가 멀리서 나를 박해한 적이 있는 경찰을 보았다. 그의 박해로 인해 나는 직장에서 해고되고 몸도 매우 큰 상해를 입었다. 당시 그는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를 미워합니까?” 나는 말했다. “당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 믿지 않는다는 것을 보아냈다. 당시 나는 아직 검은 소굴에 있었기에 직장에서 해고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온 후에야 나는 해고된 것을 알았다. 나만 직장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남편도 이 일로 실직당했다. 여러 방면의 압력으로 우리의 길은 매우 어려웠다. 이때 그 경찰의 말이 생각났다. “당신은 나를 미워합니까?” 이 미움을 닦아버리기 위해 나는 법 공부하고 내려놓고! 법 공부하고 내려놓고! 드디어 어느 날, 나는 내려놓았다. 이 미움을 내려놓았다.

자비로운 마음가짐으로 한 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다. 어떤 때 나가서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리면 어떤 이는 나에게 합장하고 밥을 사주겠다 하고 어떤 이는 나에게 고맙다고 한다. 또 한 경찰은 “저는 한 마리의 개입니다. 당신이 저를 구해주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선을 수련하는 과정은 사(私)를 닦아버리고 자아를 내려놓는 과정이며, 남을 포용할 수 있는 흉금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서히 다른 사람을 위하는 생명이 되고 법이 우리에 대한 요구와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자비의 내포는 매우 큰데 이는 단지 내가 깨달은 아주 조금일 뿐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2 – 2002년 워싱턴DC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7 – 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52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5/2/4037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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