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하게 중공의 잔인한 살인을 당한 가정 (4)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종합보도) 산둥(山東)성 옌타이(煙台)시의 52세인 파룬궁 수련생 허슈링(賀秀玲)은 2004년 3월 8일에 구치소에서 ‘뇌막염’이라는 이유로 옌타이시 위황딩(毓璜頂) 병원(또 좐취(專區)병원이라고도 부름)으로 보냈다. 11일에 영안실로 옮겼는데 가족은 허슈링이 아직도 숨을 쉬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녀의 허리(신장 부위)에는 붕대가 감겨있었다. 가족의 애끓은 소리에 허슈링은 두 줄기의 눈물을 흘렸다!
허슈링의 사망은 의문투성이다. 경찰 측은 10만 위안(약 1730만 원)으로 허슈링의 남편 쉬청번(徐承本)을 매수해 상소하지 않게 하려 했다. 2006년 봄,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한 죄악이 폭로된 후, 쉬청번은 더욱더 아내가 생체로 장기를 적출당했다고 의심했고, 4월 19일에 인터넷에 글을 써서 질의했다가 이튿날에 바로 납치당했고 허슈링의 시신은 화장당했다. 쉬청번은 세뇌반으로 납치되어 몸은 신속히 수척해졌고 의식은 늘 흐리멍덩했다. 2년 후 세상을 떠날 때 피부가 문드러졌는데, 당국에서 그에게 약물 주입해 입을 막으려 했다는 것이 의심된다.
허슈링은 산둥성 옌타이시 즈푸(芝罘)구 싱푸스(幸福十)촌 사람이며, 남편 쉬청번은 중국 수산 옌타이 해양 어업회사의 노동자이다. 두 부부는 1997년에 기쁘게 대법을 얻어 수련의 길에 들어서서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었으며, 각종 질병은 치료하지 않고도 완쾌되었다.
베이징에 들어가서 청원하러 갔다가 박해당하다
1999년 7월에 광적인 박해를 시작한 후, 중공 사악이 탄압하자 허슈링과 남편 쉬청번은 대법 수련은 국가와 국민에게 이로움이 있다고 정부에 청원하려 했다. 7월 22일 저녁, 허슈링은 본래 베이징에 들어가려 했는데, 기차역 부두 교통 요지에서 사복 경찰이 빽빽이 길을 봉쇄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옌타이시 시 정부로 청원하러 갔다. 청원 현장은 유난히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바람결에 나뭇잎 소리 외 약간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7월 23일 아침 8시쯤, 옌타이시 정부에서는 대거 공안 경찰을 파견해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탄압을 진행했다. 경찰은 허슈링을 차 위로 끌고 가서 원덩추(文登初)촌 베이하이(北海)로 끌고 가는 도중에 던져버렸다.
허슈링은 1999년 12월에 다시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청원은 헌법이 국민에게 부여한 권리이지만 그녀는 베이징 펑타이(豐台)파출소에 의해 불법 구류를 당했다. 그 후 베이징 주재 옌타이 공안 사무실로 옮겨 옌타이 싱푸 파출소 및 싱푸스 촌위원회 치안 주임이 보름 동안 불법 구류를 진행했다. 유치장에서의 벌금, 생활비는 250위안(약 4만3천 원)이다.
2000년 1월, 쉬청번은 첫 번째로 베이징에 들어가 파룬궁을 위해 청원했다가 납치당했다. 베이징에서 베이징 주재 사무실의 악독한 경찰은 몸을 수색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43위안을 자신이 가져갔고, 강제로 수갑 형구를 씌워 옌타이로 납치했다. 취옌보(曲衍波, 베이징으로 간 직장 인원) 등은 음식점에서 음식을 마구 먹고 모든 지출은 쉬청번에게 덮어씌웠다. 쉬청번은 1900위안(한화 약 37만 원, 취옌보가 발급한 벌금 증명서를 보았음)의 벌금을 당했고, 보름 동안 불법 구류처분을 받았다. 그 후 또 보름 동안 강제 세뇌를 당했다. 직장의 악인 리창하이(李長海), 롼스더(欒石德)은 쉬청번의 아들에게 출, 퇴근을 감시하게 하여, 아이에게 정신적으로 극심한 압력을 조성했다.
2000년 6월, 허슈링, 쉬청번은 거듭 청원하러 베이징에 들어갔다가, 톈안먼 광장에서 베이징 톈안먼 분국에 의해 납치, 불법 구류처분을 받았다. 그 후 베이징 주재 웨이하이(威海) 사무실에 이송했는데, 베이징 주재 웨이하이 사무실 두목은 “내가 당신을 어떻게 혼내 주는지를 보라.”며 소란을 피웠다. 베이징 주재 사무실에서 쉬청번은 룽청의 악독한 경찰 두 명에 의해 다른 방안으로 불려가 주먹과 발길질로 구타당했으며 “당신은 우리가 뭘 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지? 우리는 바로 사람을 구타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 기간에 7명의 파룬궁 수련생은 원덩(文登) 공안의 악독한 경찰 리잉린(李英林) 등에게 비슷한 정도의 구타를 당했다. 쉬청번은 리잉린 등의 악독한 경찰에 의해 땅에 넘어진 상태로 광적인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경찰은 구두로 머리 부위를 걷어차고 발로 다리를 밟는 등 학대를 진행했다. 리잉린은 허슈링의 몸에 지니고 있던 300여 위안(한화 약 5만 원)의 인민폐를 강탈했다.
허슈링, 쉬청번은 원덩에서 보름 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그 후 쉬청번은 옌타이(煙台) 어업회사로 납치당했다. 돌아오는 도중 리창하이(李長海), 취옌보(曲衍波), 쥐촨정(鞠傳政)은 음식점으로 가서 진탕 먹고 마시며 직장으로 돌아왔다. 리창하이는 차를 보내 쉬청번을 압송하고 4천 위안(한화 약 68만 원)의 벌금을 갈취했다. 게다가 직장에서는 20여 명을 조직해 그에 대해 20여 일 동안 세뇌를 진행했다. 리창하이는 뜨거운 물을 쉬청번의 머리에 끼얹었다.
2000년 10월 26일, 쉬청번과 허슈링은 또 청원하러 베이징에 들어갔다가, 악독한 경찰에게 베이징 하이뎬(海澱) 구치소로 납치당했다. 쉬청번은 3동(棟) 7호에 갇혀 꼬박 나흘 동안 눈을 붙이지 못했다. 별명이 ‘법 14호(法十四號)’인 악독한 경찰은 죄수를 교사해 쉬청번에게 학대, 정신적 손상을 입혔다. 감방 안의 죄수가 그의 몸 앞과 뒤, 좌우에서 지키면서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졸기만 하면 죄수가 곧 귀뺨을 때리고, 종이로 코, 귀를 찔렀다. 찔려서 괴로움을 당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베이징은 11월이 되면 날씨가 추운데, 불법 인원들은 쉬청번의 옷을 깡그리 벗겨, 바람을 쐬게 밖으로 데려가서 문을 닫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하고, 몸 위에 냉수를 끼얹었는데 한 대야씩 머리에서 전신에 쏟아부었다. 쉬청번은 1시간 동안 학대를 당해 추위로 전신을 덜덜 떨었다. 이어서 ‘토박이 비행기 타기(坐土飛機)’ 고문을 당했다. 두 손은 곧게 펴서 벽 위에 눌러놓고, 머리를 아래로 내리눌러 두 발은 땅 위에 닿을 듯 말 듯 하게 하여 두 명의 죄수가 무릎으로 약 1시간 동안 볼기 부위를 받쳤다. 사악한 무리는 죄수를 이용해 쉬청번의 인격을 모욕해 음료수병을 물로 가득 채우고, 그의 생식기에 끈으로 묶고 다시 손으로 그 병을 좌우로 흔들었다.
밖의 악독한 경찰은 늘 쉬청번을 불러내어 전기고문을 진행했다. 쉬청번의 얼굴 부위는 전기고문을 당해 얼굴이 보기 흉하게 변했다. 얼굴 부위, 입술은 전기고문으로 많이 부어오르고 진물이 나왔다. 악독한 경찰은 한 사람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다시 다른 사람을 바꿔, 구강, 코에 정신을 잃게 하는 약을 뿜었다. 일주일 후 쉬청번은 다른 한 감방으로 옮겼다. 악도는 선량한 척 위장했는데, 이 호장(號長, 감방 우두머리)은 그도 나가면 대법을 배우겠다고 말했다. 어느 하루, 그는 갑자기 그가 만약 앞당겨 석방된다면, 나가서 어떻게 그와 만날지 말했다. 쉬청번은 전화번호를 그에게 알려주었다. 이튿날, 베이징 주재 옌타이 사무실로 옮겨졌다. 쉬청번이 박해를 당한 상황을 보고 베이징 주재 옌타이 사무실 경찰마저 하이뎬 구치소가 너무 나쁘다고 말했다.
2000년 12월, 쉬청번과 허슈링은 또 청원하러 베이징에 들어갔다가 톈안먼 광장에서 악인에게 납치당했다. 그때 톈안먼 광장에서 대법을 실증한 수련생은 매일 몇백 명이고, 많을 때는 천 명에서 2천 명에 달했다. 대다수 수련생이 사악에 협조하지 않아 베이징 및 인근의 시의 감옥은 꽉 찼다. 쉬청번과 다른 여섯 명 수련생은 베이징 퉁저우(通州)으로 보내졌고, 허슈링은 베이징 톈안먼 분국에 의해 불법으로 구금을 당해 미윈(密雲)으로 보내졌다. 베이징 퉁저우 공안 분국에서, 어떤 공안의 비리 요원이 손에 전기봉을 들고 모든 수련생의 옷을 벗겨 몸수색을 진행하고 수련생의 몸에 착용한 값진 물건은 깡그리 강탈했다. 쉬청번은 120위안의 돈을 강탈당했다. 이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쉬청번이 악인에게 협조하지 않자 다섯 명의 불법 인원이 그를 때려눕혔다. 구타로 입과 코에서 피가 났다. 다시 발로 몸 위를 밟고 강제로 사진을 찍었다.
허슈링은 미윈에서 일주일 동안 압송당한 후, 랴오닝 진저우(錦州)구치소로 옮겨져 3개월 동안 불법으로 구류 당했다. 게다가 3천여 위안(한화 약 51만의 벌금도 물었다. 그녀가 석방 후 집으로 돌아와 “당시 악독한 경찰이 얼마나 많은 수련생을 밖으로 보냈는지는 모르지만, 출동한 경찰차 및 각종 차량은 앞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박해가 차츰 심해지자 쉬청번은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게 되어 핍박에 못 이겨 셋방살이를 살았다. 그러나 그곳도 사악한 박해를 피할 수 없었다. 2001년 2월 17일, 옌타이 공안국 라이산(萊山) 분국에 의해 또 납치당했다. 당시 왕진룽(王金龍), 리스량(李士良) 등이 있었다. 쉬청번은 그들에 의해 호출기 한 개, 인민폐 400위안을 강탈당했다. 이 적은 돈을 위해 옌타이 즈푸(芝罘)구 공안국과 라이산 공안 분국에서는 그런 일을 했다. 그날 그들은 그 돈으로 음식점에 가서 먹고 마시며 낭비했다. 저녁에 쉬청번은 옌타이시 구치소로 보내졌다. 옌타이 즈중구 구치소와 옌타이시 구치소의 악독한 경찰은 죄수를 이용해 그의 허리띠를 가위로 잘라 끊고, 옷 단추, 지퍼를 가위로 잘라냈는데 옷마저 잘려 몇 개의 큰 구멍이 뚫렸다.
쉬청번은 구치소에서 17일 동안 불법으로 형사 구류처분을 받은 후, 직장에 의해 왕 춘(王村) 노동교양소로 보내져 세뇌를 당하고, 직장으로 돌아온 후 공안처 정위 리창하이에게 “대법은 좋습니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연마하려 합니다.”라고 알려주었다. 단지 배우고 연마하겠다고 말한 것 때문에, 쉬청번은 압송당해 불법적으로 2년의 노동 교양처분을 받았다. 왕춘 노동교양소에서 잠자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고 정신 손상을 입었는데, 이로 인해 쉬청번은 박해로 고혈압 증상이 나타났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이른바 ‘훈련’을 한 후 고역 노동을 했다. 그러나 고역 노동을 한 대다수는 모두 신체 건강을 해치는 물품을 만드는 일이다. 저녁에는 10시가 넘도록 세뇌를 당했다.
허슈링 거듭 납치 박해당해, 생체로 장기 적출당했음이 의심되다
2003년 8월 말, 허슈링은 원덩 자료점에서 옌타이 즈중구 공안 610에 의해 옌타이 중즈구 세뇌반으로 납치당했다. 그 기간에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는데, 두 손은 침대 난간 위에 거꾸로 채워져 쭈그려 앉지도 못하고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연속 5~6일 동안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화장실로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허슈링은 그 후 즈중구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2003년 9월 27일, 옌타이 즈중구 검찰원에서는 허슈링 등을 모함해, 옌타이시 공안국 610에 체포를 승인해 집행했다. 2004년 2월, 허슈링은 즈중구 법원으로 끌려가 재판을 받았는데, 옌타이 텔레비전방송국에서는 시 전역에 방송을 진행했다.
허슈링은 2004년 3월에 구치소에서 옌타이 위황딩(毓璜頂) 병원으로 옮겨져 ‘의사의 진찰’을 받았다. 병원 측에서는 병명은 ‘뇌막염’이라고 말했다.
쉬청번의 기억에 따르면, 3월 10일 오후 5시가 넘어서 쉬청번은 즈중구 610 사무실 리원광(李文光)의 전화를 받았다. 먼저 허슈링한테 병이 있는지를 물었고 쉬청번이 허슈링은 아무 병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리 씨는 허슈링이 병에 걸려 류황딩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며 가서 면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7시가 넘어서 여러 차례 전전하며 문의를 거쳐 쉬청번은 마침내 6층 뇌 신경과 32 병실에서 아내를 찾아냈다. 당시 병실 내에는 또 두 명의 환자가 있었는데 모두 가족이 환자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쉬청번은 그 후에, 3월 8일에 구치소에서 허슈링을 병원으로 보내 구치소의 두 사람이 간호했는데 병원에서 ‘결핵성 뇌막염’이라며 병이 위독하다는 진단이 내려졌다고 알게되었다.
쉬청번은 아내를 보고 눈앞의 참상에 너무나 놀랐다. 그는 전혀 볼품없는 이 사람이 자신의 아내임을 감히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사경을 헤매며 말을 할 수 없었고 몸을 뒤척일 수 없었으며, 손과 목마저 이미 변색하여 이미 생명이 위급했다. 더욱 처참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신변에 돌보는 사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치료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한 쪽 손은 침대 머리에 채워졌고 손목 부위에는 오래된 상처, 새로운 상처가 있었는데, 층층이 피딱지와 흉터가 있었다. 게다가 남녀가 드나드는 병실에서 하반신을 드러낸 채 아무것도 가리지 않았다.
쉬청번은 아내에게 어디가 안 좋은지 물으니 그녀는 손으로 명치를 만졌다. 쉬청번이 그녀를 부축하여 앉히자 그녀는 아프다고 외쳤다. 그녀의 왼쪽 눈은 이미 뜰 수 없었다. 쉬청번은, 병원 측에서 결핵성 뇌막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는데 무엇 때문에 아내는 명치가 아픈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허슈링은 힘들게 남편을 향해 자신의 등 허리를 가리켰다. 당시 쉬청번은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허슈링은 또 매우 배고프다며 밥을 먹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5~6분 후, 남, 녀 각 한 명이 들어와 감시했다. 쉬청번은 그때 당시를 기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이 얼마 있다 떠났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그들은 전혀 허슈링에게 관심도 없고 건강을 걱정하지 않은 것 같았다. 구치소 직원은 허슈링이 약을 먹고 링거를 맞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쉬청번은 믿지 않았다. 남자 간수가 약 두 알을 가져왔고, 쉬청번이 아내에게 먹였다. 그리고 또 감기약이 있었다. 쉬청번은, 결핵성 뇌막염에 걸렸는데 감기약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두 개의 링거가 침대 머리에 걸려 있었고 간호사가 허슈링에게 한 개를 주사했다. 남자 간수가 이전에도 그녀에게 링거를 주사했다고 했다. 쉬청번이 허슈링이 주사를 뽑지 않는 것을 보고 허슈링이 주사를 거부하지 않았고, 그들은 허슈링에게 이전에 전혀 주사를 맞히고 약을 먹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쉬청번이 허슈링에게 음식을 먹여달라고 요구하자, 간수는 사과를 깎아 허슈링에게 두 조각 먹여주었다. 그런 다음 그녀에게 더는 먹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쉬청번이 허슈링에게 밥을 먹여달라고 요구했으나 그들은 허락하지 않았다. 쉬청번은 이해되지 않았다. 먹을 수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지, 환자가 나아지는 것이 두렵다는 말인가? 구치소 측에서는, 허슈링이 요관을 꽂았는데 바지가 젖기 때문에 옷을 입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쉬청번은 요관을 보지 못했다. 그 후에 또 요관을 꽂지 않았다는 의사의 증언도 있었다.
쉬청번은 환자 곁에서 시중들며 돌봐주겠다고 요구했다. 남자 간수는 남교도 구치소 소장 장푸톈(張福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 다음 쉬청번에게 환자 곁에서 시중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쉬청번은 “내가 그녀 가족인데 무엇 때문에 허락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누가 만든 규정입니까?”라고 물었다. 뒤이어 쉬청번은 구치소 직원에 의해 병실에서 쫓겨났다. 전체 면회 과정은 약 10여 분이다.
그 후 쉬청번은 장푸톈에게 질문했다. “허슈링은 단지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려 했을 뿐인데, 오히려 박해로 이 모습이 되고 목숨마저 위험해졌는데도 여전히 이렇게 잔인하게 수갑에 채워져 있습니다. 이것은 그녀를 사지에 몰아넣으려고 함이 분명한데, 누가 이렇게 지시했습니까?” 장(張) 씨는 “이것은 공안과 구치소의 법률에서 이렇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눈물 흘리는 ‘시신’과 도면을 찢는 의사
이튿날 이른 아침 7시가 넘어 즈중구 610 사무실 리원광(李文光)은 쉬청번에게 병원으로 급히 가라고 통지했다. 쉬청번은 일부 옷을 가지고 그곳에 도착했는데, 리 씨는 허슈링은 이미 사망했다고 말했다. 리 씨는 쉬청번에게 의사에게 사망 원인을 물어보라고 했다. 그들은 허슈링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고, 쉬청번이 가져간 옷을 갈아입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도로 가져가라 했다. 그들은 쉬청번이 시신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 그 후에 영안실에서 허슈링이 하체를 드러낸 채 며칠 동안 누워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여러 해 동안 친척들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
3월 11일 오전 10시가 넘어서 친척들은 황급히 병원 영안실로 왔는데, 허슈링이 하체를 드러내고 손발이 따뜻하며, 왼쪽 눈이 꺼져 약간 검푸른 색을 띤 것을 보았다. 쉬청번은 또 아내의 허리가 붕대에 감겨있는 것을 발견했다. 쉬청번은, 뇌막염에 걸렸는데 어찌 허리에 붕대를 감았는지 아주 이상했다. 허슈링의 자매는 몇 년 동안 허슈링과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큰 소리로 울며 “언니, 어찌 이렇게 됐어요? 눈을 뜨고 저를 봐요. 언니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저를 보지 못했어요!”라고 외쳤다.
외침 소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허슈링의 눈에서는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어서 친척은 그녀의 얼굴 위에 많은 땀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원래 사람은 아직 죽지 않았다! 친척들은 위층으로 급히 가서 의사를 찾아 응급처치를 요구했다.
세 번이나 연락한 후에야 겨우 남성 의사 1명과 간호사 2명이 심전도 기기를 가지고 내려왔다. 심전도 종이가 10여 cm까지 나왔을 때, 친척들은 윗면에는 뛰고 있는 곡선을 보았다. 상식에서 말하면, 사망은 마땅히 평평한 직선이어야 했다. 심장이 뛰고 있어야 곡선이 있는 것이다. 여동생은 큰 소리로 “보세요, 보세요. 아직 심장이 뛰고 있는데 당신들은 이곳으로 보내왔어요!”라고 외쳤다. 의사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종이를 찢었다. 친척은 다가가서 가로막고 의사에게 종이를 빼앗았지만, 오히려 의사가 먼저 빼앗고 황급히 문을 박차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
비분하고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친척들은 허슈링의 맥을 짚었는데 여전히 맥박이 있었다. 그들은 영안실지기 할아버지에게 봐달라 애원했다. 할아버지는 흰 장갑을 끼고 맥박을 짚어 보았는데, 맥박이 뛰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도 매우 놀라며 “이런 일을 종래로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친척들은 병원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애원했으나, 응급처치를 해주려는 의사가 없었다. 그들은 적십자회, 110, 의료사고과 등 부서로 분주히 뛰어다니며 도움을 구했으나 모두 치료해 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이튿날, 친척들은 허슈링 면회를 허락받지 못했다. 셋째 날, 친척이 허슈링 면회를 허락받았을 때 허슈링의 심장 박동과 맥박이 이미 사라졌고 손발이 차가워졌는데 이미 사망으로 확인됐다.
심각한 미스터리, 공안은 10만 위안을 내걸고 입을 봉하려 하다
허슈링이 사망한 며칠 동안 일체가 모두 미스터리 상태였다. 친척들이 곳곳을 찾아가서 의사를 찾아 응급처치를 원했으나 병원 측은 허류링의 주치의가 궈(郭) 씨인데 이미 지난(濟南)으로 외출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오후에 친척들은 장의차가 영안실 앞에 정차해 사람을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바로 허슈링이였다.
친척들이 급히 저지하자 장의사는, 610에서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급히 가서 화장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친척들이 극렬하게 반대하자 숨이 아직 붙어있던 허슈링을 싣고가지 못했다. 610은 무엇 때문에 이처럼 급히 화장하려 했는가?
이튿날, 친척들은 허슈링 면회를 허락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허슈링 병실로 가서 동료 환자를 찾아 상세한 정황을 문의하려 했다. 그러나 병실이 하룻밤 사이에 텅텅 비었고 환자는 모두 옮겨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 측에 허슈링의 병력 문서를 달라고 요구했는데, 문서는 처음 것이 아니고 모두 수정해 복사했고 중요 병력 기록은 남아있지 않음을 발견했다. 뇌신경외과로 가서 문의하자, 한 의사는 “당신은 우리 병원에서 뭔가를 알아내려고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허슈링 허리의 붕대에 대해 병원은, 허류링이 허리 천자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낸 구치소 소장 장푸톈(張福田)은 천자 수술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허슈링의 병력 중에서도 천자 수술을 받아 치료한 기록과 치료 결과가 없었다. 친척은 또 병력을 가지고 몇 명의 전문가를 방문했는데, 전문가들은 긍정적으로 “병력을 보고 긍정적으로 천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또, 병력은 정리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중에 또 병으로 위독해 응급처치를 받은 과정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쉬청번은 여러 차례 병원으로 가서 허슈링의 원래 병력을 요구했다가 모두 거부당했다. 그후 산둥성 검찰원에서 원 병력 기록 문서를 찾아갔다.
3월 13일, 시체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쉬청번과 구치소의 장푸톈은 협의를 거쳐 시신을 장의사에게 보내 냉동시켰다. 협의에서 가족은 수시로 시신을 보러 갈 수 있고 가족의 허락이 없으면 화장해서는 안 된다고 약정했다.
쉬청번의 강력한 요구하에 옌타이(煙台)시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에서는 사체 검안을 진행했다. 그들은 쉬청번에게 감정하고 보고한 서면 서류를 주지 않고 형식적으로 감정 결과를 한번 읽었을 뿐인데, 즈중구 610 및 구치소를 위해 책임을 덮어 감춤이 분명하다. 다 읽은 후, 쉬청번을 쫓아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허슈링의 창자 위에 작은 붉은 점이 가득 널리고, 자궁 내에 한 덩어리의 자색 형태인 것이 있음을 발견했다. 게다가 또 외상이 없다고 말했다. 쉬청번은 외상이 없으면 무엇 때문에 붕대로 허리 부위를 감았는지에 대해 이해되지 않았다.
쉬청번은 지방에서 최고인민검찰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상소했다. 게다가 인터넷에 접속해 문서를 발송해 연합국에서 입안해 조사하도록 요청했다. 이 기간, 옌타이 공안국 610은 여러 차례 사람을 파견해 돈을 써서 쉬청번을 매수해 다시 상소를 제기하지 않도록 설득시켰다. 한 번은 심지어 이웃을 찾아 권고했는데, 입을 열지 않으면 10만 위안(한화 170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래도 안 되면 다시 더 주겠다며, 다시 상소를 제기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가 이웃에게 거부당했다.
7월 8일, 산둥성 공안청, 산둥성 검찰원에서는 옌타이로 가서 새롭게 사체 검안을 했다. 이번에도 여전히 법의가 감정 보고를 한번 읽었고, 여전히 610 및 구치소에서 책임지지 않았으며, 쉬청번의 감정 보고를 요구함도 여전히 거부당했다.
쉬청번은 이전에 다음과 같이 회억했다. “산둥성 공검법, 옌타이시공검법, 시 공안국, 610, 세뇌반에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한 류궈야오(劉國堯)가 모두 현장에 있었습니다. 내가 허슈링의 시신에 대해 사진을 찍겠다고 요구했는데, 결과 현장의 모든 사람은 모두 반대하며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허슈링의 시신을 냉동한 이후 친척의 면회를 줄곧 허락하지 않았다. 단지 두 차례 사체 검안 전에 한 번 보게 하고 곧 급히 쫓아냈고, 시신에 손을 대는 것은 더구나 허락하지 않았다. 일차 부검을 앞두고, 쉬청번과 아들은 처음으로 냉동관 안의 가족을 보았다. 이튿날 2차 부검 전에, 쉬청번과 여동생이 함께 시신을 보았는데, 당시 허슈링은 온몸이 벌거벗은 채 목구멍부터 아랫배까지 하나의 칼로 그은 큰 상처가 있었으며 또 간단히 봉합해 놓은 것을 보았다. 참상을 보고 쉬청번은 현장에서 피를 크게 토해냈고, 여동생은 울다가 까무러쳤다.
시신을 화장하도록 강요당하고, 남편이 생체장기적출을 당했다고 의심한 질의를 입막음 당하다
허슈링은 2003년 8월 말에 무고하게 체포를 당한 후, 세뇌반의 류궈야오(劉國堯)에 의해 고문을 당했다. 류 씨는 그녀의 두 손을 뒷짐을 지게 하여 침대 난간 위에 채워서 쭈그려 앉지도 못하고 서 있을 수도 없는 고통스러운 자세를 유지하도록 했는데, 5일 동안이나 계속됐다. 게다가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화장실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출소한 동료가 한 말에 의하면, 허슈링은 구치소에 갇힌 후, 줄곧 믿음을 견지했다가 오히려 협소한 어두운 방 안에 갇혀 고문을 당했다 한다. 시신 손목 위의 많은 피딱지와 상처 자국은 지속적인 고문 학대로 남겨진 것이다.
분석한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허슈링은 ‘뇌막염’으로 입원했는데, 실질적으로 신장의 생공체(活供體, 살아 있는 공급체)로서 신장을 적출당했을 뿐만 아니라, 눈 부위가 이상한 것으로 보면, 또 동시에 눈 부위 장기를 적출당했을 수도 있다. 신장은 가장 중요한 장기가 아닌 이유로 적출당한 후 허슈링은 즉시 사망하지 않고 사경을 헤매는 중에서 고통스럽게 시달렸고, 610은 흠잡을 데 없이 완전무결한 계획을 배치했다. 사람을 파견해 간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녀를 감시하며, 주사를 맞히지 않고 약을 먹이지 않았고 또 마시고 먹는 것을 주지 않고 그녀가 쇠약해 사망하기를 기다렸다. 게다가 그녀에게 말할 수 없는 약물을 주입해 임종 전에 그의 가족과 한번 만나게 하여 친척에게 하나의 ‘인계’를 해준 것이다. 그런 다음 그의 심장 박동이 중지하기를 기다렸다가, 곧 친척에게 사망 소식을 통지해 신속하게 시신을 화장하는 것이다. 이같이 생체장기를 적출한 죄악은 곧 뇌막염으로 병사한 것으로 성공적으로 덮어 감춰졌다.
자연의 이치가 분명했을지도 모른다. 생각지 못한 것은, 허슈링이 영안실에서 또 심장이 뛰고 맥박이 있으며, 또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고 또 친척의 부름 속에서 눈물을 흘린 것이다. 친척은 허슈링이 죽지 않고 영안실에 누워있는 것을 목격하고, 처참한 광경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로써 진상을 찾을 수 있었다.
2006년 봄,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한 죄악이 해외에서 폭로된 후, 쉬청번은 더욱더 아내는 생체로 장기를 적출당해 사망했다고 의심했다. 4월 19일, 쉬청번은 인터넷에서 문장을 발송해 강력하게 질의를 제기했다. 게다가 국제 인권조직에서 옌타이로 가서 허슈링의 시신에 대해 새롭게 사체 검안을 하여 사망 원인을 조사판명 할 것을 간청했다. 문장이 세상에 나타난 이튿날인 4월 20일, 쉬청번은 경찰에 의해 갑작스러운 납치를 당했다. 동시에 허슈링의 여동생 허슈리도 납치당했다.
이어서 610은 허슈링의 외아들 쉬후이(徐輝)를 찾았다. 그들은 쉬청번이 있는 그곳에서 프린터, 컴퓨터 등을 가져와 ‘물증’으로 하여, 쉬청번에 대해 징역형을 선고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들은, 만약 쉬후이가 어머니의 시신을 화장함을 허락한다면, 그의 부친을 풀어주며 또 5만 위안(한화 860만 원)의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쉬후이에게 “당신은 화장하기를 원하는가? 아버지를 원하는가?”라고 물었다. 쉬후이는 핍박에 못 이겨 서명해 시신을 화장함을 허락했다. 뒤이어 610은 쉬후이에게 5만 위안의 돈을 주었다.
6월 20일, 허슈링의 시신은 화장했다. 화장한 그 날, 현장에 많은 경찰이 왔는데, 몇 명의 경찰은 쉬청번의 아들과 가족의 뒤를 바짝 따랐다. 허슈링의 여동생이 하소연할 때, 몇 명의 경찰은 그녀를 신속하게 끌어갔다.
쉬청번과 허슈링의 여동생 허슈리는 곧 610에서 사설한 감옥 세뇌반에 갇혔다. 그곳에서 그들은 20~30명에게 에워 싸여 구타와 욕설을 당했는데, 그들에게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쉬청번은 여러 날 동안 잠자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고, 또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으나 그의 믿음은 확고했다. 한 구치소 간수의 말에 따르면, “쉬청번은 꼬박 5일 동안 먹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했으나, 또 소처럼 건장해 몇 사람이 눌러도 눌러 넘어뜨리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세뇌를 달성하지 못하자 610은 또 쉬청번을 더욱더 사악하고 흉악하고 잔인하기로 이름있는 자오위안(招遠) 세뇌반에 가뒀다. 그곳은 고문 수단이 흉악하고 잔인했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암암리에 파룬궁 수련생에게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탄 음식을 먹였는데, 이로써 그들을 핍박해 믿음을 포기시켰다.
그곳에서 쉬청번은 급속히 수척해졌다. 원래 키가 178cm이고 몸무게가 85kg였는데, 몇 달 후 친척과 친구가 다시 그를 보았을 때, 그는 겨우 50kg이 좀 넘어 마치 해골 같아 보는 사람은 아연실색했다. 그의 의식은 늘 흐리멍덩하고 대뇌가 명석하지 못해, 믿음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또 아내의 사망 원인을 추궁함도 포기했다. 편지에 따르면, 독극물을 주사 당했다고 한다.
2008년 초, 쉬청번은 갑자기 사망했다. 이전인 2월 26일 이날, 쉬청번은 갑자기 더저우(德州)에서 친척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듣기에는 그래도 괜찮았다. 이튿날, 친척은 쉬청번의 사망 소식을 받았다. 친척이 그의 시신에 옷을 입힐 때, 피부가 이미 문드러져 입은 속옷이 피부와 한데 붙어있음을 발견했다. 친척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법의를 찾아 감정했는데, 감정 결과는 중독으로 사망이었다. 비록 법의가 모호하게 가스 중독이라고 말했으나, 친척과 친구는 각종 흔적으로 보아 쉬청번이 610에서 입을 막기 위해 사용한 약물 박해를 당해 만성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의심했다.
국제 인권조직에서 옌타이 류황딩 병원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이 병원의 이식센터 직원이 말하기를, 1년에 적어도 160~170개의 신장 이식수술을 진행한다고 했다. 게다가 신장 내원이 충족하고 공급체가 건강하여 예전에 외국인에게 이식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공급체의 내원에 대해서는 오히려 피하며 말하지 않았다. 병원 내부인에게도 감추고 누설하지 않았다.
2006년 3월부터 끊임없이, 중공이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하여 불법적으로 장기 이식에 종사해 폭리를 도모한 것을 고발하는 증인이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생체장기적출’, 이 책의 작가 데이비드 메이터스(DavidMatas)와 데이비드 킬고어(David Kilgour)는 다년간의 추적을 거치고, 수십 항목의 증거로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생체적출한 현상이 대륙에서 장기간 보편적으로 존재했음을 확증했다. 게다가 ‘천체에서 본 전례 없는 사악’이라 불렀다. 2017년 말 한국의 ‘TV조선 다큐멘터리’는 중국 대륙에 장기 이식을 하러 간 2만 명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죽여야 산다’라는 제목의 특집영화를 제작해 방영했다.
2019년 6월 17일, 영국에서는 중공이 강제로 생체장기적출한 것을 조사한 국제 독립 ‘인민 법정’(독립법정이라고 약칭함)이 런던에서 공청회를 개최한 후 종심 판결을 내렸다. 게다가 보고서를 발표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공이 양심범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한 행위는 이미 20년 동안 존재했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감금당한 파룬궁 수련생은 ‘가능하게 생체로 장기를 적출하는 주요한 내원일지도 모른다’. 독립인민법정 재판장 제프리니스경(Sir Geoffrey Nice QC)이 국제 형사 법정을 주도한 적이 있는데, 전 유고슬라비아 총통 밀로세비치(Milosevic)의 기소에 대해 그는 ‘결론을 표명하면, 많은 사람이 이유 없이 사망했고, 죽임을 당함은 형용할 수 없이 소름 끼친다. 더욱 많은 사람이 유사한 방식으로 고통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든 사람은 모두 하나의 천체에서 생활하고 있고, 이 천체에서 중국은 가장 오래된 인류의 문명 중의 하나이다. 그의 현 정권의 정권을 잡은 자는 극단적으로 사악한 짓에 종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원문발표: 2020년 4월 12일
문장분류: 대륙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4/12/4035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