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년 동안 저는 친척 수련생들의 구출 전반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사존의 자비로우신 가지와 수련생 여러분들의 사심 없는 협력으로 간고하고 힘들고 가망이 없어 보이는 마난 속에서 우리는 수련생들과 함께 걸어 지나 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련생에 대한 사악의 중형 박해 시도를 풀어냈고, 한 변호사가 이야기한 바와 같이, 길을 걸어오면서 많은 공안국, 검찰원, 법원 관계자들에게 진상을 알게 했습니다. 여기서 사존과 수련생 여러분들에게 보고 드리고자 하며 부족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들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재작년 초봄의 어느 날, 친척 수련생의 딸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부모와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녀가 부모의 집에 가 보니 부모가 실종되고 집안 물건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으며 대법 책과 컴퓨터, 진상 자료 등은 몽땅 남김없이 빼앗겼습니다.
우리 가족과 일가 중, 저와 친척 수련생 부부만 대법 수련을 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여러 번 박해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H시에 살고 있고 자가용으로 2시간 걸립니다. 나는 업무가 바빠서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잠시 아이를 위로하고 서둘러 현지 수련생과 연락했습니다.
그들 두 사람이 몇 년 전에 박해를 당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때 소식을 들은 후, 나는 마음이 매우 아팠습니다. 그런 아픔은 아직 기억에 남아있지만, 이번에는 괜찮았습니다. 나는 정서가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자신에게 알려줬습니다. ‘너는 대법 제자이다. 이지적이어야 한다. 너는 아이가 의존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사악의 거대한 장이 다가와 짓누르는 것 같았고 먹구름이 가득해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기간에 자신의 수련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저는 굽은 길을 걸은 후, 줄곧 두려운 마음이 비교적 무거웠습니다. 여성 수련생이 얼마 전에 해준 말입니다. 구세력이 그녀에게 사지에 몰아넣겠다는 일념을 가해 넣을 때 당시 그녀가 부정했는지 여부였습니다. 그 두 사람이 이번에 부딪힌 것은 거대한 시련이며 구세력이 오래전에 안배한 것으로 수련생을 구출하는 험난한 과정을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신적인 압력이 매우 높았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나는 변호사를 선임해본 적이 없어서 과정을 몰랐으며 그들 현지 수련생이 비교적 안전하게 채팅 프로그램으로 변호사와 연락하기를 바랐습니다. 나도 채팅 프로그램으로 현지 수련생들과 연락했습니다. 반복적으로 이 뜻을 피력했으나 수련생은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변호사에게 채팅 프로그램이 없으므로 나 스스로 변호사와 연락해보라고 하면서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습니다. 비록 나는 실명이 아닌 휴대전화 카드를 갖고 있었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사악에게 들키는 것이 두려웠고 자신이 박해당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어느 곳의 수련생에게 일이 생기면 일반적으로 모두 그곳의 수련생이 도와서 변호사를 선임해왔습니다. 그들 현지도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나는 조금 불평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위험을 수련생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안전하려고 하니 정말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우연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사실 이 일은 바로 사부님께서 나에게 안배해주신 것이며 제자가 두려워하는 마음과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 그리고 질투심을 닦아 없애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우리는 매월 변호사를 선임하고 만나서 문제를 토론할 때, 현지의 다른 박해를 당한 수련생을 위해서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변호사와 약속을 잡고 만날 때, 채팅 프로그램은 늘 원활하게 연결되지 않아 나는 모두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 방면에서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게 된 것입니다. 안전에 분명 주의해야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변호사와의 협력과 수련생을 구출하는 대사를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결정해주시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바르면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현지의 수련생과 아이는 변호사와 함께 파출소, 분국, 구치소에 가서 협상했으며 곳곳에서 비난을 받았습니다. 변호사는 모두 장이 비교적 사악했다고 말해서 수련생이 발정념 강도를 높여야 했습니다. 변호사가 구치소에 세 번째 갔을 때야 여성 수련생을 만났습니다. 알고 보니 수련생 부부가 사람을 구할 때 악인(惡人)에게 발견돼 신고를 당했으며 국내안정보위국이 개입해 가산을 몰수했습니다. 집에 그렇게 많은 물건이 발견돼 경찰은 모두 뜻밖이었습니다. 여성 수련생은 파출소에서 심각한 병업 현상이 나타났지만, 사건 담당 경찰관은 여전히 폭력적으로 대했습니다. 변호사는 치료할 수 있도록 보석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1. 파출소에 가서 나쁜 짓을 하는 경찰관을 선하게 대하다
그 무렵에는 정말 먹구름이 뒤덮이고 사악이 몰려왔습니다. 1주일 후, 나는 변호사와 아이와 함께 파출소에 가서 사건처리 담당 경찰관을 찾았고 한참을 기다려서야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태도가 무지막지했습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여성 수련생이 생명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고 몇 마디 말했습니다. 그는 곧 나에게 “당신도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는가?”라며 위협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전혀 감히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대며 황급히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저녁 무렵에 우리는 또 파출소에 가서 변호사가 보석치료를 다시 요구하자 당직 경찰관은 사건처리 담당 경찰관이 자리에 없다고 했습니다. 변호사는 그에게 사건처리 담당 경찰관과 연락을 해달라고 했고 당직 경찰관은 맞은편에 앉아서 유선전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변호사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온 후, 변호사는 우리에게 휴대전화번호 하나를 기록하게 하면서 이 번호는 사건처리 담당 경찰관 번호가 아니라 마찬가지로 책임자 번호라고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변호사는 무심코 당직 경찰관에게 전화가 걸려오면서 표시된 번호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결국, 해외 수련생은 이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은 몇 번 듣고 끊었습니다. 다시 걸면 더 받지 않았으며 사악을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당시에 박해자의 정보를 가져올 수 없어서 수련생들은 우리에게 가족에게 진상편지를 쓰도록 논의했습니다. 당시 모두가 공감했던 인식은 수련생을 구출하는 기회를 이용해 경찰관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사건처리 담당 경찰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곧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이었으며 원고를 세 번 수정했습니다.
나는 모든 원한, 질책, 비난, 정서를 내려놓을 때까지 한 번씩 방관자의 입장에 서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가족과 여성 수련생이 잘못한 곳은 내가 그녀들을 대신해 사과했습니다. 편지에는 법리를 깊이 새겨 진상을 알렸고 전적으로 그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 포용하며 그에게 관심을 기울여 내심으로부터 그를 친구로 여기고 그의 선념을 불러 일깨웠습니다. 비록 나중에 그를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나는 그에게 이와 같은 편지를 써줄 당사자의 가족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수련생도 이 편지를 인정했습니다. 선의 힘은 반드시 대법제자에 대한 오해를 해체할 것입니다. 설령 조금뿐이라 해도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나는 아이와 또 파출소에 가서 경찰관에게 우리 각자의 선을 권하는 편지와 파룬궁은 합법적이라는 법률문건을 건네줬습니다. 사건처리 담당 경찰관을 기다릴 때, 한 시골 부부가 와서 사건을 신고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딸이 유괴돼 팔린 증거가 확실했고 유괴자의 전화번호도 있었지만, 담당 경찰관은 모르는 척하면서 입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찰력을 대거 출동해 가택을 수색할 수 있는 것에 아이는 상황을 목격하고 화가 나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파출소는 낡고 누추하며 경찰관의 자질도 형편없고 마성적인 표어가 매우 눈에 띄어 사악의 경찰관에 대한 세뇌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 수련생에 대한 체포와 법적 절차를 밟는 속도가 매우 빨랐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매우 많은 정의 인권변호사들을 접촉했는데, 이것은 오늘날 중국에서 탄압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속해서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는 가장 대단한 단체입니다. 그 중의 어떤 변호사는 대법제자를 위해 무죄 변호를 해온 지 여러 해가 되었고 대법에 대해 대단히 감탄했으며 일부 대법의 이치도 알았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고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각지의 구치소와 공안국, 검찰원, 인민법원 사법기관 사이를 오가면서도 먹고 입는 것을 모두 매우 절약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사람 됨됨이가 올발랐습니다. 이야기함에 음란하지 않았고 속인들처럼 야한 농담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만 가지 악 중의 최고의 악인 것을 고려하면, 이 역시 미래에 남겨질 수 있는 사람의 표준에 부합했습니다.
2.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구한다는 정의 변호사의 말은 나를 정진하게 하다
현지 수련생이 한 인권변호사를 선임했고 그를 목숨을 바쳐 세상을 구하려는 정신과 천하를 평화롭게 하려는 포부를 지녔고 타협 없이 확고하고 이성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를 선임한 후, 그는 갑자기 사당에 의해 자격증이 취소되어 남성 수련생을 만날 수 없게 됐고 출두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결국 여전히 그를 불러왔습니다. 사악이 정의 변호사에 대한 탄압이 심했기 때문에 많은 변호사가 감히 공안국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변호사와 협력해 국면을 여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오전에 우리는 파출소에 갔습니다. 그는 곧장 행정 구역으로 달려가 책임자를 찾았고 경찰관은 막았습니다. 다투기 시작했을 때, 그는 곧 감정을 자제할 수 있었고 사과하지 않고도 상대방이 화를 가라앉히게 할 수 있었으며 이지적인 대화 분위기로 만회할 수 있었습니다. 사건처리 담당자를 만나지 못하면 그에게 유명한 ‘변호사 의견서’를 줬습니다. 말이 유창했고 법률, 인권,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논술했으며 정정당당하게 파룬궁을 위해 명분을 바로 잡았습니다.
오후에 공안국에 갔고 국내안전보위국 경찰관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말하는 바에 의하면 그들은 사람을 만나면 감히 실명을 밝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사무실에도 문패가 없었다고 합니다. 공안국 문 입구에 등록한 후 회신을 기다릴 때, 우리는 이 변호사를 따라 공안국 마당 곳곳을 찾아보았습니다. 안에 마당이 또 하나가 더 있어서 무인지경에 들어간 것처럼 어디에서 국내안정보위국 공안 사무실로 들어갈 수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나는 공안국에서 참관하러 왔다고 농담하며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부끄럽게도 대법제자인 나는 속인 변호사의 인솔하에 감히 공안국 큰 마당으로 들어갔으며 두려움도 사라지게 됐습니다.
마지막에 공안국 국내안정보위국과 치안과 경찰 부서에는 모두 나와서 문건을 받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청원하는 곳에도 한 부를 남겨뒀으며 변호사의 ‘변호사 의견서’, 가족 편지, 파룬궁 관련 합법적인 법률규정 등이 포함됐습니다. 그 후, 검찰원에 가서도 관련 문건을 전달했습니다.
현지 수련생의 정념의 협력하에 그 날은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변호사는 법률방면에서 진상을 알렸고 6부의 문건을 전달했으며 우리가 가져간 자료가 너무 적은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나에게 가장 마음에 와닿고 감동하게 했던 변호사의 한마디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으면 구한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는 대법제자인 나에게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게 했습니다.
이 무사무아의 두려워하지 않는 변호사의 도덕의식에서 우러나오는 확고한 의지는 줄곧 해탈의 법문을 찾고 있었으며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들어오지는 못했습니다. 나중에 수련생들은 그의 사명이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근기가 좋은 사람도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될 수 있는 인연이 없는데 우리는 대법제자로서 얼마나 행운인가요? 자신의 법연(法緣)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3. 만나는 과정에서 마음을 닦은 이야기
변호사를 선임한 후, 매월 한 번씩 만나기를 희망한다고 여성 수련생이 말을 전해왔습니다. 이렇게 1년 동안 여러 번 만나다 보니 나는 차를 타고 변호사와 함께 다녔고 현지 수련생은 근처에서 발정념을 했습니다. 처음에 두 명의 변호사는 당사자인 남성 수련생과 여성 수련생을 동시에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구치소가 교외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보통 전날 오후에 출발했고 순조롭게 되면 다음 날 밤늦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가기 전에 두 변호사와 시간 약속을 하고 연락한 다음 몇몇 현지 발정념을 하는 수련생과 연락해서 수련생의 차(나중에는 택시를 탐)를 찾았으며 머물 곳을 찾아 그 시기에 편리한지, 여부를 봐서 수련생 집에 머물렀습니다. 시간을 약속해서 정한 후, 나는 생각하고 편지를 남성 수련생과 여성 수련생에게 썼습니다. 그들이 관심을 두는 일의 처리, 그들의 집착심을 선의로 지적하는 것, 관심을 기울인 말들, 몇 단락의 설법과 인터넷에서의 교류, 법률문건 등을 포함해 변호사를 만나기 전 그들에게 볼 수 있게 가져다줄 수 있도록 변호사에게 줬습니다. 다음, 나와 현지 수련생은 인근 식당에서 방을 빌려 발정념을 하면서 변호사를 기다렸습니다. 변호사가 나온 후, 식사하면서 수련생의 상황과 변호사의 다음 단계에 대한 법률적인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변호사에게 비용(만날 때 비용을 받음)을 지급한 후, 다음 수련생을 만날 그다음 변호사를 기다렸습니다. 이상의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수련생의 고소, 삼퇴, 문장발표 등은 돌아올 때 모두 시간을 들여 정리해야 했습니다.
매월 한 번씩 수고를 반복할 때마다 돌아오면 매우 피곤했습니다. 사실 나도 게으름을 피우며 가지 않을 수 있었지만, 수련생들이 안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을 생각하면 동료 수련생을 이끌고 근처에 가서 발정념을 하고 이를 악물며 견지해야 했습니다. 수련생의 딸은 자기가 갈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발정념을 할 수 없었고 휴가 신청까지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그래도 내가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작년에 나는 사람을 구하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가족 수련생에게 일이 생겨서 나는 반드시 전력을 다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계획은 흐트러졌고 마음에는 내가 사람을 구하는 것을 지체하게 됐다는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밥을 할 때 교류 이야기를 듣다가 한 수련생이 사부님의 이 단락의 법을 말했습니다. “한 수련자가 부딪히는 일체는 모두 당신들의 수련, 원만에 관련된 것으로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다.”[1] 아! 그렇습니다. 사부님의 점화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마음이 탁 트였고 계속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계속 협력했습니다.
한번은 갈 때 장대비를 만났는데 여태 본 적이 없는 호우였습니다. 우산과 우비는 모두 비를 막을 수 없었고 신발 안도 모두 흠뻑 젖어 마르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지친 나는 변호사가 나에게 준 여성 수련생의 편지를 펼쳤습니다. “이 세상에 당신을 만난 것은 정말 나의 행운입니다.”라는 서두와 함께 감격의 말이 한가득 있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다시 한번 눈여겨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의 딸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딸의 편지는 모두 선의로 매우 이해심이 있으며 나처럼 상대방을 질책하는 말로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의 사람 마음은 몹시 상처를 받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나는 병업의 고통을 참아가며 줄곧 애써 진심으로 노력했습니다. 여성 수련생은 이렇게 나를 말했고, 생각해보니 남성 수련생은 고맙다는 한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나는 돈을 들였고 힘을 들였습니다. 변호사 비용뿐만 아니라 그 무렵에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수련생과 함께 식사하는 비용도 나는 몇천 위안(한화 약 수십만 원), 거의 만 위안(한화 약 170만 원) 이상을 지급했습니다. 변호사가 매우 고생을 많이 해 매번 그들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초기에 많은 수련생이 협력해 가서 발정념을 했고 식사도 제가 나서서 비용을 지급했습니다. 다시 남성 수련생의 편지를 보니 그의 원고에 따라 고소 편지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나에 대해 매우 화가 났습니다. 편지에는 ‘반드시’라는 표현이 한가득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딸에게 앞으로 식사비용을 그들을 위해 지급하지 않을 것이며 해야 하는 일은 그대로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딸은 나에게 “저는 여전히 당신이 그들을 탓하지 않기를 바라요. 첫 번째는 그들은 지금까지 마굴에 깊이 빠져있기 때문에 마음 상태가 분명 예전 같지 않을 거예요. 이전의 단점도 아마 더욱 확대됐을 것이기 때문에 많은 말은 진심에서 한 것이 아닐 거예요. 아마 배후의 것이 일부러 당신에게 말해서 들려주는 걸 거예요. 두 번째로 한 사람의 진심은 당사자가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제삼자는 기억할 거예요. 제삼자가 기억하지 못하면 하늘이 기억해주실 거예요. 당신이 수정한 원고는 그가 잘 되기를 위해서잖아요. 그러면 이 일은 하나의 좋은 일이예요. 당신은 이왕 한 가지 좋은 일을 했는데 화를 낼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니 ‘이런 말들이 어떻게 아이가 하는 말 같은가?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려 나를 점화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성 수련생이 ‘반드시’를 한가득 적은 것 역시 나의 자체적인 당 문화의 표현에 대한 반사가 아닐까요? 여성 수련생의 내가 질책하는 말이 사람에게 상처 준다고 한 말 역시 사실이었습니다. 왜 내가 그 두 사람의 집착을 한가득 지적해도 그들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나의 목적은 ‘당신들은 빨리 이 집착을 없애야 구세력이 당신들을 가두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본 집착이 맞는 걸까요? 그런 큰 산은 없애라고 말한다고 해서 제거해 없앨 수 있는 것인가요? 나는 당 문화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요구했는데 효과가 좋을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나는 보답을 바랐고 감격을 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가요! 또 그녀의 딸을 질투했고 원망도 없고 미움도 없어야 하는 요구와는 너무 멀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한 번 마음을 닦는 기회를 배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는 우리 현지에서 수련생이 운전해서 가도록 자비롭게 안배해주셨습니다. 하루에 왕복했지만 나는 그렇게 고생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운전기사인 수련생은 매우 수고가 많았습니다.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다 보니 한밤중이 되곤 했습니다. 내가 정말 마음을 내려놓은 후, 남성 수련생도 우리에게 감격해 하는 말을 했습니다.
검은 소굴에 가서 발정념을 하는 것은 정말 매우 중요합니다. 한번, 우리는 간 사람이 많았고 수련생은 안에서 느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우리가 가는 사람이 적으며 한 번에 방을 빌릴 수 없으면 우리 세 사람은 나무 그늘 밑에 앉았습니다. 모기가 있어서 발정념을 잘할 수 없었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끊임없이 재채기했습니다. 콧구멍 두 개가 모두 막혔고 휴지도 전부 다 써버려 매우 난처했습니다. 발정념을 하고 돌아오면 늘 재채기를 하면서 콧물을 온종일 흘려야 했습니다. 음기가 매우 무겁게 느껴졌고 거의 휴지 한 롤을 다 썼으며 다음 날이 되면 나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매번 여정에서 지치는 것은 가서 검은 소굴의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는 것이므로, 사악의 수련생에 대한 박해도 경감됐으므로 여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수련생에 대한 법정이 열릴 때, 두 수련생과 변호사의 표현은 모두 매우 뛰어났습니다. 대법의 진상을 알렸고 사악을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물론 이는 현지에서 정체적으로 협력해 발정념한 효과와도 갈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여성 수련생은 이미 집으로 돌아왔고 남성 수련생의 형기도 사악이 기소한 예정된 것보다 줄어들었습니다.
두 수련생 구출에 협력하는 과정에서 감동적이고 마음을 닦은 이야기는 아직 더 많지만, 이상은 몇 가지 사례를 열거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 과정에서 비록 나는 충분히 잘하지 못했지만, 전력을 다했고 이 부분의 서약을 실천했습니다.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사부님과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대법(大法)은 원용(圓容)하다’
원문발표: 2020년 4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4/11/4036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