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청융(陳承勇), 남, 35세. 광둥성 광저우시 하이주(海珠)구 사람. 광저우제지공장 전기공.
1996년 천청융은 누나와 함께 수련을 시작했다. 1999년 10월 파룬궁에 대한 탄압에 항의하기 위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광저우로 압송되어 15일 구류되고 회사에서 해고됐다. 2000년 1월 공개적으로 연공하여 다시 보름간 갇혔다. 7월에 하이주구 난스터우(南石頭)거리사무소 세뇌반에 3주간 갇혔다. 세뇌반은 일주일을 자지 못하게 하고 대법을 비방하는 비디오를 보게 했다. 천청융이 조금이라도 졸려고 하면 교도관은 구타하고 찬물을 퍼부으며 파룬궁을 포기하지 않으면 끝까지 이럴 것이라고 했다.
천 씨는 11월부터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12월 31일 그는 부인과 딸을 데리고 다시 베이징에 갔다가 광저우에 돌아온 4일 뒤 납치되었다. 부인 다이즈전은 호주 국민이다. 비자가 만기되어 2001년 1월 10일에 한번도 ‘아빠’를 부르지 못한 8개월 된 딸을 안고 중국을 떠났다. 이 날이 그녀가 남편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 되었다.
천청융은 2001년 7월에 사망했다. 친구가 상황을 알아보려 천천융 집에 전화를 걸자 모르는 남자들이 전화를 받아 이것저것 질문했다. 공안(경찰)으로 추정된다.
천청융은 2001년 1월 하이주구 ‘610’에 납치된 후 실종되었다. 어디로 갔을까? 하이주구 난스터우 거리 사회치안종합관리반에서 위챵을 세뇌반에 감금시켰던 것이다. 그 후 줄곧 소식이 없다가 교외의 한 작은 막사에서 부패하기 시작한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아래는 천청융과 부인 다이즈전 딸 천파두(陳法度)의 가족 사진이다.
갱신일: 2010-9-2510:21:00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234.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