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179, 쉬쩡량

1997~1998년 쉬쩡량의 실습기간

쉬쩡량(徐增良,남,29세) 본과대학졸업. 산둥성 자오난(胶南) 하이칭(海青)진 수이보(水泊)마을 사람. 대법수련을 견지하여 2001년 4월 17일 경찰에게 맞아 죽었다. 쉬쩡량은 사망시 벌거벗겨져 있었고 허벅지 안쪽에 3cm가량의 자홍색 동그란 점이 있었으며, 머리 한쪽에 14cm 크기의 찢어진 자국이 있었으며, 귀에도 상처가 나 피범벅이었다.

1972년 출생한 쉬쩡량은 1993년 산둥중의약대학중의학과에 입학해 1998년 본과를 졸업했다. 학사학위를 받고 그해 핑두시 중의원중의과에서 근무했다. 대학때 수련을 시작한 그는 매사에 대법으로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여, 부단히 심성을 제고하고 진선인(眞、善、忍) 우주 특성에 동화하였다. 그는 온화하여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았으며 일을 할 때 우선 다른 사람을 고려했다. 사람들에게 오해와 조롱을 받아도 그는 웃고 지났으며 복수할 줄 모르고 사람을 선하게 대했다. 일 할때는 자신을 더욱 엄격하게 요구해 동료와 환자 모두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대법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1997년 7월부터 비인간적인 박해를 받고 사망했다.

쉬쩡량은 1999년 10월 정부에 실제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 대법진상을 알리러 혼자 베이징에 청원하러 떠났다. 그러나 그는 민원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사복경찰에 불법체포되었다. 체포 기간동안 경찰은 그를 화장실에도 보내지 않았고 3천위안을 약탈해 갔다. 그는 회사에 돌아온 후에도 초소에 갇혀 교대로 감시를 당하면서 모든 자유를 잃었다. 회사보위과장 및 부하직원들은 그를 마구 구타하며 욕설을 퍼부었고, 나중에는 청소일을 시키고 자건거를 지키라고 했다. 매월 250위안 밖에 주지 않으면서 후에는 약방에 가서 가장 더럽고 힘든 일을 하라고 했다. 2000년 7월 그는 한 수련생의 가족을 만나 공안에게 불법심문 당했다. 공안은 그를 또 마구 폭행하며 3일내로 폭로자료를 쓰라고 강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노동교양보내겠다고 협박했다. 쉬쩡량은 심신의 고통과 압박에 못이겨 결국 퇴직을 했는데도 공안과 회사에서는 계속 교란을 했다. 그는 어쩔수 없이 연로하신 부모님과 친구들과 헤어져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비록 각종 비인간적인 박해를 받았으나 쉬쩡량은 확고한 정념을 유지하여 법과 사부에 대한 바른 믿음은 흔들린 적이 없다. 간고하고 위험한 환경에서도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다른 수련생을 도와 믿음을 확고히 하게 했다. “수련하는 사람은 생사를 내려놓아야 한다.” 는 믿음으로 그는 생사의 고험앞에서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않고 귀한 생명을 바쳤다.

쉬쩡량은 2001년 4월 14일 라이시(莱西)에서 불행하게 체포되어 자료를 인쇄하는 장소와 관련 수련생을 공안에게 알려주지 않아 고문당해 죽었다.

경찰은 책임을 회피하려 교통사고로 위장하다

610두목 양런서우(杨仁寿), 다이위강(代玉刚), 왕신위(王欣玉), 왕수화(王淑华), 정보(政保)과장 스웨이빙(石维兵), 경찰 쑨촨하이(孙全海), 위빈(于滨), 저우시빈(周锡斌)은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나쁜 일을 아주 많이 했다. 그들은 비밀리에 모의하여 쉬쩡량을 납치하고 불법체포한 책임이 있다.

갱신일: 2010-6-28 3:37:00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184.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