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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뤼칭화


뤼칭화

뤼칭화(呂慶華), 여, 35세, 지린성 더후이(德惠)시 차오양(朝陽)향 퇀린쯔(團林子)대대 부녀주임, 시인민대표, 38홍기수, 우수공산당원. 1997년부터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여 신심에 혜택을 보았다. 2000년 3월 6일 더후이시공안국교도소에 갇혔고 3월 8일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으로 상처를 입은 그녀는 3월 9일 적절한 구조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1999년 7월 20일은 어두운 날이다. 사람을 선하게 가르치는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천고의 억울함을 당한 날이다. 사악한 장쩌민 무리는 수중의 모든 권력을 동원해 악의로 비방하고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가장 비열한 수단으로 모함했으며 매체를 이용해 사실을 왜곡했다. 사실을 밝히기 위해 파룬궁 수련생 뤼칭화는 남편 장즈춘(張志春)과 함께 2000년 3월 3일 법률 규정에 따라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그러나 장쩌민의 독재정권은 파룬궁수련생이 바른 말을 하지 못하게 했고 청원할 곳도 없게 했다. 그들은 현지 공안국으로 강제로 끌려왔다.

당국은 가장 비열한 수단으로 파룬궁 수련생의 정념을 흔들어 수련을 포기하게 하려 했다.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지 않겠다’는 말만하면 ‘부녀주임, 인민대표, 38홍기수’ 자리가 다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그 직무를 모두 해제하고 당적에서 퇴출할 것이라고. 그러나 파룬궁 수련생 뤼칭화는 진리를 견지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아 불법으로 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녀는 단식으로 불법감금에 항의했다. 3월 8일 교도소는 잔인무도한 음식물 주입을 시작했다. 남자 죄수 5명이 그녀를 누르고 코에 파이프를 꽂았다. 뤼칭화는 돌아온 뒤 기관에 상처가 났다며 아주 괴로워했고 오른 어깨가 아프다고 호소했으며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2000년 3월 9일 오전, 수련생은 간수에게 상황을 알렸으나 간수는 매몰차게 “죽으면 들고 나갈 것이다!”고 대답했다. 9일 오후 5시경에야 감옥 경찰이 링거를 주사했다. 이때 뤼칭화는 경련을 일으키며 고통스러워 했는데 체온이 42도까지 올라가 급히 병원으로 옮겼다. 교도소 측이 고의로 치료시간을 놓쳐 당일 오후 8시경 이 의지가 확고한 파룬궁 수련생은 정기가 늠연하게 인간 세상을 떠났다.

1999년 7월 20일 박해이래, 더후이시공안국정보(政保)대장 장칭춘(張慶春)과 정보과 자오위제(趙玉傑)를 필두로 한 국보대대는 더후이시 610, 각 파출소와 함께 파룬궁 수련생 수백명을 납치수감하여 박해했다. 현재까지 뤼칭화, 왕훙톈(王洪田), 추이젠보(崔建波), 장춘셴(姜春賢), 둥더쥔(董德軍), 류즈천(劉志臣), 리위퉁(李玉桐), 쑹창광(宋昌光)이 박해로 사망했다. 그들의 사망에 대해 장칭춘과 국보대대 등 박해에 참여한 불법인원은 그 죄과를 벗어날 수 없다.

갱신일: 2011-2-12 1:30:00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17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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