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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왕화이잉

 

사진설명: 웨이팡(濰坊)노동교양소 사악한경찰 왕 젠챵(王建強)

왕젠챵, 남, 1969년 출생. 2000년 10월 웨이팡노교소에서는 2대대를 파룬궁 수련생을 전문적으로 박해하는 대대로 설립했다. 부대대장이었던 왕젠챵은 사악한 당을 따라 파룬궁 수련생을 미친 듯이 박해했다. 밍후이왕에서 여러 번 폭로한 ‘왕 부대대장’은 바로 그를 가리킨다.

 

그림설명: 산둥 대법제자 왕화이잉은 ‘댜오다청(吊大秤: 매달기 고문)’으로 고통받다가 사망했다.

왕화이잉(王懷英), 남, 58세. 산둥 허쩌(菏澤) 의표(儀表)공장 직원. 산둥 허쩌 무단(牡丹)구 베이청(北城)판사처 왕탕(王堂)행정촌에 거주. 2001년 설 전, 왕화이잉은 베이징에 대법을 실증하러 갔다가, 허난(河南)성 난양(南陽) 공안에 잡혀 난양시 융안(永安)로 제1심문실로 끌려갔으며 2월 1일 오후 구타당해 사망했다.

2001년 1월 26일, 허베이, 산둥, 허난에서 온 대법제자 10명이 베이징에 대법을 실증하러 갔다가 불법 구류되어 난양시 심문실에 갇혔다. 그들은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고 연공하고 법공부하며, 함께 경문을 외우고 단식하여 사악의 박해에 항의하며, 대법 수련자의 바른 생각과 대법을 확고하게 믿는 위대한 장거를 나타냈다. 왕화이잉은 단호하게 사악에게 타협하지 않아 사악한 경찰에게 박해당해 사망했다(그의 이름과 나이는 후에 알려진 것이다. 당시 대법제자 간에 서로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난양시 공안국 경찰들은 교대로 대법제자에게 고문을 가했다. 대법제자가 단식하여 10일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상황에서 ‘댜오다청’ 고문을 가했다. 이 고문을 받고 매달린 사람은 거의 다 혼절하여 사망한다. 2001년 2월 1일, 허쩌(菏澤) 대법제자 왕화이잉(신장175cm)은 4시간 가량 매달려 있어 최후에는 매달린 상태로 사망했다. 당시 불법으로 감금된 대법제자 및 구류되었던 사람들은 모두 이를 증명할 수 있다.

왕화이잉이 박해로 사망한 후 시신은 해부되었다. 왕화이잉의 가족이 난양에 사람을 찾으러 갔을 때는 이미 화장한 뒤였다. 난양 공안은 왕화이잉 가족에게 4천 위안의 검시비를 요구했다가 가족에게 거절당했다. 검시 사진으로 보면 왕화이잉의 두 손목, 늑골, 등에 구타당한 흔적이 있고 몸에 어혈도 있었다. 다른 사진 2장에서 왕화이잉은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턱을 받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진을 찍을 때 이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왕화이잉 가족은 검시사진을 달라고 했지만 공안에게 거절당했다. 가족이 유골을 가지러 갔을 때 화장터는 무명시신이라는 이유로 화장증명서를 내주지 않았다. 그 중 한 공안이 “빨리 해주어라. 밤이 길면 꿈이 많다”고 말했다.

사망자 가족의 질의에 난양 공안은 앞뒤가 맞지 않는 왕화이잉이 관상동맥경화증, 뇌동맥경화, 심근염으로 사망했다고 대답했다. 왕화이잉 가족은 “왕화이잉은 신체가 건강했고 얼굴에 혈색이 돌았으며 관상동맥경화증, 뇌동맥경화, 심근염을 앓은 적이 없다”고 했다.

허난 난양시 공안국 경찰 란청촨(冉成全), 장위저우(張玉洲), 왕텅융(王騰勇), 왕타이청(王太成)이 지은 죄업은 너무도 커서 용서할 수가 없다. 심문실에 구금중인 범인 장톈구이(張天貴: 경찰 장위저우의 친척)는 대법제자를 박해한 공범자다.

갱신일: 2010년 6월 27일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148.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