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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리메이

리메이(李梅), 여, 28세,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 대법제자. 성격이 쾌활하고 건강하다.

1996년에 법을 얻었고 몸이 허약하여 숨이 차던 것이 치료받지 않고 수련을 통해 다 나았다. 1999년 11월 리메이는 처음으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허페이 수감소로 압송되어 15일 감금되었다. 석방 이튿날 베이징으로 걸어가면서 길에서 진상을 알리고 마지막에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려 했으나 2일 후에 잡혀왔다. 1999년 12월 리메이는 또 언니와 함께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떠났다. 나중에 허페이 수감소로 압송되어 15일 불법감금 되었다. 석방 후 다시 소위 ‘학습반’에 보내져 설까지 있었다. 2000년 4월 리메이는 밖에서 연공을 했다는 이유로 다시 15일 불법구류 되었다. 2000년 4월 리메이는 천안문에서 세인에게 진상을 알리러 4번째 청원의 길에 올랐다. 현수막을 만들 때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 사장의 밀고로 다시 10여일 불법수감 되었다. 2000년 6월 페이둥(肥東) 수감소에 갇혔고 그 후 허페이 여자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감금기간 그녀는 잔혹한 박해를 받아 내장이 파열되어 허페이 105 병원에서 사망했다.

2001년 1월 26일 정월 초 사흘, 리메이의 가족은 면회하러 갔으나 노동수용소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이날은 면회하는 날이지만, 경찰은 허페이의 가족은 면회가 안되고 외지 가족만 면회가 된다고 말했다. 정월 초사흘이고 비가 며칠 동안 계속 온데다, 초 이튿날에는 큰 눈까지 왔다. 설 명절에 길도 미끄러워 외지 가족이 허페이로 오고 싶어도 차도 타기 힘든데 어떻게 와서 면회를 하겠는가.

1월 29일(혹은 30일) 리메이 부친의 회사에서는 차에 그를 태우고 간밤에 백여 리 되는 길을 달려 집에도 못 가게 하고, 회사 면회실에 머물게 하며 다른 사람이 지켜보게 했다. 리메이의 어머니는 정법위원회에서 데려갔다. 그들은 “당신들은 견뎌내야 한다”는 당부를 들었다. 그 뜻인즉 리메이의 상황이 위급하다는 뜻이다. 리메이의 가족은 살아 있으면 사람을 봐야 하고 죽었다면 시신을 봐야 겠다고 요구했다.

1월 31일 오후 그들은 통지를 받고 해방군105 병원에 딸을 보러 갔다. 갔을 때 가족은 겹겹히 둘러싸여 리메이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리메이는 이불에 덮여 있어 얼굴만 보였다. 코, 입가, 귀에 군데군데 핏자국이 있는 것이 보였고, 얼굴은 멍이 들었으며 목에는 거즈를 감고 있었다. 의사는 대뇌가 수축되고, 내장기관 기능이 쇠약해져 심장이 약하게 뛰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의사는 전력을 다해보겠다고 했지만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은 가족에게 리메이가 2001년 2월 1일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오전 6시에 사망했다고 거짓말 날조를 했다. 2월 1일 오후 경찰은 가족에게 시신을 보러올 때 카메라를 가져오면 안 된다고 했다. 가족은 시신에 아직 체온이 있으나 귀, 입, 코는 솜으로 막아놓은 것을 보았다. 의사는 사망증서만 읽고 사망원인은 말하지 않았다. 진상이 새어나가 박해한 증거가 발견되는 것이 두려운 안후이성 부성장은 현장에서 반드시 화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정법위원회, 정법간부도 반드시 화장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화장할 때 대량의 경찰들이 화장터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며, 각급 정부는 가족에게 밖으로 ‘기밀’을 누설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했다.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13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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