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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양구이바오

양구이바오(楊桂寶), 남, 56세, 허베이(河北) 성 화이라이(懷來) 현 베이신바오(北辛堡) 진 베이신바오 촌 사람. 1998년에 대법 수련을 시작하고 1999년 7월 20일에 베이징에 법을 수호하러 가는 도중에 잡혀왔다. 1999년 12월 그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10개월 가량 불법수감 되었다. 석방되어 10일 후인 2000년 10월 24일 양구이바오는 같은 향에 있는 수련생 8명과 함께 다시 베이징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그들은 길목에서 지키는 경찰을 피해 산을 넘고, 수 많은 고생을 겪어 3일 동안 100여 킬로미터를 걸어 27일 새벽 베이징에 도착하여 직접 천안문광장으로 대법을 실증하러 갔다. 천안문 광장에서 그들은 함께 “파룬따파는 좋다! 파룬따파는 좋다!”를 외쳤다. 양구이바오는 다시 체포되어 불법으로 베이징 쉬안우(宣武)구 수감소에 갇혔다. 베이신바오 향 파출소 소장 류위펑(劉玉峰)은 그에게서 2,000위안을 갈취해 갔다.

수감소 경찰들은 양구이바오를 교대로 구타하고 힘이 빠지자, 그를 감방에 밀어 넣고 죄수를 시켜 또 구타하게 했다.

27일 저녁 장자커우(張家口) 화이라이(懷來) 현 베이신바오 향 파출소는 상처투성이인 양구이바오를 데려갔다. 그리고 또 주먹으로 치고, 구두발로 차며, 전기곤봉으로 그가 숨이 곧 넘어갈 때까지 때리고 나서야 13번 감방에 던져 넣었다. 경찰서장 쉬웨이궈(徐維國)는 현장에 와서 “이번에는 그들을 사람으로 보면 안 된다. 그들에게 이불을 주지 말고 죽으면 뒤쪽 구덩이에 던져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경찰은 감방에 있던 모든 이불을 걷어갔다.

양구이바오는 체포된 뒤 화이라이 현 수감소에서 잔혹한 박해를 받고 2001년 1월에 박해로 사망했다. 시신을 강제로 화장됐고 사망 시 체중이 30여 kg 밖에 되지 않았다.

화이라이 수감소에서 석방된 수련생 말로는 2001년 1월 양구이바오가 수련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견지하고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아 화이라이 현 수감소에서 6일 단식한 후인 2001년 1월 14일에 소금물을 주입당하여 치사했다고 증언했다.

법의는 소금물이 기도로 들어가 질식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15일 오전 가족에게 양 씨가 감옥에서 밥을 먹지 않아 굶어 죽었다고 통지했다. 상세한 내막을 아는 어느 한 수련생은 경찰서에서 다른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양구이바오 집에는 아직 4명이 수련하고 있기 때문에 경찰은 그의 집으로 또 사람을 잡으러 왔다. 가족은 극력으로 맞서며 잡혀가지 않았다.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1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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