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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위롄춘

위롄춘(于蓮春), 여, 49세, 산둥(山東) 화넝더저우(華能德州) 발전소 퇴직 직원. 파룬궁(法輪功) 수련을 견지하여 발전소 공장장 겸 당위원회 서기 궈량(郭良), 부서기 가오전즈(高振之), 경찰부문의 소수 사악한 악도의 기획하에 음력 1999년 12월 28일 산둥여자제2노동수용소에서 3년 수용되었다. 2000년 12월 위롄춘은 지난 여자노동수용소 4대대에서 박해받아 사망했다.

2000년 12월 22일, 수용소는 위롄춘이 사망했다고 알렸다. 사실 그녀는 18일에 이미 박해로 사망했다.

위롄춘은 생전에 성격이 활달하고 남을 잘 도왔으며 신체가 건강했다. 그녀를 알거나 그녀와 접촉해본 사람은 모두 그녀는 마음이 선량하고 품격이 고상한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사람이 수용소에 들어간 지 1년도 안되어 박해로 사망했다.

위롄춘은 1998년 5월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여 연공을 통해 몸과 마음이 혜택을받았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중국에서는 전면적으로 파룬궁을 탄압하는 정치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번 정치운동은 폭력진압과 결합하여 수천 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난을 겪었다. 7월 20일 이후 매체는 파룬궁을 비방하고 모함하여 많은 사람을 속였다. 위롄춘은 대법을 수호하기 위해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러 99년 10월 딸과 함께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10월 26일 베이징으로부터 압송되어왔다. 공장은 그녀와 딸을 구류하고 1개월 가량 감시했다. 나중에 그녀가 강하게 항의하여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에 온 후 경찰은 3개월간 그녀의 집 앞에서 감시하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그 기간 발전소의 사악한 세력의 대표 궈X와 가오XX는 여러 번 그녀를 수용소로 보내려고 계획했다. 나중에 궈X와 가오XX는 경찰과 결탁하고 2000년 구정 전에 ‘사회질서를 교란’했다며 위롄춘을 지난(濟南) 시 노동수용소에 강제로 보냈다.

구정은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지만 위롄춘네는 공장의 사악한 악인이 위롄춘을 납치해가는 바람에 딸만 집에 남게 되었다. 딸은 노동수용소에 여러 번 면회하러 갔으나 모두 수용소에 의해 거절당했고 나중에 친척들의 항의 하에서도 딸은 1년 동안 어머니를 두 번밖에 만나보지 못했다. 게다가 딸과 어머니가 만날 때 노동수용소는 모녀가 담화하는 것을 금지했다. 2000년 11월 초의 어느 하루, 위롄춘의 딸은 노동수용소에 갇혀있는 어머니에게 옷을 가져다 주러 갔다가, 어머니가 앙상하게 여위어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손도 내밀지 못하며, 팔을 들지 못하고 걷는 것이 힘들며 다리를 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노동수용소의 사악한 경찰이 그녀를 박해한 결과다. 그렇지 않다면 신체가 건강하고, 성격이 활달하던 사람이 어떻게 1년도 되지 않아 이 정도로 됐겠는가?

딸은 어머니가 노동수용소에서 이토록 잔혹한 박해를 받은 것을 보고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녀는 선량한 사람이 더는 어머니와 같은 박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법의 한 개 입자로서 사악을 질식시키고 세인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리러 12월 중순에 혼자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딸은 불행하게도 다시 사악한 악도에게 박해받았다. 딸이 입고간 솜옷이 그들에 의해 찢겨졌다. 딸은 다 찢겨진 스웨터에, 보온 속옷 하의를 입고 발에는 신도 신지 못한 체 베이징에서 더저우로 압송되어 왔다. 이렇게 되었지만 발전소의 지도자와 경찰은 그녀를 동정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의 딸을 더저우 수감소로 보냈다.

추운 날씨에 그녀는 수감소에서 옷과 이불마저 없었다. 동수들은 이 일을 알고 그녀에게 옷과 솜이불을 가져다 주었다. 사악한 악도는 그녀의 어머니가 구타로 사망한 것을 알면서 딸을 12월 23일 왕촌(王村) 노동수용소에 보냈다. 위롄춘의 딸은 아직까지도 어머니가 사망한 사실을 모른다.

현재 지난 노동수용소의 사악한 악도는 “위롄춘의 시신은 친척만이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친척은 현재까지도 시신을 보지 못했다. 발전소의 지도자는 위롄춘이 잔혹한 박해를 받아 사망했다는 소식을 봉쇄하며 소문을 내지 못하게 했다.

위롄춘은 2000년 초 산둥제1여자수용소 4대대에 납치되어 불법으로 3년 형을 받았다. 당시 대장은 양안룽(楊安榮)이다. 그녀는 2000년 9월 베이징 ‘교육단’에 속아 대법을 의심했었으나 나중에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고 큰 부담을 안고 살았다. 2000년 12월 말 사악한 악도는 그녀의 세뇌가 철저하게 되지 않았다며 그녀를 흉악한 경찰(이하 악경) 덩원잉(鄧文英) 팀에 보냈다. 실내 침대머리에는 위롄춘: 48세. 주소: 더저우 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서 한번도 휴식한 적이 없고 줄곧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있어야 하는 작은 독방에 갇혀있었다. 당시 지난의 장위링(張玉玲) 이위안(沂源)의 천리리(陳麗麗)、 웨이팡(濰坊)의 잉샤(英霞)、 싱샤오링(邢曉玲)、 르자오(日照)의 쑤리리(蘇麗麗)、 옌타이(煙台)의 마성춘(馬勝春)、 둥아(東阿)의 저우춘잉(週春英)이 교대로 그녀를 박해했다. 그들은 새벽 4시경에 나가서 저녁 12시에야 돌아왔다. 어느날 저녁, 위롄춘은 작은 독방에서 끌려나왔다. 그녀는 바닥에서 근 2시간 엎드려 있다가 일어나려 힘을 썼지만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녀의 옷을 젖히고 보니 가슴에 피 멍 자국이 가득했다. 나중에 박해에 참여했던 한 사람은 악경의 사주 하에 그들은 위롄춘이 대법을 철저히 배반하게 하려고 줄곧 주먹, 발, 걸상으로 그녀를 때렸다며 나중에는 걸상마저 망가졌다고 밝혔다. 위롄춘이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한 그날 저녁 그녀는 박해로 사망했다.

이튿날 노동수용소는 사망자와 박해에 참여한 사람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겼다. 박해자 일부는 왕촌과 지난수감소로 전근되었다. 위롄춘의 침대머리에 있던 이력카드도 그날부터 사라졌다. 악경은 또 가족이 그녀를 데려갔다고 거짓말했다. 나중에 가족이 맞이해 간 것은 그녀의 골수함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량한 사람들이여! 위롄춘은 정의와 진리, 인류에게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 줄 이 우주대법을 위해 자신의 선혈로 중생이 깨닫는 것을 바꾸었으며, 자신의 생명으로 사악의 마비된 인심을 호소했다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 그녀는 모든 박해받아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처럼 우주대법이 비방을 받을 때 선뜻 나서서 대법진상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우리의 동수 위롄춘은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았으며, 사악을 완전히 폭로시켰다. 비록 사악에게 박해받아 인간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위덕은 순금처럼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

‘선에는 선한 보응이 있고, 악에는 악한 보응이 있다’. 이것은 우주의 변치않는 진리다. 사악을 제거하는 그날은 끝내 다가올 것이다! 하늘의 그물은 거대하고 성글지만 빠뜨리지 않는다. 대법은 모든 생명을 가늠하고 있으며 역사는 반드시 그들의 죄악을 심판할 것이다!

우리는 사악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은 동수를 잃은 것에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위춘롄이 사악에게 굴복하지 않아 건립한 위덕이 자랑스럽다!

산둥 더저우 화루(華魯)발전소 지도자 성명과 친척전화:

1、궈량,2432010(사무실),2433010(집), 천샤오핑(陳小平, 부인)

2、가오전즈, 2432013(사무실)2433013(집), 류융샹(劉永香, 부인),가오옌(高燕, 딸) 집전화: 2433188,가오밍(高明, 아들)

3、 천원자(陳文佳)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11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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