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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양웨이둥

양웨이둥(楊偉東), 남, 54세, 정단급(正團級)전업간부, 전 창사(長沙) 야오싸이(要塞) 병원 원장. 1990년 전업한 후 웨이팡(濰坊)시 웨이청(濰城)구 약품 검사소 검역사로 일했다. 양웨이둥은 여러 번 모범당원, 직장 당대표로 여러 차례 선발되었다. 그는 열심히 일하고 다른 사람을 돕기 좋아하여 좋은 사람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법을 얻다

양웨이둥은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심한 심장병, 기관지염, 담막수(膽膜水)등 여러 치명적인 질병을 앓았다. 매일 저녁에 누워서 잠을 자지 못했는데, 누우면 호흡이 곤란하고 숨이 찼기 때문에 앉아서 자거나 방안에서 걸어 다녀야 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이런 질병은 치료받지도 않았는데 다 사라졌다. 양웨이둥은 가족과 수련생에게 이 말을 할 때마다 감격해 하며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명이 다했을 것이다. 대법이 나의 생명을 연장시켰고 진정한 광명대도를 나에게 알려주었다”고 경의를 표했다.

햇볕이 들지 않는 감방

7.20 이후 파룬궁(法輪功)은 정부에 의해 불법조직으로 규정되었다. 양웨이둥은 11월 19일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11월 23일 새벽 웨이청 난관(南關) 파출소에 잡혀왔다. 그는 좁은 복도같이 생긴 습기 차고, 유리가 없는 창문이 있기는 하지만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갇혔다. 그날은 보슬비가 내려 체감기온이 영하 8℃에 달했고, 그가 갇힌 실내는 바깥보다 기온이 조금 더 낮았다. 난관파출소는 그들을 나가지 못하게 하고 대소변을 모두 방안에서 보게 했는데 남녀를 함께 가둬놓아 대소변을 볼 때 모두 매우 곤경에 처했다.

유리 없는 창문으로 찬바람이 계속 들어왔고, 시멘트 바닥은 차디차고, 파출소는 이불을 주지 않았다……. 이런 악조건 하에서 양웨이둥은 몸이 허약해져 호흡곤란증세가 나타났고, 잠을 자지 못했으며, 그리 먹지도 못하면서 기침만 해댔다. 양은 이런 곳에서 이틀을 보내고 11월 24일 회사(위생국, 병원)에서 웨이청구치소에 보내 구류시켰다.

병 중에 구류를 당하다

구치소에 온 후 양웨이둥의 건강은 더욱 나빠졌다. 걷는 것도 힘들어 했고 밤새 잠도 자지 못했으며 묽은 죽만 몇 번 먹었고, 매일 기침을 심하게 하면서 누우면 호흡을 하지 못했다. 한번은 구치소에서 개인 사진을 찍었는데 양웨둥이 내려오지 못해 침대 위에서 찍었다. 구치소에서는 그의 건강에 대해서 몇 번 물어보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구조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정신병원에 갇혀 병세가 악화

양웨이둥은 놀라운 의지로 15일간의 구류를 마쳤다. 하지만 회사(위생국)에서는 12월 18일 그를 강제로 구(區) 캉푸병원(康復醫院) 정신과에 보냈다. 그리고 양웨이둥이 법공부하고 연공하지 못하도록 전문적으로 그를 지키는 사람도 파견했다. 이때 양웨이둥은 간복수에 하체 부종이 있었으며, 의사도 보고 놀라 치유하지도 못했는데 아직도 그를 집에 보내지 않는가 하고 말했다. 양웨이둥의 아들은 이 병원 정신과 의사다. 거기에 아들 사무실이 양웨이둥의 입원실과 마주보고 있어 아들은 사람들이 비웃는 대상이 되었다. 이로 인해 몇 년 열애 끝에 결혼을 준비하던 여자친구도 아들과 헤어졌다.

마카오가 중국으로 반환된 후, 병원에서는 양웨이둥이 곧 운명할 것 같자 가족에게 데려가게 했다. 며칠 지난 1999년 12월 25일 저녁에 양웨이둥은 사망했다.

그 후, 난관파출소는 이 일을 교재로 활용하면서 파룬궁을 모함하고자 했고, 그가 파룬궁을 수련하여 사망했다는 말을 했다.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4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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