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베이(河北) 대법제자 쌍연
【밍후이왕 2009년11월14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들 안녕하십니까!
우리 부부는 1996년에 법을 얻었다. 가족들과 친척들을 수련하도록 이끌어 가정은 화목해졌고, 경지도 승화되었고, 많은 질병이 나도 모르는 사이 없어져서 대법의 초상적임과 신기함에 깊이 감동되었다. 그런데 1999년 ‘7.20’ 후 중공사당은 미친 뜻이 대법제자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수련환경은 전에 없는 파괴를 당했고 날조, 모함, 포위공격, 감시, 납치, 붙잡아 가두는 등 한 때 하늘땅을 뒤덮을 뜻한 사악한 기염이 곳곳에 충만 되었다. 대법에 대한 모함을 제지하고 대법이 청백하다는 공정한 말을 하기 위하여 부인은 몇 번 북경에 가서 상급기관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 했다. 그래서 구치소와 세뇌반에 불법 압송되고, 노임이 강제적으로 줄고, 친척들에게 연루되었다. 박해는 부단히 강화되고 직장에서 집까지 사악의 압력은 숨쉬기조차 힘들게 하여 중공사당의 잔인하고 추악함을 사실대로 폭로하였다.
대법이 모함당하는 것을 상급기관에 가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제지되고, 중생들이 무지하게 기편당하고 독해 받는 것을 보고 우리의 마음은 칼로 베이는 듯 아팠다. 어떻게 대법과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오겠는가? 어떻게 독해 받은 중생을 구할 수 있겠는가? 전에 없는 마난 중에 우리는 눈물을 닦고 법공부를 견지하고 동수들과 교류하고 담론하여, 1년 후 박해를 반대하고 중생을 구하는 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다. 10년 동안 3천 여 날 밤낮으로 진상을 알리고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것을 견지하였다. 마음을 동요시키는 위험과 마난을 겪는 중에 넘어지고 승화하며 날이 갈수록 성숙되었으며, 내심에서부터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이 금빛 찬란한 진정한 대도라는 것을 체득하였다.
1. 걸어 나오는 과정에서 부단히 집착을 발견하고 자신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속담에 “모든 일은 시작이 어렵다” 고 하였다. 사악이 창궐한 환경에서 걸어 나온 매 일보는 준엄한 고험이다. 처음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가장 큰 장애는 두려운 마음이었다. 나와 부인은 어렸을 때부터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았기에 사악의 검은 구름이 성시를 제압하는 정황에서 걸어 나와 자료를 배포한다는 것은 예전 같으면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 대낮에는 사악이 볼까봐 두려워 깊은 밤 2, 3시에 사람들이 깊은 잠이 들었을 때를 선택하였는데 그래도 마음이 긴장되어 마치 북을 치는 것 같았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에는 다리가 떨려 말을 듣지 않았고 약간의 동정이나 바깥의 택시의 불빛을 보아도 심장이 마구 뛰어 반나절이 지나도 안정을 찾지 못하였으며 마치 사면팔방이 모두 사악의 눈인 것 같았다.
지금 생각만 해도 낯이 뜨거운 것은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지문을 검사하면 발견 될까봐 두려워 장갑을 끼었고 특히 종이는 여러 번 닦아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하였다. 겨울에는 종종 큰 마스크를 쓰고 분장하여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에 몇 번은 차를 타고 와서 사람들이 비교적 적은 공터 옆에서 자료를 깨끗한 곳으로 던지고는 재빨리 맞은편 길로 달려가서 걸었다. 정정당당한 일인데 마치 ‘도적’처럼 하였고, 담이 작아 후둘 후둘 떨었다. 이것이 어디 대법제자에게 있어야 할 심태인가? 사부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너무 중한 대법제자들이여, 내가 당신들을 이끌고 가는 것은 신의 길이다. 그러나 일부 수련생들은 사람의 관념을 고수하고 있다.”(《정법 중에서 정념을 갖고 사람의 마음을 갖지 말라》)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부끄럽다.
두려운 마음은 마치 산처럼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것을 막았으나 우리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사악의 환경에서 피한다면 근본적으로 제고를 가져올 수 없기에 진상자료 배포를 견지하는 중에 부단히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고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우리는 적게 배포하던 데로부터 많이 배포하고, 비교적 익숙한 지방부터 배포하던 데로부터 점차 수량과 범위를 확대하였으며, 밤에만 배포하던 데로부터 대낮에 길에서도, 채소를 살 때에도 배포하였다. 출발하기 전에는 발정념을 하여 사악의 교란을 깨끗이 제거하고, 돌아온 후에는 법공부를 통하여 자신의 부족을 제 때에 찾아 부단히 총결하여 제고하였다. 소위 긴장한 ‘민감일’ 일수록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나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였다. 사악의 교란을 만났을 때에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정념으로 대하였다.
작년 여름 어느 날 밤 농촌에서 진상표어를 다 부치자마자 경찰차가 전조등을 밝게 켜고 질풍같이 달려왔는데 나와 거리가 몇 미터밖에 안 되었을 때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마치 설 것처럼 라이트로 나를 비추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경찰차를 마주보고 걸어갔으며 옆을 돌아서 계속하여 갈 길을 걸었다. 그 차는 일 분 간 정지하고는 떠나갔다. 2008년 사당이 올림픽 기간에 곳곳에서 큰 적이 내려온 것처럼 버스, 기차역에 가방을 검사하는 전문기기를 설치하여 큰 가방이나 작은 가방, 돈지갑마저 빼놓지 않았다. 나는 부인과 함께 예전과 마찬가지로 밖에 나가 진상자료를 배포하였다. 버스에 오르려 하는데 공안이 한사람씩 가방을 검사하고 있었다. 부인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나에게 차에 오르겠냐고 물었다. 나는 정념이 충족하여 이미 나왔으니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따라 함께 차에 올랐다. 공안 옆을 지날 때 그녀는 “아이, 당신 가방!”이라고 소리쳤다. 나는 걸으면서 발정념을 하며 못들은 것처럼 뒤쪽으로 걸어가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공안은 내가 그를 상관하지 않는 것을 보았으나 뒤에서 손님들이 계속 올라오니 어찌할 방법이 없어 그만 두었다. 이렇게 우리는 정념으로 사람의 마음을 대체하면서 부단히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앴고, 진상은 갈수록 순조로웠다.
두려움을 점차 돌파한 후 우리를 저애한 다른 하나의 관은 ‘이익관’ 이었다. 몇 년 전 나와 부인의 직장은 경기가 좋지 않아 문을 닫게 되었다. 우리 둘은 실업당하여 매월 500여원의 생활비로 가족을 돌봐야 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대학에 다니는 비용이 들었고, 매월 일부분의 돈으로 진상자료를 만들었다. 밖에 나가 진상자료를 배포하자면 일상적으로 차를 타야 하는데 많을 때에는 한번에 20, 30원, 한 달에 100원을 넘게 쓰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생활은 매우 간고하여 돈을 계산하고 또 계산해도 모자라는 것 같았다. 어떤 때에는 마음이 평형 되지 않아서 지출이 너무 많다고 여기고 가까운 곳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면 돈과 힘을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법공부를 통해 생활이 어려운 것은 핑계이고 실질은 매우 깊은 이익지심이 숨어 있음을 알았다. 이 집착은 돈이 충족할 때에는 표현되지 않지만 돈이 부족할 때에는 나타난다. 돈이 정말로 부족하다면 무엇 때문에 사지 않아도 될 물건도 사며, 무엇 때문에 생활에서 절약해야 할 곳에는 절약하기를 원치 않으며, 무엇 때문에 이러한 것에 돈을 쓸 때에는 계산하지 않고, 진상자료를 만들고 중생구도에 돈을 쓸 때에는 따지는가? 이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돈에 집착함은, 재물을 구하는 거짓 수련이라, 가르침(敎)을 파괴하고 법(法)을 파괴하여 백년을 헛되게 보냄이니, 부처수련이 아니다.”(《정진요지》〈수련자 금기(修者忌)〉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말씀은 거울처럼 나의 마음을 비추어 주었다.
후에 일부 동수의 일은 우리를 깊이 깨닫게 했다. 한 노동수는 퇴직한 후 매월 300여원을 타는데도 200원을 진상자료에 지원하고 있다. 한 젊은 여동수는 남편이 매월 2000원의 생활비를 주므로 아주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돈을 진상자료를 제작하는데 사용하고 아이와 함께 일상적으로 죽과 절인채소를 먹는다. 사부님의 법에 대조하고, 동수들의 행동에서 우리는 견정히 이익지심을 없애버리려고 결심하였으며, 돈을 더욱 합리적이고 적당하게 안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하여 생활에 영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진상자료를 제작하는 자금도 매우 좋은 보장을 얻게 되었다.
진상을 말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길어지고, 배포하는 자료가 많아지거나, 진상 알리기를 잘했을 때 가장 쉽게 나타나는 것은 환희심과 과시심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기는 잘하고, 대단하며, 심지어 매번 ‘원정’에서 돌아올 때는 항상 기쁘고 흥미 있게 진상에 대하여 말하며, 동수들의 몇 마디 칭찬에 더욱 기뻐하며, 자신의 마음을 실증하는데, 들떠도 깨닫지 못하였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이런 과시심리는 곳곳마다 모두 체현될 수 있으며, 좋은 일을 하면서도 과시심리가 체현될 수 있다.”(《전법륜》) 후에 동수들과 담론 하는 중에 적지 않은 동수들이 산이 있어도 나타내지 않고 물이 있어도 흘리지 않는 것처럼 많은 진상 알리기를 해도 시종 묵묵히 수련하며 종래로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것을 보고 우리의 부족을 보아내게 되었다. 사실 우리가 얼마를 하던지 모두 표면의 조그마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실질은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신다. 환희심, 과시심은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이며 낡은 우주의 표현인 사를 위하고 나를 위하는 것이다. 경각심을 높이지 않으면 아주 쉽게 사악에게 틈을 주게 된다. 이러한 인식이 있은 후 우리는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고 다시는 마음대로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담론하지 않았고 담론한다 해도 부족함에 대하여 하니 진상을 할 때 마음은 더욱 순결하고 효과도 좋았다.
많은 동수들은 부부동수가 진상을 하는 것은 가장 ‘합당’ 하다고 생각하고 부부동수 사이에도 협조상에 곤란한 문제가 있음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진상자료 배포에 일정한 방법과 경험이 있은 후에는 항상 각자의 견해를 고집하며, 지역을 선택하거나, 길을 어떻게 가며, 자료를 놓는 지역이 합당한가 하는 문제에서 원망하거나 쟁론이 나타난다. 심지어 서로 잘 협조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몇 번 우리부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녀는 이쪽으로 가야한다고 하고 나는 저쪽으로 가야한다면서 누구도 복종하려 하지 않아 결국 각자 말한 방향으로 갈라서 길을 갔다. 먼 길을 걸어간 다음에야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시 돌아왔다. 또 어떤 지방에서 나는 자료를 이렇게 배포해야 한다고 말하고 부인은 찬성하지 않아 자기의 생각대로 배포하니 나는 화가 나서 그녀를 상관하지 않고 한 길만 고려하고 빠른 속도로 배포하며 나아가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갔다가 이것이 연공인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재빨리 방향을 돌렸다.
이런 경험은 우리에게 자아에 대한 집착과, 자아를 실증하는 더러운 마음을 보게 하였다. 동수들과 함께 나가 자료를 배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며 부부동수는 더욱 배합을 잘해야 하는데, 이러한 강렬한 집착을 놓으려 하지 않으니 얼마나 무서운가! 사악에게 틈을 주는 것이 아닌가? 절대로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나와 부인은 사부님의 “개인이 어떻게 인식하든지 막론하고 모두 마음을 내려놓고 협력해야 한다.”(《프랑스법회에게》)는 가르침을 학습하였다. 진상을 할 때에는 교류와 협력을 하고, 옳고 그름을 쟁론하지 말며, 오직 일방이 제시한 방법대로 행동하며, 다른 일방은 무조건 원용하고, 과정에서 원망하지 말고 저촉하지 말며,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합당하지 않은 면이 있더라도 다른 일방은 적극적으로 도와 메우고, 정말로 틀린 곳이 있으면 돌아온 후 교류하여 고치기로 약속하였다. 이렇게 하니 비틀거리지 않았고 많이 순조로웠다.
심성이 제고되니 관념 역시 바뀌었다. 부동한 지방으로 갈 때에는 흔히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미개척 지역’ 이지만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모로 쳐도 바로 맞는다’고 생각하였다. 어떤 때에는 걷다가 예정한 길이 아닐 때에는 다른 지방으로 가며, 곧 그곳의 중생들을 모두 구해야 하는데 이것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작년 가을 우리는 한 산골 농가의 식물원을 지나게 되었는데 사면은 몇 리의 밭이었다. 밭 안에 몇 호의 인가가 보여서 자료를 배포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식물원은 철망과 나무로 삼엄하게 둘러싸여 주위를 따라 많이 걸어도 입구를 찾지 못하였다. 부인은 불평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시 앞으로 걸어가 보자”고 말했다. 그 결과 정말로 철망에서 사람이 드나들 만한 구멍을 발견했다. 들어가서 자료를 놓자마자 뒤에서 개가 짖기 시작하여 원래의 길로 돌아왔다. 내가 “혹시 여기에 구멍이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는데 가까운 나무 옆에 정말로 다른 구멍이 있었다.
요컨대 걸어 나와 진상을 하는 것은 진정으로 수련승화의 과정이며, 사람의 마음을 없애는 과정이며, 걸어 나오지 않으면 많은 집착심을 발견할 수 없고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체득하였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 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라고 말씀하셨으며 우리는 실천 중에서 진실하게 이러한 단맛을 보았다.
2. 간고한 수련의 난 중에서 점차적으로 수련자의 자비와 지혜를 수련해내다.
사부님께서는 “사회에서 접촉한 일체 사람은 모두 진상을 똑바로 밝혀줄 대상이므로 진상을 똑바로 밝히는 가운데 체현해낸 것은 대법제자의 자비요 세상 사람의 구도(救度)이다.”(《북유럽법회 전체 수련생에게》)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해야 한다. 우리 지역은 대법제자가 많고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비율이 높으므로 중복 배포하는 것을 피하고, 진상자료가 더욱 큰 작용을 발휘하게 하고, 조건이 되는 동수들은 부단히 범위를 확대하여 진상자료가 비교적 적은 산간지역과 ‘미개척’ 지방에 배포해야 한다. 몇 년 전에 이것을 생각했으나 생각은 쉬워도 행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는 지방과 가는 곳마다 배포해야 한다. 나갈 때는 대부분 진상자료를 가지고 다니며 상점, 학교, 기업, 회사, 호텔, 전시회, 역, 건축현장, 농촌, 채소기지, 병원, 주택단지, 재래시장 등 중생이 있는 곳은 모두 배포한다. 업무관련, 출퇴근길, 물건을 구입할 때, 집사람과 외출할 때, 모두 충분히 이용할 수 있으며 길에서 만난 행인과 사람이 비교적 많은 지방에 발정념을 하여 그들이 진상을 명백히 아는 것을 저애하는 사악을 제거하고, 일찍 삼퇴하여 좋은 미래가 있기를 원하며, 연분이 있는 사람들이 구도되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왕래 범위에 제한이 있어서 많은 지방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특히 적지 않은 산간 농촌의 이름마저도 모르고 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으므로 어디에 가서 알아보아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곳에는 우리가 구도해야 할 중생이 얼마나 많은가? 중생을 구도하자면 고생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방법을 깊이 모색하면서 찾았다. 시에는 많은 버스가 있으므로 종점까지 타고 가면서 주택단지, 마을, 회사 등을 모두 기억하고, 가서 배포한다.
우리는 주로 버스나 택시 종점을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기점으로 삼는다. 배포 중에 새로운 지방을 발견하면 새로운 지방을 기점으로 삼고, 새로운 지방을 또 발견하면 기타 촌마을로 가는 길이 있으므로 길을 따라 모색하면서, 이렇게 하나씩 모르는 지방을 계속 발견하여 진상배포의 범위는 갈수록 넓어진다. 어떤 산간지역은 매우 외지므로 차가 다니지 않아 아주 많이 걷는다. 산을 만나면 산을 넘고, 물을 만나면 강을 넘었다. 산을 넘고 고개를 지나 걸어가다가 길을 잃을 때도 있었으며, 밭을 뚫고 지나갈 때도 있었고, 사람의 흔적이 없는 깊은 삼림에서 길을 찾을 헤맬 때도 있었는데, 길을 찾았을 때 온 몸에 거미줄과 나뭇잎이 묻어있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었다. 여름, 가을에는 이슬이 옷에 담뿍 스며있다.
익숙하지 않은 지방에 갔을 때에는 먼 길을 걸어야 마을이 보이기도 하고, 차를 타는 곳을 찾을 줄 모르며, 심지어 방향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고 걸었다. 산간지역은 조금만 길을 잘못 들어도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금년 여름, 우리는 외진 농촌에 와서 산 하나를 넘어가려 생각하였다. 나무가 많고 경사도 비교적 느슨하여 그리 힘을 들이지 않았는데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보니 산의 저쪽은 험한 골짜기였고 거의 90도 경사였는데 그 아래를 바라보니 깊은 산 옆에는 한 갈래의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럽고 아찔하였다. 우리는 풀을 밟으며 바위 옆의 나무를 잡고 조금씩 아래로 움직여 내려갔다. 산중턱까지 왔을 때 거의 판판한 큰 바위여서 몸을 바위에 딱 붙이고 아래로 움직여야만 했는데 아슬아슬하여 땀이 흠뻑 났는데 이렇게 아슬아슬한 것은 영화에서만 보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힘들어도 지나가야 한다.
진상을 하는 과정에서 더욱 많은 중생을 찾았으며, 범위도 갈수록 넓어지고, 지리를 모르던 사람이 지도에서도 나오지 않는 여러 지역, 회사, 농촌, 길도 알게 되어 ‘살아있는 지도’가 되었다.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중에 생각지 못하던 고생을 아주 많이 봉착하는데 안일함이 있으면 잘 할 수 없다. 외진 산간에 가서 자료를 배포하므로 매일 많은 길을 걸어야 하며 10리, 20리는 ‘항상 밥 먹듯’ 하였다. 여름에는 태양이 뜨거워 조금만 걸으면 온몸은 땀투성이고, 겨울에는 강한 산바람이 두꺼운 옷을 꿰뚫는다. 반나절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실 때도 많으며, 갑자기 기상변화를 만나 속수무책일 때도 있었다.
한번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하늘에 먹구름이 돌아 우산을 가지고 진상자료 배포를 견지하였다. 절반정도 했을 때 하늘에서는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며 큰 비가 내렸는데 삽시간에 반 자 깊이의 물이 고였다. 우리는 비를 무릎 쓰고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다 배포한 후 우산을 쓴 머리와 가슴 외에는 모두 물이 뚝뚝 떨어졌다. 우리는 서로의 젖은 모양을 보고 웃었다. 중생구도를 위한 고생은 마땅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은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7개 농촌마을을 걷고 산을 넘어 돌아올 때 좀 늦었는데 돌아오는 차가 없어 앞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하루를 발로만 뛰어다녀 매우 피로하여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척 힘이 들었다. 부인의 발바닥에는 수포가 몇 개 생겨서 한 발자국을 걸을 때마다 가슴이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나도 발걸음이 무거웠고 작은 돌을 하나 밟는 것도 아주 참기 어려웠다. 우리는 서로 고무하며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 (《전법륜》)와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거늘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으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홍음2》〈정념정행〉)를 외웠다. 그날 우리가 오전 9시경에 떠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밤 8시 반이었다. 차에 앉은 시간을 제외하고 9시간 내내 걸었다.
이전에 우리는 진상자료를 각자 배포했다. 이것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될 수 있는 한 길을 묻는 것 외에는 길에서 동수들과 접촉하지 않는다. 2002년, 중생구도의 긴박함에 따라 이런 형식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처음에는 핸드폰으로 짧은 글을 보내고, 길에서 동수를 만나면 진상 알리기와 진상자료 배포를 함께 하였다. 진상자료를 배포할 수 있는 데는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중간에 휴식할 때에는 핸드폰 문자메세지로 진상을 보내고, 다른 사람은 행인을 만나면 될수록 그와 진상을 말했다. 이렇게 하자 사람을 구하는 범위는 더욱 컸다. 금년 봄에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돌아올 때 50여 세의 농촌부인을 만났는데 적극적으로 말을 해서 우리는 연분이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와 한담을 하고 한편으로 진상을 말해 주었는데 그녀는 매우 즐겨 들었다. 그녀가 앞에 있는 한 마을의 부녀대장이고 당원이라는 것을 알고 선의로 그녀에게 사당에서 나올 것을 권고하니 그녀는 받아들였고 밝은 미래를 선택 하였다. 아울러 우리를 그녀의 집에 손님으로 청하였으며 정성들여 접대하였다. 후에 우리는 션윈CD를 그녀 집에 보내주었는데 그녀는 매우 기쁘게 받았다.
진상자료로 중생구도 하는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우리는 대법이 준 지혜로 더욱 아름답게 진상자료를 제작하였고 포장도 갈수록 잘했다. 아름다운 축복의 도안도 하고, 비와 먼지를 막는 ‘새 장식’을 씌워 진상자료를 붙여 비와 먼지를 막았다. 마치 ‘정품’ 같아 중생들이 좋아하였다. 색깔의 변화를 충분히 응용하여 천기변화, 계절변화, 시간차, 지형지모 등의 지식으로 진상자료가 더욱 빨리, 더욱 많이 중생의 손에 들어가 효과가 좋았다.
3. 사부님의 보호 하에 험난한 관을 뚫고 성숙해지다
사당의 잔혹한 박해 환경 속에서 진상자료 배포를 견지하는 것은 많은 모험을 뚫고 나와야 한다. 특무들이 따르고, 악인들이 검거하고, 납치하고, 개떼가 추격하고 물며, 생각 밖의 고난 등을 지나왔는데 기쁘게도 사부님의 보호 하에 순조롭게 걸어 나왔다.
작년 7월 우리는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나갔다. 차에 앉아 한 정거장도 가지 못했는데 한 청년이 갑자기 핸드폰을 도난당했다고 소리치면서 핸드폰에는 중요한 소식이 있다고 하였다. 수표원은 차를 정지시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경찰이 오면 한 사람씩 수색을 한다고 말했다. 우리 가방에는 진상자료가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에 부딪친 것은 뜻밖이었다. 나와 부인은 눈을 맞추고 나서 발정념하여 사악의 교란을 제거하고, 사부님께서 가지하여 주기를 청했다. 차가 가지 않는 동안 끊임없이 했다. 40여분 후 경찰차가 와서 당사자만 불러 차 밖에서 물어보고, 손을 저어 차를 가게 하여 위험에서 벗어났다.
09년 4월, 부인과 한 지방에 진상자료를 배포하려 막 도착했는데 사악의 감시 안에 들어왔음을 느꼈다. 뒤에서 사람이 따르고 앞에서 사람이 막으며 매우 긴장되었다. 부인과 걸으면서 발정념을 하고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 줄 것을 청하면서 지혜롭게 뒤에서 따르는 자를 피했다. 그리고 대담하게 앞에서 가로막는 악인의 옆으로 걸어 안전한 지방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 하였다. 특히 잊혀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악인에게 검거되어 불법 납치되었을 때, 끊임없이 발정념으로 사악의 박해와 안배를 제거하였다. 사부님의 보호와 동수들 정념의 지지로 우리는 그 날로 빠져나왔다. 몇 차례의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사부님의 “제자들 정념이 족하거니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2》〈사도은〉)을 깊히 체득하고 깨달게 하였는데, 이 말씀은 아주 정확하다.
위험을 만나면 사부님께서 정심으로 제자를 보호해 주시고, 해결하지 못하는 난과 고난을 만날 때에도 자상하게 보호해 주신다. 일 년 전 여름 우리는 먼 곳에서 진상을 하고 돌아가는데 버스는 이미 한 시간 전에 끝났다. 정류소에서 걱정하고 있을 때 갑자기 버스 한 대가 왔는데 손을 흔들자 차는 멈췄으며 우리가 상황을 설명하니 운전사는 흔쾌히 차에 오르라고 했으며 우리 집 근처 버스정류소까지 몰고 왔다. 지난 후에 이것은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특수한 버스’ 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한 번은 진상자료를 배포한 후 옥수수 밭을 가로질러 큰 길로 가려고 했는데 이 옥수수이 너무나 커서 사방 10여리나 될 줄 미처 몰랐다. 아무리 돌아도 나올 수 없었고 길이 없었다. 주위를 살펴봐도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우리는 방법이 없어서 사부님과 정신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옥수수 밭에서 자전거를 탄 한 학생이 들썩거리며 오고 있었다. 우리가 길을 잃은 것을 알고는 따라오라고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리고는 옥수수 밭을 벗어날 때까지 안내했다.
더욱 감동스러운 것은, 작년 가을에 자료를 배포한 후에 돌아 올 때 강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매우 넓었다. 물은 무릎 아래로 깊지 않았으나 매우 차가웠으며 많은 돌이 깔려있었다. 우리가 난처해하면서 사부님을 생각했는데 반나절이 지나도 사람을 보지 못하는 이런 곳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왔다. 우리는 강만 건너게 해달라고 청했고 운전수는 흔쾌히 허락하였다. 강을 건넌 후 차는 서지 않고 계속 달렸다. 우리가 의아해 할 때 운전수는 “이 길은 걷기 힘들므로 정거장까지 태워주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8, 9리를 달려서 버스정류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우리는 감사하며 그에게 ‘파룬따파 하오’를 기억하라고 하였다. 운전수는 감개무량하게 머리를 끄덕이며 웃으면서 연속하여 “기억했습니다! 기억했습니다!” 라고 하였다.
진상을 알림을 견지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감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생들이 진상을 기대하고 바라는 것도 감수하였다. 많은 경우 낯선 곳에 가도 사람들이 마치 친인처럼 우리를 부르며, 길을 물으면 아주 상세하게 알려주어 ‘억울한 길’을 걷지 않게 하려 한다. 어떤 때 먼 산간마을에 가면 작은 개들도 멀리서 달려와 발아래에서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저으면서 환영을 하며 우리들을 고무하게 한다.
10년 동안 3천여 날 밤낮으로 마음을 뒤흔드는 만리의 험난 중에서 사부님의 가호와 대법의 가르침으로 우리는 많은 산과 물, 낯선 곳을 밟고 다니며 조사정법, 구도중생이 생각 외로 간고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의 가호가 없었다면 우리는 수련의 길에서 오늘까지 걸어 올 수 없었을 것이며, 수련의 진정한 내포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위대하고 자비로운 사존님!
두 손 허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14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대륙인터넷법회글 >6회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14/2118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