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료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13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은 노수련생으로서 10여년의 수련 중, 법속에서 제고한 기쁨도 있었고 관을 넘지 못한 고뇌도 있었다. 하지만 사부님과 대법이 준 은혜의 홍대함을 더 많이 감수하였다. 여기에 나는 사부님과 여러 동수님께 자신의 수련경력을 회보하려 하며 그 과정에서 나의 차이점을 찾고 빨리 제고하고자 한다.
어릴 때 나는 기공 열풍 속에서, 만약 높게 수련한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전수한다면 꼭 잘 배우겠다는 환상을 가졌었다. 커서는 집 환경이 좋아 온종일 먹고 마시고 놀 줄 밖에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를 부러워하였다. 그러나 먹고 마시고 놀고 나면 마음속은 텅 비어 있었으며 다른 사람이 감촉할 수 없는 쓰라림이 있었고 피곤을 느꼈다. 후에 친척의 소개로 대법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금방 들어섰을 때는 아무 것도 몰랐으며 오직 대법이 좋아 연마하려는 것뿐이었다. 그때 우리 지역에는 법 학습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고 연공장소도 많아 일이 없으면 곧 연공장에 가서 파룬궁을 배웠다. 점점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변하였다는 것을 느꼈고 명리심이 아주 많은 나는 능히 이것을 담담하게 보았으며, 이전의 그런 마음속의 쓰라림은 없어졌고 바뀐 것은 충실과 평정이었다. 나는 대법이 나를 개변하였다는 것을 인식하였으며 마음속으로 잘 수련하겠다고 결심하였다. 어느 하루 저녁에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몸이 맹렬하게 한번 진동하더니 무수한 법륜(파룬)이 나의 몸에서 에돌았으며 동시에 엄지발가락을 빠르게 휘감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나에게 좋은 것을 넣어주시는 것임을 알았으며, 수련의 신심을 더욱 증강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일이 없으면 법 학습을 하였는데 하루는 내가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당신으로 하여금 반본귀진하여 되돌아가게 하는 데 있다.”(《전법륜》)고 하신 단락을 학습할 때, 곧 다른 세계로 들어갔고 아주 미묘하였으며 그 당시에는 명예, 이익, 재산은 나와 아주 먼 것이었다. 이 상태는 몇 분간 지속되다가 없어졌다. 나는 내가 걷는 길은 반본귀진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이 길이 얼마나 간고하고 험하더라도 끝까지 걸어 나아가려고 한다.
홍법(洪法) 중에서 대법의 신기함을 견증(見證)하다
나는 젊은 남자 수련생이며 법을 얻었을 때에는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시간도 많았고 정력도 있었다. 나는 우리 지역의 보도원을 따라가서 홍법하고 연공하였으며 그때마다 매번 ‘파룬따파 소개자료’와『논어』를 걸었다. 한번은 시장 앞에서 연공하였는데 그곳에는 대법소개와『논어』를 걸 자리가 없었다. 걸려면 철근으로 고리를 만들어서 벽 틈새에 박아야 하였다. 아버지의 공장에 가서 철근을 불에 달구어서 철고리를 만들었으며 다 만든 후 나는 장갑을 끼고 철고리를 들고서 (자리를) 떴는데 근방 불에 달군 철근임을 깜박 잊었었다. 장갑이 타서 손가락이 들어났는데도 손가락은 조금도 따가운 감각이 없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보호하여 주신 것임을 알았으며 처음으로 대법의 신기함을 견증하였다.
마난
“7.20” 이후의 하늘과 땅을 뒤엎을 듯한 사악의 선전도 나의 대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을 전혀 동요하지는 못하였다. 우리 지역은 향진 마을이어서 법을 배우는 사람이 많았지만 소식은 오히려 아주 봉폐되어 있었기에 사악이 요언을 날조하고 선전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후에 사부님의 경문 《심자명》과《원만을 향해 나가자》가 우리 지역에 전해온 후 마땅히 북경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몇몇 동수들은 의논 끝에 그날 저녁으로 곧 북경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우리는 전국 각지의 동수들이 모두 북경에 상방하러 간다는 것을 몰랐으며 아울러 각 곳의 역전에서도 북경으로 상방하러 가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몰랐었다. 단체로 북경행 차표를 살 때 우리를 경비실로 데려가서 북경에 가는 목적을 묻고는 당지의 파출소에 우리를 넘겼는데 15일 구류를 당하게 되었다 .
설후 초3일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안은 솥이 끓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당지에서 얼마간 명망이 있었고 또 가족 중에는 종래로 감옥에 들어간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의 꾸지람, 어머니의 눈물, 형제의 원망, 학교 동료들의 간절한 권고 앞에서 마치도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자기의 인생목적을 알고 있기에 정의 교란 앞에서 종일 사부님의 법을 외웠다. “나는 속인의 정(情) 속에 있지 않으며 세간(世間) 명리에 대한 집착이 없다.”(《시드니법회 설법 》)그러나 어떤 때는 눈물을 참지 못하였다. 반달 후에 당지의 파출소에서는 법 학습하였던 수련생을 찾아서 북경에 가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게 하였으며 그렇지 않으면 15일간 구류한다고 하였다. 그래도 나와 다른 한 동수는 재차 북경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방법을)바꿔 자동차를 탔는데 비록 역전에 각종 검문초소가 있었지만 우리는 사부님의 보호 하에 순조롭게 북경에 도착하였다. 광장으로 가는 통로에서 경찰에게 발견되어 붙들렸고 당지에 돌아와 15일 구류를 당하였다.
사부님의 신경문이 발표됨에 따라 당지 동수들은 대법 중에서 제고하였으며 모두 부단히 북경의 상급기관에 가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요구하였다. 나는 신중히 생각하여 세 번째로 북경에 상방하러 가기로 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아내에게 작별을 고하고 한 동수와 또 북경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이전의 두 차례 상방처럼 비장한 심정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았고 마음도 아주 평온하였다. 우리는 순조롭게 북경에 도착하였는데 늦가을의 북경광장은 유람객이 아주 적었다. 나와 동수는 천안문성루에 올라가서 “파룬따파는 좋다”는 현수막을 높이 들고 두 바퀴를 돌았다. 나는 다른 동수가 사람들에게 붙들려 가는 것을 보고 곧 현수막을 거두고 떠났다.
이튿날 직장에 돌아가니 경찰이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지역에는 법 학습하는 사람이 많아 북경에 가는 사람도 많았는데 당지의 파출소에서는 사람을 파견하여 북경에서 장기 거주하면서 감시하였고 그들은 나를 알아보았다. 나는 세 번째로 불법 납치당해 시 교양원에 들어가 박해 당하였다.
교양원에서 폭력적이고 처참한 전화(轉化)를 겪었는데 그 당시 남자숙소에는 살을 전기충격기로 지지는 냄새와 악경들의 고함소리가 가득하였다. 복도에는 동수가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것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고 나 역시 복도에서 죄수들에게 주먹과 발로 얻어맞았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중공 경찰은 파룬궁수련생이 수련을 포기·전화하도록 죄수들을 시켜 고문함) 후에 사부님의 설법을 보고서야 비로소 사부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감당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죄수가 전화(轉化)하겠는가고 물었을 때 내가 전화하지 않겠다고 하자 그들은 수갑으로 나의 손목을 꽉 채워서(조여서) 나의 손은 곧 검게 변하였다 .
그때 나는 손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대법을 위하여 생명도 바칠 수 있는데 손 하나가 대수로운가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하자 한 경찰이 와서 죄수에게 수갑을 느슨하게 하라고 하면서 팔이 잘못 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조금 지나 한 경찰이 전기충격기를 목에다 대고 감전시켜 타는 냄새가 났지만 나의 머리속에는 사부님의 법 “생사를 내려놓으면 당신은 신이고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면 당신은 사람이다.”(《미국법회설법》)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그 경찰은 나를 10분 정도 감전시키더니 내게 전화(轉化)하겠는가 하지 않겠는가 하고 물었고, 내가 전화하지 않겠다고 말하자 그는 전기몽둥이를 가지고 나가 버렸다. 악경들은 이렇게 우리를 박해하였다. 처음에는 나도 이 광경에 놀랐는데 종래로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동수가 박해를 감당하지 못하여 마음에 없는 전화를 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냉정히 자신의 수련경력을 회고해 봤는데 대법은 진실하며, 사부님은 위대하시다. 나는 전화할 수 없으며, 감히 전화할 수도 없다. 사부님의 경문《정론》을 한번 외웠고, 대법을 배반하는 끝장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바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믿음으로 나는 이번 마난에서 뛰쳐나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로서 마난이 올 때, 정말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나 또는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되도록 마음을 놓는다면, 족히 관(關)을 넘을 수 있다. 더 끝없이 끌고 내려간다면, 만약 心性(씬씽) 또는 행위에 기타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사악한 마(魔)가 당신들이 방임(放任)한 틈을 탄 것이다.”(《정진요지》〈도법〉)나중에 나는 엄격하게 관리하는 반에 보내졌으나 경찰과 죄인들은 나를 더는 어찌하지 못하였으며 나에 대하여는 정중하였다. 3년 후 정념으로 이 마굴을 벗어났다.
진상을 말하다.
내가 돌아온 3일후에 학교에 출근하였는데, 원래 교장은 이미 바뀌었다. 새로 온 교장이 공식적으로 나를 접대하였으며 내게 그 안에서의 정황을 묻기에 박해받던 일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교장의 표정은 아주 엄숙하였으며 자기는 무신론자라고 말하였다. 그는 나의 신앙에 대하여 반대하지 않으며 내가 학생 속에서 파룬따파를 말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였다. 나는 웃으며 말하지 않았다. 교장은 나를 학교 물자관리업무를 맡겨 잡일을 하게 하였다.
나는 2003년 말에 돌아왔는데 그때 정법형세는 아주 큰 변화가 발생하였다. 사부님의 설법을 학습하고서 나는 이번 박해는 낡은 세력이 강압적으로 참가한 것이며, 사부님께서는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당시에 파룬궁에 대한 문건을 찾아내, 교장을 찾아가서 임금을 요구하였더니 상급에 문의한 후에 나에게 회답하겠다고 말하였다. 며칠 지나 교장은 나를 사무실로 불러 말하기를 그 안에서(교양원에서) 많은 고생을 하였으니 학교에서 천원을 보상해 준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내가 3년이나 출근하지 않았기에 봉급을 다 탈수는 없으며 70%만 준다고 하면서 내가 동의하면 지금 재무실에 가서 돈을 타가라고 하였다. 나는 교장에게 돈을 얼마를 주던 나는 따지지 않으며 필경 내가 출근하지 않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나는 박해를 당한 것이라고 말하자 교장은 자기를 난처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렇게 나는 70%의 봉급을 돌려받았다. 어떤 동료는 내가 봉급을 돌려받은 것을 보고 나와 교장은 무슨 관계인가고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 사부님께서는 “대법을 배우는 자체가 복이 있는 것인데 어찌 잃을 수 있겠는가?”(《북미 제1기 법회에서의 설법》)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해주었다.
학교에서는 나로 하여금 학생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학생을 직접 상대하지 못하게 하였지만 어쨌든 학교에는 1천 5,6백 명의 학생이 있기에 쉬는 시간, 체육시간, 점심시간 등 어디에서나 학생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나는 학생에게 내가 교양원에서 혹독한 형벌로 박해받은 경력을 말하였다. 학생은 듣고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몇몇 학생에게 말을 해도 다 그러했는데 맞지(올바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 자세히 생각해보니 내가 말한 진상 내용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은 어쨌거나 미성년이고 게다가 중공이 학생을 세뇌시켰기에 이런 피비린내 나는 박해에 대하여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에게 대법의 아름다음과 천안문 분신자살의 거짓을 말하였는데 학생들은 듣기 좋아하였고 받아들일 수도 있었는데 이후에 3퇴를 말할 수 있는 기초를 다져놓았다.
2004년 말에 하늘을 가르고 세상에 나온『9평 공산당』과 사부님의 경문《세간을 향해 파룬(法輪)을 돌리노라》가 발표된 후, 정법(正法)은 또 하나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였고, 대법제자는 3퇴를 말하며 사람을 구하기 시작하였다. 처음 3퇴는 교사와 물을 긷는 몇 명의 학생부터 시작하였다. 우리 학교에서는 액화가스로 물을 끓이는데 물이 끓지 않으면 거기서 기다려야 하였다. 나는 이 시간을 이용하여 학생에게 3퇴를 말하였으며, 사부님께서는 나를 고무 격려해 주셔서 첫 번에 두 학생을 3퇴시켰고 마음도 아주 기뻤다. 이후에는 곧 2명, 3명, 10명, 8명씩 3퇴시켰다. 나의 기억에 제일 많을 때는 하루에 32명을 3퇴시켰다.
이전에 대법 진상을 알고 있던 학생은 말만 하면 퇴출(공산당 조직에 탈퇴)하였으며, 진상을 들어보지 못한 학생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말해야하였다. 나중에 3퇴학생이 많아지자 다시 3퇴를 말할 때는 먼저 학생에게 이미 퇴출시켜주었는지를 물어 보아야 했다. 어떤 학생은 말하기를 내가 모두 N번 말해 주었다고 하였으며, 어떤 학생은 말하기를 초1학년 때 당신이 이미 퇴출시켜 주었다고 하였다. 진상을 아는 학생들은 내가 그들의 학급에 가서 강의하여 줄 것을 요청하며 말하기를 “우리 반은 오후 몇째 시간이 자습시간이므로 제가 망을 보겠으니 선생님이 다시 우리에게 말하여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나는 학교의 주간계획에 유의하기 시작하여 교사가 어느 날 어느 때 수업이 집중됐는지를 보고 이 시간을 이용하여 교실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대법진상과 3퇴하여 목숨을 건지라고 말해주었다. 교실에서는 직접 학생들에게 3퇴시키지 않고 이후 그들을 만나면 선생님이(내가) 그날 말했던 것을 이해할 수 있는지를 묻고 알아들은 학생에게는 가명을 지어주어 퇴출하게 하였다. 아마 나의 심태와 관계가 있을 것인데 어떤 반은 강의가 끝나면 열렬한 박수 소리가 울렸으며, 어떤 반은 아무 소리 없이 아주 조용하였다.
3퇴 강의도 교란 받을 때가 있었다. 어느 하루 한 학급의 반장이 나를 찾아와 내가 그 반의 모모에게 준 진상호신부가 아주 곱다면서 그 반의 모든 학생들에게 다 줄 것을 요청하였다. 나는 그에게 그 반이 몇 명이냐고 묻고서 이튿날 이때쯤 여기에 와서 가져가라고 하였다. 이튿날 그 반장은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겠다며 가지고 갔는데 학생들은 너의 것이 곱다 거니 저애 것이 곱다 거니 하면서 곧 떠들어 댔다. 이때 그들의 반주임이 들어왔으며 반장의 손에 그 많은 진상호신부를 쥐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으며, 걷어서 학년주임에게 바쳤고 학년주임은 교장에게 바쳤다.
오후에 교장은 나를 그의 사무실로 불렀다. 내가 들어가니 교장은 호신부를 책상위에 메치면서 펄펄뛰면서 아우성쳤다. “이것이 무슨 짓인가를 말하시오, 똑똑히 말 못하면 교육위원회에 고발하겠소, 당신은 내가 이 노릇을(교장을) 해먹으라는 거요 아니면 하지 말라는 거요!” 내가 형세를 보니 낡은 세력에게 통제 당함이 틀림없었다. 나는 발정념하여 교장을 조종하는 배후의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하였으며, 사부님께 제자를 가지하여 줄 것을 구하였다. 동시에 자신의 어디에 누락이 있어 사악에게 틈을 주었는가를 찾았다. 나는 줄곧 발정념하였고 눈으로는 교장을 정시하였는데, 교장은 두 시간 넘게 날뛰었으며 그 동안에 몇 번이나 전화를 걸려고 하였다.
마지막에 나는 평온하게 교장에게 말하였다 “교장님 내가 만약에 나의 이 생명을 소중히 여겼다면 그 검은 굴에서 살아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나의 행위가 당신의 일을 그렇게 크게 시끄럽게 하였다는 것을 나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이후에는 주의하겠습니다.” 교장은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누그러졌으며 나에게 이후에는 주의하고 그를 시끄럽게 만들지 말라고 말한 후 돌아가라고 하였다. 나는 떠날 때 교장에게 책상 위에 놓인 호신부를 돌려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교장은 잠시 그곳에 두라고 하였다.
이튿날, 다시 학생에게 진상을 말할 때 사상압력이 매우 컸으며 만약에 교장에게 알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말하지 않으면 또 자신의 사전의 서약을 어떻게 체현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전법륜》)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최후에 나는 큰 결심을 내렸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긴요하다. 나는 또 학생들에게 3퇴를 말하였다. 나는 그날 16명을 퇴출한 것으로 기억된다. 교장사무실에 있는 호신부는 나는 교장이 회의하러 간 틈에 가져와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반의 반주임은 진상을 알고 3퇴하였으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였다. 우리 학교에는 몇 명의 대법제자가 있는데 우리는 상호 협력하여 아주 빠른 시간 내에 100명이 넘는 교원 중 90%를 3퇴하게 하였다.
사당의 물품을 청리하다.
대기원에서 사당의 서적과 깃발 등을 청리해야 한다는 제안이 발표된 후 나는 학교의 이러한 물품에 유의하였다. 우리 학교는 도서관을 새로 세웠는데 도서를 등기하기 전에 나는 업무상의 편리한 여건을 이용하여 도서 중에서 ‘마레(馬列)’, ‘모택동 선집,’ ‘등소평 선집’ 등을 가져다가 태웠다. 공산당 청년단위원회 지부에 나는 늘 찾아가서 사령의 책과 실물(實物)을 보면 사람이 없을 때 가져다가 처리해 버렸다. 교장의 책상위에 있는 자그마한 당기(黨旗)와 혈기(血旗)를 가져다가 처리해 버렸는데 교장은 나를 찾지도 않았다. 학교의 문서실에 선진 당지부(先進黨支部)라는 비단 깃발이 걸려 있는 것을 내가 처리해 버린 다음 들어가 보니 많이 환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당의 물품을 처리할 때 한번은 놀란 일이 있었는데 위험은 없었다. 교장이 남방지역을 고찰하고 온 후 각 교실의 흑판 위에다가 교훈을 붙였고, 중간은 사당의 혈기였는데 나는 정념을 발하여 혈기 뒤의 사령이 학생과 교원을 독해하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학생들의 체육수업과 실험수업시간을 이용하여 교실에 사람이 없을 때 긴 걸레대로 혈기를 찔러서 망가뜨려버렸다. 교장이 어느 하루 각 교실을 한번 돌아보더니 혈기가 모두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재정관리 주임에게 남방에서 한 필을 보내오도록 하라고 시켰다.
나는 사람이 없을 때 혈기를 가져다가 태워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급기관에서 검사를 온다고 하였다. 교장은 주임더러 사람을 구해 혈기를 붙이라고 하였으나 아무리 찾아도 혈기를 찾지 못하였는데 교장은 화가 나서 전화로 경찰을 불러 조사하게 하였다. 나는 경찰이 온 것을 보자 곧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발정념을 하였으며 동시에 동수들에게 전화 걸어 나를 도와 발정념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재정관리 주임은 몇 번이나 전화해서 나를 찾았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이튿날 교장은 나를 찾아 또 화를 냈는데 나의 실에서 내가 미처 처리하지 못해 책상 뒤에 숨겨두었던 한 장의 구겨진 혈기를 발견하였기 때문이었다.
교장은 내가 어제 오후에 어딜 갔으며 아울러 혈기는 어디로 가져갔는가 하고 물었으며 내가 그를 망신 주려고 검사 오기를 기다려 혈기를 가져갔다고 하였다. 나는 지난번처럼 똑바로 교장을 정시하면서 그에게 정념을 발하였으며, 두 시간이 지난 후 교장에게 말하였다 ; “교장님이 내가 가져갔다고 하는데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곧 모함입니다. 우리가 대법수련을 하는 것은 모두 사람들에게 좋은 것이며 나도 당신이 좋기를 희망합니다. 어떻게 내가 당신을 망신시키려 하겠습니까?” 교장은 근거도 없는데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듣고 나서 한참 침묵하더니 나더러 가라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사부님의 보호 하에 또 하나의 관을 넘었다.
자료를 하다.
내가 금방 돌아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지역의 협조인 동수가 찾아와서 나에게 한 떨기 꽃(자료점)을 피울 수 있겠는가고 물었다. 나는 문제가 없다면서 필요한 돈을 동수에게 주었다. 동수는 나를 도와 컴퓨터와 프린터를 사왔고 나는 또 고속 데이터 통신을 설치하였는데 이렇게 나의 한 떨기 작은 꽃이 곧 피어나게 되었다. 나는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현성(縣城)의 컴퓨터 학습반에 가서 컴퓨터 하드웨어, 기계장치, 시스템 설치 등을 배웠다. 내가 컴퓨터 기술을 배웠기에 기본적으로 고장이 없었으며, 작은 문제는 내가 직접 해결하였다.
후에 사부님의 안배로 또 컴퓨터에 능숙한 수련생을 만나게 되어 기술이 더욱 완벽해졌다. 우리 지역에는 큰 자료점이 하나 있었는데 나는 약간 보조하는 정도였다. 후에 큰 점은 없어졌고, 당지의 한 개 자료점은 파괴되었기 때문에 나는 마땅히 여러 사람에게 자료를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지역에는 동수가 많아 바쁠 때에는 한 대의 컴퓨터로 4대의 프린트를 연결해도 바빴는데 후에 연달아 몇 개의 작은 자료점이 생겨나 작업량이 많이 줄게 되었다. 나는 매일 밍후이왕을 보기 때문에 동수들의 경험과 교훈을 접하였으며 돈을 쓰든, 물건을 사용하든 모두 매우 바르게 걸어왔고 자료의 내용도 모두 밍후이를 위주로 하였으며 자료점을 줄곧 아주 안정되게 꾸려 나아갔다.
자료를 하는 과정에서 허다하게 대법의 신기를 견증하기도 하였다. 우리 지역의 동수는 대부분 농민이고 수입이 아주 적었기에 나와 아내의 노임으로만 자료점을 운영하였다. 어느 하루 나는 인터넷으로 나와 아내의 주택적립금이 몇 만원이나 있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이 돈을 꺼내서 자료를 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사부님은 나의 이 마음을 보시고 나를 도와주셨다. 우연한 기회에 나는 형수의 동창이 시 주택적립금 사무실에서 주요 업무를 담당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형수의 동창을 통해 다른 사람은 집을 사야만 찾을 수 있는 돈을 나는 몇 분 사이에 해결하였으며 약간의 생활필수품을 산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료하는 데에다 사용하였다.
협조하다
그 당시 기술이 있는 동수는 기본적으로 모두가 협조인 이었으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수와의 기술상의 일은 문제가 없었지만 동수가 법속에 있지 않고 혹은 자신의 안전에 주의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의 안전에도 주의하지 않을 때에는 엄격히 지적하였다. 어떤 동수는 능히 받아들였으며 그렇지 못하는 동수는 가는 곳마다 내가 자기를 어떻게 지적하였다고 말하였다. 이 말이 내게도 전해져왔는데 내가 그를 말한 것이 틀리지 않았는데 그는 왜 이러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후에 알게 되었는바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수련은 자신을 수련해야 하며, 안을 향해 닦아야 하며,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 》)내가 말한 것은 틀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동수를 말하는 과정에서 자신를 닦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나는 늘 말했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치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이야기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정진요지》〈청성〉)나는 단지 동수를 지적하였을 뿐 동수와 함께 법속에서 제고하지 않았고 과정 중에서 자기의 말투에서도 선한 마음을 체현하지 못하였으며 말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닦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협조과정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기를 닦는 것을 배웠다. 그 가운데 사부님의 이 한 구절의 법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제고는 버리는 것이지 얻는 것이 아니다.”(《각 지역 설법》〈미국 플로리다법회 설법〉)
교훈
2006년 말, 나와 아내는 사랑스러운 딸이 있게 되었다. 수련이 느슨해짐에 따라 3퇴를 말하는 것이 이전보다 못하였고 자신도 아주 고뇌하였다. 후에 또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의 큰 관을 넘었다.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큰 관을 모두 넘었는데 수련 중의 무슨 관인들 넘지 못하겠는가? 자신은 속으로 기뻐하였다. 당시에 정진하지 않았으며 이 사상은 법속에 있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사부님께서는《각 지역 설법2》〈미국 플로리다법회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나는 예전에 말했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 발생된 일체의 일들은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 촉성(促成)된 것이다.”
동수에게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의 사상이 바르지 못했기에 함께 연루되어 할 수없이 집을 떠나 몇 달 지내게 되었다. 이 몇 달 동안에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 공부하고 법을 외웠고 일이 생긴 원인을 찾았으며 긴 시간 발정념하여 나와 동수를 박해하는 일체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해체하였다. 나의 심태가 아주 평온해졌다고 느꼈을 때 나는 학교로 돌아왔다. 사후에 교장은 나를 만나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 학교가 당신의 학교가 되었소. 당신이 교양원에 갇혔을 때에도 나는 당신에게 노임을 주었으며, 당신이 이 몇 달 동안 출근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또 노임을 주었소. 나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교장님 당신이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는 것은 복이 있는 것입니다. 교장은 웃으면서 말없이 지나갔다.
수련의 비바람 속에서 경력은 많고도 많은데 쓰려면 며칠 써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수련의 마지막 단계가 어떠하든지 관계없이, 나는 꼭 용맹정진할 것이며, 사부님을 따라서 집으로 돌아가겠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 동수들 감사합니다!
(밍후이왕 제6기 중국 대륙대법제자 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대륙인터넷법회글 >6회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13/2118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