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부미(不迷)
【밍후이왕 2009년 11월 10일】나는 1997년 당시 14살 때 수련을 시작 하여 12년간의 수련노정을 걸어왔다.
중학교 2학년 때 수련을 시작 했으며, 그때가 제일 가뿐하고 유쾌한 시기였다. 매일 아침 날이 밝기 전 엄마 아빠와 함께 집에서 멀지않은 연공장에서 5장 공법을 연마한 후 학교에 갔고, 하학 후 숙제를 다 하고는 저녁에 연공장에서 함께 법공부를 했다. 어릴 때 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나는 늙기도 전에 먼저 쇠약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수련을 시작한 후 신체에 병이 없는 미묘함을 체험했고, 사람이 되는 진정한 목적을 알게 되었으며, 매일 모두는 아주 충실했고 생활에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나는 한 동안 만화영화보기를 즐겼고 심지어 밥을 먹으면서도 보았기에, 엄마가 여러 번 타일렀지만 이런 버릇을 쉽게 고치지 못했다. 수련은 집착심을 없애는 것이며 꼬마제자도 예외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알면서도 줄곧 집착심을 버리지 못하자 만화영화로 나를 점오하여 깨우쳐 주셨다.
한 번은 하교하여 집에 돌아와 역시 텔레비전을 켜고 만화영화 ‘성두사성시(圣斗士星矢)’를 보았는데, 그 프로에서 육도윤회 내용을 영상으로 묘사하여 상당한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 당시, 사람이 죽으면 육도윤회를 한다고 생각하니 온 몸이 춥고 떨려, 즉시 주방에 있는 엄마한테로 달려가 육도윤회 상황을 말 해 주었다. 엄마는 “이것은 의도적으로 네게 보인 것이다. 네가 삼계에 미련을 갖는가, 아니면 사부님을 따라 진정 집으로 돌아가려는가를 보는 것이다.” 라고 말 했다. 나는 슬그머니 사부님의 초상화 앞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꼬마제자의 수련상태는 비록 성인제자들과 구별이 있지만, 집착심은 같은 것이다. 한 번은 방학이 끝나 학교에 간 후 나는 매우 힘들었다. 와글와글 떠드는 교실 안은 나를 불쾌하게 했다. 그것은 방학기간에 법공부와 연공을 하며 조용한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복잡한 환경을 접하게 되여 환경적 분위기의 간격이 너무 컸던 것이다. 수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도 정서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워 겨우 숙제를 한 후 《전법륜》을 들고 보아도 들어가지 않고, 저녁에 좌선상태도 종전 보다 못했다.
부모가 모두 동수이므로 매번 나의 부족 점을 지적해 줬지만, 나는 모두 구실을 찾아서 ‘이 일은 이 것 때문이고, 저 일은 저 것 때문 이라고’ 생각 하면서 모두 외부에서 원인을 찾았고 밖으로 내 밀었다. 후에야 비로소 수련의 과정은 부단히 집착을 버리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서 조용히 수련하는 것은 법리에서 제고하는 것이고, ‘이 관을 넘을 수 있는가, 공이 자랄 수 있는가’ 는 심성으로 가늠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복잡한 환경에 직면하여 나의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는데, 사실은 심성이 따라가지 못한데서 조성된 것이었다. 심태를 바로 조정한 후, 주위의 환경을 보니 하나의 수련 장소로 변했고, 일체가 모두 유순했다.
선생님 그리고 학우들과 내왕하고 접촉 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의 말과 행동에 주의했다. 한 번은 시험을 치를 때, 나의 왼쪽에 앉은 급우가 내게 쪽지를 주면서 오른 쪽에 앉아있는 급우에게 전하라고 무언의 부탁을 했지만 나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시험이 끝난 후, 그 두 급우가 뒤에서 내 흉을 보는 소리를 들었다. 그 때 나는 《전법륜》중의 수련인이 관을 넘던 구절이 생각났다. ‘책에서도 그 수련 인이 뒤를 돌아보니, 그 흉을 보는 사람의 흉악스러운 모양이 보였는데, 나의 이 두 급우들은 어떤 모양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슬그머니 뒤돌아 쳐다보았더니 그들의 얼굴표정은 정말 흉악스러웠다. 물론 나는 그들과 다투지 않고 웃고 말았다. 나는 이전에는 이런 상황은 어른들에게만 나타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번 경우에 나더러 ‘꼬마제자도 수련과정에서 심성을 제고하고 같을 것을 지불해야하며, 속인의 이 큰 염색 항아리의 복잡한 환경에서 수련할 때 고인(高人)이 나타난다.’ 는 것을 인식했다. 수련 인으로서 시시각각 자신의 마음을 수련하여야만 비로소 신속히 정진할 수 있다.
수능시험 후, 나는 인생의 선택에 직면했다. 나의 부모는 당 지역 ‘610’의 감시를 받는 중점 대상이며, ‘610’도 부모를 전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나를 별도로 전화시키려고 했다. 친척들도 비록 진상은 알고 있지만, 그들은 공산당이 이렇게 사악하니 나의 미래에 대해 나쁜 작용을 일으킬 것이므로 나를 대학에 보내어 공부하게 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당시 나의 아빠와 엄마가 경영하는 점포는 이미 문을 닫았고, 여러 번 불법 수감되었으므로 영업할 수 없었다. 그런 상태로 몇 년이 지나니 가정에 남은 돈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자 고모가 나의 대학공부를 위해 학비를 책임지겠다고 했다.
지금의 학교는 학생들의 교육에 대해 실패다. 학교에는 기본상 전통적인 진정한 도덕 교육이 없고, 소질을 제고한다는 소위 ‘소질의 개념‘은 이미 기형적이다. 내가 중고교 단계에서 배운 것은 모두 사당 문화의 것이고, 역사책은 모두 가짜이고, 정치 책은 모두 뜯어 맞춘 것이다. 그때 정치선생님도 “교과서의 이런 정치내용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 하고 또 “우리 현실과 너무 멀리 떨어졌으므로 우리는 높은 점수를 받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많은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고 했다. 이런 것들을 배우는 것은 다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고, 일종 더욱 많은 독해를 받을 뿐이다.
나는 아버지를 도와 계속해서 아버지 사업을 선택하려고 했으나, 친척 친구들은 모두 반대하면서, “이 사회주의는 대학졸업장이 없으면 생존하기 힘들다.” 고 만류 했다. 아빠 엄마는 내게, “네가 판단해서 선택하라.”고 했다. 그들은 내가 어리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내 자신의 길을 내 스스로 선택해서 걸을 수 있다고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환경은 당신 스스로 창조한 것이며 역시 제고하는 관건이다.” 라고 말씀 하셨다. 또 “꼭 이 환경을 잃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사회에서 접촉하는 것은 모두 속인이며 아울러 인류도덕이 급속히 미끄러져 내려온 후의 속인이라, 이 큰 염색항아리는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물결치는 대로 표류하게 할 뿐이다.”《정진요지(환경)》
나는 자신의 정황을 보면 대학에 다니는데 합당하지 않고, 대학의 교육과 공부는 모두 나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이론에 불과 하고, 참다운 실천이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엄마 아빠와 함께 수련하면 느슨해 지거나, 누락 될 때 엄마 아빠의 협조와 독촉(督促)이 있어, 나의 수련에 대해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므로 이런 환경을 파괴할 수 없었다. 나는 대학 입학통지서를 찢어버렸다. 친척들은 나의 이런 결연한 의지를 보고 모두 한 숨을 쉬면서도 내 의사에 따랐다.
이 과정에서 나는 매우 깊은 체험이 있다. 많은 대법제자들이 처음 정진을 잘 하던 자신의 꼬마제자들을 명문대학에 보낸 후, 그들 꼬마제자들이 정법의 형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왜 이러한가? 물론 대다수 대학생동수들은 잘 했다. 사실 이 역시 자신의 상황에 따라 보아야 한다. 가장들이 모두 정력을 다하여 자신의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또 그 무슨 대학원을 다니게 하는데, 속인이 이렇게 하는 것을 지나치게 나무랄 것은 없지만, 대법제자로서 응당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인류사회 중의 유명인사, 학자, 각 분야의 전문가를 사람들은 아주 위대하다고 여기나, 사실은 모두 아주 보잘것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속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식 역시 단지 속인사회의 현대과학이 인식한 그런 조그마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정진요지(무엇이 지혜인가)》에서 말씀하셨다. 대학공부를 하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이것은 속인사회의 일종 형식이고 일종 사업이다. 되돌아 나의 선택을 보아도 ‘나는 정확 했으며, 나의 행동으로 법을 실증하고, 나의 선택이 정확하다는 것을 실증했다.’ 나와 함께 졸업한 많은 동창들은 모두 대학원을 졸업 했고, 몇 명은 성적이 상당히 좋은 친구도 있지만, 이 몇 년간 모두 고생스럽게 직장을 찾으며 모두 순리롭지 못하고, 또 몇 명은 월급이 매우 낮은 직장을 선택했고 또 몇 명은 계속 연구생공부를 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미래가 어떠할지 근본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이 창업할 능력이 없으면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몇 년간의 실천과 노력을 거쳐 실용기술을 습득하여, 이미 장사가 잘 되어 점포가 크게 되었다. 한 대법제자로서 만약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고 출세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 된 것이다. 환경은 자신이 개척한 것이며 매개 대법제자의 상황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모두 자신의 수련환경이 파괴되지 않도록 보증해야 한다. 유리걸식하는 많은 동수들을 생각하고 비교해 보면, 자신이 좋은 환경에서 수련할 수 있는 것으로 하여 정말 너무나 행복하다.
사악의 박해가 시작된 후, 자료 점이 곳곳에서 피어나자, 우리 가정도 그중의 한 송이 꽃이 되었다. 진상자료를 만드는 과정도 수련과정이다. 설비와 소모품을 구입하고, 진상자료를 만들고, 또 자료를 전하고 자료를 배포하는 것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을 회억하고 서로 부딪히는 길이다.
처음 설비와 소모품을 살 때 한 동수와 함께 갔는데, 아무것도 몰라 상점에 가서 어떤 물건을 살피면, 점원이 “무엇에 사용할 것이냐?” 하고 물어도, 모호하게 대답 하며 두려운 마음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또 자료점 운영이 처음은 쉽지 않았는데, 아빠와 엄마가 컴퓨터를 몰랐고 나도 배운 적 없었으므로 서로 협조 하면서 배웠다. 그 기간에 마난에 봉착했고 좌절도 겪었으나, 사부님의 가호로 걸어왔다.
우리 지역과 또 자료점이 많지않은 한 다른 지역과 자료를 교환하여 항목을 상호 보충해 갔다. 한 번은 시내버스를 타고 타 지역 자료점을 향해 가던 중 운전기사가 나더러 차에서 내리라고 하면서, “이차의 노선이 바뀌었으니, 길 가에서 기다리다가 목적지로 가는 차를 타라고” 알려 주었다. 차에서 내린지 얼마 안 되어 그 차가 왔다. 당시 나는 이차는 마치 나를 위해 준비한 것 같았다. 그 갈아 탄 버스 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역에 서있는 경찰차 두 대를 보았다.
자료 점에 도착하니 문이 열려 있고 옷가지들이 온통 바닥에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지만, 당시 나는 알아채지 못 하고 문에 들어서니 동수가 없었고, 설비도 없었으며, 집기들이 넘어져 있는 등 난잡했다. 나는 그때서야 알게 됐다. ‘자료 점이 파괴되었구나!’ 나는 즉시 되돌아 나왔다. 자료 점은 2층집에 세를 얻은 것이라 나는 발정념을 하면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계단에는 오르내리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나는 두려움도 없었고, 어떻게 그 집을 나왔는지 나의 머리는 아무런 개념도 없이 계속 발정념을 하면서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자신을 노출 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돈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의 버스를 탔다. 차에서 옆에 앉은 남자가 전화를 걸고 있었는데 그의 대화에서 그가 우리지역의 공안요원 임을 알 수 있었다. 차가 역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린 후 다시 차를 갈아탔는데, 차가 떠날 때 바로 그 공안원이 이미 뒷좌석에 앉아있었고, 나와 같은 방향이라는 걸 알았다. 차가 운행 중 그 공안원이 중간지점에서 나보다 먼저 내렸는데, 그는 610 공안원들이 일상적으로 모이는 장소로 가는 것을 보았다. 놀라기는 했지만 위험은 없었다.
집에 돌아온 후, 겪은 상황을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 했더니, 그들은 손에 땀을 쥐고 듣다가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하며 연속 감사의 말을 했다. 당시 정말 위험한 상황이 연속으로 발생 했었는데,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사부님께서 저의 마난을 도와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 참을 수 없이 흐른다. 만약 내가 처음 그 버스를 탄 채 계속 갔다면, 당시 자료점을 지키고 있던 사악을 만나게 됐을 것이고, 또 만약 차의 그 운전수와 공안원이 나를 알아보았다면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그렇게 많고도 많은 걸 감당 하시는 것에 비하면 내가 겪은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은 각 처에 자료 점이 많아져 우리는 더욱 완벽하게 할 수 있고, 또 건강한 신체가 있고, 주저할 것 없는 수련환경이 있고 사부님의 보살핌이 있는데, 내가 무슨 이유로 잘 하지 못 하겠는가?
1999년 이전 그렇게 온화하고 충실했던 한 시기에, 함께 법 공부를 하던 형제자매, 아저씨, 이모,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감격이 많다. 나의 10여 년의 수련과정을 회억해 보면 기본적으로 어떤 큰 고통도 받지 않고 평탄한 수련의 길을 걸어왔는데, 마난을 겪었던 엄마와 아빠 그리고 견정한 동수에 비하면 나는 정말 부끄럽다.
이 기회를 통해 나 자신의 한 단락 수련심득을 써 내어 동수들과 교류하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줄곧 우리 신변에서 우리를 가호해 주시므로 대법을 첫 자리에 놓고 자신의 길을 바르게 걷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의 교시대로 진정한 수련인이 되려면 자신의 사업을 잘 하고 법에 원용하여 사부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말자!
허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 2009년 11월 10일
문장분류 : 정법수련 >대륙인터넷법회글 >6회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10/2121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