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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대법을 놓쳐버린 9년 후

글/ 중국산둥(山东) 대법제자 씨위(细雨)

【밍후이왕 2009년11윌9일】

존경하시는 사부님

동수 여러분

나는 금년에 57세이다. 산둥제남에서 왔으며 작년(2008년)에 금방 대법을 얻은 신학원이고 이번 인터넷법회에 참가한 것은 처음이다. 금방 대법수련에 들어섰으므로 각 방면에서 사부님의 요구와 거리가 멀어, 원래는 이번 법회에 투고할 염원이 없었는데 밍후이왕에서 부단히 투고를 고무격려해주는 문장을 보고 아주 큰 고무를 받고 내가 법을 얻은 경력과 수련체득을 써보기로 결정했다.

나는 예전에 수차례 대법과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1990년대 기공이 성행하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기관간부나 청년지식인들이 지방으로 내려가 노동자, 농민과 함께 하고, 이것을 통하여 사상성을 높이고자 하는 그 시기에 허리를 상하여 추간연골 돌출로 앓고 있었기에 어느 한 기공학습반에 참가하여 아주 많은 돈을 썼는데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 후에 친척한테서 파룬궁이 아주 좋다는 것을 들었으며 나더러 해보라고 하여 파룬궁을 이해하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미친 듯이 진압이 시작되었다.

2002년 홍콩여행을 가서 홍콩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대법제자를 만났는데 당시 관광가이드의 간섭으로 하여 또 한 번 대법을 요해하는 기회를 잃었다.

2005년 나는 또 미국으로 여행 갔다. 영어를 모르기 때문에 매일 대부분 시간을 관광버스에서 보냈다. 그때 가장 즐겨 본 것이《대기원》중문 신문이었다. 제일 처음《9평공산당》을 보았을 때 아주 놀랐고 반신반의했다. 그래 내가 50몇 년 줄곧 거대한 거짓말속에서 생활했단 말인가? 내심으로는 사당이 나에게 준 “행복한 생활”에 감사하기까지 하고 복잡한 심정은 말로 형용하기가 힘들었지만 그것은 또 나의 내심 깊은 곳의 많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는 것들을 해체했고 내가 종래로 몰랐던 역사를 보여주었으며 또 직접 “미 제국주의”의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환경, 풍족한 생활, 자유민주의 사회풍조를 보았고 또 직접 “미국인”이 이처럼 우호적이라는 것을 체득했다. 여행에서 영어를 잘 모르는 나는 아주 많은 “미국 뢰봉”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것은 국내에서는 이미 오래 동안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사당의 오십 몇 년 동안의 교육을 받았고 어릴 때부터 찬양하던 사회주의, 동경하던 공산주의가 그래 하나의 큰 속임수란 말인가? 하나의 엄청난 거짓말이란 말인가? 왜 어릴 때부터 사회주의를 찬양하던 백성들은 도리어 모진 고통 속에서 생활하는가? 나의 마음은 아주 큰 충격을 받았고 내심은 몸부림치고 있었으며 피가 끓고 있었다! 나는 정말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마음이 몹시 답답했다. 미국에 있는 친구가 나에게 미국에 오니 어떤 감상인가라고 묻자 나는 느낀 것이 매우 많다고 했다. 중국 사람들은 너무 슬프다. 거대한 기만과 거짓말속에 몇 십 년을 생활하면서 전혀 모르고 있고 자신이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있는 친척은 나를 예수님을 믿으라고 동원하면서 함께 화인의 기독교회에 가서 예배를 하고 목사가 성경을 얘기하는 것을 들으며 내가 기독교 교인이 되기를 바랐지만 나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겠고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아 우선 요해하고 보자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미국여행에서 가장 큰 유감은 그래도 대법과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귀국할 때 가져온 가장 무거운 물건은 《대기원》신문 한 무더기이다. 나는 모험하여 (듣는 바에 의하면, 당시 세관 검사는 매우 엄격하였다.)《대기원》신문과《9평》을 가지고 귀국하고 가져온《대기원》신문을 친구에게 나눠줘 보게 했는데 생각지 못하게 한 친구는 바로 파룬궁 수련생이었다. 그녀는 동수와 연계를 잃은 지 몇 년이나 되였는데 《9평》을 보고 내가 그녀에게 대법의 소식을 가져다준 것에 감격해하면서 나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좋은 점을 소개해주었다. 나는 여전히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했다! 뼈 속으로는 여전히 사당선전의 영향을 받아 정치에 관련된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008년 7월의 어느 날, 나의 전자 우편함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열고 보니 암호로 한 압축 문건이었다. 나는 위의 설명 요구대로 한보한보 조작했는데 바탕화면에 한 작은 비둘기가 나타났다. 열고 보니 동태망이었다. 아! 나는 처음으로 인터넷상에서 밖의 세상을 보았고 처음으로 밍후이왕, 대기원, 정견망, 방광명을 보았다. 나는 “세어인생(细语人生)”의 비디오 전부, “말해지미(未解之迷)”의 전부 그리고 “학원군상(学员群像)”의 모든 비디오, 정견망의 전자책을 다운로드하였다. 나는 매일 아주 늦게까지 보았다. 고무적이고 이상하게 여겼지만 십만 개의 ‘무엇 때문에’가 생겼다. 결국 어느 하루, 나는 친구에게 전화하여 나는 사부님의 설법을 보겠다고 말했다. 사부님의 9강 비디오를 배우고 마음속에 십만 개의 ‘무엇 때문에’가 해체되었고 사람이 되는 도리를 알았으며 사람은 무엇 때문에 조석의 화복이 있고 생로병사 하는가를 알았다.《전법륜》의 넓고 심오함은 나의 세계관을 돌변하게 했고 나의 인생관을 개변했으며 나로 하여금 인생의 참뜻을 깨닫게 했다.

수련 후, 몸의 많은 변화를 느꼈다. 신체는 젊었을 때보다도 더 건강해지고 열 몇 시간을 일하여도 힘들지 않았으며 종래로 있어 본 적이 없는 정력이 넘쳐흘렀다. 일을 할 때 더욱 남을 위해 생각해주고 이익이 침해를 받아도 따지지 않으며 도리어 자신이 받은 고난은 모두 예전의 빚을 갚는 것이고 고생을 많이 겪을수록 빨리 갚는다고 생각되어 마음속으로 아주 기뻤다. 나는 이 모든 것은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우주의 최고의 법리 “쩐, 싼. 런”에 따라 했기에 이렇게 거대한 사상적 승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속인에서의 직업은 회계사이다. 한 국제무역회사에서 재무담당을 맡았는데 사장은 미국국적을 가진 화인이고 기독교도이다. 작년 법을 얻은 지 몇 달 될 때, 미국사장은 중국으로 왔다. 나는 그녀가 장기간 미국이라는 자유민주의 국가에 있었기에 꼭 대법을 접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줄곧 신체가 좋지 않아 당뇨병, 고혈압이 있고 또 악당 당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진상과 대법을 수련하는 좋은 점을 알려주고 그녀가 미국으로 돌아가서 《전법륜》 이 책을 찾아 잘 보고 이해하여 사당에서 퇴출하기를 바랐다. 생각지 못하게 이튿날 미국사장은 나를 찾아 담화했다: 나는 장사꾼이다. 내가 국내로 온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파룬궁은 정부에서 금지하는 것인데 나는 정부에서 나를 찾아와 귀찮게 하면서 내가 돈 버는 길에 영향을 주게 하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그녀는 나에게 두 달의 월급을 주고 나를 해고했다.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힘든가! 이후 나는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

사부님께서는 일이 생기면 안으로 찾으라고 하셨다. 미국사장을 설복하지 못한 것은 꼭 내가 어디를 합당하지 못하게 한 것이고 사부님께서는 나의 심성을 고험하시는 것이 아닐까? 내가 진정으로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가를 고험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직업과 대법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면 나는 견정히 대법을 선택할 것이다. 직업은 이후 또 있을 수 있지만 대법을 얻기는 쉽지 않다. 나는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야 대법과 인연을 맺었다. 대법의 넓고 박대한 것은 정말 너무 진귀하다. 그녀가 미국으로 돌아가서 만약 가두에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는 대법제자를 만나면 가능하게 예전보다 대법에 더욱 유의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다년간의 재무사업을 하였고 컴퓨터를 비교적 능숙하게 사용하였으니 나는 나의 특장으로 3가지 일을 잘 하겠다. 직업이 없자 아예 이 단락의 시간을 이용하여 진상을 알렸다. 만약 쌍방 모두 인터넷상에서 음성교류하면 비교적 안전하여 이런 형식으로 진상을 알리고 홍법하며 인터넷상의 친구에게 동태망의 소프트웨어를 발송하고, 평시 출입할 때 하나의 USB 플래시디스크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데 그 안에는 동태망의 “작은 비둘기”(인터넷돌파 소프트웨어) 및 대법자료 《우리는 미래를 알린다》, 션윈야회의 CD가 있는데 인터넷 접속만 되는 컴퓨터에는 “작은 비둘기”를 설치하고 인터넷 접속을 못하는 컴퓨터에는 대법자료를 설치하였다. 나는 종종 과학기술시장에 가서 소모품을 사는데 소모품을 살 때 주인과 대화를 하다가 나는 나에게 인터넷돌파 소프트웨어가 있는데 설치해주겠다고 말하면 대다수는 모두 접수하였다.

우리 법 공부 팀은 우리의 몇몇 노 수련생들로 구성 되었는데 여기에서 내가 컴퓨터기술이 비교적 좋고 다른 몇몇 수련생들은 집에 컴퓨터가 없기에 예전에 그들은 삼퇴 명단을 여러 번 돌려서 다른 사람을 찾아 인터넷 접속하여 전송하였는데 지금은 이 항목의 사업을 나에게 맡겼다. 나의 손을 거친 우리 팀 삼퇴 명단은 몇 명이 된다. 소조의 도움으로 나는 프린터를 사고 어떤 동수는 나를 도와 종이를 사주어 자그마한 자료점은 이렇게 꽃이 피었다. 사부님의 신경문이 있기만 하면 나는 최단 시간에 인쇄하여 팀원들에게 주고 또《밍후이주보》, 진상전단지 등을 다운로드하며 우리 팀의 부분적 자료수요를 해결하였다. 우리가 바꿔 온 새 1위안 지폐에 나는 인쇄를 하여 소조 성원에게 나눠주고 매일 나가서 이러한 진상지폐를 소비했다.

《세어인생》,《학원군상》,《천외유천》,《탐색》,《우리는 미래를 알린다.》,《정치에서 나와 수련에 진입》,《구평》등 일련의 절목과 동태망의 “작은 비둘기”를 USB 플래시디스크에 복제하여 만약 어느 친구 집에 컴퓨터가 있으면 곧 하나를 주고 만약 기술난제에 부딪히면 밍후이에 가서 기술 지도를 본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서 나의 컴퓨터기술은 이미 아주 큰 진보가 있는데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더러 세 가지 일을 더 잘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나는 내가 아직 사부님의 요구와 거리가 아주 멀다는 것과 아직도 많은 집착심 그리고 아직도 부족한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나는 꼭 사부님의 “참기 어려운 것도 참고 행하기 힘든 것도 행하다” 는 말씀을 명심하고 금후의 수련도로에서 더욱 용맹정진 하겠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9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대륙인터넷법회글 >6회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9/2120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