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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으로

글/산둥(山東) 옌타이(烟台)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7일】

서언

나는 전 2기 대륙대법제자 인터넷법회 원고모집에 모두 참여했다. 그런데 모두 발표되지 않았다. 후에 동수들의 교류문장을 보고 나는 내가 쓴 문장이 ‘내가 세 가지 일을 착실히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법공부를 통해서 큰 국면을 알고 그리고 자신의 역사적 사명, 어떻게 안으로 찾고 어떻게 법리에서 심성을 제고할 것인가, 어떻게 착실히 사람을 구하고, 어떻게 단체 환경 중에서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며, 어떻게 자사자아 하던 데로부터 무사무아로 나아가, 뒤떨어진 동수들을 돕고, 어떻게 협조하고 정체적인 제고를 가져오게 할 것인가’등 에 관한 법회교류주제를 이탈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문장은 무턱대고 자기가 깨달은 법리와 속인적인 자기검토를 강조하였다. 이것은 나의수련의 경지와 관계되며, 개인수련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아 제고를 중시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제6기 대륙대법제자 인터넷 법회’ 원고 모집 광고를 보는 순간 나는 이번에는 자신을 내려놓고 정체 중에 용해될 것을 결심하였다. 몇 년 내 수련의 길에서 성숙의 과정을 참답게 총결 지으려 한다. 원고 모집광고에서 한 수련인의 청정한 내경 속에서 자기의 부족한 점을 자세히 찾아보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자신이 세 가지 일을 더 잘하도록 촉진되었다.

1. 법을 얻다.

수련 전에 나는 괴팍하고 자사적이면서 강하게 되려 하였다 . 꽁하고 민감하여 의심도 많아 줄곧 정신세계의 고통 속에서 생활했다. 대학시절에 우울증과 강박증(우리 집안에 이러한 병사가 있음)에 걸렸다. 그때 나는 일기에 이렇게 나의 생활을 묘사 하였다. ‘매일 칼날위에서 걸은 느낌이고 매 발자국은 모두 핏자국이었다.’ 나의 젊은 시절에는 ‘하루를 견지하면 곧 승리 한다’는 염두가 있었으며 세계는 모두 회색으로 보였고 마음은 소극적이고 절망적이었다.

나는 극력으로 이러한 상태를 벗어나려 했고 생명 중에서는 일종의 무언가를 갈망하였으며 그것은 나로 하여금 가서 그 무엇을 찾게 추진했다. 처음 나는 기독교에 갔는데 아주 빨리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고 나는 또 사원에 갔는데 그곳의 분위기는 나의 마음을 거북하게 하였으며 나는 주역을 연구하였고 또 일부 불교 책도 보았는데 결국은 여전히 나의 마음의 매듭을 풀지 못했다. 나는 그때 무슨 부처요 도요 기공이요에 대하여 일종 특수한 감각이 있었는데 일단 접촉하면 또 아주 배척했다. 나의 시어머니는 당시 모 종교를 연마하고 있었고 여러 번 나를 끌어 연마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도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다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도리어 그녀의 그러한 것을 배척하였다.

1997년, 친구가 남편에게 한권의 『전법륜』을 빌려주었다. 여태껏 책을 보는 것에 장애(강박증)가 있었던 나는 이번엔 어쩐지 『전법륜』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보았다. 그 며칠간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다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첫 번째 본 후 마음속의 오래 동안 곤혹스러웠던 문제들이 해결되었다. 비록 더 깊은 층의 이해는 없었지만 예전에 접촉했던 것과는 달리 느껴졌다. 그때는 무엇이 수련인지를 몰랐고 책을 돌려 준 후 이 일을 그만두었다. 1998년 말에 이르러서야 우리 여기에 단체법학습과 연공을 하는 환경이 있게 되었고, 나는 비로소 진정으로 파룬궁을 수련하였으며 또한 이것이 수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99년 ‘7.20’전의 세월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가 정말 행복했다. 밤에 우리 몇 십 명이 함께 법공부를 하고 아침 4시에 일어나 연공을 했다. 그때에는 매일 아침 몇 십 명의 사람들이 학교운동장에서 단체연공을 하였다. 그동안 나는 낮에는 정력이 넘쳐 일하고 늘 즐거운 모습이었다. 나는 영혼이 태양아래에 비춰져있는 감각을 느꼈고 눈앞의 회색 세계가 아름답고 다채롭게 변하였으며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적극적이고 낙관적으로 변했다. 이러한 시간은 겨우 반년에 불과했으며, 전례 없는 겁난이 닥쳐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겁난이고 나의 마난이기도 하다.

2. 곤혹

‘7.20’그때의 정세는 처음부터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수련시간이 짧고 법공부가 깊지 못하여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람마음으로 발생한 일체를 주시하였고, 곤혹스러워 이해가 되지 않았으며 두렵고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일념만은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즉 대법이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순정한 일념으로 나는 북경 천안문에 가서 가로로 쓴 현수막을 펼쳤고 후에 구금됐다. 당시 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했고 반복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우리 사부님께서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고 알려 줄 수밖에 없었다.

구치소에서 돌아 온 후 나는 수련의 발걸음을 멈췄다. 지금 나는 그 원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즉 근본 집착을 내려놓지 않은 것이다. 무슨 원인이 나로 하여금 수련하게 했는가 하는 것은 심리적 고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대법을 수련하여 그 고통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구치소에서 좀 고생을 겪고(사실 동수들이 보기에는 고생이 아니다) 또 기타 동수들이 겪은 그러한 고생을 보고 듣고 나서, 나는 뒷걸음 하여 집에서 책을 보는 것을 선택하였으며 고생을 겪고 싶지 않았고 또 법에서 얻고 싶었다. 지금 보면 나의 이 생명은 정말로 너무 자사(自私)적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자사적인 염두는 분명 법에서 제고 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속인 중에 떨어져 명리를 위하여 바쁘게 지냈지만 마음은 아주 고통스러웠고 늘 일종 살아 움직이는 시체와 걸어 다니는 고깃덩이 같은 감을 받았고, 말도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사부님의 후기의 설법을 받아보기는 하였지만 정법과 당전의 형세에 대하여 점점 이해가 되지 않고 의혹이 풀리지 않아 마음이 번거롭고 답답함이야말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은 틀리지 않았다’ 이 일념은 여전히 나의 대법에 대한 신념의 근간이 되었다. 내가 일자리를 찾을 때, 한 큰 회사에서 사람을 모집하였는데 그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 업종에서는 아주 부러울 만 한 것이었다. 나는 2년 동안 직업이 없었기에 그 회사에 매우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 직장 관리자는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고 북경 상급기관에 가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요구한 것을 알고 나와 대화할 것을 요구했다. 이 소식을 듣자 나의 첫 염두는 바로 ‘비록 나는 내가 뭘 해야 하는 것을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안다’ 이었다. 후에 그 직장에서는 두 명의 책임자가 나를 찾아 이야기를 하였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바로 사당의 그런 식의 파룬궁에 대한 인식이었고 내가 만약 수련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한다면 들어 올수 있다고 했다. 당시 나는 그들에게 “비록 나는 이 직장에 몹시 들어가고 싶지만 양심을 어기고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이 직장에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그들은 나의 대답에 아주 존경하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후에 나는 이 직장에 남게 됐고 나와 얘기했던 책임자들도 줄곧 나를 아주 잘 대해 주었다.

그동안 나는 계속 이러한 일념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뭘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지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지금 보면 이러한 일념은 많이 부족한 것이다. 한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어떻게 무얼 해야 하는지를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자비하신 사부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거듭 점화해주셨고 동수로 하여금 나와 교류하게 했다. 같이 수련하는 한 부부가 밖에서 집을 잃고 떠돌고 있는데 언제나 곤란을 극복하고 기회를 찾아 나의 남편(동수)과 교류했다. 이론적으로 우리가 시비를 가리지 못하는 문제를 해답해 주었다. 지금 보면 그 당시 내가 제기한 정법에 대한 미혹 속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은 모두 아주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동수는 재삼 법 공부를 많이, 법 공부를 많이 하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우리의 상태는 좋았다 나빴다 했고 각성하지 못했다.

3. 각성

마침내 한 가지 일이 나를 촉동했다. 나의 시어머니(동수)는 병으로 인한 고통의 시달림을 당하여 세상을 떴다. 후에 나는 법리 중에서 알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수련에 대하여 엄숙하지 않았기 때문에(그는 불이법문의 문제가 존재하였고 아울러 근본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수련 중에 아주 큰 틈이 있어서 낡은 세력에게 구실을 잡혀 인신을 빼앗겼다. 이 사건은 나를 흔들어 깨우치게 했다. 나는 수련의 엄중성과 나처럼 한 손에 사람을 잡고 한 손에 신을 잡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수련의 일은 아이들 장난이 아니고, 속인 중의 기능도 아니며, 매우 엄숙한 일이다.” “또한, 사람이 수련하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아주 엄숙한 일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속인을 벗어난 것으로서, 속인 중의 어떤 일보다도 더 어렵다고 나는 말한다.” “수련이란 극히 간고(艱苦)하고 매우 엄숙한 것으로서, 당신이 조금이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떨어질 수 있으며 하루아침에 망치게 되므로,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 『전법륜』 예전에는 사부님의 이 단락의 법을 볼 때 특수한 감각이 없었는데 이때는 매 한 글자의 분량이 모두 그렇게 무겁고 무거운 저울추가 나를 때려 깨우치게 한 것 같았다. 나는 더는 수련에 대하여 예전처럼 그렇게 어리둥절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나는 마땅히 엄숙하게 수련을 대하여야 한다. 한 진정한 수련인으로 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정진하려한다면 마난도 잇따라 온다. 우선 직장에서는 많은 일거리가 쌓여 시간외근무가 늘어나서 근본적으로 법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법공부시간이 아주 적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러한 상태를 돌파 할 수가 없었다. 한 단계의 시달림 후에 나는 냉정하게 지금의 정황을 분석해 보았다. 전 몇 년 동안 떨어졌기에 지금 정법의 형세를 따라잡으려면 반드시 우선 법공부를 많이 하는 것을 보증해야 한다. 비록 수련은 직장 업무를 지체하지 않지만 나의 현재의 업무특성은 근본적으로 법공부를 할 조건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수련에 책임을 져야하므로 지금 급선무는 법공부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나는 단호히 사직을 결정했다. 나는 마침내 사람의 것을 붙잡은 그 손을 놓았다.

사직후, 나는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시작했다. 뒤따라서 가정에서는 또 많은 시끄러운 일들이 나타났다. 또한 법공부할 때 강렬한 사상업이 나를 교란했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이것은 마가 나를 교란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강대한 일념 ‘그 어떤 마난을 막론하고 이번에는 나는 절대 수련을 포기하지 않겠다.’ 를 발했다.

이러한 일념을 품고 나는 일체의 시간을 이용하여 법공부를 했고 법공부를 함에 따라 환경도 다소 개선되었다. 나는 집중적으로 사부님의 후기의 설법을 연속 몇 번을 보았고 마음속 매듭이 하나하나 풀렸다. 이때에야 진정으로 무엇이 낡은 세력인가, 왜 이러한 마난이 산생 하는가, 대법제자는 어떻게 법을 실증하는가를 알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는 사부님은 이번 박해를 승인하지 않으셨고 대법제자는 당연히 낡은 세력을 부정하는 기초에서 중생을 구도하고 법을 실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는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사명을 지니고 내려온 것을 더욱 똑똑히 알게 되었다. 나의 내심 깊은 곳에서 ‘나는 법을 실증하겠다’는 소리를 발하였다.

이 기간에 남편도 나의 영향을 받아 정진하기 시작했다. 우리 둘은 우리에게는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조성한 부정적인 영향을 소거해야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우선 동수 중에서의 영향을 해결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어머니는 표면상으로는 아주 정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게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다들 결코 아주 똑똑한 것은 아니었다. 나와 남편은 그의 진실한 상황을 솔직하게 서로 알려주어 동수들로 하여금 시어머니에게 이러한 결과가 발생한 원인을 알게 하였고 또한 수련의 엄숙성을 더욱 명백하게 하였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병원으로 가지 않았는데, 그의 사망은 친척 친구와 주위의 속인들 속에서 반영이 아주 나빴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터무니없는 소리를 했다. 우리는 일체 기회를 이용하여 이 일을 아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어 그들의 마음의 매듭을 풀어 주었고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대법에 대한 오해를 없애버렸다. 속인들에게 똑똑히 얘기해 주는 것은 동수들에게 해석해 주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많은 법리들을 속인들은 이해 할 수가 없고 우리는 단지 속인들이 이해하는 그 층의 얕게 나타나는 도리로부터 얘기해야 하고 또한 부동한 사람의 부동한 마음의 매듭에 대하여 지혜롭게 얘기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속에 생각이 있으면서 얘기를 꺼내기 꺼려하기에 우리는 주동적으로 그 일을 제기하여 그가 마음속의 의혹을 제기하게끔 인도하고 의혹에 비추어 해답해주니 효과가 아주 좋았다. 이러한 과정은 남편이 제고하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가 어머니에 대한 정을 내려놓고 이지적으로 자기 어머니의 일을 서술할 것을 요구한다.

법 공부 중에서 나는 자신이 현재의 정법형세에 아주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조급한 정서가 생겼고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는 목숨을 내걸고 자료를 만들고 자료를 배포하여 자신에게 숨 돌릴 기회조차 주지 않았으며 이 일을 함으로 위덕을 수립하고 정법형세에 따르려고 하였다. 속인중의 일들은 시간 낭비라고 여겼기에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동수들의 도움으로 나는 점차적으로 이것은 나의 근본 집착을 버리지 않았고 또한 대법 속에서 구함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나는 반복적으로 「원만을 향해 나가자(走向圓滿)」를 읽어 자신이 대법 중에서 좋은 것을 얻으려는 사적인 생각을 품었기에 아직 진정한 수련제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때 나는 자신의 뼈 속에서 얼마나 자사적인 것이 있는지를 심각히 인식했다. 나는 이처럼 더럽고 자사적인 생명을 사부님께서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보호해 주신 것에 감탄했다. 사부님의 자비를 생각하니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오로지 대법만이 나의 이 생명을 깨끗이 씻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점을 인식하니 나의 마음은 평온하였고 더는 일을 위해 일을 하지 않았고 대법의 일을 하는 가운데서 마음을 닦는 것을 중시하고 심성제고를 중시하였다.

세 가지 일을 함에 따라 나 자신을 실속 있게 수련하고 나의 마음은 순정해졌으며 온 생명이 다 법속에 용해된 것을 느꼈다. “무엇이 부처인가? 여래(如來)란 진리를 딛고서 여의롭게 왔다는 이런 하나의 세상사람의 호칭이지만, 진정한 부처인 그는 우주의 보위자(保衛者)이다. 그는 우주 중의 일체 바른 요소를 위하여 책임질 것이다.”(『도항』「미국 서부 법회에서의 설법」) 매번 사부님의 이 부분 법을 볼 때 나의 마음속에서는 나는 우주의 보위자이고 나는 반드시 우주의 일체 정의 요소에 대하여 책임져야 한다는 일종 신성한 사명감이 떠올랐다.

4. 중생구도

나와 남편은 기술방면에 소질이 있기에 우리 가정 자료점은 비교적 완벽하고 매 설비마다 나의 법기가 되었으며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가 그것들의 각자의 성격과 천성을 담론할 때면 마치 오랜 친구를 담론하듯 했다. 매번 고장이 생기면 나는 모두 우선 심성에서 원인을 찾았고 다음 발정념으로 교란을 배제하였으며 나의 법기들이 잘 일해줄 것을 고무 격려했는데 고장은 늘 자동적으로 배제되었고 신기한 일들이 여러 번 나타났다.

젊음은 우리 자료배포에 유리한 것이다. 우리가 자료를 배포하는 범위는 크고 그 포함한 면적은 넓으며 매번 외지로 갈 때면 한 무더기를 가지고 갔다. 자료선택 방면에서 우리는 부동한 사람들을 고려하여 마음을 써서 자료를 선택하였다. 우리는 농촌에 소책자 또는 스티커를 배포하고 시내지역에 VCD 또는 DVD와 소책자를 함께 배포하였으며 학교 혹은 승용차에 컴퓨터전용CD를 배포하였다. 그리고 내용상에서도 정심껏 자료를 선택하였고 비교적 사악한 기관에 우리는 특별히 일부 선악보응의 내용을 첨가하였다.

자료를 낭비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매 건물의 아래층으로부터 꼭대기 층에 이르기까지 3분의 1의 주택에 배포하였다. 이러면 자료 분산범위가 넓지만 많은 곳에 가야하고 많은 층계를 올라야 한다. 고층 주택을 만나면 나는 감시를 피면하기 위하여 줄곧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모두 층계를 오르내리었다.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층계를 오르내리는 본능을 연마하여 마치 제비같이 가볍게 층계를 오르내렸다. 매 한번 자료를 배포할 때면 나는 묵묵히 ‘일체 교란을 배척하고 연분 있는 사람을 구하자’는 정념을 발하였다.

2008년 올림픽개막식을 하는 그날 저녁, 나와 남편은 함께 자료를 배포하려고 층계를 내려갈 때 한쪽 발이 허공을 디뎌 “부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발목에 한 차례의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땅에 넘어졌다. 당시, 나의 마음속에는 설마 오늘 밤 내가 나가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일념이 생겼다. 잇따라 나는 즉시 이 일념을 부정하였다. 아니, 사부님은 나로 하여금 사람을 구도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을 것이다. 내가 구도하는 것을 교란하는 것은 꼭 낡은 세력일 것이다. 나는 당연히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누가 교란하면 바로 그가 죄를 범한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는 일어나서 절뚝절뚝하면서 구도의 노정으로 향했다. 그날 밤, 바람을 쏘이던 사람들은 모두 집에서 개막식을 보고 있었으므로 밖은 특히 적적하였다. 우리는 특별히 순조롭게 배포했고 그 날 밤에 배포한 자료는 예전보다도 더 많았으며 층계를 오르내릴 때 발이 아픈 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튿날 발이 아주 심하게 부었다. 나는 사부님의 “진상을 밝혀 중생을 구도(救度)하는 것은 낡은 세력은 감히 반대하지 못하는데 관건은 일을 할 때의 심태(心態)가 그것으로 하여금 빈틈을 파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각 지역 설법 2』「2002년 보스턴 법회 설법」)말씀이 생각났다. 사악이 나를 교란 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는 출발하기 전까지도 사당과 대항한 것이 생각났다 왜냐하면 올림픽이 열릴 수 있어 나는 아주 마음이 불편하였다. 그전에 예언의 영향을 받아 나는 줄곧 올림픽이 열리지 말거나 개막식에 일이 생길 것을 바랐는데 결국에는 올림픽이 예정대로 열렸다. 나는 생각하기를 ‘이상할 것이 뭐가 있는가. 나는 사당과 맞서 자료를 배포하러 가겠다.’ 다년 내 나는 줄곧 사당에 대한 증오와 쟁투심을 품고 늘 그것이 빨리 끝장나기를 바래왔는데 이것이 어디 수련인의 상태란 말인가. 왜 나는 늘 사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사람을 구도하는 기점마저 바르게 놓지 못하는데 사악이 어찌 틈을 타지 않겠는가? 심태가 바르니 이삼일에 부은 발이 나았고 조금도 나의 정상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만약에 속인이라면 어찌 이렇게 빨리 나을 수 있겠는가.

나와 남편은 사람을 구도하는 것은 여러 방면으로 해야 하는 것을 인식하였다. 나는 부동한 영역에 부동한 내용의 편지를 붙이기 시작하였다. 후에 느낀 것이 편지를 붙이는 것은 정보량이 너무 작아 우리는 인터넷으로 사람을 구하는 방법을 강구하였다. 우선 메일주소를 대량으로 수집하고 다음 PC방에 가서 진상자료를 메일로 발송하여 사람을 구도하는 것으로 효율을 대대적으로 높혔다. 어떤 때는 PC방의 각양각색의 사람과 난잡한 환경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만약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어찌 이런 곳에 올수 있는가?’를 생각하기도 했다

또 하나 효과적으로 사람을 구도하는 방법은 진상지폐이다. 사부님께서 이 방법을 긍정한 후로부터 나는 대량으로 진상지폐를 제작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동수들도 사용하도록 제공해 주었다. 매번 여러 경로를 통하여 대량으로 잔돈을 바꾼 후 50원과 100원을 빼고 기타 전부 진상구절을 찍었다. 처음에는 낡은 인쇄기를 사용하였는데 한 장 한 장 씩 보내줘야 했다. 동수들에게 제때에 진상지폐를 공급하기 위하여 나는 늘 한 번에 몇 시간씩 서서 몇 천장지폐를 한 장 한 장 보내줬는데 자주 허리가 시큰거리고 다리가 아팠고 힘들었다. 그러나 동수가 필요로 한다면 나는 또 기분 좋게 바삐 일을 했다. 나는 그들의 수요량이 많을수록 진상을 아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진상지폐의 작용은 소홀히 할 수 없다. 나는 진상을 소상인에게 몇 차례 알려주었는데 그들은 진상지폐를 통해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킨다’‘삼퇴’등 진상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이 진상을 알리는 길을 텄다. 후에 우연한 기회에 나는 신형 인쇄기를 발견하였는데 진상지폐를 인쇄하는 것이 빠르고도 편리하였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로인해 나는 많은 정력과 시간을 절약 할 수가 있었다.

내가 소비하는 돈은 50위안과 100위안을 제외하고는 전부 진상지폐였다. 진상지폐를 소비하는 과정은 두려운 마음을 버리는 과장이기도 하다. 처음에 소비할 때는 나는 늘 긴장하여 상대방이 돈을 세는 것을 보면서 발견하지 말기를 바랐다. 때론 상대방이 일단 발견하면 불안해했다. 나는 이것이 두려워하는 마음이 작용을 한 것 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하는 일은 가장 바른 일인데 왜 마음을 졸이는가? 나는 마땅히 주동적으로 이 ‘두려움’을 해체해야 한다. 다시 돈을 사용할 때 내가 의식적으로 이 두려워하는 마음을 억제하니 점차적으로 아주 태연해졌다.

어느 한번은 건축재료를 사면서 한 여자아이에게 진상지폐를 한 움큼 주었다. 며칠 후에 또 그 여자아이의 상점으로 가서 또 몇 장을 주었더니 이때 여자아이가 옆의 두 건장한 남자에게 말하자 그 중의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아주머니, 당신은 어디서 이렇게 많은 글씨가 있는 돈을 가져오나요?” 나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다가 뒤이어 웃으면서 “당신은 먼저 어디에서 구했는지를 상관하지 말고 그 위에 무슨 글들이 쓰여 있는가를 보았는가?”고 물었다. 여자애는 “난 볼 줄 모릅니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럼 당신들에게 잘 얘기해줘야겠구나.”하고 말하면서 아예 걸상을 끌어 앉아서 파룬궁은 무엇인가로부터 사당은 왜 대법을 비방하며 이어 ‘4.25’, 천안문 분신조작사건, 또 무엇 때문에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하는가, 삼퇴보명에 이르기까지의진상을 얘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그 여자애는 나에게 일부 이러한 문제들을 제기하였다. 예를 들어 병이 있어도 약을 먹지 말아야 한다 등등에 대하여 나는 모두 하나하나 해답해주었다. 그 두 사나이도 다 묵묵히 듣고 있었다. 마지막에 여자애는 “저는 예전에 한 농촌 할머니한테서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알아듣지 못했어요. 오늘 이렇게 얘기를 들으니 다 알았네요”라고 말하였다. 나는 이 기회에 그들에게 가명으로 ‘삼퇴’할 것을 권하였다. 나에게 물어보던 남자의 차례가 되자 나는 “당신에게 어떤 가명을 지어줄까요?”라고 묻자 그는 “무슨 가명이겠어요. 본명으로 합시다.”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본명을 알려주었다. 나의 마음은 매우 기뻤다. 한 면으로는 오늘 두려워하는 마음을 돌파하였고 다른 한 면으로는 이 세 사람들이 진정으로 진상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낯선 사람과 면전에서 진상을 얘기하는 것은 내가 비교적 돌파하기 힘든 것이다. 체면을 차리는 나는 늘 다른 사람을 방해할까봐 말을 건넬 수 없으므로 얘기해줄 수 없었다. 때론 말을 건네도 늘 제 3자의 신분으로 얘기하였고 상대방이 파룬궁을 수련하는가? 고 물으면 돌려 말하면서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유유낙낙하면 자연히 바르지 않으므로 진상을 알리는 효과도 이상적이 아니다.

어느 날 야채시장에서 한 아주머니에게 진상을 얘기했는데 얘기하자마자 그 아주머니는 “당신은 파룬궁을 수련하는가?”하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또 예전처럼 이러한 화제를 돌려 말을 채 하지도 못하였는데 아주머니는 나의 말을 중단하고 나를 바라보며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당신은 파룬궁을 수련하는가?”라고 물었다. 나는 갑자기 내가 왜 이 화제를 도피하는가? 고 느꼈다. 나는 정면으로 이 물음에 대답 할 것이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합니다.” 라고 긍정적으로 대답하였다. 불시에 아주머니는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면서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을 탄복해한다.”고 얘기 했다. 순간 한 가닥의 열기가 온몸으로 흐르는 것 같았고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 주신다는 것과 정정당당하게 법을 실증하라고 격려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5. 마음을 괴롭게 하는 고통(苦其心志)

여러 해 나는 수련 중에서 가장 돌파하기 힘든 것이 바로 정을 놓지 못하는 것이었다. 늘 자신의 신체 주위에 이런 정의 물질이 가득차서 빠져 나올 수 없어 어떤 때에는 정에 끌려 정마로 수련하는 사람 같지 않다. 정이 중하기 때문에 이 방면에서 감당해야 할 마난도 더 많았다. 특히 모친에 대한 정에 아주 긴 시간 뒤엉켜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모친의 말을 잘 들으며 남을 따라 “예, 예” 대답하면서 무엇이든 모두 모친에게 순종하고 특히 그의 요구를 만족시켰다. 그러나 대법을 수련하는 이 일에서 우리는 의견이 벌어졌다. 1999년 박해 전에 나는 모친에게 『전법륜』한 권을 드렸다. 박해 후, 모친은 사당 선전의 영향으로 나의 파룬궁수련을 반대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드린 책을 훼손했다. 이 일로 나는 오랜 시간 질책했고, 당시 그러한 상태를 알면서도 왜 일찍 책을 가져 오지 않았는가 했다.

후에 모친은 내가 북경에 청원하러 간다는 것을 알고 나와 울고불고 했다. 효성이 지극한 나는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마음이 말할 나위 없이 고통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나는 사람마음이 너무 중하여 대법과 친정의 관계에 뒤엉켜 곤란했다. 내가 집에 숨어 있던 그 기간에 모친은 내가 연마하지 않는 줄로 여기고 나에 대해 느슨했다. 후에 나는 또 걸어 나왔다. 모친과 나의 모순은 격화되었다. 그녀는 먼저 울고불고 했는데 나는 낡은 세력이 내가 모친에 대한 정을 이용하여 내가 나오는 것을 교란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는 내가 모친의 앞에서 아주 견정함을 표현하면서 내는 파룬궁을 연마하겠다고 했다.

후에 사악의 요소가 또 모친이 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나를 엎치락뒤치락 하게 했다. 이전에 나는 모친이 병에 걸리는 것을 제일 두려워했는데 그녀가 병에 걸리기만 하면 나의 마음을 모두 그녀에게 쏟아 부었지만 이번에 나는 자신에게 너는 수련하는 사람이므로 다시는 속인처럼 정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사람의 이 한 층에서는 자신의 마음과 힘을 다해 모친의 시중을 들었지만 마음에서는 될 수 있는 한 그녀에 대한 정을 담담히 했다.

말하기는 쉬워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특히 나는 그때 금방 걸어 나왔기에 법공부를 할 시간이 필요했으나 모친은 온 종일 나를 떠나지 않았기에 마음이 매우 조급했다. 후에 나는 책을 가지고 병원에서 법공부를 견지했더니 모친도 더는 나의 마음을 전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또 울면서 나에게 “집에서 연마하고, 나가서 진상하지 말라”고 했다. 다만 당시 내가 어떻게 사람 이 층의 이치에 원융 하는가를 몰랐던 탓에 자신의 모친에게는 마땅히 무엇이든 숨기지 말아야 했다. 나는 곧 완전히 들어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깊고 옅음을 가리지 않고 그에게 많은 수련의 법리를 이야기 했다. 사실 한 속인이니 어찌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모친은 자연히 엉망진창으로 되더니 결국 바라던 바와 정반대가 되어 내가 그녀에게 진상한 것으로 인하여 다시 한 번 나로 하여금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그래서 또 모친은 입원했고 나는 병원에서 간호해야 했다. 나는 병원에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그들에게 진상하려고 했지만 내심으로 또 모친이 화를 낼까봐 두려웠다. 모순되는 심리는 나는 조급했다. 나는 안으로 찾지 않고 모친에 대해 원망했다. 그 결과 내가 볼메어 진상할 때 모친은 화가 나서 링거를 맞으며 돌아와 눈물 콧물을 흘리며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엄마에 대해 잘하지 못하는 것이 무슨 수련인인가?’ 고 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내가 선하지 못하여 나를 점화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병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체면을 세우려는 마음으로 강렬하게 아픈 곳을 찌르며 머리가 아주 크게 부풀었다. 다행히 조금이나마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염두가 있어 자신을 억제하여 발작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그 원망하는 기분이 잊혀지지 않았다. 모친이 세상을 뜬 후,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후회막급이었다. 만약 나의 심성이 제고되었고 , 만약 내가 능히 자비로 모친을 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해 모친은 네 번이나 병원에 입원했는데 이 과정에 나는 법공부를 통해 적지 않게 제고했고, 점차 차분해지면서 나의 말을 들었다. 나는 그녀를 인도하여 파룬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게 하였고 또 그녀를 권하여 탈단했으며 또 그녀를 인도하여 책을 훼손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했다. 비록 가까스로 인식했지만 모친은 전변되고 나의 권고로 파룬궁을 연마하려는 염두가 생겼다. 그러나 사상업의 그녀를 엄중하게 교란했고 나도 당시에 수련이 너무 부족한 탓으로 자신도 사상업의 교란을 깊이 받아 모친이 정확히 인식하고 사상업에서 벗어나게 할 신심이 없이 다만 할 수 없이 모친에게 권하여‘수련할 수 없으면 파룬따파하오를 읽으라.’고 했다.

그러나 모친은 수명이 다해 갑자기 식물인으로 변하여 10달 동안 누워있었다. 나는 다시 사직하고 중생구도의 일을 하는 한편 모친을 돌보며 매일 그녀에게 사부님의 설법을 듣게 했다. 나는 늘 모친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며 그녀가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랐다. 모친이 세상을 뜬 후 나는 한바탕 울었다. 내가 운 것은 황폐한 그 몇 년이었고, 내가 운 것은 모친을 자비로 대하지 못한 것이었고, 내가 운 것은 내가 모친을 잘 인도하지 못하여 모친이 하지 말아야 일을 한 것이었고, 내가 운 것은 내가 수련한 것이 너무나 부족하여 진정으로 모친을 도와드리지 못한 것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생각은 정에서 나오지 못한 생각임을 알고 다시 온다 해도 결국은 이러할 것이므로 나는 결심을 내리고 잘 수련하겠다고 했다. 세상에는 아직도 매우 많은 중생들이 내가 가서 구도하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오직 내가 잘 수련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모친은 생전에 고모, 삼촌과 모순이 있었는데 그들은 여러 번 모친을 괴롭혔다. 모친이 중병에 걸린 기간에 그들은 병문안을 왔을 때 오빠들은 모친을 지키기 위해 그들에 대해 냉대했다. 나는 그들이 모친의 일에 대해 괴로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수련하는 사람이고 인간세상의 은혜와 원한은 서로간의 인연이므로 나는 반드시 이 층차의 이치에서 나와 중생을 동일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아주 선의적으로 그들을 대했을 뿐만 아니라 이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에게 진상하고 삼퇴를 권하여 이 생명들로 하여금 구도되게 했다. 오빠와 새언니는 이해하지 못하여 나를 질책하면서 팔꿈치가 밖을 향해 굽는다고 했지만 나는 묵묵히 참고 견디었다. 나는 속인은 수련인의 흉금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친척과 친구들은 내가 고생을 겁내지 않고, 원망 없이 기꺼이 모친을 돌보는 것을 보고 또한 그들도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알고 모두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의 복근을 심게 되었다.

6.정체 원용

우리 단체 법공부 팀은 대부분 노인이다. 내가 금방 걸어 나오는 시기에는 내가 단체법공부를 학습하는 환경이 특별히 필요하다고 느꼈기에 이 법공부 학습팀에 참여 했다. 법공부를 깊이 함에 따라 스스로 법리가 명확하고 남들과 교류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고 더욱이 노인들의 이야기나 생각하는 것들이 일치하지 않았는데, 노인은 일에 대해 얘기하기 좋아하고 나는 이치에 대해 얘기하기 좋아한다. 나는 그만 둘 생각이 들었다.

이때 마침 한 동수가 병증상이 나타나 다 같이 협조하여 단체 발정념으로 동수를 도와 문제를 해결하였다. 나도 정체분위기의 대동 하에 생각하기를 왜 내가 문제를 고려하는 각도는 늘 자신의 필요에 따르면서, 이 단체는 내가 무엇을 할 것을 요구하는가를 생각하지 않는가? 왜 동수는 내가 뭘 할 것을 요구하는가를 생각하지 않는가? 이렇게 위치를 바꿔서 사고하니 원래의 기점은 사를 위하고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내 자신을 내려놓고 이 정체를 위해 더 고려해야겠다고 결정했다.

기점을 바르게 한 후 더는 자신이 깨달은 법리를 과장되게 부풀려서 말하지 않았고 동수들의 견해를 많이 듣는다.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때 늘 남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도와준다. 차차 나의 흉금은 넓어졌고 다른 사람을 관용하는 것을 배웠으며 심태도 평온했다. 동시에 나는 이 노년동수들 매 사람의 몸에서 많은 빛나는 점들을 발견했고 그들에 견주어 자신의 많은 부족한 점도 찾았으며 이때에 진정으로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법리의 내포를 체험하였다.

나는 또 일부 농촌동수들을 알고 있는데 그들은 경문과 진상자료가 부족하였다. 나는 한 대법제자로서 사부님의 경문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주동적으로 사부님의 경문을 가져오는 임무를 맡았다. 나는 사부님의 경문의 목록을 잘 정리하여 여러 몫 인쇄하여 동수에게 주었다. 그들로 하여금 손에 이미 있는 경문과 대조하여 부족한 것을 열거하면 나는 하나씩 그들에게 보충해주었다. 궁핍한 농촌에는 많이 부족하므로 나는 한 세트씩 상자에 잘 넣어 보내주었다. 동수들은 사부님의 전 세트의 경문을 얻을 수 있어 아주 격동해했다. 동수들이 필요로 하기만 하면 나는 잔업을 하더라도 일찍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나의 심중에는 늘 ‘동수들의 법공부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일념이 있었다.

나는 경문을 구해오는 이 일을 아주 엄숙하게 대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사부님의 경문은 반드시 정확하고 틀림이 없음을 엄격히 보증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매번 경문을 구해 올 때면 나는 늘 손을 깨끗이 씻고 ‘허스’를 하면서 사부님께 가지해줄 것과 일체 교란을 배제하여 정확한 법을 구해달라고 요청드렸다. 레이저인쇄기가 속도가 빠르고 쉽게 종이를 말아 들이기 때문에 쪽수가 틀리는 경우가 있으므로 나는 인쇄과정을 자세히 보면서 어떠한 착오도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농촌동수들이 진상자료가 부족한 것을 보고 남편은 ‘물고기를 잡아 주는 대신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을 건의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을 도와 자료점을 건립하고 그들의 재료소모와 기술상의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며 또한 일부 그들이 해결할 수 없는 진상자료들을 제공해 주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농촌동수들이 기술접수능력이 부족하므로 나와 남편은 모두 그들을 도와줄 공력이 있으면 자기 스스로 하겠다고 생각했다. 후에 우리는 토론을 통해 이러한 인식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법을 실증하는 것은 정체의 힘을 필요로 하고 오직 정체중의 매 입자가 모두 제고하여 올라올 때만이 정체의 위력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단지 대법중의 한 입자이고 이 입자는 오직 대법 이 정체 중에 용해되었을 때만이 생존의 의의가 있고 하나의 입자의 힘은 보잘것없이 작지만 대법정체의 위력은 한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늘 자신의 모든 생명이 다 대법 중으로 용해되고 대법 이 정체 중에서 원만으로 향하고 있다고 느꼈다.

결속어

십년의 수련의 길을 회상해보면 각종 마난을 돌파하고 오늘까지 올수 있었던 것은 다 사부님의 자비와 보호에 의거한 것으로서 사부님은 우리들에게 많고 많은 것을 주셨고 또 우리들을 위하여 많고 많은 것을 감당하셨는데 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내가 한 것들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오직 더욱 정진하여 자신을 수련하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일을 잘 하고 중생구도를 다그치는 것만이 사부님의 고도하신 자비에 떳떳할 수 있다.

사부님에 대한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제자로서 저는 오직 가장 순정한 심태로 사부님께 허스를 올리고 싶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층차가 제한되어 있기에 문장의 합당하지 않은 부분은 자비롭게 시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7일

문장분류: 제6기 대륙법회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7/2115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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