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랴오닝(遼寧)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7일】
1, 내가 법을 얻은 경력
1996년 겨울의 어느 하루, 나는 회사의 한 시공현장에 있는 임시숙소 창가에서 『파룬궁』책을 보고 주위의 한 숙련공과 “이 책이 어떠한가?”고 물었다. 내가 줄곧 매우 존중하는 이 숙련공은 “다른 사람들이 이 공이 좋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겠다. 당신도 앞으로 시간이 있으면 잘 연구해 보라. 당신이 좋다면 나도 연마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당시 이 숙련공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1997년 설날이 지난 후, 사업상의 원인으로 나는 한 동안을 집에서 한가히 보내면서 그 숙련공의 말이 생각나, 집 사람과 함께 파룬궁 비디오가 보고 싶었다. 집사람은 “누구에게 있는지 알아요, 내가 빌려다 줄게요.” 라고 했다. 이렇게 되어 집사람이 사부님의 대련설법 비디오를 나에게 빌려다 주었다. 연속 몇 일간 사부님의 설법을 보고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집식구들에게 나는 오늘부터 시작하여 금연금주하고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했다. 나는 그날이 1997년 4월 1일임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부근의 동수를 찾아 모든 대법서적과 연공테이프를 청했다. 그 후 나는 날마다 단체 연공장에 가서 연공을 배우고 날마다 법 공부를 하면서 수련인의 심성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다. 대략 반 달 정도 지나서 나는 마치 중한 감기에 걸린 것 같이 매우 아팠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몸을 조절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로부터 나는 온 몸이 가뿐하고 신체가 아주 편안했다. 다년간 나를 괴롭히던 위장병도 간데없이 사라졌다. 아파트 층계를 오를 때면 정말 뒤에서 누가 밀어주는 것 같았고, 자전거를 타도 바람에 날려가는 상태와 같았다.
수련 전에 나는 담배를 많이 피우고 술도 많이 마셨는데, 하루에 담배를 두 지갑 남짓 피웠다. 처음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볼 때에도 담배를 피우면서 보았다. 보고 또 보노라니 담배 맛이 나지 않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다. 제7강까지 보았을 때, 원래는 사부님께서 이미 나를 관할하시고 계셨고 대법의 신성함과 초상적인 것을 느꼈다.
당시 사업상의 원인으로 나는 늘 외지에서 시공하면서 단체로 하숙을 했기에 법공부와 연공 환경이 매우 부족했지만 나는 노력하여 날마다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견지함과 동시에 여러 번이나 대법의 신기함과 초상적인 것을 체험했다.
1997년 11월의 어느 하루, 밤에 잠을 자다가 새벽에 비몽사몽 상태에서 대뇌에 마치 체 모양의 눈 같은 환상이 점차적으로 갈수록 밝아지더니 열류가 정수리로부터 내려와 온 몸을 연속하여 두 번 통하더니 몸이 아주 편안했다. 당시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관정을 해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한번은 98년 여름의 어느 하루, 그것도 밤에 잠을 잘 때 자신의 주의식이 다른 공간에 진입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다른 공간세계의 휘황하고 아름다운 정경을 보았는데 정자 누각이 있고, 맑은 강이 있고, 공기도 모두 분홍색 투명한 것이고 그곳의 사람도 아주 예뻤다. 나는 잠시 하늘에서 날고 잠시 땅에서 걸었는데 아주 긴 시간이 지나 나는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아 올 때 아주 높은 쓰레기 더미를 지나다가 거기에 내리고 보니 현실세계이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꿈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나에게 다른 공간을 보게 하고, 또 한번 대법의 신기함과 초상적임을 목격하게 한 것임을 알았다.
후에 법공부를 통해 내가 법을 얻은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님을 점차적으로 인식했다. 사부님의 인도로 나는 법을 얻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또 마치 내가 법을 얻기 전부터 나를 관할하신 느낌이었다. 예를 들면 법을 얻기 몇 달 전 내가 공원에서 신체단련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줄기 힘이 나를 위로 떠밀었다. 그 힘은 아주 커서 마치 통제하지 않으면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나는 놀라서 뛰었는데 당시 어찌된 일인지 몰랐다. 이런 상태가 후에도 나타났다. 법공부를 한 후 이것은 주천이 통하는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당시 나는 파룬궁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대주천이 통할 수 있는가? 나는 당시 사부님께서 나를 관할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인생이 홍진만장(紅塵萬丈) 중에서 흥망성세가 망망할 때 나는 행운으로 사부님의 대법을 얻었는데 나의 인생은 그때부터 모두 새롭게 되었다. 나는 수련 중에서 노력하여 정진하는 것만이 비로소 사부님의 넓은 은혜에 보답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2, 걸어 나와 법을 실증
1999년 ‘7.20’, 사당이 하늘땅을 뒤엎을 듯 파룬궁에 대한 진압을 시작했지만 나는 대법을 수련하려는 결심과 신심을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날마다 파룬궁에 대해 모함하는 선전을 했는데, 마음이 무거워 거대한 압력을 느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동수와의 교류에서 나는 대법제자로서 대법이 박해를 받을 때, 마땅히 일어나 대법을 실증하고, 대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했다. 이때 몇몇 동수들이 원래 연공장에서 연공을 견지함으로 인해 납치되어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동수들이 납치된 당일 저녁 9시 남짓하여 공원의 한 모퉁이에 2,30여 명의 동수가 집결했다. 모두들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한 후, 최후에 모두들 구치소에 가서 사람을 구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으므로 마음대로 박해를 받을 수 없다. 모두들 내일 가기로 결정했다. 나도 이렇게 하는 것에 찬성하여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여기는 시소재지와 십여 킬로미터 거리였으므로 이튿날 아침 차로 가야 했다. 모두 11명 동수가 차에 올랐다. 몇몇 동수는 가지는 않았지만 역전에 나와 우리를 마중했다. 구치소에 도착하여 우리는 부드러운 말투로 그곳의 사람들에게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그곳에 감금된 파룬궁수련생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므로 마땅히 박해를 받지 말아야 하며 무조건 석방해야 한다고 했다. 나의 기억에는 당시 우리를 접대한 사람의 태도는 아주 좋았고, 우리에게 동정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들은 권한이 없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시에 가서 제기하라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시정부 청원사무실에 가서 접대하는 사람에게 구치소에서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야기했다. 최후에 그들은 우리를 공안국 정보과에 연계해 주면서 이 일은 그들이 처리한다고 했다. 우리는 또 공안국 정보과에 가서 정보과 과장에게 동일한 진상을 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내놓을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여러 각도로 계속 진상했다. 두 시간 남짓하여 그는 우리가 한 말을 상부에 반영하겠다고 하면서 우리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평안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우리는 비록 동수를 구출하지 못했지만 사악이 박해를 실행하는 부문에 진상을 했고, 또한 매우 의미가 있었다. 내가 그날 저녁 가부좌를 하고 연공할 때, 신체가 없는 것 같았고 아주 미묘했는데 이런 현상이 이전에 줄곧 있어본 적 없는 상태였다.
‘7.20’이후, 우리 지역의 동수들은 부단히 북경에 가서 법을 실증했고, 나도 줄곧 북경에 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내심으로부터 북경에 가서 법을 실증하는 것이 옳다고 느꼈지만 한 발자국을 내디딘다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당시 정법수련의 법리에 대한 인식이 깊지 못하여 북경에 가면 꼭 납치되고 틀림없이 직업도 잃게 된다고 여겼다. 속인 중에서 몇 십 년 동안 부지런히 노력하여 얻은 이 일체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괴롭기 그지 없었다. 다시 보면 우리 집은 늙고 병든 모친이 침대에 누워있고, 아내는 어려서부터 심장병으로 신체가 줄곧 안 좋았으며, 대학수능 시험을 앞둔 아들까지 있어 나에게 일이 생기면 그들은 어떻게 하는가? 동수들이 한번씩 북경에 갈 때, 나도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어 마음이 매우 조급했다. 대량의 법공부를 통해 나는 소위 여러 가지 이유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바로 속인의 명리정이 아닌가? 나는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견정하게 나와 대법을 수호해야 한다고 인식했다. 우리 집식구들이 내가 걸어 나가 법을 실증함으로 인해 좀 고생한다고 해도 내가 법에서 잘 수련한다면 그들도 복보를 얻을 것이다. 그리하여 1999년 12월 13일, 나는 북경으로 법을 실증하는 길을 떠났다. 역전으로 가는 길에서 마치 뒤에서 누가 나를 떠미는 느낌이었는데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가지와 고무격려를 하고 계심을 느꼈다.
나와 다른 두 명의 동수가 함께 북경에 갔다. 북경에 도착한 후 전화로 아주 빨리 현지 동수들과 연계할 수 있었다. 현지 동수들은 우리를 북경교외의 새로 지은 주민주택에 우리를 배치했다. 여기에 도착하니 마치 자기 집처럼 따뜻하고 아주 상서로운 에너지장인 느낌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침연공을 하고 반나절 법공부를 하고 반나절 교류하면서 4일간 있었다. 나는 제고가 아주 큼을 느꼈다. 동수들이 법에서부터 수련하여 나온 그 순정한 심태와 무사무아,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경지는 마치 거울처럼 나를 비추며 나에게 집착과 부족한 점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게 했다.
현지 동수들의 말에 의하면 주변에 외지동수들이 임시거주 하는 곳이 몇 곳 된다고 했다. 매 지점마다 두 명의 동수가 음식을 책임졌다. 물론 아주 간단히 먹었는데 미리 만든 빵, 김치이고 방바닥에서 잤다. 접대하는 동수의 말에 의하면 외지에서 온 동수들이 여러 명씩 여기에서 거주하면서 천안문에 가서 법을 실증한다고 했다. 매 동수들이 갈 때면 돈을 남겨 다음 동수들이 쓰도록 한다고 했다.
우리가 여기에 온 후, 광둥(廣東) 잔장(湛江)의 동수가 북경 바다링(八達嶺) 만리장성에 가서 법을 실증하자고 제기했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두 명의 동수가 꿈속에서 눈이 오는 날에 만리장성에서 연공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북경 만리장성에 가서 법을 실증하라고 점화한 것으로 인정했다. 1999년 12월 17일 북경 바다링 만리장성은 큰 눈이 내린 뒤 첫 개장한 날이었는데 이날은 만리장성의 하늘은 맑고 대지는 은백색 세계로 변하여 관광객이 많았다. 점심때 우리는 만리장성의 제일 높은 포대에서 사면에 현연한 ‘파룬따파하오’라는 가로 표어를 걸고 전국 각지에서 온 73 명의 대법제자들이 ‘파룬따파하오’의 가로로 쓴 표어 아래 계단에 정연히 서서 천천히 아름답게 파룬따파 5장 공법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은 하늘을 진감하여 중신들이 주목했다. 나는 비할 바 없이 신성하고, 장엄함을 느꼈고, 많은 관광객들은 행운으로 이 장엄하고 신성한 장면을 보았다.
이 거동은 재빨리 사악을 놀라게 했다. 한 시간 동안 연공하고 눈을 뜨니 4면에 이미 경찰이 가득했고, 어떤 동수는 경찰에게 진상하고 있었다. 악경은 행동을 개시하여 여러분들을 붙잡아 가려 했다. 모두들 일제히 큰 소리로 『논어』와 『홍음』을 외웠다. 그날 저녁 우리는 납치되어 북경 옌칭(延慶)구치소에 갔다.
나는 홀로 한 감방에 갇혔는데 이 작은 감방에 열 몇 명의 죄인들이 비좁게 있었다. 죄인의 두목이 나에게 무엇으로 들어 왔는가? 고 물었다. 나는 파룬궁이 박해를 받아 북경에 청원 왔다고 했다. 그는 파룬궁은 도대체 무엇인가? 고 했다. 나는 그에게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며, 또 병을 치료하여 신체를 건강히 하는 좋은 공법인데 우리는 모함을 당하여 박해를 받고 있다고 했다. 죄인의 두목은 규정대로라면 당신의 몸을 수색하고 냉수를 온 몸에 끼얹지만 당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므로 우리는 당신에 대해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며칠 먹지 못했는가? 고 물었다. 나는 하루 동안 굶었다고 했다. 그는 빵 두 개를 나에게 먹으라고 주면서 나에게 잠자리를 배치하면서 다른 죄인에게 나를 보살펴주라고 했다. 이후 며칠 동안 나는 줄곧 그들에게 진상을 했다. 이 죄인 두목은 “당신의 말을 들으니 나도 파룬궁을 연마하고 싶다.”고 했으며 나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면서 장래 나간다면 나를 찾아 연공하겠다고 했다. 위생청결을 하고 일을 할 때 그들은 모두 나에게 하지 못하게 했고, 나에 대해 아주 존중했다. 사실은 대법에 대한 존경이고, 대법진상이 그들의 선념을 계발했던 것이다.
여기에 온 이튿날, 악경은 나를 찾아 심문했는데 당시 방안에 두 사람이 있었다. 좀 젊은 사람이 한 쪽에서 기록하면서 심문하고 키가 큰 사람은 험상궂은 얼굴표정으로 창문에 마주서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에게 누가 조직하여 북경에 왔는가? 고 했다. 나는 조직한 사람이 없이 내가 자원하여 왔다고 했다. 그는 나의 대답에 불만을 갖고 끊임없이 물었다. 나는 반복적으로 내가 자원하여 왔다고 했다. 이때 창문에 서있던 사람이 갑자기 건너와“당신에게 극악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겠다.”고하면서 주먹을 날려 나의 얼굴을 쳤지만 이상하게도 얼굴에 아무런 감각도 없었고, 나의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때린 사람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팔을 끌어안고 매우 아픈 모양을 했다. 그 젊은 경찰은 왜 그러는가? 고 물었다. 그는 손을 저으면서 “이 사람을 데려가라”고 했다. 돌아 온 후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감당하신 것이고, 나를 보호하신 것임을 알고 마음속으로 매우 따뜻하고 충실한 느낌이었다.
일 주일 후, 나는 북경에서 현지 구치소로 보내지고 며칠 후 무조건 석방되었다.
3. 법에서 바로잡고, 사악의 박해를 타파
99년 ‘7.20’ 지난 어느 날, 한 무리 경찰들이 나의 집에 왔다. 그 중 한 사람이 한 무더기 종이를 들고 나에게 서명하라고 했다. 내가 서명하지 않겠다고 하니 책임자 같은 사람이 서명하지 않으면 말라고 했다. 그들은 또 나더러 대법서적을 내놓으라고 했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집사람이 방에 들어가더니 책 두 권을 가져다 그들에게 주었다. 나도 대꾸하지 않았다. 사실 당시 나도 안 되면 책을 두어 권 주어 그들을 쫓아 보내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간 후, 나와 집사람은 사부님의 법상이 바로 거기에 놓여 있은 것을 발견했다. 그들 모두가 당연히 보았을 것인데 가져가지 않았다. 나는 발생한 일체가 모두 자신의 마음에서 촉성한 것임을 인식했다. 대법제자로서 대법서적을 보호하지 못한 것은 매우 엄중한 문제였으므로 사부님과 대법에 미안했다.
북경에서 돌아 온 후 회사는 줄곧 나에게 월급을 지급하지 않고, 업무배치도 하지 않았다. 반년이 지난 후 회사에서 나를 찾아 한 공사장에 가서 관리업무를 하라고 했고 월급도 회복시켜주었다. 공사장에 도착한 후, 공사 책임자는 “당신은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써야만 여기에서 업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당시 다만 업무시간 내에 연공하지 않겠다고 보증했다. 자신은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았다고 여기면서 무슨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두 가지 일이 발생한 후, 나는 무의유의하게 박해를 받았다. 근본적으로 박해를 부정하지 못한 결과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법리에 똑똑하지 못하고, 집착심이 있어 사악에게 틈을 주었다. 이후, 사부님의 『도항』설법과 새로운 설법이 연이어 발표되었다. 사부님의 법상은 지시등처럼 미혹을 헤치고 나의 앞길을 비추어 주면서 나로 하여금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짊어진 책임과 사명을 알게 했다. 나는 낡은 세력의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며, 사부님께서 배치한 정법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으려고 결심했다.
자신의 문제를 명확히 한 후, 동수들의 도움으로 엄정성명을 발표했다. 자신이 ‘7.20’이래 모든 법에 부합되지 못한 말과 글, 그리고 한 일체를 모두 폐기했다. 이상의 두 가지 일을 잘 하지 못했기에 사악은 계속하여 나를 박해할 이유를 틀어쥐고 2002년 가을 나를 강제로 세뇌반에 데려 갔다. 세뇌 반에서 나는 세 가지 일을 했다. 1. 발정념을 견지하고, 부단히 힘을 가하여 세뇌반의 사악을 제거했다. 2. 세뇌교화원에게 진상했다. 3. 단식으로 반 박해를 했다. 사악은 나에 대해 어찌할 방법이 없어 집사람을 찾아 나에게 밥을 먹도록 하면 전화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반 달 후 세뇌반이 끝나자 나를 집에 돌려보냈다. 나는 단식을 끝내고 계속하여 발정념과 진상을 했다. 반 달 후 세뇌반이 끝날 때 사악은 마음을 버리지 않고 나에게 인식한 바를 써야 집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쓰지 않겠다. 쓰라고 하면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쓸 것이다.”고 했더니 그들은 “당신은 쓰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어 나는 정정당당하게 집에 돌아왔다. 이번에 나는 비록 뛰쳐나왔지만 아직도 철저히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하지 못했음을 의식했다. 나는 자신에게 아직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깊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반성했다. 사실 진정 생사를 놓지 못했다. 나는 법공부를 강화하고, 자신의 정념을 강대하게 하여 사악의 일체 박해를 타파하리라 결심했다.
2003년 봄, 나는 회사와 노동계약을 해지하고 집에 있었다. 하루는 우리 지역의 주임이 나에게 할 말이 있으니 나에게 지역사회에 다녀가라고 했다. 나도 별다른 생각이 없이 갔다. 거기에 도착하니 두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은 가도의 사당 지부서기이고, 한 사람은 파출소 소장이었다. 그들은 당신이 왔으니 가지 말라. 우리는 당신을 성에서 열리는 ‘전화’학습반에 보내려 한다고 했다. 그들은 또 시 ‘6.10’에서 당신을 지명하여 보내라 했다고 했다. 우리가 당신의 집에서 당신을 데려가지 않은 것은 당신이 회사에 다닐 때 관리자였고 주택지구의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알기에 당신에게 체면을 세워준 것이라고 했다. 나는 오늘은 당신들을 따라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당신이 우리를 따라 가든 말든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당신이 안 가면 우리는 강제로 집행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당신들에게 몇 가지 문제를 물어도 되겠는가? 이 몇 년간 당신들은 파룬궁 안건을 많이 접촉했을 것인데 많은 파룬궁수련생과 싸운 적 있는가? 당신들은 자신의 양심에서 말한다면 파룬궁 수련생들이 나쁜 사람인가? 당신들도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고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 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들에 대해 타격하고 박해하는 것이 옳은가? 선을 타격한다면 악한 것이 아닌가? 당신들은 악한 세력을 도와 좋은 사람을 박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우리가 하는 일은 그의 밥을 먹기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당신이 지금 방법이 없다고 하는데 장래 어느 날 갚아야 할 것이다.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말은 천리이다. 이 몇 십 년간 이렇게 운동을 벌리고 저렇게 운동을 벌려 많은 사람을 타격하고 박해했지만 결국 평가한 후, 박해한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었고 최후에 가장 해를 본 사람은 구체적으로 집행한 사람이었는데 그들이 죄를 뒤집어썼다. 예를 들면 ‘문화대혁명’ 때의 삼종인(三种人, 좌익과 우익의 중간에 있어, 정치성을 띤 문학에 반대하는 사람) 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모두 당신들에게 좋게 되라고 하는 것이니 잘 생각해 보라.
이 두 사람은 줄곧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나는 또 대법의 아름다움이 사회에 대해 백 가지 이로움만 있고 한가지 해로움도 없음을 이야기 했고, 전 세계에 홍전되고 있으며 신앙은 자유라는 등등 각가지 각도로 진상했다. 그들은 반시간 남짓 듣고 나가더니 밖에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반시간 남짓 걸고 들어오더니 “당신은 갈 필요 없다. 우리가 이미 당신을 보호하기로 했다. 당신이 이 공이 좋다면 집에서 하라, 돌아가라.”고 했다.
이번에 사악의 박해를 제거해서부터 줄곧 오늘까지 나는 큰 교란과 시끄러움을 만나지 않았다.
4, 중생구도를 기점으로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서 성숙
몇 년래 나는 거리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진상하고 삼퇴를 권했다. 나는 천성이 내성적인 성미여서 이전에 낯선 사람과 아주 적게 말했다. 그러므로 금방 진상을 시작할 때 아주 힘들었다. 입을 열 수 없었고 입을 다물면 한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걸었다 해도 빙빙 돌면서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다. 이전에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가 비교적 많았는데 비록 어떤 때에는 압력도 많았지만 오직 두려운 마음이 없이 발정념을 잘하여 정념이 충족하기만 하면 일반적으로 순조로웠다. 그러나 얼굴을 맞대고 진상하는 것은 다르다. 잘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뚜렷한 결과가 나타나며 이 사람이 구도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당시에 알 수 있다. 사람을 구도하지 못했으면 진상을 잘 하지 못한 것이다.
이 기간에 내가 한 것은 다른 동수에 비하면 차했다. 다른 사람은 하루에 몇 명씩 하는데 나는 하루에 한 사람도 탈퇴시키지 못했다. 안으로 찾는 것을 통해 적지 않은 집착심을 찾아냈다. 임무를 완성하려는 마음,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체면을 차리는 마음 등등을 점차적으로 제거함에 따라 잘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이상적이지 못했다. 법공부를 통해 법에서 부단히 제고하면서 잘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을 구하는데 기점을 놓지 못한 것이 주요한 원인이고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는 위대한 역사 사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중생구도의 긴박감이 없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인식을 제고하자 뚜렷한 효과가 났다. 그 2 년간 매일 2, 3 시간씩 했는데 3, 4 명씩 삼퇴 시켰다. 물론 어떤 때에는 많이 하고 어떤 때에는 적게 했다.
2006년부터 시작하여 동수의 도움으로 가정자료점을 건립하고 나도 줄곧 만져본 적 없는 컴퓨터를 제로로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기본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다운받고 각종 진상자료, 대법책, CD 등을 만들 수 있다. 배우는 과정에 힘들다는 감이 없었다. 나는 지금 대법자료를 만드는 것을 배우는데 아주 쉽다. 오직 동수의 도움이 있다면 연령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학력수준이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대법제자가 배우려고만 한다면 다 배워낼 수 있다. 당신에게 이 마음이 있는가에 달렸다. 다년간 이 방면에서 특기가 있는 동수들이 이미 풍부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다운받고 프린트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기술을 모색했다. 지금 배우려면 이미 만들어진 그대로 쓰면 된다. 물론 진상자료를 만들려면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당신의 정념이 강해야 하고 법에서 사부님의 가지와 지혜의 개시를 얻는다면 많은 곤란은 칼이 닿자마자 해결된다.
나는 대법제자가 세 가지 일을 동시에 잘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인정한다. 이것도 대법제자가 성숙으로 나가는 표시이다. 왜 어떤 때에는 우리가 법을 실증한 효과가 좋지 못하여 교란을 받고 심지어 박해를 받아 손실을 조성하는가? 그것은 바로 세 가지 일을 동시에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년 7월의 어느 하루, 나는 호신부를 인쇄하는데 프린터에 갑자기 종이가 끼었다. 내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여 인쇄헤드를 망가뜨려 단번에 몇 백 위안의 손실을 보아 동수들이 아껴 써서 모은 자금을 낭비하여 마음이 아주 괴로웠다.
물론 세 가지 일을 동시에 잘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하는 일이 많아지면 제대로 배치하지 못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매일 법공부를 세 시간이상 하고 발정념을 10차례 정도(전 세계4개 정각을 포함하여) 하고, 어떤 때 자료를 많이 만들면 법공부와 발정념의 시간과 질에 영향을 끼친다. 지금은 얼마나 바쁘든 법공부와 발정념 시간을 보장한다. 안되면 진상 횟수를 줄이는데 법공부를 잘 하지 못하고 발정념을 잘하지 못하면 진상효과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무리 많이 나가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12 년래 수련노정, 특히 10 년의 정법수련의 길에서 겪고 감오한 것은 정말 너무도 많다. 문장 쓰는 수준이 제한되어있어 어디까지 생각하면 바로 거기까지 썼는데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법회에 보낸 원고이다. 나는 늘 밍후이왕에 접속하여 동수들이 쓴 문장을 보고 수익이 적지 않다. 나는 밍후이왕은 여러분들이 공동으로 수호한 것이므로 나도 힘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여 노력하여 써냈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7일
문장분류: 제6회 대륙법회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7/2120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