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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비바람 노정

글/ 윈난(雲南) 대법제자 싼융(善勇), 후이추이(慧翠) (본인 구술, 동수 대필)

【밍후이왕 2009년 11월 5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와 나의 남편은 모두 1999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이다. 비바람 속에서 10 년이란 수련의 노정을 걸어왔다. 위대한 사존의 자비로우신 보호 하에 오늘까지 걸어오게 되었고 또 능히 이번 제6기 대륙대법제자 체험 교류에 참가하게 되어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여기서 사부님과 동수들께 우리가 10 년간 수련한 체험을 회보하고자 하니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한다.

1. 연분이 있어 법을 만나다

1999년 1월 23일은 우리 부부가 다시 태어난 날이다. 이웃이 나에게 한 권의 『법륜대법의해』책을 보라고 하면서 빌려 주었다.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 책을 다 본 후 이웃에게 이것은 내가 일생 동안 찾던 불법의 진리라고 말하고 『전법륜』책을 볼 수 없겠는가 하고 물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전법륜』책을 다 본 후 함께 파룬 따파를 수련하기로 다짐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또 이웃에게 『전법륜』책을 하나 더 요구하여 각각 책을 갖게 되었다. 이때부터 우리 부부는 반본귀진할 수 있는 대법의 길에 들어서서 수련하게 되었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류머티즘 심장병, 만성 빈혈, 감기, 사지 무력증, 머리를 숙이기만 하면 코에서 피가 나는 등으로 아주 많은 약과 주사로 치료하였지만 모두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남편은 나보다 더 엄중하였다. 메니에르 증후군, 위염, 경추골다공증, 심각한 류머티즘, 온몸이 부으면서 통증이 나고, 후두염, 편도선염, 기관지염 등으로 하나도 정상적인 곳이 없었다. 매일 아침 먹고 일찍 우리는 온 시내를 돌면서 도처로 의사를 찾아 갈수 있는 병원, 쓸 수 있는 민간처방, 먹을 수 있는 약은 모두 써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내가 처음에 연공을 시작하였을 때 아랫배에서 파룬이 도는 감각을 느꼈다. 연공하여 반달이 지나니 바로 온 몸이 날것만 같았다. 예전에 오르막 길을 걷자면 아주 힘들었는데 지금은 먼 길을 걸어도 아주 가벼웠다. 남편도 처음 연공하였을 때 온 몸의 경락이 “드르르”하게 아주 강한 에너지가 흘러 백맥이 열리는 감각을 아주 선명하게 느꼈다. 잇따라 온몸이 위로부터 아래로 정화되면서 병이 모두 점차적으로 소멸되었다.

우리 부부는 신체에서 거대하고 신기한 변화가 나타났으니 더욱 견정하게 법공부 잘하고 수련할 것을 다짐하였다. 우리 부부는 1999년 법을 만나게 되었는데, 대법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우리 여기 동수들은 대부분 모두 94 – 95년에 법을 얻었다. 때문에 우리는 시간이 긴박함을 느꼈다. 매일 아침 6시에 우리 부부는 연공장에 나가 연공하고, 연공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바쁜 일을 제외하고 하루 두 끼 밥 먹는 것 외에 나머지 시간은 모두 법공부를 하였다. 때로 밖에 일보러 갈 때에도 모두 법공부 시간을 지체할까 봐 뛰어 다녔다. 그때 나는 매일 적어도 『전법륜』 세 강을 읽었다. 남편 역시 적어도 한 강 읽는 것을 보증하였다. 매일 저녁 우리는 연공장에 가서 연공을 하였다. 그 시기에 우리는 인생 중에서 제일 바삐 보냈지만 그러나 제일 행복했던 나날이었다.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중에서 우리 부부는 신체 뿐만 아니라 사상 경지가 모두 아주 크게 승화되어 진정으로 두 번째의 생명을 찾은 느낌이었고 희망의 빛을 보았다.

2. 흑운이 뒤덮여도 바로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다

우리가 1999년 1월에 법을 얻은 후 ‘7.20’에 중공 사당이 박해를 시작하였으므로 오직 실속 있게 수련한 시간은 6 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전에 법공부한 기초가 견고하였기에 우리가 후에 정념정행하면서 사존의 정법 노정을 따라가는데 양호한 기초를 닦아 놓았다. 우리 부부는 사부님의 설법에서 ‘지금은 개인 수련이 목적이 아니고,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 대법제자의 위대한 사명’이라는 것을 깊이 체험하였다.

2000년 초 어느 날 아침, 우리 부부는 거리에서 두 동수를 만나 아는 체를 하였는데 바로 순찰 보안에게 포위되어 파출소로 가게 되었다. 파출소에 간 후 우리는 먼저 접촉한 경찰에게 우리는 파룬궁 수련을 통하여 신체에 거대한 변화, 대법의 아름다움, 파룬궁 박해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후에 우리는 정보과에 끌려갔다. 정보과의 경찰은 우리에게 기록하라고 하였다. 우리는 그래도 원래대로 우리가 대법을 수련한 후의 신체에서의 수익, 도덕이 승화된 실례를 적었다. 우리는 그때 심태가 모두 아주 상서로웠으며 조그마한 두려움도 없었다. 우리들의 말이 끝나자 경찰은 바로 집으로 돌려 보냈다.

그 이튿날 정오, 3명의 경찰이 집에 와서 소란스럽게 하였는데 당시 두 권의 『전법륜』책을 들추어냈다. 우리는 경찰에게 “이 책은 우리 부부의 생명이에요. 당신들이 우리의 생명을 빼앗아 가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어요?” 하고 말했다. 경찰은 아주 솔직하게 “책은 돌려줄 수 없어요, 상부에 제출해야 하니까.”라고 했다. 나는 “살인 방화는 상관하지 않고 파룬궁만 상관해요.”하고 말했다. 당시 나의 회사 보위과에서도 사람이 왔다. 나는 경찰 앞에서 “수련은 우리 개인의 일이므로 회사의 사람들 모두 우리가 수련하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그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당신들은 그들을 찾아가지 말고 직접 나를 찾아 주세요. 나 한 사람이 한 일은 한 사람이 감당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어서는 안되지요!” 하고 말했다. 보위 과장은 공장으로 돌아간 후 바로 나의 말을 전달하였는데 “이 노 부부야말로 진정한 호한이야, 한 사람이 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연관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을 외웠던 것이다. 이 일로 전 공장에서는 모두 우리 부부에게 탄복하였다. 역시 우리가 앞으로 그들에게 진상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아 놓은 것이었다.

당시 진상자료 『장저민 그 사람』등이 모두 나왔다. 자료점에서 미처 제공할 수 없을 때 우리 부부는 바로 거리의 복사점에 가서 복사하였다. 비록 박해가 사악하였지만 그러나 우리는 줄곧 복사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곳을 만나지 못했다. 때로는 또 복사점에 한 부씩 더 복사하게 하여 그들에게 보라고 주기도 하였다. 복사한 진상자료를 바로 공장에 가지고 가서 배포하였다. 한 사무실에 한 부씩 모두 배포하였다. 우리가 배포한 진상자료는 이 한 번만이 아니었다. 그 후에 진상 CD 『비바람 속에서 천지를 행하다』,04년에 『9평』이 나왔다. 줄곧 금년 션윈 CD가 오직 있기만 하면 우리는 함께 가서 배포했다. 진상자료를 우리와 연분이 있는 사람들의 손에 쥐어 주었다.

집을 소란케 한 후 공장의 보위과에서는 사람을 바꾸었는데 또 우리 집을 몇 번이나 왔었다. 우리 부부는 그들에게 “파룬궁의 일은 당신들이 상관하지 마세요. 당신들은 상관할 수 없어요. 위에서 물어보면 당신들은 우리에게 밀어 놓으면 돼요. 당신들은 상관할 수 없다고 대답하세요.”하고 말했다. 이렇게 몇 번 지난 후 공장에서는 다시 찾아 오지 않았으며 우리의 파룬궁 연공하는 일을 아예 간섭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들에게 진상자료를 줄 때면 그들은 아주 유쾌히 받았다.

2000년 7월에, 외지에서 두 동수가 왔다. 그들과의 교류에서 우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아직 거리가 아주 멀다는 것을 인식했다. 주동적으로 나가서 대법을 실증하고, 대법을 수호하면서 사부님의 정법 노정에 따라가야 하였다. 그 후 또 한번의 교류에서 우리는 경찰에게 발견되어 국보대대에 끌려 갔다. 국보대대에 간 후 우리는 또 경찰에게 진상하였다. 우리는 원래 신체 상황이 어떠했는데 파룬궁 수련을 통하여 짧은 시간에 온 몸의 병이 모두 없어졌다고 말하였다. 경찰은 우리에게 “당신들 파룬궁을 연공하는 사람들 모두 말하는 것이 똑 같아요, 이구동성으로 모두 원래는 병이 많았는데 파룬궁을 연공하여 모두 좋아졌다고 하는데 모두 마찬가지예요.”하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 파룬따파 수련은 쩐(真)、싼(善)、런(忍)의 요구에 따라 수련하는 좋은 사람들이에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사실이 바로 그렇지요. 이것이 바로 대법의 신기함이에요!”하고 말했다. 국보대대에서 우리는 여러 경찰에게 반복적으로 파룬궁의 진상을 알려 주었다. 우리 자신이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줌으로써 줄곧 새벽 3시 넘어서야 경찰은 우리 부부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때 우리도 경찰에게 그들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였다. 이틀 후에 나는 바로 경찰에게 전화하여 지금 진상자료가 있으니 보겠는가? 물었다. 경찰은 보겠다고 대답했다. 이리하여 나는 바로 남편과 함께 진상자료를 경찰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때부터 오직 경찰이 보기 적합한 진상자료가 있으면 우리 부부는 모두 비바람을 무릅쓰고 그들에게 갔다 주었다. 끊임없이 이렇게 함으로서 우리가 진상을 하여 몇몇 경찰은 진상을 이해한 후 주동적으로 원래 위치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 다시는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동수들 중에서도 역시 “당신들 부부는 국보대대의 경찰에게 진상하여 한 차례 한 차례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한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한 경찰은 우리 부부에게 “단지 신고하는 사람이 없으면 당신들 파룬궁을 우리는 상관하지 않아요!”하고 말했다. 예전에 한 국보대대 인터넷 경찰은 우리들이 반복적으로 진상한 후 국보대대에서 떠났다. 그리고 그 후에 줄곧 우리 부부를 찾아와서 진상 자료를 요구했다. 우리 지역 ‘610’ 주임은 우리들의 끊임없는 진상을 들었고, 이 후 진상자료를 보내게 되었다. 나중에 그도 다시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나는 지금 정말로 이해하게 되었다. 당신들 파룬궁은 우리를 잘 되게 하기 위하여서이며, 당신들은 무사로 공헌하는데 우리는 또 많든 적든 조그마한 이익을 챙기려고 하지 않는가, 아울러 당신들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오늘에서야 마침내 이해하였다.”고 말했다. 이리하여 그는 자신이 탈당하고, 또 그의 부친에게도 탈당하게 하였다.

3. 더욱 널리 진상하여 대법이 깊게 뿌리내리게 하다

2002년, 사당의 박해가 고조에 달했을 때 원래의 단체 법공부와 연공 환경이 파괴되었다. 동수지간의 접촉도 날이 갈수록 적어졌으며 피차 상대방의 상황을 알 수 없어 정체의 힘은 아주 약했다. 그 해 7월에 한 동수가 “모두 함께 교외의 속인들이 비교적 많은 곳인 공원에 가서 더욱 큰 면적으로 속인에게 진상할 수 있고 동시에 또 더욱 많은 동수들이 함께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면서 정법의 노정을 따라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당시 들은 후 이 건의가 아주 좋다고 생각하고 바로 추호의 주저함도 없이 남편과 함께 이 진상의 행렬로 들어갔다.

처음에 우리가 갔을 때 오직 3 명의 동수뿐이었는데 주위의 환경도 익숙하지 못했다. 법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참여하는 동수도 점차적으로 많아졌다.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교외, 공원 이 곳에는 유람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아울러 여러 가지 직업, 부동한 연령 계층의 사람들이 모두 있었다. 교사, 대학생, 초등학생, 공무원, 경찰, 외지에서 온 행락객, 퇴직한 노인……. 더욱이 주말에는 인산인해로 사람들이 몰려 다녔다. 우리 부부는 진상자료를 가득 담은 가방을 메고 이른 아침에 바로 유람객들이 제일 많은 곳으로 갔다. 이런 자료는 부동한 연령, 부동한 직업에 근거하여 모두 이미 분할해 놓았다. 공원의 명소에서 우리는 주동적으로 오가는 행락객들에게 물을 받아주면서 열정적으로 그들과 손짓하고는 이 기회를 빌어 바로 한편으로 진상하고, 한편으로 자료를 배포하였다. 대학생들에게는 바로 『비바람 속에서 천지를 행하다』를 주고, 초등학생에게는 CD 혹은 호신부를 주고, 선생님들에게는 『9평』을 주는 등 부동한 사람에 따라 부동한 진상자료를 주었다. 교외에서는 때때로 굴을 파서 겨울 채소를 저장하듯이 우리도 역시 진상자료에 따라 연분 있는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모두 아주 감동해 하면서 정말로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말한다. 행락객 이외에도 우리는 또 주위의 농촌에서 소를 몰거나 양을 몰고 있는 어린이들에게도 진상자료를 주면서 주동적으로 그들에게 진상하고 나면 그들은 진상자료를 받으면서 아주 격동되어 한다. 마치 보귀한 것을 얻은 것처럼 소중이 간직한다. 자기가 다 본 다음 바로 촌의 첫 집부터 마지막 집까지 줄곧 전하면서 보는데 전 촌에서 모두 한 번씩 다 보게 하였다. 일부 시내와 거리가 먼 농가에도 우리는 일일이 가서 진상하였다. 처음에는 먼저 상점 안의 노무자들에게 진상자료를 주고 후에 점차적으로 상점주인들에게 진상자료를 주면서 또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말하였는데 몇 곳의 농가에 모두 진상하였다. 우리들이 준 진상자료를 받은 그들은 아주 기뻐하면서 늘 “오늘 또 새로운 접시를 보게 되네!”하고 말했다. 그 중 한 집의 농가의 사장은 진상을 안 후 전문적으로 우리의 파룬궁에게 하나의 큰 방을 주어 동수지간에 교류하고 법공부 하는데 쓰라고 내놓았다.

어느 한번, 나와 사장이 역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의 주변에 한 중년 남자가 함께 차에 올랐다. 나는 바로 주머니에 있는 진상자료 한 부를 그에게 주었다. 그는 머리를 돌리면서 “나는 국가의 공안원이에요!”하고 말했다. 나는 당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면서 그에게 “당신이 국가 공안원이에요? 하고 물으면서 그에게 진상자료를 줄려고 생각했다. 예상 외로 그는 허허 웃으면서 “나에게 아주 개방 했네요.”하고 말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그를 만난 것이다. 후에 우리는 또 몇 번 그를 만났다. 나는 또 그에게 진상자료를 주었다. 그는 나에게 “인터넷에 들어가 보세요. 볼 수 있는 것들이 당신의 그 자료보다 훨씬 많지요!”하고 알려 주었다.

또 한 번은 나와 사장이 농가에서 밥 먹으면서 한 부부를 만났다. 이야기하는 중에서 남자가 성위 조사 연구소의 직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바로 그에게 자료를 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가 하고 물었다. 그가 보고 싶다고 말하여, 나는 그에게 한 부의 『세간을 속이다』를 주었는데 그는 아주 잘 받아 들였다. 그 후 우리는 또 몇 번 만났는데 우리는 또 그에게 진상자료를 주었다. 그는 아주 먼데서도 우리를 향해 손짓하였다.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친구와 같았다.

우리는 야외, 교구에서 늘 행락객들이 함께 있는 것을 만나게 된다. 모두 너 한마디 나 한마디로 중공 사당을 욕하는데 나는 사장과 함께 옆에서 듣고 있다가 모두 말을 비슷하게 끝났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바로 화제로 들어가 말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28 명에게 마치 큰 대회를 소집한 것처럼 그들에게 “지금 하늘에서 중공을 멸하려고 합니다. 당, 단, 대에 들었던 사람은 빨리 탈퇴해야 합니다. 우리 여기는 진상자료를 얻기 아주 힘듭니다. 연분 있어야만 볼 수 있고 연분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하고 알려 주었다. 이렇게 말하자 모두들 잇따라 와서 진상자료를 가져갔다. 가져온 자료가 매번 모두 부족하여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아주 유감스러워 하면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자료를 볼 수 있어요? 하고 묻는다. 우리는 바로 그들과 시간을 약속하고 다음에 다시 자료를 가지고 와서 주겠다고 하면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자기의 이름을 적어서 우리에게 주면서 자기들이 3퇴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우리들이 이렇게 몇 년간 연속적으로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중에서 날씨가 흐리거나 개였거나, 바람이 불고 비가 오거나, 심지어 눈이 내려도 우리 부부는 모두 줄곧 가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우리 부부에 대해 익숙해져 여러 번 우리 여기에서 진상자료를 가져갔다. 이 길을 걷고 나니 정말로 자비하신 위대한 사존께서 어느 때나 제자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감수할 수 있었다.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가 없고, 기타 동수들의 묵묵한 협조가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까지 이렇게 순탄하게 걸어 올 수 없었다.

4. 정체협력, 동수구출

2004년 우리 본 지역에서 어느 한 자료점이 파괴되고 자료점의 동수들이 납치되었다. 우리 부부는 이 소식을 들은 후 그 이튿날 바로 다른 두 동수와 함께 사람을 납치한 국보대대에 사람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러 갔다. 국보대대에 도착한 후 우리 4 명의 동수들은 개개인이 모두 경찰에게 진상하였다. 우리는 “모모(동수)는 죄를 범하지 않았어요, 그의 행위는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어요. 당신들의 납치는 법을 위반한 것이에요. 그가 무엇 때문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진상을 폭로하겠어요? 그것은 중공이 중국의 일체 법률을 짓밟았으며, 일체 뉴스 매체를 독차지 하고 개개의 중국민이 알아야 할 권리마저 박탈하고 있으며 한 나라의 전력으로 한 군체의 쩐(真)、싼(善)、런(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을 박해하고 있지요. 천리가 용납 못할 일이지요. 한 파룬궁 수련생 모모는 자기가 절약하여 모은 돈으로 진상자료를 복사하여 사람들에게 파룬궁의 진실한 상황을 말하는 이것은 법을 위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바로 중국 법률의 존엄을 수호하는 하나의 양심 있는 중국인이라면 모두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에요.”하고 말했다. 경찰은 모두 조용히 우리들의 진상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은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을 아직 내보내지 못하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 후 납치된 동수의 가족이 이 동수를 위하여 신고서를 썼다. 우리 부부도 그들 가족과 함께 이 신고서를 써서 직접 이 구 ‘610’, 시 ‘610’, 구 검찰원, 법원, 시 검찰원, 법원과 성 인대 상무 위원회 등에 보냈다. 우리는 이 신고서를 이러한 곳에 보낸 후 또 신고서를 가지고 여러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변호사를 찾았다. 변호사 찾는 것이 우리의 목적은 아니다. 우리는 본 지역의 변호사계에 파룬궁 박해 진상을 알려 변호사계에 아직 존재하고 있는 명백한 일면의 양심과 도덕을 일깨우려는데 있었다. 우리는 당시 아주 많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서 파룬궁의 진상을 말하고 신고서를 주고 진상자료도 주었다. 사존의 안배로 우리는 때마침 바로 이 납치된 동수를 위하여 변호하겠다는 한 변호사가 나타났다. 우리들의 반복적인 진상과 진상자료를 보고 그는 아주 격동되어 “내가 생명 안전에 위험이 있지만 그러나 나는 반드시 이 일(동수 변호)을 해야 한다. 금생에 능히 파룬궁을 위하여 변호하는 이것은 아주 큰 영광입니다!”하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당시 여러 방면의 압력과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와 동수들이 정념의 가지 하에 그는 줄곧 마지막 법정까지 가서 이 동수는 무죄라고 변호하는 것을 견지했다. 이 사건은 당시 사악에게 아주 큰 타격을 주었으며, 동시에 또 현지의 동수들을 격려하여 정체협조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법정에서 동수에 대한 불법 재판을 하기 전, 우리 부부는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원에 가서 재판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지려고 신청하였다. 재판하는 장소에서 동수를 가지 해 주려는 목적이었다. 우리 개개인은 신분증을 복사하여 법관에게 주었다. 그가 받은 후 우리에게 재판장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증을 주지 않았다. 후에 우리는 또 갔다. 처음에는 법관이 태도가 아주 악렬하여 “재판장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증을 줄 수 없어요.”하고 잘라 말했다. 남편은 바로 “우리는 정상적인 수속에 따라 자격증을 신청하였는데 당신은 왜 동의하지 않아요. 당신은 누구를 대표하는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법관은 그가 자기를 대표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이어서 “여기는 국민의 법원입니다. 당신이 국민을 대표하지 않고, 당신 자신을 대표한다면 왜 여기 앉아 있어요?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또 법률에 의거한 것입니까?”하고 질문했다. 몇 마디 말에 법관은 말문이 막혀 우리 부부의 신분증을 복사한 후 돌려 주면서 우리들에게 가라고 하였다. 그런데 남편이 아직 집에 채 도착하지도 못했는데 법원에서 국보대대에 전화하였다. 국보대대에서는 우리에게 그 이튿날 한번 왔다 가라는 통지를 했다. 이리하여 가기 전 우리는 국보대대에 진상을 알릴 수 있는 기초를 닦아놓고 다시 한 번 동수의 박해 상황을 국보대대 경찰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국보에서는 또 우리를 몇 번 불렀다. 어떻든 지를 막론하고 우리 부부는 모두 용감히 직면하였다. 우리는 하고 있는 일체가 자신에게 그 어떤 영향이 미친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고 동수들도 묵묵히 우리를 가지해 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한 부의 우주 대법과 함께 있으니, 그 어떤 사악도 두렵지 않았으며, 그 어떠한 곤난도 우리의 전진하는 발걸음은 막을 수 없었다!

5. 박해 받은 동수의 가족과 행방불명인 동수에게 관심

앞에서 제출한 이 자료점의 동수가 박해 받은 후 본 지역에 또 연속 일부 동수가 박해 받았다. 우리 부부는 다른 동수들과 협력하여 주위의 박해 받고 있는 동수의 가족을 방문하고 동시에 박해 받은 동수의 상황에 따라 착수하기로 하였다.

박해 받은 동수의 가족에게 우리 부부는 쌀과 기름 등 제일 필요로 물건들을 가지고 그들을 방문하였다. 한번은 우리 부부가 한 박해 받은 동수의 딸을 방문했다. 그녀는 아주 감동되어 우리에게 “나의 모친이 납치되기 전 우리 집은 아주 흥성하게 매일 오가는 동수들이 적지 않았었는데 일단 사람이 납치되고 보니 단번에 냉정하게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어요. 예전에 우리는 줄곧 당신들을 본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왔어요.”하고 말했다. 그녀의 이 말은 우리 부부에게 몇 년이 지났어도 줄곧 기억 속에 남았고, 우리에게 앞으로의 노정을 잘 갈수 있는 격려가 되었다.

2007년 본 지역에서 연속 몇 명의 동수가 납치 되었는데 어디에 감금되었는지 행방불명이었다. 한 동수가 우리 부부를 찾아와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아요? 하고 물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앞으로 밀어주고 있는데 동수의 일이면 바로 우리의 일로서 반드시 잘하여 대법제자의 사명을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하나의 결심을 다졌다. 우리 여기에 바로 몇 개의 간수소가 있으니 하나 하나씩 모두 찾아가서 알아 본다면 동수의 행방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러한 견정한 일념으로 우리 부부는 그 이튿날부터 동수를 찾는 일에 착수하였다. 동수가 우리에게 준 행방불명인 동수의 명단을 가지고 한 간수소로 가서 물어보고 없다고 하면 또 다른 간수소로 이렇게 몇 개의 간수소를 찾아본 결과 동수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동수의 행방을 알게 된 우리는 즉각 속옷을 사서 다른 동수들이 기금한 돈을 가지고 이 동수들을 방문했다. 불법으로 납치되어 감금된 동수들은 동수들의 관심에 감동을 받았으며, 또 이렇게 감금된 동수들에게 정념정행의 힘을 가지해 주었다.

그때부터 무릇 다른 동수들이 우리 부부를 찾아와 행방 불명인 동수의 명단만 알려 주면 우리는 곧바로 명단을 가지고 모든 간수소를 찾아 다녔다. 대법제자가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정념에 의거하니 노정이 멀어도 두렵지 않았고, 힘들어도 두렵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든지 막론하고 반드시 동수를 찾아서 그들로 하여금 모든 동수들과 함께 하나의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는 정체가 이루어 졌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였다.

때로는 우리에게는 행방불명인 동수의 이름마저도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정념에 의거하고 사존의 자비로운 점화와 동수들의 도움으로 모두 하나하나의 단서가 나타났다. 이 몇 년간 우리는 여기 모든 간수소를 몇 번이나 다녀왔는지 모른다. 간혹 한 동수를 찾기 위해 간수소 마다 몇 차례나 뛰어 다닐 때도 있었다. 그러나 줄곧 고생스럽다는 느낌이 없었다. 나는 이것은 모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사부님의 제자이고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면 도리상 거절할 수 없는 일이다.

바로 추석 전 우리 부부는 동수의 가족과 함께 한 불법으로 감금된 동수를 방문하였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우리는 감금실 밖에 있는 카메라를 마주하고 불법으로 감금된 동수와 말하였다. 당시 우리는 거대한 자비의 마당이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는 느낌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있으며 줄곧 우리의 주변에서 우리가 걷는 매 일보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감명 깊이 체험하였다.

우리 부부는 수련 노정에서 한 일체가 일반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줄곧 교류 원고를 쓰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10년이란 정법 노정에서 오늘까지 걸어왔다. 설령 법회가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남겨 놓으신 필요한 형식이라고 할 때 사부님의 제자로서 우리 부부도 이 한 과목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근근히 짧은 편폭으로 간단하게 사존님께 이 10 년간의 수련 노정을 회보합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님 감사합니다! 이 노정에서 지금까지 걸어 온 동수들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노정에서 우리는 예전과 다름없이 사부님을 바싹 따라 정진을 멈추지 말고 용맹히 앞으로 전진합시다!

허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5일

문장분류: 대륙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5/2108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