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하북(河北) 대법제자 정심(静心)
【밍후이왕 2009년 11월 6일】제6기 대륙 대법제자 심득교류회 통지를 접수한 나는 아주 중요한 일로 간주하고 마음으로 구상하여 투고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방면에서도 자신이 돌출하게 했다는 느낌이 없어 정말 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대법제자이고 밍후이왕은 우리 자신의 사이트이며, 교류회는 사부님께서 인정하신 교류형식이므로 나는 반드시 투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 사부님께서는 나의 일체를 배치하셨다
1995년에 내가 막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닌 지 반년도 안 되어 회사가 부도났다. 할 수 없이 시골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가할 때면 금방 파룬궁을 배운 모친과 함께 연공했다. 그때에는 아직 책이 없어 연공만 했다. 한 주일 후에 나는 『전법륜』을 받았는데,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었다. 점심에 밥도 먹지 않고 단숨에 다 보았다. 다 본 후에 나는 책을 덮고 두 손으로 받들며 마음속으로 정말 좋은 책이라고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나는 종래로 이렇게 좋은 책을 본 적이 없었고,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그때 나의 신체도 비할 바 없이 편안했다. 그때 나는 익숙한 사람을 만나면 “당신도 파룬궁을 연마하라. 이것은 아주 높은 불법이며 아주 좋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접수하기만 하면 나처럼 대법의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라고 여겼다.
2년 후에 나는 출근했다. 부도나기 전에 만났던 남자친구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교원인데 아주 부지런하고 인품과 용모도 좋았다. 그러나 나는 직장이 불안정하고 외모도 평범하며 어머니도 반대를 했다. 그래서 그가 왜 나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었다. 결혼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원래 그의 집 대부분 친척들이 모두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선후로 파룬궁을 수련했는데 사부님께서 나에게 세간에서 이 한 단락의 인연을 맺어 주신 것이다.
후에 우리는 회사에 가서 거주하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환경이 없어 나도 연공하지 않고 매일 일에 바삐 보냈다. 그러다 보니 박해소식도 전혀 듣지 못했다. 물론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는 것도 몰랐고 마치 봉폐된 것 같았다.
2003년에 고모가 이렇게 좋은 법을 다시 배우라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부르는 느낌이었다. 그리하여 2003년 봄에 나는 다시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했다. 꿈에서 몇 번 사부님께서 나에게 보충수업을 해주셨다. 한 번은 수업을 마친 후에 나는 문제를 물으려고 사부님의 뒤를 따랐는데, 사부님께서는 한참 가시다가 돌아보시며 나에게 앞에 위험이 있으니 따라오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산 아래로 내려가셨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의연히 사부님을 따라 걸었다. 산 아래에 이르니 한 줄기 강물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작은 배에 오르시어 노를 잡으셨다. 나도 사부님을 따라 작은 배에 올랐다. 얼마 가지 않아 멀지 않는 곳에서 파란만장한 홍수가 온 지면을 덮으며 맹렬히 덮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말할 사이도 없이 손으로 나의 손목을 잡으시고 ‘씽’ 하고 솟아올랐다. 산꼭대기도 홍수에 잠기고 전체가 바다로 변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어리둥절한 난세에서 나를 건져내셨고, 다시 수련하려는 나의 마음을 보시고 무조건 나를 구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컴퓨터를 샀다. 당시 우리의 수입이 높지 않았기에 나는 그리 내키지 않았다. 구입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이것은 진상자료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일부 간단한 진상스티커, 『명혜주보』, 단체 발정념 구결통지가 여기에서 만들어졌다. 2006년에 남편은 인터넷에 접속하려 했다. 그리하여 나도 자연적으로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집은 한 송이 작은 꽃(진상 자료점)이 되었다. 나도 자료점을 건립하는 간고함과 공포감을 체험하지 못하고, 완전히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에서 조용히 순리롭게 성장하고 있었다.
퇴근 후, 나는 자료를 프린트하는 한편 밥을 하고 세탁도 하고 또 애도 돌보고 어떤 때에는 시디까지 구웠다. 5, 6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 오직 마음이 안정되기만 하면 단 한 가지 일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잘 할 수 있었다. 비록 바쁘기는 하지만 사부님의 보살핌으로 힘든 느낌이 없었다. 수련한 시간이 짧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도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나를 ‘맹(盲)’인이라고 했는데, ‘맹(盲)’과 ‘망(忙)’이 동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법이 나에게 아무런 걱정도 없이 일체를 배치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므로 일에 부딪치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알지 못하거나 해결할지 못하는 일은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시도록 했다. 나는 사부님의 배치만이 가장 좋은 수련의 길이고,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의 마음과 관념이고 법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을 따라 걸었다.
2. 가정에서 법을 실증하고 가정환경을 원용
2004년에 4살인 나의 딸애가 유아원에 다녔다. 한 번은 기침이 너무 심해 남편은 나에게 링거를 맞히라고 했다. 딸애도 수련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응했다. 3일간 링거를 맞고 나았지만 한 주일도 안 되어 기침이 더욱 심해졌다. 나는 이것은 나를 겨냥해 온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았다. 그래서 딸애를 품에 안고 “먀오먀오(苗苗, 가명), 내가 왜 너의 엄마인지 아니?” 하고 물으니 딸애는 나를 낳아주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아니야, 네가 나를 엄마로 선택한 것은 너로 하여금 이 진귀한 대법을 얻게 하기 위함이고, 우리는 모두 대법을 위해 온 것이란다. 알겠니?”하고 말하자 아이는 마치 알아들은 것처럼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함께 연공하자고 했더니 딸애는 귀엽게도 나를 따라 연공했다. 이튿날 심하던 기침이 나았다. 딸애는 천진하게도 “엄마, 우리 TV에 ‘기침에 약을 먹지 않고 연공하면 된다.’는 광고를 내자.”고 했다. 딸애의 천진한 동음을 들으면서 나는 너무 기뻤다. 나는 이 일을 옳다고 생각하여 이 이야기를 진상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 기회가 있으면 나는 딸애에게 법리 혹은 수련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후에 아이는 다시 발열, 기침, 감기 등 증상이 있으면 모두 견지했고 병이 아니라고 견정하게 말했으며, 병원에 가지 않고도 아주 빨리 나았는데 이 일로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탄복했다.
남편이 나의 연공을 반대하지 않은 것은 정에서 나온 것이지 대법에 대한 인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내가 밖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반대했다. 회사에서 교란한 후에 그는 내가 진상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 번은 내가 진상하고 돌아오니(대다수 시간은 그가 모른다) 그는 매우 화를 내며 “꼭 밖에 나가서 말해야 돼? 언젠가는 당신 납치당할 거야.”라고 했다. 이런 불만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묵묵히 발정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좀 지나 내가 “당신도 선량한 사람이잖아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직면해 생명을 잃는다는 것을 만약 당신이 안다고 쳐봐요. 만약 이 생명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면 재난을 피할 수 있는데, 당신이라면 죽는 사람을 보고 구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라고 엄숙히 말했더니 그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면 안 죽나?”라고 반박했다. 나는 “그래요! 바로 이렇게 신기해요. 당신도 대법이 좋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당신도 나를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나는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므로 위험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했다.
나는 평소에 합당한 진상 기회만 있으면 놓치지 않고 그에게 진상을 했다. 동수 A의 남편은 처음에는 대법을 지지하여 집에서 단체 법공부도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동수 A가 납치되자 그의 남편은 모든 원망을 대법에 쏟았다. 법공부할 때 돗자리를 던졌고 대법서적과 시디도 훼손했다. 3개월도 안 되어 A의 남편은 오토바이를 타다가 화물차에 들이 받아 목숨을 잃었다. 이 일을 말한 후에 나는 아주 정중하면서도 관심 갖는 어조로 남편에게“이후에 당신은 말을 절대 주의해서 해요. 내가 잘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은 내가 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한 거예요. 누가 감히 법을 파괴한다면 하늘아래 가장 큰 죄예요! 하느님도 이런 죄인을 남기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남편은 대법에 대한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또한 딸애와 내가 병업관을 넘을 때, 어떠한 큰 일이 있어도 종래로 약을 먹지 않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는 깊이 탄복했다. 아이가 아프면 점차적으로 그는 “엄마를 따라 연공해라.” 혹은 “책을 봐라.”고 했다. 그 자신도 “파룬따파하오”, “쩐·싼·런(眞·善·忍) 하오”를 읽고 단맛을 보았기에 지금도 시간만 있으면 길을 걸으면서도 외운다.
부친은 성미가 완고한 사람인데다 문화대혁명의 박해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어 나와 어머니가 밖으로 다니는 것을 반대하고 그 자신도 연공하려 하지 않았다. ‘대법은 좋다’고 외우라고 해도 전혀 듣지 않았다. 금년에 아버지가 갑자기 뇌혈전으로 입원해 매우 힘들어 했기에 문병을 갔다. 나는 아버지에게 “아빠, 보세요! 아빠가 보시는 것처럼 우리 시댁 부모님들은 아빠보다 연세가 많지만(그들은 모두 연공함) 다들 몸이 건강하시잖아요. 아빠는 연공도 안 하고, 대법이 좋다는 것도 기억하지 않으니 그래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겠어요? 지금은 특수한 시기라서 평안을 도모하는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어 누가 믿으면 누가 이익을 얻어요. 아빠는 다른 사람을 위하지 말고 본인의 몸 건강과 편안함을 위하세요. 편안하게 사시려면 외우세요.”라고 했다. 아버지는 기억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희망이 있는 것을 보고 “쩐·싼·런(眞·善·忍) 하오”를 읽는 법을 가르쳐 드렸다. 좀 지나 또 잊어버렸다. 나는 “잊을 수 없어요. 계속 읽고, 엄마도 아빠를 도와 읽으면 돼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아버지의 귀에 대고 한 번 또 한 번 “쩐·싼·런(眞·善·忍) 하오”를 읽었는데, 7번을 읽자 기억했다고 했다. 나는 “아빠, 병이 나아진다는 생각, 결과가 어떻다는 생각,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생각, 가정의 안팎을 생각하지 말고 순정한 마음으로 두 마디 말만 읽으면 효과가 더욱 좋을 거예요.”라며 계속해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외우는 요령을 알려주었다.
병원에서 검진한 결과 아주 잘 회복 되었으므로 링거를 맞을 필요 없다고 하여 아버지는 입원하신 지 13일 만에 아주 순리롭게 집으로 돌아 가셨다. 나는 직장에 다니다 보니 늘 집에 갈 수 없어 항상 전화를 걸어 “누가 회복이 이렇게 빠를 수 있겠어요. 한 달도 안 되어 걸을 수 있고, 40일 넘어서는 스스로 단련도 할 수 있잖아요. 제가 기억하라던 말을 꼭 기억하세요. 엄마 말도 잘 듣고 활동을(연공을 말함) 빼먹지 마시고 잘 하세요.”라고 고무 격려해 주었다. 나는 아버지도 대법의 신기함을 알고 진상하는 산매체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3. 동수를 도와 공동으로 승화
진상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과거 동수를 만나게 되는데, 어떤 동수는 다시 수련하기가 매우 힘들다. 어떤 사람은 몰래 집에서 책을 보고, 어떤 사람은 대법의 귀중함을 전혀 모르며, 어떤 사람은 이미 선이 끊어져 바로 찾고 있다. 이런 과거 동수를 만나면 우리는 모두 그들에게 대법의 진귀함, 시간의 긴박성, 놓친 후에 무엇을 잃었는가를 알려주어야 한다.
한 번은 우리가 만난 한 동수는 일찍이 사부님의 설법을 두 번이나 직접 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부님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동수들이 모두 박해를 받았으므로 전혀 왕래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부님의 경문, 각종 진상자료를 보지 못했고, 대법을 찾기 위해 그를 감시하는 성시를 떠나 시골로 왔다. 사부님의 배치로 우리는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부님의 경문과 명혜주보를 그에게 보냈다.
또 한 번은 우리가 알고 있는 B동수의 아들이 감전사 했는데, 동수는 더는 견지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동수는 97년에 암에 걸려 실험해 보려는 마음을 품고 대법에 들어섰던 것이다. 우리는 그는 연장된 생명이라고 생각했고, 만약 제때에 돕지 않는다면 후과는 상상할 수 없었다. 절대 사악으로 하여금 틈을 타게 할 수 없었고 대법에 손해를 끼칠 수 없었는데, 동수의 일이자 우리 대법제자 정체의 일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동수 집에 가서 그를 일어나게 해 함께 발정념을 하며, 다시는 혼미해지지 말라고 했다. 시작할 때, 그는 앉지도 못했다. 대략 반시간이 지난 후, “씽”하고 그의 몸에서 용머리가 뛰어 나오더니 쥐꼬리 같은 것(B동수가 천목으로 봄)이 방안에서 마구 쏘다녔는데, 동수와 부딪치니 맵고 찬 감각이었다. B동수는 단번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그것을 쫓아가며 때렸을 뿐만 아니라, 정법 구결을 읽어 사령을 청리했다. 동수는 점차 나아졌고 또 정진하는 대법제자의 행렬에 들어섰다.
4. 진상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심성을 제고
나는 출근하느라 긴장하기 때문에 출근하여 진상하는 외에 쉬는 날이면 나가서 대면적으로 진상을 했다. 처음에는 사람이 없을 때에 소책자를 문 사이에 끼워놓았으나 후에는 사람이 있어도 우리는 감히 놓았다. 또 후에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줬으며 지금은 얼굴을 맞대고 진상자료를 줄 뿐만 아니라 삼퇴를 이야기한다. 나는 동수들도 모두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 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더 잘하는 동수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오직 과정 중에 만난 일을 예로 들 뿐이다.
나는 수련한 후, 담이 비교적 커졌고 세 가지 일을 하기 좋아한다. 삼퇴을 권하는 일을 한 이래, 나는 회사에서 오직 기회만 있으면 동료들에게 자료를 주고 사람을 만나면 삼퇴를 권하며, 직장에서 한 사람에게 한 부씩 소책자를 주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이고, 또 사부님께서 “특히 중국대륙의 대법제자들은 사람마다 모두 나와서 말해야 하며, 곳곳마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닿도록 해야 한다.”(《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기 때문에 직장의 대부분 사람에게 모두 진상과 삼퇴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안전에 주의하지 않았고, 어떤 것은 제대로 이야기 하지 못했으며 이지로 지혜롭게 하지 못했다. 때문에 진상을 모르는 사람이 연속 세 번이나 직장에 신고했다. 당시 나는 두려운 마음이 없었고, 신고한 자가 업을 지어가며 나에게 수련환경을 창조해 준다고 인정했다. 그러므로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이것이 정념이라고 인정했다.
직장 상사는 너무 놀라 하룻밤을 지새웠다. 나는 직장에서 일정한 직위가 있고 비교적 중요한 기술원이기 때문에 사장도 여러 번 나를 찾아 압력을 가하고 기업에서도 나를 핍박하며 포기하라고 했지만 나는 모두 대답하지 않았다. 사장이 한 직원 때문에 이렇게 마음을 쓰는지를 다른 상사도 알지 못했다. 대륙의 한 회사에서 한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전혀 기이한 일이 아니다. 나도 사실 법의 위력이라는 것을 알고 사장을 찾아 진상했는데, 그는 내가 대법의 좋은 일면만 말했다고 인정했다. 후에 그는 나의 직위를 낮추고 월급을 낮추었으며, 나에게 위생청결을 시켰다. 전 회사의 직원들이 단번에 기이한 눈길로 나를 보았고, 어떤 사람은 나와 감히 말도 하지 못했다.
환경이 단번에 변했다. 마치 나는 방랑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나에게 잘못이 없고 대법은 가장 바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나는 법공부하고 연공할 때 마음이 조용하지 않고 나의 심령을 자극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이지(理智)로써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써 진상(眞象)을 똑똑히 말하고, 자비로써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救渡)하는”(《이성》)이라는 사부님의 말씀하신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전법륜』중에서 “어떤 사람은 나의 책을 손에 들고 거리를 걸어가면서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리(李) 스승님의 보호가 있으므로 자동차에 부딪힌다 해도 두렵지 않다.”는 것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구멍을 찾은 나는 노력하여 자신을 극복하고 사악이 나의 의지를 쳐부수지 못하도록 했다. 한 번은 꿈에서 사장이 회사에 새로 입사한 한 무리 대학생에게 너희들은 이 사람을 따라 배우지 말라고 말하면서 나를 가리켰고, 그의 일을 이미 5, 6페이지 써서 문서에 넣었다(내가 파룬궁을 연마한 일)고 했다. 나는 당시 진정하고 “쓴 것이 많다고 해도 한 부의 휘황한 역사라는 것을 당신들은 장래에 알 것이다. 당신들은 나로 인하여 긍지감을 느낄 것이다.”고 견정히 말했다.
4개 월 후, 나는 또 원직을 회복했다. 나는 『전법륜』중의 “당신이 오직 心性(씬씽)을 제고하기만 하면 넘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이 넘으려 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지, 넘으려 하면 넘을 수 있다.”는 법리를 진정으로 체득했다.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삼퇴를 권할 때, 늘 우리가 정치에 참여하고 공산당을 반대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우리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가 권력을 장악하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하여 돌을 벌기란 쉽지 않지요. 오직 우리 백성이 대법을 좋다고 인정하고 ‘쩐·싼·런(眞·善·忍) 하오’를 기억한다면 평안을 보장할 수 있어요. 번 돈은 억울한 곳에 쓰이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들이 다시 당을 말하면 나는 웃으면서 “평안, 평안, 우리 백성은 평안을 요구하고,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는 부드럽고 힘 있게 말을 하면서 날이 선 검으로 즉시 그들 배후의 사령을 해체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자신을 찾게 하였다. 진상을 들은 사람은 “옳아요. 옳아요. 평안이 중요하죠.”라고 기뻐하면서 다시는 사당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진상자료를 그에게 주었는데, 그 다음은 삼퇴 시키기가 쉬웠다. 정념으로 중생이 구도됨을 인도하면서 사악의 교란에 빠져 속인과 변론을 하지 않았는데 여러 번 모두 이렇게 했다.
어떤 중생은 진상을 많이 들어 대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우리에게 연공을 가르치는 시디를 요구하거나 대법 책을 요구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밖에서 진상할 때는 이런 물건을 아주 적게 가지고 가기에 어떤 사람은 우리에게 성명과 주소를 남기면서 그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어떤 중생은 조급하여 나더러 큰 길에서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나는 우리는 중생이 구도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과 중생들이 진상을 알려고 하는 절박한 마음을 진정으로 느꼈다. 우리는 우리의 책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한 번은 우리가 한 아주머니께 시디를 드렸으나 거절했다. 우리는 변함없이 이어서 배포했는데, 네 댓 사람이 수다를 떨다가 우리가 주는 시디를 앞 다투어 요구했다. 그 아주머니도 이 광경을 보고 따라와 요구하면서 “지금 가서 볼 거예요.”라고 했다. 다른 사람도 이것을 보더니 모두 지금 가서 보겠다고 했다. 막 들끓던 장면이 단번에 조용해지고 모두 시디를 보러 갔다.
나는 대법이 나에게 준 아름다움은 일의 대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시시각각 대법의 은혜를 감수하였고, 일마다 모두 그렇게 합당하고 자연스러우며 순조로웠다. 나는 얻은 것이 너무나 많다. 내가 대법을 위해 무슨 일을 하든지 얼마나 했든지, 모두 매우 작아서 말할 가치도 없다. 나는 내심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당신들이 아무리 많은 대가를 치른다 해도 당신들이 장래에 얻는 것과는 모두 정비례가 되지 않는다.”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라는 이 구절의 법의 내포를 체득할 수 있었다.
나는 각 방면에서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제6기 대륙 대법제자 심득교류회의 기회를 빌어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에 감사를 드립니다!
정법의 최후 관건적인 시각에 우리는 사부님의 간절한 기대와 중생의 긴박하고 절실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동수들과 공동으로 노력하여 견정하게 최후의 길을 잘 걸으며,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하여 중생구도의 역사사명을 완성하겠다.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로 시정하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들 고맙습니다! 허스
(밍후이왕 제6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 2009년 11월 6일
문장분류 : 정법수련 > 대륙인터넷법회글 > 6회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6/2119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