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관(關)과 난(難) 속에서 대법을 견정히 수련하고, 시련중에도 중생을 구도

글 / 중국 흑룡강성(黑龙江省)대법제자 심무진(心无尘)

【명혜망 2009년 11월 4일】

1. 법을 얻고 수련

나는 1997년 5월에 법을 얻었다. 법을 얻기 전에 나는 신체가 허약했는데, 심장병이 있어 엄중할 때는 쇼크를 받기도 했다. 또한 엄중한 풍토병이 있어 무슨 원인인지는 모르지만 늘 머리가 무거워 도처로 다니며 의사를 찾고 약을 구했다. 심지어 다른 병원(부체가 있는 사람에게 병을 보였다)에 가서 병을 보인 적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누구도 내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몰랐다. 그리하여 나는 가짜 기공을 연마하게 되었지만 신체상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당시 각종 기공이 너무도 많았기에 어떤 사람이 파룬궁을 연마하라고 소개하니 나는 당시 모두 마찬가지라고 여기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1997년에 풍토병이 또 발작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나는 갑자기 파룬궁이 생각나 대법서적 한 권을 찾아 혼자서 천천히 보기 시작했다. 두 달 후, 나의 신체 변화는 매우 컸고 아주 편안함을 느꼈다. 나는 혼자 스스로 연공장을 찾아가 처음으로 포룬을 했는데, 다른 공간을 보게 되었다. 내가 거기에 서서 포룬했을때 두 발은 마치 하늘 변두리에 선 것 같아서 감히 움직일 수 없었는데 하늘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으며 은하계가 나의 눈앞에서 돌고 있었다. 연공한지 얼마 안 되어 온 몸의 모든 병이 사라졌고 온 몸은 가벼워 무슨 일이든 다 했지만 매일 정신이 충만하였다. 집안 식구들도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고, 그때로부터 나는 견정한 일념으로 반드시 수련하고, 영원히 동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 난관을 뚫고

1999년 ‘7.20’, 사악의 박해가 시작된 후, 거의 전(全) 매체가 하늘과 땅을 다 뒤덮는 거짓말에 기편되어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이런 큰 압력 앞에서 나는 의연히 사부님을 견정히 믿고, 대법을 견정히 믿고, 법공부와 연공을 틀어짐과 동시에 동수들과 부단히 의논하며 교류하였다. 동수들은 모두 우리는 반드시 법을 실증하러 나가야 한다고 여겼다. 사부님과 대법이 청백하다는 것을 받아내기 위해 나와 동수 7명 일행은 북경에 청원하러 갔다. 거기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는데, 근본적으로 청원을 할 수 있다는 말들은 모두 허울 뿐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주민등록증을 압수하고는 우리들을 하나씩 심문했다. 심문한 후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의 당지 공안에 통지하여 사람을 데려가라고 했다. 우리가 당지에 돌아 온 후, 기타 동수들은 직접 구치소에 보내져 세뇌박해가 시작되었다. 당시 일부분 동수들은 사악의 박해로 인해 마음을 어기고 수련을 포기했다.

당시 나는 파출소로 끌려 갔는데, 남편의 직장 동료가 그곳에서 나를 위해 보석 수속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어찌된 일인지 몰랐다. 내가 집에 돌아온 후에야 그들은 나에게 “당신 집에 일이 생겼다.”고 알려 주었다. 그것은, 내가 북경에 간 3일째 되는 날 남편의 직장에 산업재해가 발생했는데 나의 남편이 이 사고로 생명을 잃었던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는, 그들이 내가 북경에 갔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하려고 그런다고 생각하면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친척들에게 진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중에 작은 딸아이가 내앞에 꿇어 앉아 울면서 나에게 “엄마, 아빠가 정말 세상을 떠났어요!” 하고 말했다. 이 갑자기 닥친 비보에 나는 단번에 꼼짝 못하고 멍해졌고 하늘이 무너지는 감을 느꼈다.

남편이 사망한 후에도 공안은 의연히 나를 놓아주지 않고 교란했다. 좀 있다가 사진을 요구하고 또 조금 있다가 서명하라고 했지만 나는 모두 거절하며 배합하지 않았다. 사악은 각종 방법을 다하여 나를 교란했고 또 전화를 걸어 나에게 직장에 가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방법을 다하여 나를 구류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나는 그들이 정말 몹시 미웠는데, 말도 자비하지 못했다. 전화상에서 나는 화가 나서 “다시 나를 찾으면 나는 살지 않겠다. 당신들이 나를 거기에 보내면 더 좋다. 지금 나는 있을 곳도 없다.”고 했다. 그때로부터 그들은 다시는 나를 교란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이어 나 자신은 도리어 극도의 비통과 번뇌에 빠졌는데, 남편의 그림자가 늘 나의 눈앞에서 오갔다. 두 아이는 모두 직장이 없어 집에 있었으므로 나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나는 온 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제일 무서운 것은 내가 이미 사유를 잃은 것이었는데, 법은 말할 여지도 없었고 사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으며 나 자신은 거의 무너진 상태였다.

맏딸이 내가 이 모양인 것을 보고 나를 병원에 보내려 했으나 작은 딸이 도리어 “병이 아니다. 괜찮다.”고 했다. 작은 딸아이의 이 말은 단번에 나를 깨우쳤다. 나는 사부님이 생각났고 대법이 생각났다. 나는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가야 한다. 내가 이래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 나를 관할하실 것이다. 나는 단번에 사유와 정서를 조정하고 대법서적을 들었다. 금방 법공부를 시작했을 때에는 늘 졸렸다. 나는 한 글자 한 글자씩 배워 하루에 겨우 몇 줄씩 배웠다. 법공부를 시작하면서 연공도 동시에 다시 시작했기에 신체는 재빨리 정상상태로 회복되었으며 나 자신도 정신을 차렸다. 가족과 친척들은 또 한 번 대법의 신기함을 친히 목격하고 증언했다. 그들은 또다시 대법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또 나를 도와 대법서적과 진상자료를 보호했다.

박해를 폭로하고 법을 실증하기위해 나는 주위 아파트 단지에 대면적으로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친인과 친구 그리고 낯선 사람들에게 진상했으며 또 농촌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는데 노정이 얼마나 멀든지 수요된다면 다 갔다. 이 과정에서 한 동수가 또 북경에 가서 법을 실증하자고 했는데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두 딸아이가 나의 생각을 알고 우리를 가로막고 울면서 “아버지도 안 계시고 우리도 직장이 없으니 엄마가 다시 사악에게 박해를 받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예요? 집에서 연마하세요.” 라고 말했다. 나는 정(情)에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고 있었으므로 두 딸아이에게 “엄마는 대법을 수련하여 온 몸의 병이 다 나았다. 대법과 사부님께서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했으므로 내가 수련을 선택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걸을 것이며, 나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 만약 집의 생활 때문이라면 아빠의 보조금이 있으니 너희들 둘이 쓰도록 하라. 나에 대해서는 너희들이 걱정하지 말아라. 어떻게든 살 것이다.” 딸아이들은 내가 이렇게 견정하다는 것을 보고 어떻게 말해도 쓸모 없기에 순리에 따르기로 했다. 2001년과 2003년에 나는 또 두 번이나 북경에 갔고, 발정념을 했으며, 천안문 광장에서 가로 표어를 부치고는 나중에 모두 순리롭게 집에 돌아왔다. 후에 작은 딸아이도 법을 얻고 수련했는데, 오늘날까지 평온하게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걷고 있다.

3. 자비 구도

정법의 노정이 추진됨에 따라 얼굴을 맞대고 진상하는 것이 갈수록 중요했다. 2004년부터 나와 한 동수는 함께 나가 진상하기 시작했다. 금방 시작해서는 말을 할줄 몰랐지만 점차 나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붙일 줄 알게 되었다. 내가 말을 붙이기만 하면 동수가 가서 진상하여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나도 말할 줄 알게 되었다. 시작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 한 사람씩에게만 말하던 것이 점차적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이 갈수록 적어졌다. 진상하는 과정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다 만났다. 듣기 좋아하는 사람,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 또한 전혀 듣지 않고 “당신이 다시 말하기만 하면 신고하겠다.”고 하는 사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욕을 먹었지만 우리는 태연히 대할 수 있었다. 한번은 한 사람이 길가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손님, 여기서 차를 기다립니까?” 라고 물으니 그는“ 예” 하고 대답했다. 나는 “우리가 여기에서 만난 것은 연분이다. 지금은 재난이 많은데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하면 평안을 보장하는가를 알려주겠다.” 고 말했다. 그는 금방 얼굴빛이 변하더니 “나는 경찰이다. 당신이 감히 또 말하겠는가! 당신이 말하면 내가 사람을 불러 당신을 납치하겠다!”고 했다. 당시 나의 마음은 놀라 자리를 뜨려고 발을 움직이려 하다가 나는 경찰도 구도 대상이라 생각하고는 몸을 돌려 “나는 당신이 누구이든 상관없다. 나는 당신의 명(命)을 구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 하고 소리를 냈다. 나는 또 “당신은 당원이죠? 내가 당신에게 이름을 지어 퇴출하게 할 것이니 이름을 신생이라 하자!”고 했더니 그는 즉시 대답했다. 나는 또 그에게 ‘파룬따파하오, 쩐(眞)ㆍ싼(善)ㆍ런(忍)하오’를 기억하라고 알려 주었다. 그는 아주 시원스럽게 “알겠다.” 고 대답했다. 헤어지기 직전에 그는 나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어느 한 번, 내가 한 남자에게 진상하는데 그는 “가라, 나와 이야기 하지 말라, 저기 운전기사와 이야기 하라.”고 했다. 나는“ 여보세요, 누구나 다 진상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신불(神佛)은 연분이 있는 사람을 구한다. 당신은 연분이 있기에 구도될 수 있다.” 고 했다. 그런 다음 나는 계속하여 그에게 말했다. 들은 후 그는“삼퇴”에 동의했다. 또 한 번은 시내버스 역에서 한참 한 사람과 진상을 이야기하는데 두 남자가 왔다. 동수는 걸어가 그 남자에게 진상을 이야기했다. 그 남자는 “나에게 이야기하지 마세요, 나는 듣지 않아요.”하고 말했다. 동수는 “당신은 왜 듣지 않는가?”고 물으니 그 남자는 “나는 너무 많이 들었어요, 나는 믿지 않아요.” 라고 말했다. 나는 듣자마자 걸어가 “당신은 왜 연분이 이리 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으려 해도 듣지 못하는데” 그는 놀라며 “그런가?”라고 했다. 앞에서는 5~6명이 서서 모두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여러분 모두 와서 들어 보세요.” 그런 후 나는 계속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그 남자를 포함한 몇 사람이 모두 “삼퇴”에 동의했다.

또 한 번은 나와 동수가 나누어 두 여자에게 진상을 알리는데, 내가 이야기한 사람은 명백하여 “삼퇴”에 동의했지만 동수가 이야기한 그 사람은 어떻게 말해도 퇴출하지 않았다. 동수가 그와 헤어진 후, 그가 줄곧 나를 지켜보기에 나는 급히 건너가 그에게 “당신은 퇴출하지 않았죠?”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당신은 왜 퇴출하지 않는가? 사람의 일생에서 이런 기회가 몇 번 있겠는가? 당신은 이런 기회를 쉽지 않게 얻었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 우리는 모두 당신이 좋으라는 것이다. 쓰촨대지진이 발생할 때의 환경에서 평안을 보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나는 60여 세 되는 노인인데 이렇게 추운 날씨에 집에 있는 것이 싫겠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함인가?” 그는 듣더니 퇴출하는데 동의했다.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린지는 이미 5년이 되었다. 이 5년 간에 큰길 골목길은 물론이고, 크고 작은 상가, 병원, 광장, 시내버스역, 어디든 모두 우리가 진상하기 합당한 지역이었다. 간부, 공인, 농민, 학생, 직장인 무직업자, 노인 혹은 아이, 소유의 사람 모두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데 합당한 단체였다. 또한 서북풍이 불어오나, 큰 눈 앞에서 추워 떨면서 길에 행인이 거의 없어도 물러서지 않았다. 5년 동안 우리는 거의 날마다 몇 십 명을 “삼퇴”시켰고, 진상대상을 만나면 “파룬궁이 왔다”고 말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 우리는 불교를 믿는 사람을 만났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진상했다. 그들은 감동되어 울면서 “당신들의 행동을 우리는 해내지 못한다. 파룬궁은 특별히 대단하다. 당신들은 모두 일반사람이 아니라 모두 상층 사람이다. 일반인이 이렇게 박해받으면 일찍 겁을 먹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나는 진상하는 한편 자료를 배포했는데, 우리 집은 동수들이 늘 말하는 대륙의 곳곳에 핀 한 떨기 작은 꽃이다. 우리 집 작은 자료점에서는 CD를 굽고 자료를 찍었는데 한 가지도 뒤지지 않았다. 이 10년간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CD, 자료를 만들었는지 이미 통계할 수 없다. 나는 오직 정법의 수요, 중생구도의 수요로 아직도 얼마나 긴 시간이 수요되더라도 나는 계속할 것이며, 나는 이 한 떨기 작은 꽃을 생생하게 꽃피울 것이다.

나 역시 나의 심득을 심각히 써내어 사부님께 회보하고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했다. 쓸 줄 몰라 동수가 도와 문장을 썼다. 내가 걸은 길이 평범할 수도 있지만 나는 사부님의 제자라는 것을 시종 기억하면서, 얼마나 큰 난관에 봉착해도 사부님을 믿으면 꼭 뚫고 나아갈 수 있고, 사부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꼭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꼭 자신을 잘 수련할 것이며 서약을 지키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문장발표 : 2009年 11月 4日
문장분류 : 명혜망 제6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중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4/21138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