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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안팎에서 마음을 닦고 사람을 구하다

글 / 길림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2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1997년 가을에 법을 얻었고 오늘까지 이미 12년이 되었다. 그 사이 적지 않은 시련도 겪었고 허송세월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속에서 드디어 걸어올 수 있었다. 2003년에 건립한 가정 자료점도 평온하게 오늘까지 운행해 올 수 있었는데, 이 작은 꽃은 6년 남짓한 시간에 쉬지 않고 중생구도의 향기를 풍겨 주었다.

1. 가정 자료점을 건립하려는 숙원을 실현하다

먼저 가정 자료점을 만든 경과를 말해보려 한다. 자료제작을 막 시작하였을 때는 주요하게 사업직장의 편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복사와 인쇄를 하였다. 나중에는 사업변동으로 인하여 아주 불편하게 되었다. 중생을 구도할 진상자료가 없으니 마음이 아주 조급하였다. 그러는 중에 밍후이왕에서 동수가 쓴 가정 자료점을 건립하는 것에 관한 교류문장을 보았는데, 아주 큰 계발을 받게 되었다. 나도 자료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집으로 자료점을 옮기면 아내가 동의하지 않을 것 같아서(아내도 동수이지만 두려운 마음이 아주 중했다) 먼저 프린터 한 대를 사서는 집에 가져다 놓고는 보배를 얻은 것처럼 애지중지하였고 아내도 반대하지 않았다. 드디어 법기 한 대를 갖추게 되어 아무런 제한도 없이 필요한 자료를 복사해 가지고 나가서 중생을 구도하는데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잇따라 또 모아 두었던 돈으로 노트북과 CD Writer기 한 대씩을 샀다. 이렇게 한 가정 자료점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가정 자료점의 건립은 실은 사람의 마음을 버리는 과정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불성이 나오면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진동시킨다. 누가 보든지 간에 모두 그를 도와주려 하며 무조건 그를 도와준다.” (《전법륜》) 오직 사람을 구하려는 염원만 있으면 모든 곤란을 모두 극복하고 화해할 수 있는데, 관건은 견정하고 동요하지 않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자료점이 성립된 초기에는 걱정과 고려가 있었다. 예전에 기본상 컴퓨터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을 몰랐고 안전문제도 고려하였다. 자료점이 평온하게 운행되는 중 각종 걱정도 자연히 사라졌고 동수들의 이 방면에 대한 교류문장을 보고 또한 깨닫게 되었다. 기술은 단지 안전을 보장하는 보조수단일 뿐, 자료점이 파괴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두 동수의 내려놓지 못한 집착에 의해 손을 쓰는 것이며, 아울러 다수는 모두 장시기 동안 집착을 고수하면서 내려놓지 않은데 있는 것이다. 수련 중에 엄중한 누락이 나타날 때라야 사악은 박해를 실시할 기회가 있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경고하셨다. ”진상을 밝혀 중생을 구도(救度)하는 것은 낡은 세력은 감히 반대하지 못하는데 관건은 일을 할 때의 심태(心態)가 그것으로 하여금 빈틈을 파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각지설법2》〈2002년 보스턴설법〉) 그 이후 몇 년간 인터넷에 접속하는 중, 다시는 두려운 마음이 없었고.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접속하고 싶으면 곧 접속하였던 것이다.

2. 순정한 심태로 자료를 제작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 나에게는 하나의 체득이 있게 되었는데 바로 가령 사람의 마음과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더 큰 작용을 발휘할 수 있고, 더 좋은 진상자료를 만들어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번은 동수가 가져온 ‘9평’ 책자가 아주 미려하고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것을 보고 정말 탄복하였다. 나는 ‘손으로도 이렇게 만들 수 있다니… 나도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생각뿐이었으며 아주 어려울 것이니 나는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번의 설법에서 ‘9평’의 중생구도 가운데 일으키는 중요한 작용에 대해 말씀 하셨다. 아울러 대법제자는 악당(惡黨)이 해체되지 않는한 ‘9평’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고무격려해 주셨다. 그리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완성도 높은 ‘9평’ 책자를 보도록 하기 위해 나도 마땅히 책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동수에게서 배웠는데 10분도 안 걸려 배울 수 있었다.

또 말할 것은 2009년 션윈만회 CD를 만든 경험이다. 줄곧 바라던 션윈만회 CD를 얻은 후 즉시 보았는데 너무도 훌륭하여 몇 번을 보아도 또 보고 싶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꼭 훌륭하게 만들어 세인들이 보고난 후 모두 소중히 여기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처음에는 그다지 잘 만들 줄 몰랐지만 나중에는 나 자신도 훌륭하다고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션윈CD를 제작할 수 있었다. 당시 밍후이왕에는 어떻게 션윈만회 CD를 잘 만들것인가 하는 것에 관한 교류문장들이 있었는데, 많은 자료점의 동수들은 모두 CD의 표지를 인쇄하여 제작할 것을 건의하였다. 나는, 이렇게 하자면 또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하겠으니 너무 번거롭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생각은 실은 자신의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온 것이다. 이런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중생구도의 효과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때 한 동수가 나에게 말하기를,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가서 복도에 수많은 진상자료가 버려져 있는 것을 여러 번 보았는데 누가 배포한 것인지 정말 아까웠다고 하였다. 나는 당시 그 자료를 배포한 동수는 마음으로 하지 않고 수량만 추구하고, 효과를 중시하지 않고 임무완수식으로 했다고 원망하였었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안을 향해 찾아보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우리집 아래층에서도 버려진 진상자료 한 권을 보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번 우리에게, 수련중에는 우연한 일이 없으며, 어떤 문제에 부딪치든지 조건없이 안을 향해 찾아보라고 가르치셨다. 나는, 이것은 나를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안을 향해 찾아보았는데, 그제서야 자신에게 문제가 아주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하였을 때에는 아주 열심히 자료를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점차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하는 식으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게으름과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인해 날마다 다섯 가지 공법 연마를 견지하지 못하고 늘 사흘 고기잡이에 이틀 그물 말리는 식으로 하였으며, 법공부와 발정념 효과도 좋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의 수많은 집착심을 질질 끌며 버리지 않았는바, 이런 상태에서 만들어낸 자료가 어찌 위력이 있겠는가? 중생은 당연히 소중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나는 한 동수의 손에서 아주 정미하고 아름다운 션윈CD를 얻었다. 나는 ‘나도 이렇게 만들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중생을 더 잘 구도하기 위해 아무리 어렵더라도 번거로움을 두려워 하지 않고 배워낼 것이다.’ 라고 생각하였다. 나에게 이러한 견정한 일념이 있었기에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CD표지를 인쇄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전법륜》)와 같았다.

3. 사업 환경에서 사람을 구하다

나는 성격이 내향적이어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으며, 남과 함께 있을 때면 언제나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2003년 사부님께서는 신경문 《사람의 마음을 내려 놓고 세인을 구도하자》를 발표하여 우리 매 대법제자에게 “모두 행동하여 전면적인 진상알리기를 시작하여야 한다. 특히 중국대륙의 대법제자들은 사람마다 모두 나와서 말해야 하며, 곳곳마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닿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하셨다. 사부님의 이 경문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고는 중생구도의 긴박성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자신을 돌파하고 직접 만나서 진상을 알려주는 것을 시작하였다.

한 번은 우리 회사에 적지 않은 대학생이 왔는데, 그 중 4명의 학생이 우리 부문에 와서 1주일 실습을 하게 되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인연 있는 사람을 내 신변에 보내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주동적으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다. 처음에 나는 두 명의 학생들과 잡담을 하다가 서서히 주제를 파룬궁 진상쪽으로 이끌었다. 그때 나는 다른 두 학생도 와서 진상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였는데 과연 그 두 명의 학생도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사실 중생들의 명백한 일면은 모두 진상듣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후, 우리 부문에 또 실습생 세 명이 왔는데 모두 서로 다른 곳에서 왔다. 나는 먼저 두 학생에게 진상을 말해 주었는데 그 중 한 학생은 멀고 먼 해남에서 왔다. 그들이 한 동안 우리 이곳에 머물 계획이었으므로 나는 하문에서 온 다른 한 학생은 틀어쥐지 않았다. 며칠이 안 되었는데 그 하문에서 온 학생이 나에게 작별을 알리러 왔다. 실습기일을 앞당겨 끝내기로 학교에서 결정했으므로 오늘 떠난다는 것이었다.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나는 갑자기 깊은 후회를 느꼈다. 어쩌면 한 생명이 불원천리(不遠千里, 역주 – 아무리 먼 길이라도 기쁘게 여겨 달려가는 것을 이르는 한자성어)하고 내 앞에까지 와서 진상을 듣고자 하고, 대법의 구도를 얻자고 했을지도 모르는데 나의 잘못된 판단과 태만으로 인해 그녀로 하여금 이번의 귀중한 기연을 잃게 하였던 것이었다.

지난 해 설 이후 나는 새로운 회사에 가서 그 곳에서 한 개 부문의 사업을 책임지는 일을 하였다. 막 도착한 첫 한 두 달은 새로운 환경에 익숙하지 못해 동료들에게 줄곧 진상을 알려주지 못하였는데, 마음이 아주 조급하였다. 한 번은 회사에서 회의를 열었는데 우리 부문의 회의장 규율이 좋지 못하여 회의 후 회사로부터 지명비판을 받았다. 사부님께서는, “수련 중에 당신들이 만난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모두 좋은 일이다. 그것은 당신들이 수련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시카코 법회》)고 말씀하셨다. 나는 바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일부 동료를 찾아가 담화하는 동시에 진상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한 동료의 고향은 하남성 개봉시었는데 대학을 졸업한 후 본지에 남았고 나중에는 우리 회사에 초빙되었다. 담화중에 나는 파룬궁을 언급하면서 류춘링을 아는가 하고 물었다. 그녀는 안다고 하면서 그녀들 그곳 사람들은 다 안다고 하였다. 나는 이어서 물었다. 분신자살이 가짜라는 것을 아는가? 그녀는 깜짝 놀라면서 그녀들 그곳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나는 또 물었다. 당신은 류춘링을 만나본 적이 있어요? 당신은 그녀가 연공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요?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나는 분신자살의 과정과 의문점을 그녀에게 해석해 주었다. 진상을 알게된 후 나는 또 그녀에게 천멸중공(天滅中共), 삼퇴보평안(三退保平安)의 일을 말해 주었다. 나중에 그녀는 아주 기쁘게 가명으로 삼퇴성명을 하였다.

만사(萬事)는 시작은 어렵다고 하나 일단 돌파해 나가면 그 다음은 쉬운 법이다. 이렇게 나는 계속 다른 동료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고, 아직 성명을 발표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인터넷에 성명을 발표하도록 도와 주었다. 동료들은 기본상 모두 삼퇴하였지만 진상에 대한 요해와 대법에 대한 인정 정도는 아직 완전히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무실에서 사람들에게 진상CD를 틀어 보여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같은 훌륭한 생각이 있었음에도 나는 한 달이 다 지나도록 행동하지 않았다. 안으로 찾아보니 아직도 사람마음이 있었고 남이 접수하지 못할까, 사람들에게 몰이해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더 깊이 파보니 하나의 사심(私心)으로서 자신의 명(名)이 상해받을까봐 두려웠고, 사상은 아직도 구세력의 위사위아(爲私爲我)한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꼭 구세력의 교란과 나에게 강요된 관념을 타파하리라 결심하였다.

한 번은 여러 동수들과 함께 교류할 때,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진상CD를 방영하려 하는데 먼저 션윈만회를 방영하고 다음에 ‘풍우천지행(風雨天地行)’과 ‘9평’을 방영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나중에 나는 이것 역시 관념을 내려놓고 사람마음을 돌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란 것을 발견하였다. 말을 입밖에 냈으니 실천을 해야 하고 자신의 승낙을 실현해야 했다. 이리하여 나는 날마다 점심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사무실에서 전후 2년 동안 션윈만회 등 진상내용들을 방영하였는데 그들 많은 사람들이 다 와서 봤다. 이로 인하여 회사 사람들의 파룬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게 되었고, 그들의 미래를 위한 양호한 기초가 있게 되었다.

4. 면접시험을 이용하여 진상을 알리다

1년 사이에 우리 부문에서는 몇 사람들이 사직하였으므로, 어떤 때는 면접을 통해 사람을 채용하는 기회가 아주 많았는데, 이는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왜냐하면 평소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될수록 매 사람마다 모두 면접할 수 있도록 안배하였다.

초빙에 응한 사람들 대다수는 대학을 막 졸업한 대학생들이었다. 일반적으로 나는 사업으로부터 말하기 시작하여, 상대방의 직무 특장과 일부 기본적인 상황을 이해한 후에는 상대방이 어떤 사회적 실천에 참여하였는지 확인하였다. 그리하여 반급 간부이거나 학생회에서 임직한 적이 있는가? 입당했는가? 삼퇴 대조류에 대하여 아는가를 물어보았다. 이렇게 하면 재빨리 진상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천편일률(千篇一律)로 할 수는 없으며, 매 한 사람의 부동한 상황에 따라 적합한 화제를 선택해야 한다. 어떤 때는 ‘장자석’으로부터 말하기 시작하면 젊은이들은 호기심이 강하여 계속하여 듣도록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역사에 대해 흥취가 있는데, 그러면 예언으로부터 시작하면 천멸중공(天滅中共)을 말하기가 아주 쉬워진다. 어떤 때는 오늘날 사회의 각종 가짜 현상으로부터 금세기의 최대 거짓말인 ‘천안문 분신자살 위조사건’을 말해준다…… 진상을 말하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천안문 분신자살이 가짜라는 것을 처음 듣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분신자살은 매번 반드시 말하는 내용이 되었다.

다수 사람들은 진상을 안 후 모두 삼퇴하거나 돌아가서 삼퇴하겠다고 하였고, 어떤 사람은 삼퇴하고 나서는 더없이 감격해 하면서 면접하러 헛되이 오지 않았으며 채용되지 못한다 해도 가치가 있다고 하였다. 개별적인 사람은 사악한 당(黨)에 의해 독해를 깊이 받아 진상을 접수하지 않았다. 떠나기 임박하여 나는 다시 한번, 삼퇴하여 자신을 구하는 방법을 상대방에게 말해주어 그가 사악한 당을 분명히 인식하고, 일찍 퇴출하기 바라면서 자비를 상대방에게 남겨 주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을 구도한다는 것은 바로 모든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라, 고르는 것은 자비가 아니다.”(《2009년 대뉴욕국제 법회설법》)

한번은 면접에 한 대학 졸업생이 왔는데 보니 사회상의 건달 같았다. 나는 속으로 불편을 느끼고 간단히 몇 마디 전업문제를 물어본 후 면접을 일찌감치 끝마치려 하였고, 진상을 알려 그를 구할 생각도 없었다. 내가 막 포기하려는 순간 지난해 션윈만회 중의 한 프로그램인 ‘선념(善念)으로 부처와 맺은 인연’이 단번에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었다. 극 중의 두 젊은이 역시 변이된 옷을 입고 마성(魔性)이 가득한 차림새를 하였지만 최종에는 불법(佛法)의 감화로 수련의 대문에 들어선 것이다. ‘불법은 무변(無邊)’인데 나는 왜 그를 구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지 않는가?

나는 자신의 심태를 잘 조정하고 재빨리 화제를 진상으로 돌렸다. 내가 ‘장자석’(藏字石)’을 언급했을 때, 분신자살을 언급했을 때. 사악한 당이 파룬궁 수련생의 살아있는 몸에서 장기를 적출을 한다는 죄악을 언급했을 때, 그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였다. 어쩌면 그것은 이 생명의 심령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선념(善念)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진상을 말하는 과정에 그는 줄곧 열심히 들었다. 나중에 ‘밍루(明路)’라는 가명으로 삼퇴시키고는 그에게 자신을 위해 광명의 길을 선텍했다고 알려주었는데 그는 잘 접수하였고 아울러 감사를 표시하였다.

5. 중생을 구도하는 법고를 울리다

금년에 우리 직장에서 신년만회를 조직하였는데, 매 부문 마다에서 한두 가지 프로그램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회사의 기타 부문에도 대법제자가 있었는데 우리는 토론을 거쳐 북치기를 연기하여 문예형식으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기로 하였다. 처음에 두어 번 북치는 것을 배우고는 난이도가 너무 크고 남은 시간도 얼마 안된다고 하면서 북치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 한 동수가 찾아와서 이 기회를 마땅히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기에 다시 토론을 거쳐 우리는 큰북을 치기로 하였다. 2006년 신년만회에 ‘법고 홍음 알리네’란 프르그램이 아주 힘이 있었고, 동작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간단한 개편을 거친 후 또 음악을 아는 동수를 청해 지도하게 하였다. 우리는 모두 기본상 음악 기본기가 전혀 없는지라 처음에는 북을 치는 것도 일치하게 하지 못하였는데, 걷기만 하면 대열이 흩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한 번 또 한 번 연습하여 기본상 북소리가 일치하게 하고 대열형태 변환도 많이 풍부해지게 하였다. 또한 황금색 연공복도 십여 벌 빌려왔다. 이렇게 1주일도 안 되는 사이에 우리의 프로그램이 형성되었다. 이 와중에 일부 교란도 있었고, 회사 책임자가 그다지 지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여러 동수들의 염두가 아주 똑바른 상태라 꼭 공연을 하겠다고 제기하였다.

만회 날에 우리의 프로그램은 첫번째 순서로 안배되었다. 큰 막이 오른 후 우리는 측면으로 무대에 올라 막후에 줄을 서서 먼저 주북으로 서막을 울렸는데 소리는 적은 데로부터 큰 데로, 먼데로부터 가까운 데로 다가오는 것이 마치 우주창공 심원한 곳에서 울려오는 소리와도 같았다. 뒤이어 대법제자가 창작한 음악인 ‘기쁨(欢庆)’을 연주하였는데 악곡은 은은하면서도 흥겨웠다. 이와 함께 둥둥 북소리가 울리면서 막이 서서히 열렸다. 북소리로부터 배경음악, 복장의 눈부신 색채에 이르기까지 즉시 웅장한 기세를 구성하여 시공중의 더러운 오물을 씻어 내렸다. 무대 아래에서 즉시 우레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와 그칠 줄 몰랐다. 이는 아마 중생이 대법의 복음을 들은 후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온 희열과 감격이었으리라. 프로그램이 끝난 후 무대 아래의 수백 명 관중들은 또다시 열렬한 박수를 보내 주었다. 만회가 끝난 후 많은 동료들은 소감을 통해 북치는 프로그램이 정말 재미있었다 라고 하면서, 너무 짧아서 아직도 더 보고 싶었는데 끝나더라는 것이었다.

이상 나의 수련 중의 약간한 심득을 써내어 여러 동수들과 교류하려 하고자 한 것이다. 정진하는 동수들과 비교해보면 아직 많은 차이가 있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함에 많이 부족하여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高度)에 죄송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법제자가 될 수 있었음에, 우주중에 종래로 없었던 영예를 가지게 됨은 더 없이 소중한 것이다. 나는 반드시 용맹정진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밍후이왕 제6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 2009년 11월 2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2/21135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