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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잃고 떠돈 후 조용히 사색하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5일】 6월 하순의 어느 하루, 나는 기차를 타고 시가지에 있는 동수가 사업하는 전기기재 공사로 갔다. (가격이 시장보다 싸기 때문이다) 당일 오후 돌아오지도 못했는데 사악은 우리 집을 수색하고, 자료를 찍는 곳과 내가 거주하는 곳을 수색해 나의 컴퓨터, 프린터, CD, 각종 자재, 공구와 집에 있는 대법서적, 법상, MP3, 비디오 기기 등을 빼앗아 갔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나는 먼저 자료 찍는 곳에 들어가 보고서야 집을 수색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집에 들어 갈 수 없었다. 나는 오늘 저녁 꼭 여기를 떠나야 했지만 대문에 사람들이 많아 나가기 어려웠다. 나는 그날 저녁 줄곧 발정념을 하고 날이 밝기 전에 나가기로 작심했다. 아침 5시 나는 발정념을 하면서 가는 길에 줄곧 사부님께 가지해 주실 것을 빌면서 정념으로 빠져 나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신사신법하고, 정념정행 하도록 빌었다. 대문 앞에는 경찰차가 서있었고, 경비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시 나는 다만 하나의 일념뿐이었다. 나는 가장 바르므로 사악이 두렵지 않다! 나는 그들의 테이블 앞을 지나면서도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대문을 나서 조용히 거리에 도착하자 택시가 나의 옆에 와 섰다. 나는 곧 차에 올라 빠져 나왔다. 아침 8시쯤 다른 시가지에 도착했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증명서도 없었으니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집을 잃고 떠돌아 다니는 것(流離失所)’이 아닌가?

그 며칠 후 ‘7.1’이 다가왔으므로 사당은 아주 긴장하여 모든 아파트마다 할 일없는 사람들을 고용하여 24시간 유동경비를 배치했다. 임무라면 ‘도둑과 파룬궁을 잡는’다는 것이다. (고용된 적지 않은 사람 자체가 도둑과 인간쓰레기임) 나는 ‘유격전’을 하다시피 하며 친척집, 친구 집에 다니면서 임시로 거주하는 한편 진상했다. 근 한 달간 나는 속인들이 사당의 공포로 인해 감히 나가서 함부로 머무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두 집에 진상을 알려 3명이 대법에 들어와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나는 뤼유(旅游)구의 농가에 셋집을 얻고, 향진에 가서 동수를 찾아 자료를 보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오늘은 70일 되는 날인데 이미 여러 번 시련을 겪었다. 나는 부단히 법 공부 하고, 법을 베끼고, 법을 외우는 중에서 깊이 자신을 반성하고, 조용히 사색하는 중에서 이치를 깨닫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작은 꽃’이 요절한 심각한 교훈

2003년 나는 구치소에서 나온 후 2 ~ 3년 간 자료를 보지 못했고 동수들도 적게 만났다. 게다가 사악이 ‘지키고’있기에 나는 다른 시가지로 이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 동수를 알게 되어 자료를 보게 되었고, 또한 교류할 기회도 생겼다. 후에는 6, 7명의 동수가 함께 법 공부를 했는데 자료는 고속버스를 타고 현장에 가서 가져왔다. 사부님께서 “자료점을 곳곳에 꽃피우라”고 하신 요구에 따라 그렇게 하려고 노력 했으나, 이미 나는 칠순에 가까운 노년 부녀자로서 몇 년 전에는 핸드폰도 다룰 줄 몰랐다. 두 눈에는 백내장(수련하기 전에 의사가 수술하라고 했지만 수련한 후 수술하지 않고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이 있지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면 나는 곧 해야 한다.

작년 3월, 컴퓨터를 사서 손자에게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그는 귀찮아했다. 그리하여 집에 놀러 온 대학생을 찾아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그는 이 물건은 노인들과 소통하기 힘들다고 했다. 겨우 컴퓨터를 좀 아는 동수를 찾아 마우스를 쓰는 법을 배웠다. 나는 재빨리 인터넷을 개통했으나 그는 ‘시스템’을 설치 할 줄 몰랐다. 작년 6월에 외지의 젊은 동수를 만났는데 그가 나를 도와 ‘시스템’을 설치해 주고, 나에게 인터넷에 접속하고, USB에 다운받는 것을 가르쳐 주었으며 2명의 동수가 가져가 프린트를 했다. 동수도 인터넷을 설치하여 다운 받으러 오지 않아서, 나는 금년 2월에 프린트 기계를 사서 또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달라고 했다. 후에 나는 또 소형 CD레코더를 사서 CD를 구워 우리 법 공부팀의 《명혜주간》,《명혜주보》, 진상 소책자, 진상 CD등 자료 요구를 만족시켰다. 그러나 3개월 남짓했던 이 자료점이 곧 요절되어 나의 마음은 매우 괴로웠다.

일이 생긴 후 나는 즉시 안으로 찾았는데 나의 ‘환희심’, ‘과시심’,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것’, ‘수구를 하지 못한 것’ 게다가 평시에 또 우리 집에서 법 공부를 하고, 자료를 분배하고, 놀러 오는 등 근원을 찾아냈다. 작년 10월에 파출소 경찰이 우리 집에 찾아와 ‘거주 검사’ 구실로 이것저것 물었을 때, 나는 직접 그들에게 진상을 했고, 그날 저녁 그에게 진상서신 한 통을 써서 보냈었다. 그들은 그때부터 나에 대해 다시는 묻지 않고 관할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이미 알아들은 줄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우리 집 아파트 일층 복도에서 여자들이 날마다 마작놀이를 하는 것을 소홀히 했다. 나는 그들과 교섭하기 싫어했고 그들한테 진상한 적이 없으며 아주 적게 그들을 대면했다. 이것은 얼마나 큰 ‘구멍’ 인가! 이 세상 사람은 모두 사부님의 친인이므로 우리가 구도해야 할 사람이다. 나는 도리어 그들을 무시하였지만 그들이 나를 주시할까 봐 내밀어 쳤다. 낡은 세력은 바로 나의 틈을 탄 것이고 거기에 앞의 몇 가지 집착심으로 인해 아주 크게 곤두박질하였다.

며칠 전 나는 새로운 거주지에서 한 동수를 만나 396기『명혜주간』을 가지고 먼저 찾아 본 것이 바로 ‘자료점에 일이 생기면 우리는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문장이었는데 거기 세 번째 내용은 완전히 나를 대조하여 쓴 것이었다. 문장에서 ‘과시 심과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것은 자료점에 문제가 생기는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다. 어떤 사람은 오늘까지도 밍후이왕의 요구원칙: 독립 조작, 단선 연계, 수구를 하지 않고 있다. 어떤 자료점은 가정식인데 법회를 열거나 놀러 다니는 장소로 되고 있어 속인마저 자료 점을 운영하는 관건정보를 알고 있다. 이것은 모두 본인과 주위의 동수들과 관련된다.’고 말했다. 오늘 또 394기 주간의 한 문장에 다음과 같이 써 있다. ‘사악이 오늘날 이럴 듯 미친 듯이 자료점을 파괴 할 수 있고 대법제자를 박해할 수 있는 것은 꼭 우리의 정체적인 수련 상태와 연관이 있다. 그것을 바로 잡고 정체적인 승화를 한다면 사악은 필연적으로 자멸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인식에 매우 동감이다. 내가 조용히 깊이 사색하여 깨달은 것이라면 한 수련인으로서 허둥지둥 일만 하면서 자신을 참답게 수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교훈이다!

2. 집을 잃고 떠돌아 다니는 중에서의 수련

법 중에서 수련은 대법제자로 하여금 교도소에서 제고를 하라고 하지 않았고, 사부님께서도 대법제자가 집을 잃고 떠도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지금은 ‘곤두박질’했지만 일어나 현실에 직면해야 한다. 나는 생존 기회를 찾는 한편 수련을 틀어쥐었다. 듣건대 과거 화상은 방랑하면서 고생을 겪을 뿐만 아니라 인연을 맺어야 했다. 나는 생활난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는 것을 특수 형식에서 수련하는 것으로 삼겠다. 나는 우선 힘껏 심태 평형을 잡고, 절대 비관하거나 실망할 수 없었다. 매일 다른 사람무리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연분이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찾아 해야 할 일을 했다. 20여 일 후 나는 동수의 전화가 생각났는데 그는 나를 도와 매우 빨리 비교적 먼 현으로 연계해주었다. 차에서 내린 후 그의 친구가 열정적으로 마중해주었고 즉시 협조 인을 찾아 상의한 후, 한 혼자 사는 노인 집에 나를 머물게 했다.

여기의 동수들이 정체 수련을 잘 하고 모두 비교적 정진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다. 직접 보고 비교해보고 나서야 내가 너무나 차이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진짜로 대법을 수련함은 가장 큰 일이로세”(『홍음』〈득법〉)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생명, 생활 모두가 수련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수련과 관계가 없는 잡일은 모두 길을 피해야 했다. 그들의 시간 배치는 아주 빈틈 없었고, 생활은 간단했는데 아주 보기 드물었다. 내가 머무는 집의 동수는 하루에 밥을 한번 지어 세 끼를 먹었고, 반찬은 적게 하고 육류도 먹지 않았다. 아침은 잡곡밥과 비슷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집 식구가 적고 출근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이러하다고 한다. ‘세 가지 일’은 분초를 다투어 했고, 매일 전 세계 통일 연공시간, 발정념 외에는 아침 6시가 넘으면 한 시간 동안 『홍음』과 『홍음2』를 통독하고 아침 식사 후에는 ‘진상하고’, ‘3퇴를 권하고’, ‘전단지를 배포하고’ 오후에는 법 공부, 법 베끼기, 자료 보기를 하며, 하루건너 단체 법공부를 하고 오후에 교류한다. 매일 저녁 10시 전에는 자유로이 교류하고 어떤 때에는 협조인이 일을 알린다. 8, 9, 13정각에는 발정념하여 본 지역의 사악을 제거하고 매일 저녁 잠은 4시간 남짓이 자며, 밥 먹고, 씻고 하는 것이 3시간이 되지 않으며 기타 시간은 전부 ‘세 가지일’을 한다.

그들은 또 비정기적인 법회 심득교류회를 소집한다. (일반적으로 80여 명 참가) 일부 향진의 동수들도 참가한다. 그들의 단체법공부든 법회든 형식은 아주 장엄하다. 길에는 경찰차가 매일 순찰하지만 그들은 대법제자들이 가장 바른 일을 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전 한 시기에 거리에는 ‘×××는 사교’라는 표어가 걸려 있었으나 저녁 10시가 지난 후에는 매 표어의 전신주마다 ‘××당은 가장 큰 사교이다’라는 표어가 붙었다. 그 후 사당인원은 할 수 없이 큰 가로 표어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은행에 진상지폐를 반대하는 표어가 걸린 후, 그들은 즉시 은행 지도자와 간부에게 선을 권하는 진상서신을 보냈다.

여기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한 ‘정체제고, 정체승화’ 정신의 힘을 보았다! 이렇게 강대한 에너지 장, 그들이 ‘맡은’ 이 정법 지역의 사악의 요소를 해체할 수 없겠는가? 환경이 여유롭지 않겠는가? 씬탕런 TV를 보라고 하니, 위성 안테나를 장착하려 하자 시가지 동수들이 그들을 도와주었다.

내가 거주한 집의 동수는 나에 대해 잘 책임졌는데 매사마다 수련인의 표준대로 나를 요구했다. 예를 들면 평소에 나의 일거일동이 법에 있지 못할 때면 즉시 고쳐 주었다. 그 무슨 ‘감기’, ‘두통’ 등 언어와 속인의 관념이 중한 말을 한 마디만 해도 놓아 주지 않았다. 수련인 같지 않은 선 자세, 걸음, 앉음과 누운 자세마저 모두 나에게 지적해 주었다. 또한 나의 연공동작에서 부정확한 것을 바로 잡아주었다. 나는 정공의 마지막 십여 분간 손을 움직였는데(다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그는 제인(結印)한 손은 파룬을 받들고 있는 것인데 움직이면서 뭘 하는가? 라고 말했다. 내가 이제 막 가서 아침 6시 발정념을 한 후 좀 자려고 하자 그것도 안 된다고 하면서 일어나『홍음』을 통독하라고 했으며, 저녁 10시 후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법 공부 할 때에는 대법서적을 정중하게 들어야 하고, 몸을 움츠리거나, 비뚤거나, 엎어 놓아도 안 되었다. 그들은 『전법륜』을 세 번이나 베꼈는데 종이에는 검은 점 하나 없다. 이 동수는 50여 세이지만 보건대 40여 세 되어 보이는데 고생을 잘 겪어낸다. 성시에 가든 농촌에 가든 걸음을 걷든 차에 앉든 모두 가는 곳마다 ‘진상’, ‘3퇴’, ‘배포’하기, 진상구호 찍기, 진상표어 붙이기를 했다. 어떤 때에는 오토바이에 앉거나 차를 타고 시골에 가서 ‘진상’을 하고, 어떤 때에는 밤에 진상 풍선을 띄웠다. 그 며칠 우리는 길에서 나에게 먼저 진상하게 하고, 그런 다음 그가 진상하여 나에게 보여주었으며,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먼저 나에게 이야기하게 하고 후에 그가 이야기 함으로서 거기에서 문제를 발견하여 도와주었다. 그는 또 누구누구는 그보다 더욱 잘 한다고 이야기 했다.

나는 긴장감을 느꼈는데 심성이 따라가지 못하여 야위었고, 적게 먹고, 열이 나기 시작했고 두통이 났다. 그는 아주 관심을 갖고 나에게 떡을 구워주었으며 오리를 삶아 주었다. 우리는 아주 적게 먹었는데 그는 “한 수련인으로서 안 먹으면 안 먹은 것이지, 당신이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픈 것은 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후에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그녀를 안배하여 나의 이 방면의 부족한 점을 제고하게 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고생을 겪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성하며 이치를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적게 쉬고 자아 성찰하여 정념을 더하고 부족함 똑똑히 알아 다시 정진하거라”(『홍음2』)고 말씀하셨다. 후에 나는 다른 성시에 가서 셋집을 맡고 잠시 이 한 단락의 잊을 수 없는 수련의 연을 끝마쳤다.

3. 고통스럽게 ‘소업’하고 심성을 수련

이 몇 년간 나의 주변의 적지 않은 동수들에게 엄중한 병업 상태가 나타났는데 어떤 사람은 인체를 잃었고, 어떤 사람은 소업관을 포기하고 병원에 갔고, 어떤 동수는 병업 상태에서 주사를 맞았다. 한 공장에서는 사악이 틈을 타서 이 현상을 가지고 “이것은 파룬궁이 약을 먹지 않아 끝장을 본 것이다”라는 직원 토론대회를 열기도 했다. 속인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수련인이므로 자신이 명백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와 대 여섯 명 동수가 이런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동수들의 집에 찾아가 함께 법 공부하고, 교류하고 단체 발정념을 하면서 정법시기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개인수련의 관도 안배하지 않았으며 낡은 세력의 박해라고 이야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매일 발정념으로 낡은 세력의 박해를 제거하도록 요구했다. 동시에 또 명혜 모음집에서 병마중의 소업관을 넘은 많은 문장들을 주었다.

그러나 생각밖에 갑자기 이 병마의 업력관이 나를 향해 맹렬히 습격했다. 나 한 사람 이외 누구도 몰랐다. 좋은 것이라면 앞에서 동수들을 도와준 경력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날마다 발정념으로 낡은 세력의 안배를 부정하고 없애버렸으나 몇 십 일이 지나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최후에는 하나 또 하나가 쌓였다! 이때에야 비로소 내가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사부님께서는“일마다 대조하여 할 수 있음이 수련이노라”(『홍음』〈착실하게 수련〉)고 말씀 하셨다. 나는 아픔을 두려워하고, 고생을 두려워하고 몇 번이고 소업의 관을 포기했다. 예를 들면 내가 이번에 열이 나는 현상으로 며칠 동안 땀에 옷이 흠뻑 젖어 있었고, 연공하면 허탈하였다. 원래는 내가 2004년에 열이 나서 링거를 맞아 관을 넘는 것을 포기했던 것이다. 나를 제일 길게 시달리게 한 것은 폐, 기관지, 기도가 날마다 기침을 하여 농염 가래가 많았는데 이것은 몇 년 전에 기침이 나서 약을 먹으며 관을 넘지 못하고 피함으로 인해 조성된 것이다. 이어서 치아가 아파 참기 힘들었고 잇몸에 손가락만큼 큰 ‘혹’이 자라났는데 그것도 치통 때에 약을 먹어 남긴 후환이다.

몇 가지 병마가 함께 나타나 나는 허약하여 밥을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견정하게 믿고, 수련의 일체 문제를 모두 법 속에서 해결했다. 사부님께서는“수련의 길에 고생이 있음이 아니라 생생세세 업력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로다.”(『홍음』〈인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꼭 ‘단단히 마음먹고 소업하여 심성을 수련하겠다!’ 이때 나는 사부님께 무릎 꿇고 말했다: 저는 반드시 소업관을 넘으려 하며, 한 마음 한 뜻으로 사부님의 안배한 곳에 가 머물겠으며,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많은 것을 감당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 치아가 너무 아프니 사부님께서 조금이라도 덜어주신다면 나머지 고통은 제가 감당하겠다고 빌었다. 좀 지나 강렬한 진통이 사라졌고,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혹 덩이’가 없어졌다! 그러나 마음은 너무나 괴로웠다. 사부님께 제구실을 못하는 제자를 도와 감당하게 했으니 말이다.

고통스러운 40여 일 동안 생사의 소업에서 능히 소업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법 공부, 도를 깨닫고, 심성을 수련하는데 의거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이전에 설법에서 그렇게 명백히 말씀하셨으나 나는 도리어 자신을 방임하고 마음속에 새기지 않았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조금만 마난(魔難)에 부딪히고 무엇에 조금만 부딪혀도 당신은 모두 넘지 못하여, 최후에 아주 크게 누적되었을 때는 바로 하나의 큰 관이다. 그 큰 관은 당신이 생명을 내려놓지 못하면 넘지 못하는데 그럼 어떻게 하겠는가? 심지어 관이 큰 것은 당신이 생명을 내려놓아도 평형시킬 수 없고 낡은 세력은 당신이 넘지 못하도록 놓아주지 않는데 또 당신은 정념도 충족하지 못하다면 당신이 말해보라, 어떻게 하겠는가?”(《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 또 하나가 쌓여 큰 관으로 되었는데, 만약 법 속에서 깨닫지 않았다면, 그리고 나는 ‘단호히 소업하여 관을 넘겠다’, ‘마음먹고 소업하여 심성을 수련하겠다’는 이 정념이 있었기에 사부님의 법신이 나를 도와 주셨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는 ‘소업’과 ‘병’에 대해 아주 투철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별하여 다시 한 번 베껴내어 자신으로 하여금 이치를 더욱 깊이 깨닫게 했다. 속인은 ‘관(棺)을 보지 않고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나도 ‘큰 관을 넘지 않고서는 도를 깨닫지 못하는가?’, ‘마난을 만나지 않고는 착실히 수련하지 못하는가?’ 아픔이 가라앉은 다음에 아픔을 회상함이라 그러므로 나는 이 한 마음으로 심득을 써내어 동수들과 나누려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낡은 세력이 우리의 틈을 타니 그 집착심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그것을 닦아버린다면 마난은 꼭 자멸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인식과 오성에 있어서 존재하는 문제를 이야기 하려 한다. 사부님께서는 , 이 경문에서 나를 점화해 주셨고 나에게 즉시 베끼게 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본성의 일면이 정법을 하겠는가? 어떻게 해야 본성의 일면으로 마난을 인식하겠는가? 사람이 법에 대한 인식은 어느 방면에 체현되는 것이 아닌가? 과거에는 대뇌가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물론 잘하지도 못했다. 이번 일이 생긴 후,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시어 악인의 눈앞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고, 떠도는 중에 한차례 또 한차례의 특수한 수련을 배치하셨으며, 소업 중에서 나타난 신기한 사실은 나로 하여금 진일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노라”(『홍음2』〈두려울 것 뭐냐〉)를 알게 했으며, 무엇이 ‘정념정행’, ‘신사신법’인가를 진일보 이해하게 했다. 그러므로 다시 을 볼 때, 사부님께서 나에게 펼쳐주신 이 층의 법리를 비교적 명확히 할 수 있었다. 물론 너무 늦게 인식했지만 필경 나의 실천에서 인식한 것이므로 나는 감성 인식으로부터 이성적인 인식으로 승화했다.

이상은 개인의 인식이므로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시정하기 바란다.

(밍후이왕 제6차 중국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5일

문장분류: 대륙법회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5/2113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