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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속에서 성장

글/광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1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세요!

전 세계 동수님들 안녕하세요!

행운과 영광 속에 나는 제6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인터넷 수련심득 교류대회에 참가하였다. 앞의 4회 교류회에 나는 참가하지 못하였고 제5회에 비록 참가했으나 남한테 떨어지지 말자는 심태에서 쓰게 되었고 참답게 대하지 못하였다. 밍후이왕에 게재된 교류 글을 보고 동수들의 참다움과 경건한 심태에서 써낸 체득은 나를 깊이 진감시켰다. 매 사람이 써낸 글자는 모두 매 사람의 사상경지와 수련정황을 반영해 냈고 이러한 정보는 독자한테 영향 주었으며, 순정한 심태에서 써낸 체득이야말로 독자한테 좋은 점이 있으며 비로소 법회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여 이번의 원고를 쓰기 전에 나는 자신의 사상속의 좋지 않은 각종 염두를 청리하고 될 수 있는 한 순정한 심태로 이 신성한 법회에 참가하려 했다.

1. 잊을 수 없는 시간들

나는 1998년 7월에 부모님의 이끌림 하에 표면으로 볼 때 아주 자연스럽게 법을 얻었다. 98년에 법을 얻기는 하였으나 그때 별로 법공부에 열중하지 않았고 연공도 적게 하였다. 심지어 연공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모두 부모님의 독촉 하에 임무를 완성하는 식으로 연공했다. 이러한 상태였으나 사부님은 그래도 나를 관여하셨다. 인상이 가장 깊었던 것은 번화한 시장거리에서 거닐다가 한 삼륜 모터사이클이 나의 발등을 지나갔으나 오히려 조금도 아프지 않았으며 아무런 일도 없었고 그냥 침 바늘에 찔린 것처럼 따끔했다.

1999년 7.20 전의 나날은 회억할 만한 가치가 있었는데 자신은 아낄 줄을 몰랐다. 지금도 큰 유감이다! 그때 시에는 연공장, 법공부팀이 몇 개 안되었으나 동수들은 단체로 법공부하고 연공했다. 법공부장에는 모두 열성적인 수련생들이었고 보도원이 장소를 제공했다. 어떤 때는 보도원이 스스로 돈을 내어 장소를 빌려 여럿이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볼 수 있게 했다. 일부 수련생은 스스로 일찍 오고 늦게 가면서 청소를 하였다. 큰 극장을 빌리게 되면 인근의 향진 사람들도 함께 보러 왔다. 현지의 수련생들은 자발적으로 앞자리를 향진의 수련생들한테 양보했다. 바로 이런 한 무리의 상화로운 수련인 들이었다.

매 달 한 차례 비교적 대형적인 단체 아침연공을 조직했으나 나는 가석하게도 몇 번밖에 참가 못했고 박해는 곧 시작됐다. 그때 마지막 아침 연공에 인근의 향진에서도 왔고 사람이 비교적 많았다. 듣기로는 천명이 되었다고 한다. 연공장은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었고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스스로 줄을 섰다. 자연적으로 정연한 대오가 형성됐다.

그때 나는 큰 감수가 없었다. 그 후 학교에서 활동을 진행할 때마다 선생님이 대오를 정연하게 하기 위하여 성을 내시는 것을 보고서야 천여 명의 사람들이 훈련도 거치지 않고 그렇게 정연한 대오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일이 놀랍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속에는 몇 살 되는 어린애가 있었고 6,70여세의 노인이 있었으며 문화가 없는 부녀들과 농촌의 농사꾼이 들어있었다. 오직 몇 명의 보도원이 약간의 협조를 하였다. 그때의 장면은 장관이었고 많은 행인들이 발길을 멈추고 구경했다. 지금도 그 장면은 똑똑히 나의 기억 속에 담겨져 있다.

우리 여기는 작은 도시이다. 밍후이왕에서 몇 천명 내지 만 명에 이르는 연공장면도 역시 질서정연했으며 파룬따파의 순정한 마당에서 이것은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한 잊을 수 없는 점점의 일들은 이후의 비바람 속에서 나로 하여금 동수간의 연분을 아껴야 함을 알게 했다.

내가 연공장에 갈 수 있었던 마지막 밤은 일요일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어두스름한 불빛아래 연공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아주 적었다. 몇 사람의 교섭으로 그날 밤 연공은 채 끝내지 못하였고 각자 흩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은 7.20의 밤이었다. 며칠 밤 아버지는 TV를 보면서 줄곧 머리를 저어셨다. 그때 나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잘 몰랐고 아버지가 정중하게 우리한테 알려주기를 어찌하든 파룬따파가 좋음을 믿어야 한다고 하셨다.

2. 비바람 속에서 성장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어디론가 간다고 나한테 알려주고 나한테 밥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어머니가 낮에 집에 없기에 나는 처음으로 밥을 지었다. 아버지는 아주 많은 말을 나한테 하였으나 나는 기억하지 못하였다. 아버지가 며칠 나갔는지도 기억나지 않으나 단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 후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끊임없이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시끄럽게 굴었다. 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집에 뛰어들어 사처로 수색하고 몇 사람은 아버지를 둘러쌌다. 책상에는 펜과 종이가 놓였고 아버지더러 사인하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가 파룬궁을 위해 바른 말을 하러 북경에 다녀왔음을 알았고 점차 중국에 얼마나 황당한 일이 발생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중공이 사람더러 ‘쩐(真),싼(善), 런(忍)’을 믿지 못하게 하였으며 연공인더러 파룬궁을 연마하지 못하며 북경으로 가지 못하게 하고 양심의 말을 하지 못하도록 보증하라고 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싸우고 강탈하는 일은 우리는 관계하지 않아도 괜찮으나 파룬궁을 연마하는 일은 지금으로서 특대사건이다. 한개 지방에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북경에 상방가면 우리의 밥줄은 끊어진다.”였다. 그 때에는 이러한 무리한 박해를 승인하지 말아야 함을 깨닫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근본적인 신념을 움직인 적이 없었으며 압력이 어떻게 크던지 한글자도 사인하지 않으셨다. 그때 나는 흐리멍덩했으나 느낌상 아버지의 행위가 맞는다고 생각됐다.

그러한 나날에서 우리는 초인종에 아주 민감했다. 초인종이 울리기만 하면 우리는 우선 대법서적, 연공 음악 테이프, 사부님 법상을 잘 감추었다. 어떤 날에는 한 밤중에 꿈속에서 급한 초인종 소리에 깨어날 때도 있었다. 이러한 나날은 아버지가 동수의 집에서 붙잡히기까지 계속됐다. 아버지는 ‘사회치안을 문란하게 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죄명으로 노동교양을 당했고 그제야 집은 안정을 회복했으나 이때로부터 곤경에 빠졌다. 하여 그러한 경찰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원한이 생겼고 길에서 걸어가다 경찰차를 보게 되거나 사당의 옷차림을 보기만 하면 이가 갈릴 정도로 원한이 일어났다.

그때 나는 학업을 그만두었고 나이가 어려서 합당한 일을 할 수가 없었으며 집에서 법공부를 하였다. 처음에는 일부 글자를 알 수 없었고 법공부할 때 옆에 사전을 놓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법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법공부하면서 자신의 용량이 확대되고 있었고 사유는 표현할 방법이 없이 넓어졌으며 그 한은 점차 화해(化解)되었다.

점차 나는 이 일체가 어찌된 일인지를 알게 됐다. 나는 사당의 명령을 받들어 시행하는 그런 ‘집행자’가 가장 가련함을 알았다! 세상에 온 사람은 모두 법을 위하여 왔고 가능하게 생생세세의 윤회 속에서 오늘 법을 얻으려고 적잖은 고생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오히려 이때에 반면 인물로 역할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세속의 환상 속에 길을 잃어버렸고 사색을 거치지 않고 요언을 믿고 대법을 적대시했으며 사람이 세간에 온 목적을 망각했다. 매번 여기까지 읽게 되면 속으로 진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웠고 자신의 능력을 다해 사람들한테 진상을 알리고 싶어졌다.

사악이 가장 날뛰던 처음 2년간 현지의 자료는 양이 좀 모자랐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복사하는 가게에 가서 복사한다고 했다. 그러나 많은 복사 가게에서는 감히 해주려 하지 못했고 해주는 곳이라 하더라도 값이 비쌌다. 우리 어린애들이 수구하지 못 할까 봐 어머니는 일반적으로 우리한테 자료의 내원과 동수의 구체적인 일에 대하여 알려주지 않았고 우리는 더 묻지도 않았다. 그냥 매일같이 나가서 자료를 배부하였다.

그때는 단 한 장짜리 전단지였고 가끔씩 자체로 작은 표어를 제작했다. 비교적 얇은 노란색 종이를 펴고 밑에 글씨본을 깔고 붓으로 열심히 썼다. 물론 아름답게 쓰지는 못했다. 어떤 때 동수가 인쇄한 표어를 가져와서 ‘파룬따파홍전세계’라는 아름다운 채색 스티커를 만들 수 있었는데 그때는 특별히 기뻤다.

아마 어른들은 후천적인 관념이 비교적 많아서인지 어머니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비교적 심하셨다. 매번 우리가 집 문을 나설 때면 어머니는 근심걱정에 쌓였고 늘 신신당부하셨다. 어떻게 배부하고 어떻게 붙이고 어떻게 하면 비교적 안전하다는 등등이다. 그러나 일단 집 문만 나서면 우리가 고려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할 수 있는가 였으며 그러기에 붙여진 곳은 대부분이 도로의 주요 입구거나 버스 정류소, 파출소 선전란이다. 자료를 배부할 때 동수와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비교적 멀리 떨어지거나 편벽한 곳 혹은 보기에 경비가 비교적 삼엄한 고급 주택가에 갔다.

자료 배부 전에 우리는 자료의 내용을 기본적으로 파악한다. 혹시 사당인원을 견주어 만든 진상자료면 동수가 왜 이러한 자료를 많이 찍었을까 다시 생각해본다. 모든 일이 우연한 것이 없으므로 다시 생각해보고 사당부문의 주택가로 가서 배부했다.

그 동안 일부 일에 봉착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어떤 때 사람들을 따라 전자 문에 들어가는데 나오지 못하면 (일부 전자문은 안에서 반드시 열쇠가 있어야 열 수 있다) 늘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은 우리는 모두 어머니한테 말하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는 혼자서 가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서 어머니가 너무 근심하게 하기 싫었다. 부모가 우리더러 뭘 하라고 하지 않았으나 많은 파룬궁 수련자와 마찬가지로 확실히 사람마다 마음속으로부터 진상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 몇 년 집은 아주 가난해졌고 빚이 한 무더기나 되었고 생활은 아주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충실하게 지냈다. 바로 사부님의 법이 우리의 먼지로 덮여 오래된 기억을 열어주셨고 또한 시시각각 우리를 가호해주셨다. 자료를 배부할 때 칠흑같이 검은 길에서 길을 잃지 않았으며 우리는 또 종래로 길을 잃은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떻게 걸어가든 우리는 능히 집에 돌아갈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으며 우리는 사부님께서 바로 우리의 신변에 계시고 있음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몇 년간 크고 작은 거리를 다 다녔고 어떤 때는 자전거를 타고 향촌으로 내려갔으며 인근의 작은 향촌은 이미 길이 익숙해졌다. 작은 자전거는 큰 것으로 바뀌었고 엊그저께의 소녀는 이미 점차 성장하여 처음에는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으나 지금은 늘 혼자서 도처에 진상자료를 나르고 있다. 뚜렷이 감수되는 것은 정법형세의 추진에 따라 환경은 많이 느슨해졌으며 사악은 더는 감히 와서 시끄럽게 굴지 못하였다. 집안의 형편도 많이 호전되었고 보기에 아주 커 보이던 빚을 기적같이 다 갚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우리는 능히 한 개 자료점의 소모품 비용을 담당할 수 있으며 각종 소책자와 진상 CD, 《구평》을 만들 수 있다.

그 속에서 내가 체득한 것은 오직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면 넘지 못할 고비가 없다.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은 모두 매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근거하여 우리한테 배치하셨기에 우리가 모두 넘길 수 있다. 현재의 느슨한 환경에 대하여 우리는 속인의 생활을 향수하라고 한 것이 아님을 깊이 인식하고 있기에 우리의 생활은 여전히 아주 간단하다. 그러나 자료를 만드는 자료 기계, 먹, 탄소가루, 종이, CD 등은 모두 가장 좋은 것으로 선택하고 있다.

내가 접촉하고 있는 동수는 아주 적으나 매주의 《밍후이주간》은 동수가 늘 제때에 보내주며 나는 매번마다 아주 열심히 보고 있다. 동수의 정진에서 나와의 차이점을 찾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 수련은 연령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음을 일깨워주며 표준은 마찬가지라고 귀띔한다. 순정한 우주는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 입자를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지 일 년이 되어 가는데 매일 밍후이의 교류 글을 보면서 자신이 많은 제고를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여기서 조건이 되는 동수들이 모두 밍후이왕에 접속하기를 건의 드리며 동수가 말했듯이 밍후이왕에 접속하려는 소원은 있어야 한다. 나도 이러한 소원이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 나와 아주 멀다고만 느껴졌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 소원이 정말로 현실로 된 것이다.

앞에 있는 동수들이 이미 밍후왕에 접속할 수 있는 많은 경험을 총결했고 각종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으며 네트워크 안전도 이미 문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유관 기술도 사실은 어렵지 않으며 컴퓨터는 두뇌와 비할 바가 못 되며 우리 수련인은 큰 지혜가 있는데 배울 수 없을까 두렵지 않은 것이다. 컴퓨터를 배우면서 내가 체득한 것은 동수한테 너무 의뢰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 손을 많이 놀려야 빨리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문제에 봉착해도 당황하지 말아야 하며 대다수의 경우는 아주 ‘곧바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많은 동수가 모두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동수들이 조건이 되면 모두 밍후이왕에 접속할 것을 건의한다. 왜냐하면 밍후이왕은 우리의 수련 교류 마당이며 사부님께서 우리한테 세워주신 믿을 수 있는 사이트이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허구로 꾸며진 유흥의 세계로서 각양각색의 정보들이 있고 각종 사이트가 있어서 우리가 정념으로 대해야 한다.

3. 자비(自卑)심을 제거

어떤 때 나는 만일 이번의 박해가 발생되지 않았으면 나의 길은 또 어떠하였을까 생각해본다. 부모는 모두 지식교육을 중시할 것이고 혹 나는 아주 순리롭게 학업을 완성하였을 것이며 적어도 한 장의 졸업장은 따냈을 것이다. 그러나 박해가 발생하여 나는 학업을 그만두었고 인재가 넘쳐나는 현재 사회 속에서 나는 조금의 자비(自卑)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사업 터에서 어떤 때는 남들이 경시하고 있음을 뚜렷이 느끼고 있으며 특히 금방 사업을 시작했을 때 단지 근면하게 하는 것으로 실수를 미봉하려 했고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일은 마음과 어긋났고 잘하려고 할수록 일은 뒤틀려 졌으며 그럴수록 남들이 업신여기는 것이 느껴졌다.

어떤 동수들이 능력이 아주 강하거나 각 업종에서 핵심적인 사람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게 되면 나는 늘 사부님께서 왜 이렇게 재능이 없는 나를 선택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정서가 떨어지게 되면 자신은 마치 한 알의 미세한 먼지가루로 느껴졌고 넓고 넓은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존재로 느껴졌다. 이럴 때면 법공부가 늘 마음에 들어가지 않을 때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신이 본다면 생명이 커서 진귀하고 생명이 작아서 진귀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각지역 설법 3》〈대(大)뉴욕지역법회 설법〉) 현재 세상에 내려온 사람 대다수는 모두 하나의 방대한 체계를 대표하고 있으며 지위가 아주 낮거나 얼빠진 사람도 가능하게는 아주 깊은 내원을 가지고 있으며 대법을 얻은 생명은 더욱 우주의 모든 생명들이 흠모하고 있는 것이다. 왜 하필 세간의 표면적인 것에 마음을 두고 있을까? 만일 아주 보잘것없고 아주 비천하며 심지어 아주 둔한 사람도 수련을 잘 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바로 법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깊이 파헤쳐보면 역시 명예를 구하는 마음이며 보다 잘 나가려는 것이며 속세의 명예를 구하고 사람의 존경을 구하고 있는 것이며 너무나 자아에 대하여 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마음속에 법을 담고 자신의 일을 잘 해나가고 더는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았을 때 일을 하게 되면 마음 따라 일이 잘 되어갔고 따라서 접촉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다. 원래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도 의연히 진정으로 대해주었고 내가 전에 생각하고 있던 그러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일체는 모두 마음 따라 나타났다.

결속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갖은 풍상과 인생의 모든 간난신고는 멀리 과거의 시간 속에 흩어졌고 돌이킬 맛이 없다. 오직 사부님의 세심한 것까지 살펴 가호해주신 것이 점차 눈앞에 떠오른다. 내가 그 속의 구체적인 일을 상세히 하나 둘씩 서술하려 했으나 펜을 움직여 나갈 수 없음을 발견했고 일체는 단지 마음속으로만 느낄 수 있을 뿐 언어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수련의 길에서 망망했던 적이 있으며 느슨히 하고 소침해졌던 때도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면, 반드시 정과를 얻는다고 한다.”(《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 특히 현재 각 방면의 조건이 이미 느슨해진 정황에서 자신은 저도 모르게 안일한 마음이 생겨났다. 사부님의 최근 잇따라 발표되는 경문과 설법을 공부하면서 나는 자신의 허다한 부족을 찾았고 자신은 사부님의 요구와 거리가 아주 멀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사부님은 줄곧 제자들이 어서 빨리 성숙되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박해가 금방 발생된 지 얼마 안 되어 천목이 열린 남동생이 사부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계심을 보았다. 지금까지 완전히 그 함의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마음을 쏟고 있는지는 더욱 모른다. 단 제자로서 영원히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음을 알고 있다! 오직 지금부터 시작하여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용맹 정진하는 것뿐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주변의 동수들이 줄곧 협조하여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얼굴 모르는 세계 각지의 동수들이 교류 글과 비바람 속에서 막대한 협조를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밍후이의 동수들의 묵묵히 대가를 지불한 것에 감사드립니다!

동수님들과 함께 공동으로 정진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허스!

(밍후이왕 제6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1/2105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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