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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을 내려놓고 신(神)의 길에서 걷자

글 / 대륙대법제자 후이인(慧韾)

【밍후이왕 2009년 11월 2일】

존경하는 사존님 안녕하세요!

동수님들 안녕하세요!

나는 직장내에서 일정한 영향력이 있으며 주로 지식인들로 이루어진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제6회대륙대법제자 서면교류법회 투고가 시작되었다. 처음에 나는 자신의 각 방면에서 한것이 아주 차하다고 생각되어 펜을 들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 동수와 교류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많은 집착과 부족이 있더라도 글을 쓰는 과정은, 법으로 자신을 심사하고 총결하고 자신을 바로잡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것은 역시 마음을 닦고 심성을 제고하는 과정이며 법을 실증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리하여 순정한 심태로 자신의 과거를 총결하고 자신의 문제와 부족을 찾기로 결심했다. 지금부터 이 몇 년간의 수련 속 자그마한 체득을 써내어 동수들과 교류하려 한다.

1. 사람과 신의 차이는 일념지차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었다. 법을 얻기 전에 나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경험했다. 사업에 금방 참가하여 중공사당의 극좌파 노선에 의해 탄압을 받았고 조직에서 비판을 받았으며 소위 ‘내부감시인원’으로 지목되었다. 고립되고 아무런 성원도 없는 고통 속에서 하마터면 자살을 선택할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문화대혁명 후 업무에서 탁월한 성과를 발휘하여 사업단위로부터 모범전형으로 되었고 각종 영예와 칭호를 획득했다. 꽃다발과 박수 속에서 나는 인생의 희노애락을 경험했다. 명예와 이익의 전투마당에서 받은 상처와 촉박함이 걸린 일들 속에서 각종 질병의 시달림(선천성적인 재생불량성 빈혈로 인해 체내 각종 장기 쇠약해짐)으로 인해 죽기보다 못한 고통 속에서 살아갔다. 인생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나는 곤혹스러웠고 삶은 막막했다. 이전에 기타 기공을 연습해보기도 했으나 쓸모가 없었고 불교에 기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절의 스님들도 돈을 만지고 있었고 나는 낙심하고 말았다. 바로 이때 세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듯이 나에게 파룬궁을 소개했다. 마침내 나는 1997년 2월, 대법을 기쁜 마음으로 얻었다. 나는 단숨에 《전법륜》을 읽었고, 이것이 바로 내가 찾고 있던 것임을 절실히 느꼈으며 대법을 끝까지 수련하리라 결심했다.

금방 연공하였을때, 다리에 업이 많아(발이 특히 딴딴했고 무릎관절이 변형된 상태였으며 길을 걸을 때 X자를 이룸) 반가부좌마저 할 수 없었고 앉아 있기조차 힘들었다. 점차 반가부좌를 틀 수 있었으나 발이 아파 참기 힘들었다. 어떤 때는 너무 아파 마음마저 떨렸다. 그러나 연공이 끝나 연공장에서 나올 때면 한 가닥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심신은 특히 가벼워졌다. 두 달 후 각종 병으로 인한 고통이 전부 소실되었고 나는 병이 없는 상태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맛보게 되었다.

몇 달이 지나 나도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으나 온 몸을 마치 묶어놓은 듯하다 아픔으로 단 몇 분밖에 견지할 수 없었다. 어느 하루 연공장에서 내가 금방 결가부좌를 틀었는데 왼쪽 다리 무릎관절에서 세 마디 큰 소리가 났다.(마치 화포를 쏘는 듯한) 그러나 오성이 차하여 사부님께서 나의 다리를 조절해 주고 다리의 업력을 제거해주는 것임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오히려 사람의 관념으로 다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여 실제로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정말로 사람과 신의 차이는 일념지차이다. 이 일념지차는 부동한 결과를 가져왔고 나의 이후의 생활에 적잖은 고통을 가져왔다. 그 자리에서 발을 딛고 설 수가 없었고 딛기만 하면 아픔이 극심했으며 관절에서 화포를 쏘는 듯이 ‘팍, 팍’하고 소리가 났다. 동수는 방법이 없어 나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웠고 발은 움직일 수 없었다. 왼쪽다리 관절은 만두만큼 크게 부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살을 에어내는 아픔으로 인해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이것은 자신이 생생세세로 빚진 업력임을 알았고 응당 정념으로 대해야 하며 내가 감당해야 한다면 감당하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고 속인의 어떠한 방법도 쓰지 않았다. 오직 신사신법(信師信法)했다. 나는 끊임없이 사부님의 시를 외웠다. “수련의 길에 고생이 있음이 아니라 / 생생세세 업력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로다 / 소업하고 심성을 수련코자 결심하나니 / 영원한 사람 몸을 얻음이 부처이노라”(《홍음》〈인과〉) 낮에는 끊임없이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다. 심성을 지켜나가자 사부님은 아주 빨리 나의 신체를 조절해주셨다. 나는 마치 끊임없이 회전하는 큰 파룬 위에서 잠자고 있는 것 같았고 사흘 후 몸에서 아주 많은 더러운 것을 배출해냈다. 그러자 다리의 부종은 절반이 내려갔다. 그 사이 친척은 근심에 쌓여 권고했으며 끊임없이 나의 심성을 고험했다. 여동생이 말하기를 “나는 문화대혁명 때 농촌에 내려가서 언니처럼 다리가 상한 후 고집을 부려 나중에 불구자가 된 것을 보았어요.” 나는 견정하게 말했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수련인이다. 이것은 다리에 병든 것이 아니라 소업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직 신사신법하면 반드시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마침내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 하에 20여일 후 나는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그때 나에게 하나의 아주 정진하여 착실히 수련할 수 있는 법공부팀 환경을 배치하여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린다. 내가 소업 하는 기간에 동수들은 끊임없이 찾아와서 법리상에서 교류해주었고 내가 이 고비를 넘기도록 고무격려해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팡이를 버릴 수 있게된 날에(절룩거리고 걸었고 아주 힘들었다) 즉시 법공부팀에 가서 법공부했다. 이튿날 밤 동수들과 함께 《전법륜》을 읽고 교류했다. 심신은 법광 속에서 노닐었고 법공부 장소는 자비와 상화로움으로 충만 했다. 나의 신체는 아주 빨리 조절을 얻었다. 결가부좌하고 연공하는 것도 한 시간을 견지할 수 있었다. 지금 나는 걸음을 가볍게 걸을 수 있으며 다리는 더이상 ‘X’자가 되지 않는다. 친척친우들은 나의 다리의 변화에서 대법의 신기함과 초상적인 것을 보아냈다. 이것은 나의 일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각으로 느껴졌다.

2. 관념을 내려놓고 대법을 실증하다

1999년 7월 20일 구세력은 중공사당을 이용하여 파룬궁에 미친듯한 박해를 발동했다. 하늘땅을 뒤엎는 요언을 날조하고 대법을 모함하는 방송을 TV로 24시간 진행했다. 나와 법공부팀의 동수는 의연히 걸어 나와 성정부에 정황을 반영하러 갔다. 우리는 사부님이 청백하시며 위대하심과 ‘진선인’을 견정히 믿음에 잘못이 없음을 믿었다. 실제 탄약을 넣은 총으로 무장한 경찰과 경적을 울리며 다니는 경찰차, 사악한 방송선전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후 4시경에 경찰은 대법제자를 한 명씩 경찰차에 실었다. 우리는 높은 소리로 “좋은 사람으로 되려하는 것에는 잘못이 없다!”고 외쳤다. 경찰차에 실려 나는 시외 체육장으로 왔고 사람마다 등기를 했다. 7시 전후에 우리는 늘 하던대로 단체연공을 했다. 사부님의 가호 하에 밤 12시경 우리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딸이 나에게 말했다. 그날 단위와 친구, 동료들의 전화가 빗발쳤고 나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까봐 근심했다고 했으며 나에게 더이상 밖에 나가지 말라고 권했다고 하였다. 나는 그들의 뜻을 알고 있다. 사부님의 법상에 마주서서 나의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속으로 결심했다. ‘금후에 어떤 정황이 나타나든지 나는 대법을 끝까지 견정히 수련할 것이다!’

법을 실증하기 위하여 전국 각지의 적잖은 동수들이 계속 북경 민원실로 찾아갔고 천안문에 가서 가부좌하고 현수막을 펼쳤다. 우리 법공부팀에서도 북경이나 신문사에 가서 정황을 반영한 사람이 있었는데 모두 불법으로 감금되거나 노동교양을 당했다. 나는 그들에 아주 탄복하며 자신도 응당 걸어 나와야 함을 생각했다. 그러나 관건적인 시각에 사람의 관념이 뚫고 나왔다. 자신의 사회에서의 영향이 비교적 큼을 고려했고 남편과 아들이 너무나 착실하여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까봐 두려워 뒷걸음질진 것이었다. 외부와 자신으로부터의 거대한 압력 속에서 나는 비록 매일같이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을 견지했으나 내심은 늘 바늘방석에 앉은 듯이 괴로웠다. 사부님의 법 한마디가 나의 대뇌로 넣어졌다. ‘사부님께서 지옥으로부터 나를 건져내어 깨끗이 정화하여주셨다.’ 바로 사부님께서 나 이 업력덩어리를 이끌어 수련의 길에 들어서게 하였고 나더러 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으로 되게 하였다. 진수제자로서 사부님께서 모함과 비방을 당하고 대법이 탄압을 받고 있는데 어찌 가만히 앉아서 침묵을 지킬 수 있겠는가? 나는 무엇 때문에 감히 일어나서 대법을 위하여 바른 말을 하지 못하는가? 나는 자신을 질책했고 부끄러웠다. 나는 자신과 외부의 장애를 해체하고 태연히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려 했다.

2000년 6월, 나와 몇몇 동수는 교류한 후 북경에 가서 법을 실증하려 했다. 6월 하순의 어느 날 우리는 기차를 타고 북경을 향했다. 차에서 내려 역을 나가는데 한 경찰이 나를 막아섰다. 나에게 묻기를 “당신은 파룬궁을 수련하는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당당하게 “나는 파룬궁수련자다(그때는 응당 이지적으로 대해야 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파룬궁은 나의 심령을 정화해주었고 나의 몸을 건강하게 하였다. 무엇이 나쁘단 말인가?” 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나와 다른 한 동수는 그 자리에서 붙잡혀 북경 판사처로 보내졌다. 그 후 현지로 보내져 구금되었다. 구류소에서 나와 동수는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을 견지했고 시간을 다그쳐 범인들과 우리를 감시하러 온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한 달 후 우리는 정념으로 구류소에서 뛰쳐나왔다.

집에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친인들이 나로 인하여 거대한 압력을 감당했음을 알았다. 남편은 한밤중에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고 딸은 코피를 늘 흘렸으며 아들은 지속적으로 고열에 시달렸다. 그때 우리 지역에서 북경으로 간 대법제자 대부분은 공직에서 제명되었거나 월급을 감봉당하는(생활비만 주었음) 박해를 받았다. 나는 일찍이 사상준비가 있었다.(그때는 전반적으로 이번의 박해를 부정해야 할지를 몰랐다) 나는 남편이 감당하지 못할까봐 두려워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그런데 평소에 착했던 남편은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당신이 이미 걸어 나왔는데 이후의 곤란에서 우리 함께 해요.” 그의 한마디 말은 나에게 막대한 안위를 주었다. 하루는 내가 현지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경찰은 옆에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의 태도는 어떤가요?” 남편은 아무런 주저도 없이 말했다. “나는 지지한다. 나는 이 사람의 신념을 이해한다.” 이 십 년 간의 비바람 속에서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 남편은 시종 나와 한편에 섰고, 이는 나 자신의 혼인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가져오게 했다. 과거에 나는 스스로 남편보다 강하다고 생각했고 우리의 혼인은 그다지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다. 지금은 나의 남편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합당한 남편이며 하늘이 나에게 그이를 배치하여 내가 조사정법하는 것을 돕게한 것이다. 나와 그이는 바로 착한 연분이었다. 대법제자의 남편으로 될 수 있는 것 역시 그의 복인 것이다.

구류소에서 돌아와 얼마 안 되어 나의 일은 신속히 단위로 전해졌고 우리 계통 내에서 들썩여졌다. 단위의 간부들은 비록 나의 평소의 사업표현과 인품을 긍정하고 있었으나 위로부터의 각종 압력을 받았다. 나는 시간을 다그쳐 간부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들로부터 크나큰 동정과 이해를 얻었다. 나중에 사부님의 가지 하에 단위에서는 나에게 아무런 마난과 시끄러움을 주지 않았다. 이때라고 여겨 나는 평화로운 심태로 나를 감시하러 온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는, 파룬궁은 성명쌍수의 고덕대법임을 알려주면서 내가 친히 겪은 수련과정으로, 대법이 나에게 가져다 준 심신에서의 거대한 변화를 알렸다. 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행복을 가져다주었음을 말해주었다. 나는 또 신변의 동수들이 대법을 수련하여 얻은 심성제고에서의 전형적인 사례를 들려주었고 파룬궁은 정법임을 알렸다. 나는,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모순에 봉착하여 안을 향하여 찾으며 자신을 수련하라고 가르쳤음을 알렸고, 사부님은 우리에게서 일전 한 푼도 바라지 않았고 오직 그 하나의 선(善)을 향하는 마음을 요구하신다고 알려 주었다. 텔레비전, 신문에서의 선전은 모두 모함과 비방이다… 나는 이야기를 할수록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이 볼을 적시게 되었다. 경찰은 진감되었고 더는 나에게 시끄러움을 주지 않았으며 암암리에 나를 보호해주기까지 하였다.

3. 장애를 해체하고 자비로 사람을 구하다

지식분자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하는 일이 특별히 어렵다고 느꼈다. 한번은 내가 속인 중에서 지식이 비교적 넓고 명리심이 비교적 담박한 친구와 약속하고 진상을 알렸다. 사전에 나는 충분한 준비를 했는데, 생각밖에 그는 사당의 선전에 의한 독해가 아주 심했다. 내가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그는 듣기 싫어했고 뿐만 아니라 견결히 나에게 화제를 바꿀 것을 요구했다. 그때 나는 아주 괴로웠고 실망을 느꼈다. 그 후로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으나 늘 큰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감을 느꼈고 마음의 긴장을 놓지 못하였다. 마치 하나의 무형의 밧줄이 나를 묶고있는 듯 했다.

이 밧줄은 무엇일까? 고통속에서 헤매다 속 깊이 안을 향해 찾아보았다. 드디어 나는 찾아내었다. 그것은 바로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으로서 자신을 보호하고 상처를 입기 싫어하는 ‘사(私)’심이었다. 인생에서 쓴맛 단맛을 경험했고 젊어서 정치투쟁에 휘말려들어 명리의 전투마당에서 상처를 입었기에 나에게는 자아를 보호하는 의식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었고, 뿐만 아니라 그 뿌리가 아주 깊고 단단했다. 때문에 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할 때 충분히 이 하나의 두려워하는 마음과 고려하는 마음이 폭로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신을 강조할수록, 자신을 갖고 있을수록 위덕이 더욱 없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한 일은 성공하기가 쉽지 않으며 잘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대법의 일은 마땅히 가장 신성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관념을 갖지 않을수록, 자신의 요소를 갖지 않을수록 일을 하려면 더욱 잘되고 성공하기가 쉽다.”(《각 지역 설법 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나는 속인의 마음과 고려하는 마음, 사람의 요소를 지니고 진상을 알렸기에 ‘삼퇴’에서 효과가 없게 됨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어떠한 관념도 지니지 않고 오직 사람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한 일념으로 가서 진상을 알렸는데 장애와 압력이 없어졌다. 사실 사전에 의식적으로 어떠한 준비를 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염(念)이 바르면 말할 때 스스럼이 없이 순탄하게 말이 흘러나온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에 근거하여 타당성있게 그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면 상대방은 모두 ‘삼퇴’하는 것에 동의한다.

한번은 한 과학연구부문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진상을 알리게 되었다. 나는 하나의 진정한 마음과 사람을 구한다는 마음으로 알렸다. 우리는 오전 10시부터 줄곧 오후 6시까지 이야기했으며 누구도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의 어려웠던 경과를 말했고, 나는 자신이 인생에서 애써 무엇인가를 찾다가 대법수련을 하게 되었고 수련은 나더러 인생의 진리를 알게 하였으며 대법수련은 나의 심신에 거대한 변화를 주었다고 말했다. 또한 사당이 파룬궁을 잔혹하게 박해하는 것과 천멸중공(天滅中共)의 예언과 경고들을 알렸다. 그에게 ‘삼퇴’를 권했고 그는 아주 마음을 기울여 들었다. 신기한 것은 우리가 서로 담화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신체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었다. 사부님의 법신이 그녀의 신체를 조절하고 계셨다. 그 후 그녀는 즉시 ‘삼퇴’를 했고 신속히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금방 연공하여 얼마 안 되어 두 병원에서 특정 병으로 확진 판정을 받았던 눈 아래 노란 반점들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이는 그녀더러 대법의 초상적인 것과 신기함을 만끽하게 하였고 지금까지 연공하고 법공부하는 것을 잘 견지하고 있다.

현재 사회는 물욕이 지나치고 도덕이 급속히 떨어져 인간세상은 혼탁하기 그지없다. 극도로 되는 물질향수와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내심에는 모두 많은 번뇌와 곤혹이 있으며 심지어 정신적으로 공허함을 느낀다. 나는 늘 그들과 교류하는 속에서 그들의 집착과 번뇌를 틀어쥐고 대법의 법리로 그들이 미혹을 타파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자신의 수련후의 인생의 느낌을 들려준다. 그러면 그들은 직지인심(直指人心)을 느끼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심령의 깊은 곳에서 진동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내가 두 차례에 걸쳐, 외지에서 사업하고 있는 박사과정중인 조카딸에게 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어머니(나의 여동생)에게 알렸다. “이모와 대화하면 정말 편안해져요. 어떤 때에는 일종 심령의 진감을 받아요.” 나는 이 일체는 모두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시는 것이다. 바로 사부님의 법력이 그들의 생명 깊은 곳까지 들어가 그들의 명백한 일면으로 하여금 청성하게 깨어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을 떠난다면, 취약하고 작은 내가 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바로 대법의 위덕이며 사부님의 위덕이다.

한번은 내가 대법에 오해를 가지고 있는 기타 기공을 연마하였던 사촌 여동생에게 진상을 알리게 되었다. 처음에 그녀는 아주 반감을 가졌으나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무더운 날씨임에도 여러 차례 그에게 찾아가 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했다. 그녀는 감동되었고 이내 ‘삼퇴’하는 것에 동의했다. 어느 날 그녀는 나에게 전화로 기쁜 소식을 알렸다. 그의 아버지(나의 삼촌)는 80여세이며 넓적다리뼈가 골절되어 쇠못을 박았으며 걷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내가 그녀의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린 이튿날 그의 아버지는 스스로 층계를 붙잡고 오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말하기를 “내 생각에 이는 언니와 관계가 있어요.” 라고 하였다.

대법이 사람을 구함에 신기한 기적은 여러번 있었다. 한번은 나의 동창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는 흔쾌히 삼퇴에 동의했다. 어느 날 그가 차와 부딪쳐 몇 미터 밖으로 튕겨 나갔다. 60여세인 그녀는 뜻밖에도 기적과도 같이 한 가닥의 힘에 의지되어 차 밑에 들어갔고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 차밑에서 기어 나왔다. 집사람은 그가 이미 끝장이라고 생각했고 병원에 입원시켰다. 신기한 것은 의사가 검사한 결과 그녀의 머리와 내장은 모두 큰 상처가 나지 않은 것이었다. 병원에 입원하여 한 달 후 기본상 회복되어 출원했다. 내가 그녀를 보게 된 순간 그녀는 격동되어 말했다. “네가 나를 구했다.” 내가 말하기를, “아니야, 사부님과 대법이 너를 구했어!”라고 하였다.

관념을 내려놓고 자신과 외부의 일체 장애를 해체하며 하나의 자비로운 마음을 품고 친척, 친구, 동료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렇게 삼퇴를 시킨 인원이 백여 명이다. 그러나 관념의 장애로 인하여 지금까지 모르는 사람과 대면하여 진상을 알림에는 아직 너무나 차하다. 나는 자신의 법공부와 마음을 닦는 것을 통하여 끊임없이 제고할 것이다. 정법노정의 끊임없는 추진에 따라 나는 반드시 장애를 타파하고 더욱 많은 사람을 구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4. 모순 속에서 안을 향하여 찾아 수련하다

정법노정의 끊임없는 추진에 따라 환경은 상대적으로 느슨해졌고 나의 사람의 마음도 동수들과의 모순 속에서 점점 폭로되었다.

동수 갑은 나의 조카딸의 계모이며 그녀는 혼인에서 갈림길이 많았다. 과거에 나의 조카딸과 모순이 많았고 극도로 되는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한동안 그녀는 과거의 원한을 내려놓지 못하였다. 한번은 그녀와 내가 과거의 모순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서로 내려놓지 못하였다. 그때 시간이 총망하여 우리는 충분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나는 금방 검은 손이 틈을 타고 들어와 병마의 교란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그녀가 이러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여 교란을 받을까 두려웠다. 급한 나머지 나는 높이 서서 그녀에게 과거 속인생활 때의 원한을 마음에 품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응당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후 그녀는 또 나에게 과거에 조카딸과 있었던 세부적인 모순까지 들춰내면서 시비를 따지려 했다.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질책하는 어조로 말했다. “과거의 길은 지난 일로 하세요. 늘 이러한 일에 휘말려 어찌하려는 건가요? 그래도 진짜로 수련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나의 말은 그녀에게 큰 자극을 주었고 이해되지 않아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더러 안을 향하여 찾으라 하는데 이모는 왜 안을 향하여 찾지 않으세요?” 그녀의 말은 나에게 경종을 울려주었다. 그렇지, 나도 안을 향하여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 일에서 나의 어떤 사람의 마음과 집착이 폭로되었는가? 착실한 법공부를 통하여 나는 크게 깨달았다. 이 일에서 자고자대하는 과시심과 선하지 못한 마음이 충분히 폭로되었다. 나는 평화로운 심태로 다른 사람의 속사정을 들어주지 못하였으며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어려운 점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자비와 관용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심적 매듭을 풀어주지 못하였다. 오히려 자신의 표준과 잣대로 다른 사람에게 요구했다. 오직 다른 사람을 개변하려 들었고 자신을 개변하려 하지 않았다. 특히 장기적으로 당문화의 독해를 받아왔기에 쟁투심, 과시심은 아주 중하며 높은 곳에 서는 것을 좋아하며 낮은 곳에서 함께 하려 하지 않았다. 때문에 동수와의 모순 속에서 충분히 이러한 ‘사(私)’와 ‘아(我)’의 본성이 폭로되었다.

이번의 안을 향하여 찾는 것을 통하여 나는 비로소 생명은 ‘위타(爲他)’의 기제 속에서만 진정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인식하였다. 이러한 ‘위타’는 바로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매 사람에게 모두 선한 마음이 있어야 하며 매 일념은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동수에 대하여 더욱 자비롭고 관용해야 하며 서로 원용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정법노정의 추진에 따라 사악은 대량으로 소훼되었고 나의 수련환경도 점차 느슨해졌으며 점차 세속의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이 자양되었다. 과거에 아주 고생스럽고 힘들게 수련하였다고 느껴졌으며 숨을 좀 돌리려는 생각이 나타났다. 한번은 법공부하고 교류하다가 나는 자신의 최근의 수련상태와 생각을 말하였다. 뜻밖에 내가 채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한 동수가 나의 말을 자르면서 지적했다. “당신이 겪은 그 고생은 사부님이 우리를 위하여 감당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의 업력이 그렇게 중한데 사부님은 모두 당신을 위하여 없애버렸다. 오늘 당신을 위하여 그렇게 느슨한 수련환경을 마련해 주었는데 당신더러 속인의 생활을 향수하라고 한 것이겠는가? 당신더러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잘하고 더욱 많은 세인을 구도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녀의 이 말을 듣고 나는 원래 한 두 마디 하려 하였으나 속으로 꾹 참았다. 집에 돌아온 후 속이 끊는 것이 말이 아니었으며 평소에 남의 비평을 듣기 싫어하는 내가 동수들의 앞에서 이렇게 날카로운 비평을 듣고는 정말로 씁쓸했다. 뼈를 에이는 아픔 속에서, 떼어내면서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수련의 법보, 무조건적으로 안을 향해 찾으라! 는 것이 생각났다. 동수의 말은 나의 어떤 마음을 향한 것인가? 나는 최근 한 단락의 일을 생각하게 되었고 자신에 대하여 엄한 요구를 느슨히 하였으며 법공부할 때 피곤하고 진상을 알림에 효과가 좋지 않았다. 사부님은 나에게 여러 차례 점오해 주셨으나 나는 깨우치지 못하였다. 바로 오늘 자비로운 사부님은 동수의 입을 빌어 나에게 호된 매를 안긴 것이며 나더러 경성하게 하였던 것이다. “정진의 뜻은 돌릴 수 없노라”(《홍음 2》〈견정〉).

그렇다. 정법노정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존님은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셨던가? 사악의 박해가 아직 결속되지 않았고 그렇게 많은 중생이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하였으며 우리의 역사사명도 아직 완성하지 못하였다. 무슨 이유로 자신을 느슨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존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다. “최후일수록 더욱 느슨히 할 수 없으며, 최후일수록 더욱 법공부를 잘해야 하며, 최후일수록 정념이 더욱 충족해야 한다.”(《캐나다법회에게》)

안을 향하여 찾는 것을 통하여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아내었으며 이튿날 오후 나의 신체는 특별히 가벼웠다. 점심시간이 좀 지나서 천목에서 끊임없이 분홍색의 꽃잎이 번졌으며 꽃잎 사이로 네 개의 큰 글자가 나타났다. “박대정심(博大精深)” 그렇다. 불법은 박대정심하다. 사람의 이치와 신의 이치는 반대되는 것이다. 사람의 사유습관은 밖을 향하여 보고 밖을 향하여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법수련은 우리더러 안을 향하여 찾고 안을 향하여 수련할 것을 요구한다. 최근에 《맨해튼 설법》을 공부하고 나는 더욱 명백해졌다. 우리가 봉착하는 매 하나의 모순은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며 모두 자신을 제고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이다.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동수가 일깨워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점화에 감사드린다.

확실히 세계상의 그 어떠한 언어로도 대법수련의 아름다움과 수승함을 형용할 수 없으며 세간의 어떠한 방식으로도 사부님의 구도의 은혜를 표달할 수 없으며 부처님의 은혜는 호탕한 것이다! 정법수련의 최후의 최후 시각에 우리는 오직 정진하고 또 정진하여 순정한 심태로 세 가지 일을 다그쳐 잘하여야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며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 됨에 부끄럽지 않게 된다.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하여 주시기 바란다. 合十!

(밍후이왕 제6회 중국대륙대법제자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 2009년 11월 2일
문장분류 : [정법수련]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2/2115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