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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 노인의 수련 이야기

글/ 중국 허베이(河北) 대법제자(노인구술, 동수정리)

【밍후이왕 2009년 11월 4일】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들 안녕하십니까!

1, 법을 얻다

나는 금년 90살이다. 조상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두 부처를 믿었으므로 나도 어려서부터 신불의 존재를 믿었다. 1996년 대법에 들어서기 전 나는 거사로 4년을 지냈다. 나는 무슨 일이던 한다고 하면 잘 하려고 한다. 거사가 된 후 한 마음으로 수련을 잘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나는 사찰에서 화상들이 모두 장사치가 된 것을 보았다. 돈을 주면 부처에게 절을 하게하고 돈을 주지 않으면 못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행위표현을 보면 속인중의 좋은 사람보다도 못하였다. 이는 나를 몹시 실망케 했지만 부처를 믿는 마음만은 줄곧 확고하여 변하지 않았다.

기공 고조 속에서 누군가 나에게 기공을 배우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래도 부처를 믿는 게 더 좋다며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후에 또 누군가 파룬궁을 제기 하였다. 그래서 파룬궁이 뭐냐고 물었더니 불가공법이라고 했다. 나는 불가공법이라는 말에 배우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 때 나는 4년간 거사 생활을 했어도 아무런 제고가 없었고 불교에서의 수련은 이젠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 근처에 연공장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곳에서 함께 연공하고 책을 읽고, 교류하는 모습이 아주 상화하게 보여 마음이 이끌렸다. 나는 즉시 연공장에 가서 그들과 함께 연공을 하였다 (즉시 동작을 배워주는 사람이 있었다)당시 40분 동안 포룬을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했더니 다들 나에게 나이가 많은데도 잘한다고 했고 나도 좀 신기하게 느껴졌다. 보도원이 연공을 하겠느냐고 묻기에 나는 하겠다고 확고하게 대답했더니 나에게《전법륜》을 청해 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날마다 전법륜을 읽었다. 비록 그 때는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 책이 아주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 내려놓고 싶지 않을만큼 읽고 싶었다. 사부님께서 불이법문의 문제를 말씀하신 것을 보고 불교의 것을 모두 청리해 버리고 일심으로 대법을 수련하면서 진정으로 반본귀진의 길로 가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이미 77세의 고령이었다.

그 때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보았는데 그 때 사부님께서는 나의 몸을 청리해 주셨다. 그리고 여러 해 동안 편두통을 앓고 있었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녹화를 보면서 잠이 들었으나 사부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빼 놓지 않고 죄다 들었다. 그 후에는 머리가 조금도 아프지 않았고 방광염도 많이 나아져 온 몸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고, 정신이 나고 힘이 솟구쳤다. 나는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고 독거하였기 때문에 날마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법 공부, 연공, 홍법하는데 투입하여 생활이 더 없이 충실하였고, 젊음을 되찾은 것 같았다.

2 , 도보로 북경에 상방가다

99년 ‘7.20’ 박해가 시작되자 우리 동수들은 한 패 한 패씩 북경으로 상방을 떠났다. 어떤 사람은 잡혔고, 어떤 사람은 나오지 못했다. 나는 단번에 동수들과 연락이 끊겼다. 나도 북경에 호법하러 가야겠는데 어떻게 가야하고 어떻게 ‘호법’하는지 몰라서 조급하다 못해 하루종일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나는 기사에게 백 위안을 주어도 나를 나이 많다고 태워주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나의 이 마음을 보시고 한 동수를 안배하여 나를 함께 가게 하였다. 대략 99년 10월 1일 전이었는데 내가 사는 곳은 북경 주변이어서 상경하는 길목마다에 경찰이 지켜 서서 상경하는 차량마다 모두 신분증 검사를 하였다.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둘러서 가자고 하였다. 동수는 놀라운 듯 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많은 연세에 되겠어요?(당시 80살) 나는 확고하게 말하였다. “되고 말구, 문제없어! 나에게 오직 이 마음만 있다면 사부님께서 도와주실 거야. 우리 가자.” 동수는 내가 이렇듯 견정한 것을 보고 신심이 생겨 두말없이 상경길에 올랐다.

우리 지역은 북경에서 4,50리 떨어져 있다. 우리는 아침 8시에 떠나 저녁 6시 넘어 북경에 도착 하였다. 가는 길에 정말로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시어 나는 조금도 힘들지 않았고 걸을수록 힘이 났다. 길에서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어 화장실에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나는 북경으로 단숨에 날아가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사부님, 대법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생각하기만 하면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난 이미 80살 되는 사람인데 대법을 얻은 후부터는 진작부터 생사를 내려놓았고 아무것도 두려운 게 없었다. 한 마음으로 천안문 앞에 가서 호법하고, 대법에 공정한 말을 해주고 싶었다. 가는 길에 동수는 내가 지칠까봐 늘 앉아서 쉬었다 가자고 했지만 나는 빨리 가자고 재촉 하였다. 늦게 가면 날이 어두워 시간을 놓칠 것 같아서였다.

우리는 북경 교외에 이르러 간단히 칼국수를 먹고는 버스에 앉아 천안문 광장에 이르렀다. 이미 6시가 넘어 날이 어둡기 시작 하였다. 광장에는 사람이란 별로 없었다. 그 때는 무엇이 호법인지도 몰랐는지라 동수들이 호법하고 모두 돌아간 것이 아닌가? 우리가 늦게 와서 따라서지 못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괴롭기 그지없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꼭 천안문 상공에서 제자들을 보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 하였다. 나는 천안문 성루 상공을 우러러 보면서 말하였다, “사부님, 제가 늦게 와서 호법하는 걸 따라서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꼭 그 곳에 계실 것입니다. 제가 사부님 뵈러 왔습니다.” 말을 마치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내가 차를 타고 오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따라섰을 것이다.

그날 저녁 우리는 북경에서 하루 밤 잤다. 나는 그날밤이 새도록 거의 자지 못하였다.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 주시기에 나는 밤새도록 화장실에 드나들었지만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내일 아침이면 꼭 낫는다고 굳게 믿었다. 과연 이튿날에는 아무 일이 없었다. 그 때부터 방광염이 깨끗이 나았다. 후에 또 두 번 북경에 호법하러 갔는데 아들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함께 갔다. 그 번에 아들은 천안문에 계엄하여 들어갈 수 없다고 알려 주었다. 내가 믿기지 않아하자 아들은 나를 차에 태워 천안문 광장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세 번째는 나 스스로 기차를 타고 갔다. 그날은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나는 속으로 두렵지 않았으며 바람이 아니라 칼이 내린다 해도 나는 갈 것이다 하고 생각 하였다. 기차에서 나는 큰 소리로 진상을 말하여 주위의 사람들이 듣게 하였다. 진상을 알게 된 좋은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나이 많은 것을 보고 나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내 가방도 들어 주었다.

천안문 광장에 이르러 나는 천안문 성루 부근에 앉아서 속으로 『파룬따파는 좋다. 진선인은 좋다』를 자꾸만 외웠다. 잠시 후에 경찰이 와서 물었다, “여기에 앉아서 뭘 하시는 겁니까?”, 나는 “쉬고 있네” 하고 말하였다. “당신은 파룬궁이지요?” 경찰이 물었다. “ 파룬궁이 뭐가 나쁜가? 파룬궁은 좋은 거야” 내가 이렇게 말하자 경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더러 한 쪽으로 앉으라 하고는 가버렸다.

내가 세 번이나 상경한 경과를 회상해 보면,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없이 80여세 노인이 어찌 상경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사부님께서 시시로 몸 가까이 계시다는 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때는 경지가 제한돼 있고 또 동수들과 연계도 잃었으며, 또 사부님 경문도 볼 수 없었는지라 비록 한 마음으로 호법하려 했지만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으므로 세 번이나 북경에 갔어도 법을 실증하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여 지금까지도 유감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 없이 자료를 살포했고, 진상을 알려 주었으며, 누가 대법이 나쁘다고 말하면 그에게 진상을 말해 주었다.

3 ,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

박해가 막 시작되었을 때는 단체 법 공부, 단체 연공하는 환경이 없었으며 내가 알고 있는 동수 중에는 잡혀 간 사람도 있고 겁에 질려 감히 나오지 못하는 동수도 있었다. 나는 혼자 집에서 법공부, 연공를 하는데 조금도 해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을 견지 하였다. 그 때는 자료가 없었고 만들 줄도 몰랐다. 나가서 사람을 만나면 파룬따파가 좋다고 말해 주었고, 천안문 분신자살은 가짜라고 알려 주었다. 후에 이렇게만 하는 것은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닫고 동수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하루는 내가 알고 있는 동수 집에 찾아가기로 했으나 구체적으로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사부님을 믿었고 사부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다. 결과적으로 동수 집으로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원래 남편과 같이 떠났었는데 남편은 이 길로 가지 않겠다고 하여 그녀 혼자 이 길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도 격동되어 부단히 감사를 드렸고, 대법수련을 더 확고히 하게 되었고, 세 가지 일을 더 잘 하여 사부님께 보답하리라 결심 하였다.

그 때부터 나는 사부님 경문, 명혜주간을 제때에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자료를 모두 얻을 수 있었다. 나는 현지 동수들과 융합하여 함께 발정념을 하고 동수를 구출하고, 스티커를 붙였다. 오직 대법의 일이기만 하면 나는 모두 적극 참여하였고, 종래로 나이가 많다는 구실로 떠밀지 않았다. 아울러 어떤 동수는 일단 상태가 좋지 않거나 환경이 긴장되면 자료를 배포하지 않았고, 집에도 자료를 감히 두지 못하거나 심지어 사악이 빼앗아 갈까 봐 대법 책도 감히 두지 못하고 모두 우리 집에 가져다 놓았다. 나는 종래로 거절하지 않고 대법 책을 알뜰히 보관 하였다. 있는 재료는 몽땅 배포함으로서 중생구도의 대사를 지체시키지 않았다. 어떤 때는 한 번에 몇 백 장씩, 어떤 때는 한 보따리씩 배포하였는데 젊은이들도 들기 힘든 것이었으나 나는 모두 들어다가 안전한 곳에 놓아두었다. 후에 환경이 차츰 풀려지자 나는 우리 집에 법 공부팀을 조직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 하였다. 내가 대법을 배우니 사부님께서는 80넘은 나에게 이렇게 건강한 신체를 주었는데 난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는가? 집을 내 놓아 대법에 쓰게 하자. 나는 혼자 사니까 편리하다, 우리 팀에 자료가 오면 바로 우리 집에서부터 나누어 동수 손에 전해 주었다. 경찰이 두 번 와서 소란을 피웠다. 한 번은 잡힌 동수가 나를 말했지만 나는 경찰의 박해에 협력하지 않았고 그들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매 번 문 어구에 서서 감히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였다.

재료를 배포할 때 나는 아주 태연한데 늘 직접 만나서 자료를 준다. 어떤 상황을 만나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내 신변에 계시어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고, 나는 대법의 위력을 확고히 믿었다. 자료 배포를 할 때 별별 사람을 다 만났다. 화를 내고 소리 지르는 사람, 욕하고 때리려는 사람, 신고하겠다는 사람, 매 번 이 같은 돌발사건이 생길 때마다 나는 종래로 떠나지 않고 웃으면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화풀이를 다 하고 난 후에 나는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계속하여 말해 주고, 말해 줄 수 없게 되면 나는 떠났다. 많은 때 나는 발정념을 할 생각을 못하긴 했지만 나에게 두려운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사악은 틈을 타고 들어올 수 없었으므로 위험한 일이 모두 무사하게 되었다. 그 외. 나는 주말이면 늘 딸집에 가는데 사위가 국 급 간부여서 경비가 삼엄한 아파트 구역에 살고 있어 거의 누구도 그 곳에 자료를 배포하지 않았다. 나는 매번마다 있는 자료를 몽땅 가지고 가서 그 곳 중생을 구도한다. 국장이요, 과장이요 하는 많은 고급간부들은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모두 알고 있으며, 나는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진상을 알려 주었다.

바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처럼, “진상을 밝혀 중생을 구도(救度)하는 것은 낡은 세력은 감히 반대하지 못하는데 관건은 일을 할 때의 심태(心態)가 그것으로 하여금 빈틈을 파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각지설법2》〈2002년보스턴법회설법〉)금년 7월, 납치된 동수를 구출하고자 사악을 폭로하는 커다란 스티커 6장을 나한테 보내왔다. 오후 4시 넘어 퇴근하는 사람이 많을 때에 나는 나가서 붙였다. 나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발정념을 한 뒤 나갔다. 속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니 얼른 붙여야겠다고 생각 하면서 자리를 선택한 다음 첫 장을 꺼내어 귀퉁이에서 떼려고 했으나 뗄 수가 없었다. 내려놓고 또 한 장을 꺼내었으나 역시 떨어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고 후에야 사부님 점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의 뒤에 순라경찰이 있었고 이미 나를 발견하였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뒤에서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뭘 하시는 겁니까?” 바로 이때에 스티커가 떨어져 나는 머리도 돌리지 않은 채 붙이면서 말했다. “ 사람을 구하고 있네.” 첫 장을 다 붙이고 나서 나는 머리를 숙이고 두 번째 장을 뗐다. 이번에도 떨어지기에 또 한 장 붙였다. 이 때 한 사람이 올라와서 붙여놓은 첫 장을 뜯어내려 내려 하였다. 내가 얼른 제지하려고 할 때에야 그 사람이 경찰인 것을 알았다. 머리를 돌려보니 경찰차가 내 뒤에 멈춰 서 있었고 곁에는 두 명 경찰이 서 있었다.

나는 말했다. “자네들이 마침 왔으니 보여주어야겠네.” 내가 뜯어내지 못하게 했으나 그들은 그래도 뜯어냈다. 그들은 자기들은 이런 일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라서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따파는 좋다』고 알려 주면서 이곳에 못 붙이게 하면 다른 곳에 붙이겠다고 말하고는 앞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은 차에 올라 내 뒤를 따랐다. 나는 그들이 따르건 말건 사람을 구하는 것이 요긴한 일이다. 나에게 아직 넉 장이 있는데 반드시 붙여야 한다. 그들은 그들대로 뒤따라와도, 나는 나대로 붙일 것이다. 또 알맞은 곳에 이르러 두 장을 붙였다. 그들은 차에서 내려 또 뜯어내려 하였다. 나는 단호히 그들이 뜯어내지 못하게 하면서 이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니 뜯어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알려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매섭게 물었다. “자네들은 여기도 안 된다, 저기도 붙이지 말라 하는데 그럼 도대체 어디에 붙여야 하는가?” 그 중 한 경찰이 말했다. “정부 마당에 붙이십시오.”나는 정부마당이 어딘지 모른다고 말했다, 말을 마치고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여 그들이 뜯어내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더니 과연 그 두 장을 뜯지 않고 가 버렸다.

나는 앞으로 가면서 나머지 두 장을 마저 붙이려고 하였다. 또 한 장을 붙이고 나니 마지막 한 장이 남았다. 그들의 차는 한 바퀴 돌고 나서 또 왔다. 한 경찰이 다가와서 말하였다. “붙이지 말라 했는데 왜 또 붙여요?” “한 장만 남았으니 여기다 붙이지.” 내가 말하자 그가 “높은 곳에 붙여요” 라고 했다. 내가 “키가 안 되네”라고 했더니 제가 도와 드리죠” 하면서 벽 아래쪽에 붙여 놓았다. “이런 곳에 붙이면 누구도 보지 못하겠는데 어떻게 사람을 구할 수 있나?”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뜯어내어 다시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고는 자리를 떴다. 그들은 뒤따라 와서 물었다. “또 있어요?” “없네”그러자 그들은 차를 몰고 가 버렸고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오늘 발생한 일이 정말 신기하였다. 나더러 법의 위력을 또 한 번 견증하게 하였던 것이다. 경찰의 감독 아래 6장 스티커 붙이는 일을 완수한 것과 같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비록 낡은 세력이 존재하여도, 당신들에게 그 마음이 없다면, 그것들은 방법이 없다. 당신의 정념(正念)이 매우 충족하다면 낡은 세력은 방법이 없다. “。”(《각지설법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설법〉) 정말로 이러했다. 나는 두렵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아는 이상 두려울 게 뭔가? 매번마다 스티커 붙일 때는 모두 오후 4, 5시 퇴근할 때여서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인데 사람이 없을 때 붙여서는 누구를 구한단 말인가? 나는 사람이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이 있을수록 좋다. 잡히고 안 잡히고를 생각할 게 있나, 내 머리 속에는 이런 개념이 없다. 이렇게 훌륭한 법을 얻었는데 아직도 뭐가 두렵단 말인가? 나는 진작 생사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오늘의 일은 안을 향해 찾아보아야 하겠다. 자신은 아직 잘하지 못했다, 이 몇 명 경찰에게 진상을 분명하게 알려 주지 않고 쟁투심이 나왔는데 역시 나에게 자비심이 부족하여 그들이 구원되지 못하게 하였고, 그들이 스티커 석장을 뜯어내어 업을 짓게 하였다. 나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나는 다음번에 그들을 다시 만난다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진상자료를 주어 그들을 구도하리라 마음먹었다.

4 , 병업 고비를 넘기다

법을 얻은 후 나는 선 후 세 번 큰 병업 고비를 넘었다. 먼저 두 번은 신사신법 속에서 재빨리 지나갔다. 이번은 일년 넘어 지속해 갈수록 몸을 지탱하기 어려워 120근으로부터 80근으로 줄었고, 다리가 부어 걷기도 어려웠으며,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영향을 조성 하였다. 나중에는 밥도 먹기 싫었다. 딸이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나는 단호히 가지 않았다. 이는 병이 아니므로 이틀이 지나면 낫는다고 말하였다. 나에게 외국제 수입 약을 가져와도 나는 종래로 먹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세 가지 일’을 견지하였는데 자료를 배포할 때 멀리 갈 수 없으면 집 근처에서 배포하였다. 뿐만 아니라 딸의 시중을 받지 않고 집안 일 일체를 나 스스로 하였다. 몸이 어떻게 괴롭더라도 침대에 별로 누워 있지 않았다.

하루는 『전법륜』을 들고 아무렇게나 펼쳤는데 사부님의 법상이 나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예전에 내가 잘 할 때면 사부님께서 늘 나를 보고 웃음을 지으셨다. 이번에 사부님께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자 속으로 놀라면서 병업이 가중해 지는 것이라고 생각 하였다. 지금에 와서야 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래도 사부님께 확고히 여쭈었다. “사부님, 당신께서 저 때문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꼭 넘을 수 있습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몸은 나날이 못해만 갔고, 온 몸의 오장육부가 다 아파서 마치 예전의 오랜 병들이 다 되돌아 온 것 같았을 뿐만 아니라, 나는 늘 어떤 저령 (低灵)한 물건이 내 주위에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눈 박아 쏘아보면 그것들은 없어졌다.

자신이 누락이 있어 사악이 틈을 탔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고 심성이 제고되지 못했기 때문에 신체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기만 하였다. 한 노 수련생이 나와 함께 법 공부하고 교류 하고 안으로 찾아보았다. 비록 아직도 근본원인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전법륜』 한 번을 다 읽었을 때 신체가 좀 호전이 있는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또 사부님 최신 설법 몇 편을 학습하였는데 단번에 수많은 법리를 알게 되었고 안으로 찾는 법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게 된 근본원인도 찾아내게 되었다. 그것은 동수와 심성고비를 넘길 때 넘기지 못하여 마에게 틈탈 기회를 주게 되었고, 구세력은 이 일을 통해 나를 끌어내리고, 심지어 나의 육신을 빼앗아 가려 하였는데도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사부님께서는 나를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다.

그것은 지난 해 일이었다. 누가 나의 딸에게 대법자료 한 부를 주었는데 딸이 한마디 하였다. “ 우리 어머니에게도 있어요” 이 한 마디 말이 사악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루는 몇 사람이 나의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으나 물론 뜻대로 되지 못하였다. 나는 그들을 집안에 들여 놓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우리 법 공부팀에 파동을 일으켰다. 당시 나에게도 정념이 없었고, 동수들이 손해 당할까봐 법 공부 팀을 해산시키고 나는 다른 법 공부 팀에 가서 공부 하였다. 한 동수는 내가 이렇게도 옳지 않고 저렇게도 옳지 않다고 하였다. 나는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아주 좋아하지 않으면서 그 동수의 잘못만 가득 생각 하였다. 그로부터 모순이 생겼고, 자신의 쟁투심, 과시심을 드러냈다. 본디 자신에게 심성제고를 준 것이므로 마땅히 큰 용기로 바꾸어야 할 것이었는데 나는 도리어 깨닫지 못하였고 심성이 줄곧 제고되지 못하여 마에게 틈탈 기회를 주었고, 몸에도 비로소 이런 상태가 나타난 것이었다. 내가 이런 것을 깨닫고 자신의 그런 좋지 못한 마음을 찾아냈을 때, 신체는 단번에 홀가분해 졌고, 그 때부터 나날히 좋아졌다. 지금은 기본상 정상으로 회복 되었다. 나와 모순을 일으켰던 그 동수도 갑자기 나처럼 좋아져 마치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던 듯하였다.

이 번 병업고비를 넘으면서 깨달은 바로는, 이 후 어떤 일에 부딪히던 반드시 안을 향해 찾아야 하고 제때에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 세워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순 속에서는 다투지도 논쟁하지도 말고 자신을 보아야 한다.

최근 사부님의 새로운 설법을 학습하니 또 다시 아주 크게 심성을 제고할 수 있었고, 자신이 갈수록 도(道)중에 있다는 감을 느끼게 된다. 세인의 일체에 대해 갈수록 담담해져, 마치 듣고도 못 들은 듯, 보고도 못 본 듯 하다. 자식들이 한담을 하여도 나는 종래로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듣지 못했고 큰 소리로 말해도 듣지 못하였다. 하지만 동수가 뭐라고 말하는지는 죄다 들을 수 있었고, 법리를 말할 때면 더욱 들을 수 있었고, 대법 책을 보면 똑똑히 볼 수 있어 종래로 안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명혜주간은 안경을 걸어야 볼 수 있다) 그러나 속인의 물건을 나는 보지 못하며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내 생명이 연장된 것이던 상관없이 나는 한 마음으로 수련에, 중생구도에 돌진하고 있다. 오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면 스스로 하였다. 지금 나는 더는 자식들과 논쟁하지 않는다. 논쟁하기만 하면 층차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그들도 업을 짓는다는 것을 발견 하였다. 나는 꼭 자신을 갈수록 더 순수하게 수련하여 더 많은 중생을 더 잘 구도 하겠다.

내가 금년에 90살이긴 하지만 나는 아주 신심이 있다. 정법이 아직도 몇 해가 있던, 관계없이 나는 꼭 세 가지 일을 잘 하면서 사부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겠다. 인간 세상에 나는 아무 집착도 없고 단지 하나의 염원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노비를 좀 남겨 두었다가 사부님께서 돌아오시면 사부님을 뵈러 가는 것뿐이다.

(밍후이왕 제6회 중국 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 2009년 11월 4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4/2117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