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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바짝 틀어 쥐고 진상을 알리며 3퇴를 권유하다

글/ 호북 대법제자 쩐시

[명혜망 2008년 11월 18일] 사부님 안녕 하십니까! 동수님들 안녕 하십니까!

나와 남편은 1996년 동시에 법을 얻었고 법을 얻은 후 대단한 혜택을 받았다. 나는 예전에 14개월이나 되는 산후 조리를 했고, 그러다 보니 악당의 폭정 하에서 밥조차 먹을 수 없어 아주 고생스러웠고 그래서 여러 가지 병을 얻었는데 그 중 엄중한 빈혈과 기관지염으로 인하여 해마다 한 달 내지 두 달 동안 기침을 하였으며, 어떤 때는 온 몸이 아파 견디기 어려웠다. 대법을 수련한 후부터는 예전의 병이 모두 나았고, 13년 동안 약 한 알 먹지 않았어도 건강은 줄곧 좋았다. 사부님께서 나의 생명을 구해 주신 것이다. 나는 사부님께 감격의 정을 표현할 방법이 없으므로 단지 사부님 말씀을 듣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잘하는 것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보답하려 한다.

사당이 대법을 박해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한 9년 남짓한 시간에 나는 사부님과 법을 확고히 믿었으며, 진상 알리기를 줄곧 견지하고 사악을 폭로하며, 일체 시간을 바짝 틀어쥐고 사람을 구하였다.

《9평》을 전하고 3퇴를 권하여 세인을 구하다

《9평》이 발표되자 우리 이곳 수련생들은 이는 중공 사악을 폭로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또 하나의 예리한 무기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는 매 번 모두 9평과 진상 소책자를 지니고 농촌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했다. 우리는 두 셋씩 짝을 이루어 했는데 서로 협조하여 한 사람이 진상을 말하면 다른 사람은 발정념으로 중생이 진상을 이해하는 것을 교란하는 사악한 요소를 청리 하였다. 우리는 늘 몇 곳의 향진에 가서 3퇴를 권했는데 많을 때는 하루 40여 명을 탈퇴 시켰고, 보통은 2, 30명, 아무리 적어도 10명은 탈퇴 시켰다.

어느 일요일 날, 우리는 보성의 큰 길가에서 저녁 자습을 나가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만나자마자 그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입단 입대를 하였냐?” 어떤 애는 입단하였다고 하고 어떤 애는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입대만은 모두 하였다고 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너희들 어서 탈퇴하거라. 탈퇴하면 생명을 지킬 수 있단다. 공산당은 나쁜 일을 너무 많이 하여 지금 하늘이 그를 멸망하려 하는데 탈퇴하지 않으면 그것과 함께 회멸 될 것이니 얼마나 위험하냐! 학생들은 명백해지자 곧장 탈퇴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글 쓸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이름을 써 넣게 하였다.

한 번은 우리가 다른 한 곳에 가서 3퇴를 권하였다. 그 날 노년 동수 세 분이 함께 갔는데 그 중 한 분은 처음 나온 사람이어서 시작하자마자 효과가 아주 좋은 것을 보고 환희심이 생겨나 사악에게 틈 탈 기회를 주었다. 우리가 3퇴를 권하고 있다는 말을 학생한테서 듣고 촌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뒤쫓아 와서 우리를 막아 섰다. 당시 한 동수는 벗어났고, 우리는 발정념을 하고 사부님께 가지를 청했다. 촌장은 파출소에 신고 전화를 하고는 5명의 키 큰 학생들을 불러다 놓고 우리를 지키게 하면서 악에 받쳐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도망치면 때려라. 파룬궁은 때려 죽여도 문제 되지 않는다” 진상을 모르는 학생들은 면화 말리는 틀 위에 앉아 우리를 지켰다. 그 틀은 사발 만한 나무를 박아서 만든 것인데 아주 튼튼하였다. 우리가 끊임없이 발정념을 하였더니 잠시 후에 그 나무들이 갑자기 솨솨 하고 부러지는 것이었다. 다섯 학생이 동시에 땅에 넘어졌고 그 촌장마저 우리 사부님께서 공을 내 보낸다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땅에 쪼그리고 앉아 더는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였다. 후에 경찰차가 와서 나와 다른 한 동수를 파출소에 납치해 갔고 그 촌장도 따라왔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보는 체 하지 않자 그 곳에 한 동안 쪼그리고 앉아있다가 아무 멋도 없게 되자 슬그머니 가 버렸다.

파출소에서 경찰은 우리에게 자료는 어디에서 나왔으며, 도망간 사람은 누구인가를 물었고, 우리들을 사진 찍으려 하였으나 우리는 협력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 나의 사위가 와서 사람을 풀어 놓으라고 하였다. 한 소장이 나와서 오늘은 당신들이 처음이니 당신들을 놓아 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정정당당하게 집으로 돌아 왔다.

하루는 한 곳에서 40여 명을 탈퇴시켰다. 한편으로 진상을 알리고 탈퇴를 권고하며 자료를 배포하고 있었다. 이때 한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길래 그에게 먼저 호신부를 주었더니 달갑게 받는 것이었다. 우리는 또 그에게 탈퇴를 권했더니 왜 탈퇴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사람이 다스리지 않으면 하늘이 다스린답니다. 공산 악당이 그렇게 많은 나쁜 짓을 했으니 하느님이 그를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그 남자는 서명하는 한편 말하는 것이었다. “나에겐 공산당을 대응할 능력이 없습니다.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나는 진작 그것들에게 사정을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다시피 세인들은 중공 악당을 진작부터 극도로 혐오하며, 미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은 아주 큰 군체로서 역시 우리가 마땅히 구도해야 할 대상이다. 때문에 우리는 늘 학생들에게 탈퇴를 권한다. 어느 무더운 토요일 날 나는 아주 먼 곳으로 다른 한 동수와 함께 가서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고 탈퇴를 권고하여 몇 십 명 학생을 순조롭게 탈퇴시켰다.

마난은 내가 진상을 알리며 사람 구하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

2006년 어느 날 영화관에서 영화상영을 한다는데 나는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이 바로 구원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자료를 갖고 가서 영화관 대문 입구 계단에서 나누어 주었다. 이튿날도 영화를 상영한다기에 아는 사람을 만나면 자료를 주려고 기다렸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가려고 발을 내디딘 것이 그만 미끄러져 계단 위에 크게 넘어졌다. 어느 부인이 급히 나를 부추겨 주면서 아주 선량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좀 천천히 하시지 왜 그래요?”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그 부인에게 감사를 드리고, 영화관을 떠났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지적으로 하여 사악이 틈타지 못하게 하라고 점화하시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아픔을 참으면서 발정념하는 한편 다른 한 곳에 가서 자료를 모두 배포하고 나서야 집에 돌아 갔다.

이튿날 아침, 나는 온 몸이 다 아프고 특히 손목에는 검푸른 물집이 생겨나고 부어 있었다. 나는 설법을 듣고 발정념, 연공을 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을 견지 하였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로 사흘 후엔 부은 것이 모두 가라앉았다.

사흘 후 저녁에 한 동수가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말라고 고무해 주기에 주동적으로 진상 알리러 나갔고, 넷째 날 아침에도 나가서 한 바퀴 돌며 진상을 알렸더니 효과가 아주 좋았는데, 돌아오니 과연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그 후 일체가 정상으로 회복되어 나는 또 예나 다름없이 정법 홍류 속에 투입되었다.

음력 2월의 어느 날, 동수와 함께 한 촌에 가서 자료를 배포하였다. 비 온 뒤라서 촌 길은 쉽게 마르지 않았고, 길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있는 줄 모른 채, 한 발 내 디뎠다가 심하게 넘어졌다. 기어 나오려 했으나 나올 수 없었고, 동수가 끌어 잡아 당겨도 또 미끄러져 내려가곤 하면서 몇 번 만에야 끌어낼 수 있었다. 이때 나의 몸은 진흙투성이였지만 우리가 그래도 자료를 모두 배포하는 것을 견지하고 나니 이미 한 밤중이 지났다. 자료를 다 배포하고 나니 묘하게도 오토바이 한 대가 와서 우리를 집까지 실어다 주었다. 우리는 이것이 사부님 안배라는 것을 알았다.

정념으로 박해를 부정

어느 날 저녁, 나와 50대의 여 동수는 함께 “ 파룬따파 하오”라고 쓴 대형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야채 시장은 오가는 사람이 많으므로 우리는 시장 한 쪽 머리의 입구를 선택하였다. 마침 시장 길목 양측에 각기 40 센티미터 되는 네모난 철 기둥이 있기에 밤중에 조용한 기회를 타 2 미터 되는 기둥에 올라가 현수막을 걸었다. 이튿날 금빛 찬란한 현수막이 중생들에게 6시간 남짓 펼쳐져 있어, 수많은 세인들이 이 현수막을 보고 진상을 알게 되었다. 아침에 경찰이 우리 집에 와서 현수막 일을 아느냐고 물으니 나는 모른다고 하자 그는 곧 가버렸다.

저녁이 되자 4명 경찰이 왔는데 그 중 두 명은 파출소 소장이었다. 나의 집에 와서 무리하게 집 수색을 하여 모두 뒤집어 놓고는 진상 소책자 두 권을 수색하여 가져 갔으나 사부님 경문은 사악이 보지 못하였다. 한 경찰이 주방의 서랍에서 700여 위안의 돈을 끄집어 내자 나는 큰 소리로 제지하였다. “그건 내가 장사하여 모은 돈인데 내 것에 함부로 손대지 마라” 그 중 한 소장이 연속 두 번 말하는 것이었다. “남의 돈에 손 대지 말아야지요. 남의 돈에 손대지 말아야 지요” 이렇게 진정하자 경찰도 감히 함부로 어쩌지 못하고 돈을 제자리에 놓는 것이었다. 경찰들은 갈 때 내일 통지를 기다리라고 하였다. 나는 생각하였다. 너희 사악은 새끼 손가락으로 비빌 나위도 안 되는데 너희 통지는 대법제자에 대하여 작용을 일지 못한다.

남편은 사악에게 시달려보았기 때문에 두려워서 긴장해 하였다. 나는 남편의 담을 북돋아 주면서 말하였다. 두려워 마세요.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그들더러 나한테 물어보라고 하세요. 그들은 남편을 파출소에 불러다 물었으나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게 되자 또 나를 불러다가 현수막을 누가 걸었는가 물었다. 내가 그걸 어찌 아는가.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그들은 또 자료는 어디에서 얻었는가 하고 물었다. 나는 주었다고 했다. 어디에서 주었는가? 나는 물건 구입하러 갈 때 다리목에서 주었다고 대답했다. 악경이 위협 하였다. 솔직하지 않다간 “610”에 보낼 줄 알아. 나는 당시 조금도 두려운 마음이 없었다. 세가지 색깔로 된 파룬이 파출소 상공에서 돌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사부님께서 나를 고무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담이 더 커졌다.

나는 정력을 집중하여 강대한 정념을 내보내 파출소 경찰을 조종하여 나를 박해하는 일체 사악을 해체하였다. 사악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되자 “돌아가서 우리를 도와 누가 걸었는가를 조사하여 우리에게 알리라” 고 하고는 나를 돌려 보냈다.

며칠이 지나자 한 경찰이 와서 조사해 봤는가 하고 나한테 물었다. 내가 어디 가서 조사한단 말인가? 나는 대문 밖에도 나가보지 않아 방향조차 모르는데. 그는 말하기를 바로 자유시장 그곳에 건 현수막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모른다고 하였다. 이 일은 이렇게 흐지부지해 지고 말았다.

이상은 내가 사부님 보살핌 속에 일개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나는 세가지 일을 잘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내가 세간에 올 때의 사명으로서 어떠한 사람, 어떠한 세력도 모두 나의 전진의 길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바로 한 마디인 바, 조사정법하여 중생을 구하는 이 길을 나는 걷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 합니다!

문장발표: 2008년 11월 18일

문장분류: 대륙법회

문장위치: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1/18/1899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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