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길림 연변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13일】
자비하신 사존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존께 저의 6년간의 수련 심득체험을 보고드립니다.
법을 얻기 전의 경력
내가 어렸을 때 모친은 뇌혈전으로 병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엄마의 지능은 단번에 몇살 어린이 정도로 떨어져 의식주를 모두 옆 사람이 돌봐주어야 했다. 아빠는 엄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빚진 채무와 나와 남동생의 학비 때문에 외국에 돈을 벌러 나가셨다. 집에는 단지 나, 엄마,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인 동생만이 있었다. 일 가족 세 식구의 생활비는 겨우 엄마의 퇴직금 몇백위안에 불과했다. 그런 생활은 정말 힘들고 힘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다른 사람이 안보는 곳에 가서 눈물을 흘렸는지 기억을 할 수 없다. 세상 풍파를 겪은 마음은 늘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왜 사는 것이 이렇게 힘들까? 왜 이 세상에 사는가? 왜 이렇게 고독한가?”
하지만 늘 어떤 것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고 이런 느낌은 매우 강렬했다. 거의 매번 번거로운 일이나 곤란한 일을 만날 때는 어떤 사람이 제때에 나타나 도와주곤 했는데, 친척, 친구, 동창, 선생님, 이웃, 사회인 혹은 한번 본적이 있는 사람 심지어 어떤 돈은 지금까지도 누가 보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고난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대법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암암리에 사존께서는 이미 나를 보호하고 계셨다는 느낌이 든다.
법을 얻다
2001년 어느 날 공교롭게도 친척(대법제자)이 우리 집에 왔다. 처음에는 집안 청소를 도와주었다. 박해가 시작된 이후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아 파룬따파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텔레비전에서 헐뜯는 것에 대해 나는 반신반의 했다. 이 친척의 출현은 내게 거대한 충격이었다. 도대체 무슨 힘이 이 사람을 저렇게 유리실소하고 사면초가의 박해 하에서도 의연히 저렇게 평화롭게 할까? 도대체 무슨 힘이 사람으로 하여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의연히 수련을 계속할 것을 선택하게 했을까? 도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근본적으로 방향을 볼 수 없는 길에서 계속 전진하게 할까? 이 친척은 고인(高人)의 인도하에 대법을 접촉했고 그는 이렇게 사는 의의가 이 법을 얻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알려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대법을 접촉했고 역시 무엇이 진정한 수련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2002년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로 결심했다. 지금까지도 당시의 그러한 감사에 충만하고 확 트인 마음을 잊을 수 없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했다. 승용차에 부딪혀 수 미터나 끌려갔으며 직접 얼굴이 땅에 부딪쳤다. 기사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내 얼굴이 부딪혀 부어올랐고 손발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사존의 말씀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빚진 것은 갚아야 하므로 수련의 길에서 일부 위험한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나타날 때 당신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당신에게 진정한 위험이 나타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전법륜』)
나는 절대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을 알고 속으로 사존께 제자를 일어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청하며 일어설 수 있었고 한걸음 한걸음씩 걸을 수 있었다. 나는 큰 업력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그래서 돌아온 후 동수와 함께 동공을 연마하기를 견지했다. 결과적으로 다음날 부은 것이 거의 사라졌고 또 손발은 기본적으로 정상을 회복했다. 모든 사람들이 하루 만의 변화를 보고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료점 설립
내가 막 법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어 우리 지역에서 줄곧 친척에게 경문을 (그 때는 복사실에 가서 복사했다) 공급해주던 곳이 파괴되었다. 한동안 경문을 얻기가 매우 어려웠고 기본적으로 하나의 경문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베껴 보았다. 어떤 때는 사부님이 신경문을 발표한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수중에 넣지 못했다. 나는 동수와 같은 이런 진수제자는 속인의 것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사존의 경문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것을 보고 조급해졌다.
사존의 인도 하에 어느 한편 명혜 문장 아래에서 우리는 우편주소를 보았다. 나는 이곳에 한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원래는 최신 경문만을 가지려 했으며 나중에 베껴 쓰려고 생각한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매일의 명혜 문장 화일을 받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명혜 문장 화일을 보았을 때 동수가 소리 없이 울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 느낌은 정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본 것 같았으며 사부님께서 신변에 시시때때로 계신다는 우리가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보고 계신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이 때문에 비로소 자료점을 만들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렇게 하면 제때에 경문을 볼 수 있고 또 수련 절차 문장을 볼 수 있다(당시 한참을 기다려야 비로소 수련 절차 문장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화일만 있고 컴퓨터가 없으니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주위 동수들이 돈을 모아 한 대의 싼 컴퓨터와 프린터를 샀다. 컴퓨터를 놓을 탁자가 없어 걱정하고 있는데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말했다. 자기 집에서 가구를 바꾸는데 나더러 탁자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필요하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정말 모든 것은 사존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안배해 주신 것을 느꼈다. 우리가 사존이 안배한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닌지만 본다. 이렇게 2002년 말부터 지금까지 우리 가정 자료점은 사존의 보호 하에 평온하게 6년을 지나왔다. 우리는 줄곧 가정자료점이며 모든 설비 소모품은 자신의 돈으로 산 것이며 기기 역시 스스로 수리를 배웠고 컴퓨터 사용, 내용편집 역시 스스로 모색하고 배운 것이다. 처음에는 몇 명에게 제공하다가 지금은 20여 명에게 자료를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 사존의 경문을 인쇄하는 외에 『명혜주간』과 『명혜주보』는 받지 못했기에 매주 매일 파일 중 비교적 겨냥성이 있는 글을 선택해 교류문장으로 모아 전단지를 만들었다. 이렇게 사존의 경문 외에 천천히 전단지 만들기 mp3 녹음테이프, 『명혜주간』과 『명혜주보』, 소책자, 9평, 진상 시디, 진상화폐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 동수는 컴퓨터를 켤 줄도 몰랐으나 지금은 컴퓨터 기본조작과 타자뿐 아니라 ‘9평’을 인쇄하고 시디를 구울 수도 있다. 처음 자료를 만들 때 나는 『전법륜』을 한 번도 다 읽지 못했고 완전히 동수를 돕는 속인의 심태였다. 자기가 명혜문장을 편집해야 했으므로 매일 명혜 문건은 거의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보았다. 이런 심득 체험을 봄으로써 나는 더욱 공법 수련의 위대함을 이해하게 되었고 마땅히 수련인의 심태로 자료점을 대해야 하며 단지 가까운 사람을 돕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법을 얻기 전에 나는 많은 시간을 들여 진지하게 학교 공부를 했다. 그러나 늘 힘이 딸렸고 주의력이 집중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을 배우고 자료를 만들기 시작한 후 집에 돌아오면 기본적으로 학교 공부할 시간이 없었으나 반대로 학업성적은 오히려 또렷이 제고되었다. 한번은 중간고사를 보는데 보아야할 내용은 수백페이지가 넘었으며 또한 이 과목은 내가 가장 못하는 과목이었으나 밤에도 자료를 만들어야 했고 그래서 아침에 반시간 마음대로 몇문제만 본 후에 시험을 보러 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험문제는 내가 본 그 몇 문제였다. 그 학기에 나는 장학금을 받았다. 사실은 대법을 수련하기 전 거의 몇 개 과목은 낙제점이었다. 그런 예는 정말 부지기수였다. 내가 진정으로 대법을 제 일위로 놓았을 때 놀랍게도 일체를 지불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얻은 것이 더욱 많았다. 잠시 후에 말하는 우리 식구의 변화 역시 이런 것을 설명한다.
동생이 법을 얻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중병을 앓고 아빠가 집에 안 계셨기 때문에 동생의 성격은 비교적 자신을 비하하고 폐쇄적이었다. 나하고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늘 혼자 방에서 무협소설만 보고 밤에는 혼자서 나가지도 못하며 늘 컴컴한 곳에서 무엇이 자기를 따라다닌다고 했으며 대법에 대해 저촉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경문을 주거나 전단지를 주어도 그는 대개 보지 않았고 텔레비전에서 하는 말들을 더욱 믿었다.
그러던 그가 고등학교 시험이 반년 남았을 때가 되어 나는 분명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는 나를 등지고 텔레비전을 보았는데 그의 등은 전부 시커멨다. 이때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그는 지금 무슨무슨 병(골암 같은 것) 있는데 원래의 수명이 이미 다 되었다. 그 주위의 사람이 마음 써서 수련하므로 그에게 반년의 기회를 더 준다. 그가 반년 내에 파룬따파를 수련할 수 있다면 살 수 있다.”이 말을 듣고 나는 울며 동생을 잡아당기며 수련하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그가 하겠다고 하여 우리는 이렇게 그 음성이 나온 곳에서 엎드려 절하고 쌍수 허스했다. 나중에 나는 깨어났다. 깨어난 후 나는 울어서 눈이 벌겋게 되었다. 꿈이 너무나 진실했기 때문이었다. 동생에게 얼른 요즘 뼈가 아프지 않은지 물어보았다. 그는 크게 놀라면서 말했다.
“요 몇 달 동안 뼈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때로는 밤에 아파 잠을 못잘 정도야. 사람들이 걱정할까 봐 말을 못했어.” 내가 꿈에 본 일을 그대로 말해주었더니 그는 깜짝 놀라며 꿈에서처럼 수련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동생은 고3이기 때문에 밤 9시까지 자습을 해야 했고 게다가 숙제하느라 법공부와 연공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동수, 나, 동생)는 야간 자율학습에 참가하지 않기로 하고 집에 돌아온 후 6시 반에 먼저 5장 공법을 연마하고 그 후 『전법륜』 한강을 읽었다.
“그러나 하나의 표준이 있다. 당신이 하늘에서 정한 원래의 생명노정을 벗어나, 나중에 이어온 생명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연공하는 데 쓰라고 준 것으로, 당신이 사상적으로 조금이라도 편차(偏差)가 생기면 곧 생명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생명노정은 벌써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전법륜』)
그의 천명이 이미 다했음을 알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하게 수련하는 것으로 법에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었다. 생명조차도 없으면 어떻게 대학에 갈 수 있겠는가?
이렇게 우리 세 사람은 반년을 견지했다. 매번 연공할 때마다 동생의 옷은 땀으로 완전히 젖었다. 특히 정공은 그의 말에 따르면 뼈 전체가 다시 만들어지는 것처럼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동생 역시 이 법을 얻으려고 하지만 업력이 너무나 커서 일체를 내려놓고 진정하게 수련해야만 비로소 법을 얻고 진정 살아갈 수 있었다. 대법은 그에게 중생할 기회를 주었고 그는 확실히 법에서 새로 살아났다. 안팎이 모두 완전히 변했다. 진지하고 선량하며 관용한 사람으로 되었다.
우리를 더 의아하게 한 것은 그의 학업성적이었다. 전에 그의 성적은 중상 정도였는데 수련 이후 매월 성적이 올라가더니 마지막에는 반에서 2등이 되었다. 반주임은 심지어 그가 야간자율학습에 참가하지 않은 대신 고액의 과외를 받은 것으로 오해했다. 그렇지 않으면 효과가 그리 좋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밤에 법공부 후에 때로는 숙제도 하지 못하고 바로 잠에 든 것을 알지 못했다.
대학입시 날, 구세력이 그가 주의력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안배한 것을 느꼈다. 이전에 한번 나는 꿈에 그가 검은 빈터에 누워있는데 아무리 불러도 깨지 않는 것을 보았다. 또 몇 번은 꿈에서 그들 학교 교장이 그는 자격이 없다며 그를 학교에서 몰아내는 것을 보았다. 나는 구세력이 줄곧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하는 것은 장래 대법제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줄곧 밖에서 그에게 발정념해 주었고 그가 대학에 가는 것은 결코 자기의 앞날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에서 더욱 많은 필요지식을 배워 조사정법을 실현하고 중생구도하는 사전의 소원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최종 성적은 반에서 2등이었고 전교 십몇 등이었다. 이것은 그가 본 시험 중 가장 좋은 성적이었으며 원하는 대학에 갈수 있을 뿐 아니라 또 성적이 우수하여 장학금을 받았다. 우리 주위의 사람이 모두 울었다. 목숨도 부지하지 못할 업력 가득한 사람이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이렇게 중생의 기회를 얻었다.
다시 모친을 말하자. 비록 주의식이 뚜렷하진 못했지만 엄마는 애써 “파룬따파하오”를 외우며 진지하게 책을 보며 나중에 기본적으로 밥하고 빨래하는 등의 집안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침대에서 누워 무슨 일도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했던 사람이 가정주부가 되어 엄마의 변화를 본 모든 사람이 의학의 기적이라고 한다. 이전에 의사는 이런 병은 더 악화되지 않으면 좋은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끝맺는 말
이것은 내가 처음 쓴 심득체험이다. 전에 나는 늘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붓을 들지 못했다. 지금은 이것이 일종의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느낀다. 다른 사람이 쓴 것을 보며 자기는 대가를 지불하려고 생각하지 않으니 말이다. 매개 수련인은 모두 수련의 길을 걷는데 울퉁불퉁한 것을 면하지 못한다. 관건은 어떻게 새로이 바로 걷는가 하는 것이다. 심득체험을 쓰는 것을 통하여 나는 자신이 걸은 걸을 돌아보았다. 기쁜 일도 있고 감사함, 부끄러움과 후회도 있다. 이후에 나는 늘 심득체험을 쓸려고 한다. 발표되든 되지 않든 이것은 우리 수련의 회고와 반성이다.
동년배에 비해 나는 생명의 길에 많은 굴곡이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나는 오히려 이런 것에 감사를 느낀다. 이런 고생은 나로 하여 지금을 더욱 아끼게끔 했으며 모든 가진 수련환경을 아끼도록 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곤란하던지 절망적인 환경이던지 모두 사존이 우리 신변에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산과 물이 다하여 길이 없을 때 버드나무 우거지고 꽃핀 마을이 있을 것이다”
사존님 비록 제가 때로 잘못하긴 하지만 제자는 반드시 수련의 길에서 더욱 용맹정진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하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오직 사존께서 미소를 지으시는 것뿐입니다.부당한 곳이 있으며 지적해주기 바랍니다.
문장발표 : 2008년 11월 1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11/13/1892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