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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歸途)

글 /네이멍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12일 】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들 안녕하십니까! 나는 대륙 네이멍 대법제자로서 이것은 제가 처음으로 대륙 대법제자 서면 법회 교류회에 참가하여 투고하는 교류문장이다.

1. 얻으면 배로 잃는다

나는 1998년 봄에 기쁘게 대법을 만났다. 그때는 단지 감성(感性)적으로 이 법이 너무 좋다는 걸 알고, 당시 시에서 나는 사존의 설법 책을 거의 모두 사서, 마치 굶주린 사람이 목마른 것처럼 한권을 다 읽으면 또 다음 책을 읽었다. 자신이 어둠속에서 고생스럽게 찾아 헤매던 것을 끝내 찾은 그런 아주 기쁜 심정이었다.

그러나 내 자신의 정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있었는데, 낭만적인 것을 추구하고, 달콤한 아름다운 생활, 남편이 극진히 보살피는 완벽한 사랑 등 이러한 것들로 구세력이 빈틈을 뚫었다. 내가 법을 얻은 지 3~4개월 되었을 때, 나의 집착 및 전생의 억울함을 이용하여 조금의 지체도 없이 나에 대한 모든 고험을 시작했다. 그 결과, 법 공부가 깊지 못한 관계로 나는 구세력이 배치한 길로 들어섰다. 나는 당시 이미 가정의 모순 속에서 풀어나갈 방법이 없어 남편과 단호히 이혼하였다. 그 “낭만, 남의 보살핌을 바람”은 또 응답하여 나는 또 함께 수련하던 남자와 일 년 넘게 “고생스러운 연애”도 했다. 그 결과 그가 법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나도 수련을 포기하였다. 이 기간 나는 여전히 항상 파룬이 나의 배속에서 정지하지 않고 도는 느낌이 줄곧 2~3개월 지속되었다. 지금 그때를 회상하면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난다. 그때 자비하신 사존께선 이 무기력한 제자를 버리지 않고 고생스럽게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다! 그러나 나는 도리어 죄악의 진흙탕 속으로 깊이 미끄럼질 쳐 점점 깊게 내려갔다……

2. 다시 귀로에로

2003년 신년 기간, 방랑하던 나는 갑(甲)시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아이와 부모를 방문했다. 모친(동수)의 권고에 못 이겨 나는 사존의《2003년 정월 대보름 설법》을 보았는데 생명 깊은 곳에서 오는 조급함과 진감(震撼)하는 그러한 강렬한 느낌을 감수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이 만고의 기연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식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지금부터 새롭게 수련해야겠다! 고 결심을 하고 바로 늘 가지고 다니던 약품을 버리면서 이별한다고 말했다.(장기적으로 외지에서 방랑하다보니 담낭염, 심장병, 실면증, 난소낭종(卵巢囊肿)등 질병으로 아팠음) 그날 저녁,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혼자서 잘 수 있었다.(왜냐하면 오랫동안 매일 저녁 한 컵의 술을 마셔야만 잘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 나는 지금부터 또 다시 새롭게 수련하려고 다짐했다. 마치 날다가 지친 새가 하나의 가히 바람과 비를 막을 수 있는 나무를 만난 것처럼 내심은 비할 바 없이 평온하고 침착했다! 몇 년 동안 나는 제일 처음으로 이렇게 깊이 곯아 떨어졌는데 너무 달콤하였다. 며칠 후 혼자 가부좌를 하고 앉았는데 밝은 빛을 뿌리면서 파룬이 아주 먼 천제로부터 자전하면서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비하신 사존께서 이러한 미혹 속에서 굽은 길로 잘못 들어섰던 나를 양해해 주신 무한한 은혜에 감격했다. 생명은 평안한 귀속이 있어야만 행복감이 넘쳐난다……

3. 사부를 도와 정법하다

(1)몸은 다른 곳에

보서《전법륜》을 가지고 갑 시로 돌아갔다. 사존의 배치 하에 나는 갑 시의 한 동수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명혜주간》과 신경문을 가져왔다. 나는 수련을 통해 내 몸의 질병들이 무의식중에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나는 마음속 깊이 사존의 자비에 감격했으며 더욱 자신이 이미 잃어버린 너무 많은 보귀한 시간에 대해 가슴깊이 후회했다. 이리하여 나는 대량으로 사존의 설법《전법륜》및 각 지역의 설법과 《명혜주간》등을 매일 한가할 때면 모두 공부했다. 연공도 하루도 빠짐없이 견지했다. 그때는 매일 반드시 3강의 《전법륜》을 통독했다. 시간이 충족할 때는 하루에 5~6강을 통독했다. 법공부와 《명혜주간》통해 나는 아주 빨리 수련은 마땅히 법을 실증하는 것과 연관 시켜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다!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 나의 진정한 사명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대량의 편지 봉투와 편지 종이, 복사지와 우표 등을 구매하여 진상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능히 20~30통을 쓸 수 있었다. 다 쓴 것을 우편으로 보내거나 배포하였다. 당시 나는 친구가 있었는데 공안 계통의 사람들과 비교적 익숙했다. 그와 이야기를 통하여 나는 많은 공안국, 분국, 파출소의 인원들의 이름과 직무를 알게 되었다. 나는 모두 마음속에 기억하고 종이에 적은 후 그들에게 각각 우편으로 진상자료와 선을 권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들은 비록 직업이 특수하지만 그러나 생명은 평등하다. 그들도 역시 마땅히 구도 받아야 할 가련한 생명이다.

그때 나도 신변의 친구들에게 진상을 시험해 보기 시작했다. 당시 아직 《9평》아직 나오지 않았으며 3퇴에도 미치지 못하였고 다만 대법의 아름다움과 중공의 무리한 박해, 대법이 세계에 홍대하게 전파되고 있다는 등을 알리는 것이었다. 나는 한 선량한 부부가 진상을 명백히 알고, 주동적으로 나를 도와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편지와 자료를 이웃에 배포하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지혜로 문을 열게 하고 그 집 사람에게 이야기를 한바탕 하면서 사람들을 도와 진일보로 진상을 이해시킨 것을 알고 있다. 후에 내가 자료점을 꾸린 후 그들은 나를 도와 기계를 수리하고 자료를 들여왔는데 나에 대한 도움이 아주 컸다. 나는 이러한 생명을 위하여 감격했으며 이러한 생명이 구도된데 대하여 기쁘고 안심하였다.

몇 개월 후 나는 갑 시에 있는 비교적 돈을 벌수 있지만 정당하지 않은 영업문을 단호히 닫아 버리고 한 곳의 층집을 잠시 빌려 주숙했다. 사존의 심혈을 기울이신 배치로 나는 또 갑 시의 다른 두 동수와 연결되었다. 교류를 통하여 현지에 진상자료가 공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리하여 나는 저축했던 돈으로 두 대의 복사기를 사서 진상 전단지를 대량으로 인쇄했다. 그때는 컴퓨터를 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만 다른 동수에게서 여러 가지 전단지를 가져와서 일부는 직접 복사하고 일부는 가위로 잘라 새롭게 제작하여 다시 복사하는 것만을 하였다. 후에 다른 자료점에서 바쁜 것을 보고 나는 바로 복사해야할 신경문과 《명혜주간》이 부족한 것을 도맡아 했다. 그때는 매일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보증하는 외에 바로 전력을 다하여 진상전단지를 복사하고 또 그것을 겹쳤다. 바쁘지 않을 때에는 혼자서 한 보따리 자료가 대략 2~3백부, 적을 때에는 1~2백부 되는 것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천천히 각 거민 구역에 배포했다. 대개 매 주 능히 2~3번을 배포했다. 그때 법공부가 따라가고 마음에 법을 담았으니 근본 두렵지 않았으며 일심으로 단지 중생구도만 생각했다. 아주 묵직한 자료를 메고서 이것은 모두 중생의 생명이다! 라고 생각했다. 가는 길에 나는 끊임없이 《논어》,《법을 돕다》,《위덕》,《정신(正神)》,《정념정행》등을 외웠다. 자료를 배포할 때도 끊임없이 발정념으로 사존께 “내가 가는 곳마다 일체 사악을 제거하고 연분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진상자료를 얻어 구도 되어 그들로 하여금 한 사람이 열 사람으로, 열 사람이 백 사람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구도되게 해줄 것을 ‘청’하였다. 이렇게 사존의 가지 하에 매번 5~6층의 높은 층을 나는 연속적으로 몇 십 개 내지, 20개 단원을 기어 다니면서 이미 기어서 움직이지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야말로 능히 기어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때 마음속에는 오직 중생뿐이었다. 비록 매번 모두 땀에 속옷이 흠뻑 젖었지만 고생스럽고 힘들다는 느낌이 없이 늘 비할 바 없이 충만되고 기뻤다.

후에 나와 갑 시의 동수들은 함께 배합하여 아주 많은 진상자료를 제작했다. 갑 동수는 50세가 넘은 이모였다. 그가 나이가 많다고 보지 말아야 했다. 나가서 진상 족자를 걸거나 진상자료 배포에는 오히려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높은 골짜기에서는 모두 나보다 더 대담하였다. 몸과 손이 민첩하고 걸음이 빨라 집사람들은 그를 “준족(飞毛腿)”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서로 배합하면서 족자를 주요한 갈림길의 높은 곳에 걸었다. 간선도로와 번화한 거리의 양쪽에 걸어 최대한으로 사악을 진감시키고 청리했다. 또 여러 가지 스티커도 큰거리와 작은 골목마다 가득 붙여 놓았다. 후에 어머니도 갑 시에 와서 우리와 함께 정진하면서, 배합하여 진상자료를 천가만호에 배포했다.

당시 고향에는 박해하는 정도가 아주 엄중하였으며 자료점도 적어 자료가 부족했다. 고향의 중생을 구도하기 위하여 나는 모친과 함께 여러 가지 전단지를 가져다 고향의 동수들에게 지원하였다. 갑 시와 나의 고향은 거리가 아주 멀었다. 열차에서 7~8시간으로 왕복 하루 가 걸린다. 이래서 나는 직접 고향 사람들을 구할 방법을 생각했다. 동수들과 교류했는데 모두 정념으로 지지했다. 이렇게 나와 갑 동수 및 어머니 셋이서 함께 고향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나는 가는 길에서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다. 열차에서 내릴 때에는 바로 저녁 7~8시 되였다. 우리는 내리자마자 즉시 자료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이고 족자를 걸었다. 그 이튿날 새벽 또 열차로 갑 시로 돌아왔다. 고향 사람들이 말에 의하면 그때 고향의 사악에 대한 진동이 아주 컸다고 하였다. 그들은 심지어 경찰을 동원하여 하나의 아주 큰 거민구역을 봉쇄했는데 결국에는 허탕만 쳤다고 했다. 후에 갑 시의 을 동수와 나 및 어머니가 함께 또 한 번 가서 남성(南城)으로부터 북성(北城)까지 진상 스티커를 온통 붙였다.

(2)고향으로 돌아가다

04년 가을, 나는 갑 시의 동수들과 작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당시 고향에는 자료점이 적다보니 자료가 부족한 현상이 여전히 존재했다. 심지어 어떤 구에는 신경문과《명혜주간》을 십 몇 명이서 돌아가며 보고 있었다. 한번 본 후 빨리 다른 동수에게 넘겨줘야 하는데 한번 더 보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나는 다시 한 대의 복사기를 사서 현지 동수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려 생각했다.

그런데 기계는 어디에 설치해야 하는지? 왜냐하면 나는 잠시 부모님 집에 머물렀는데 어머니가 진상하다가 악인에게 신고당해 이미 또 다시 불법으로 노교를 하게 됐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두 번이나 되는 불법 노교의 타격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쳤는데 또 온종일 나 때문에 어머니처럼 일이 생길까봐 근심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아버지가 내가 하는 일을 모르게 해야 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 이때 자비하신 사존께서는 나의 소원을 보았고, 나의 곤란한 점도 보시고, 또 한 번 심혈을 기울여 내가 현지의 한 동수를 알게끔 배치하셨다. 우리는 만난 후 한 번의 교류에서 즉시 기계를 사서 그녀의 집에다 자료점을 꾸리게끔 결정했다.

그때 줄곧 일을 하지 않은 내게 저축한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료점에 쓸 돈을 모으기 위해 나와 이 동수는 함께 일자리를 찾았다. 처음에 구매한 기계가 너무 작아서 복사 속도가 느렸다. 시간을 절약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나는 또 대형복사기를 구매했다. 이렇게 낮에는 출근하고 점심시간에 법 공부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그 동수와 함께 자료를 만들었다. 시간이 있으면 나가서 배포도 했다. 얼마 후《9평》이 나왔다. 정법 노정이 또 하나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우리는 사존의 정법 노정에 따라 《9평》을 복사하여 배포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존의 신경문《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이 발표됐을 때 동수들이 제일 빠른 시간 내 읽어보게 하기 위해 우리는 연속 밤을 새면서 복사해 주위 동수들에게 손에 한권씩 보내줬다. 한 노 이모는 이 경문을 손에 받아 쥐고 「너무 좋아요! 너무 좋아요!」하고 연신 인사말을 했다. 나는 이 말을 들은 후 정말로 코끝이 찡하면서 또 기쁘고 편안했다.

그 한 단락 시간에 나는 늘 혼자서 밤이 되어서야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거리에 가로등이 없어 아주 컴컴했고 또 밤중이라 다니는 사람도 아주 적었다. 이전 같으면 나는 담이 적어서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신의 길로 가는 대법제자로 거리에서 늘 자신에게 격려하면서 사존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면 가는 길에 아주 순조롭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늘 한 대의 차가 나타나서 앞이나 혹은 뒤에서 느리게 가면서 줄곧 거리의 가로등이 있는 곳까지 마치 전문적으로 나를 위해 비추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자비하신 사존께서 나를 격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무한히 온화한 은혜에 감격했다. 이 한 갈래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사부님께서는 언제나 시시각각 보호하셨으며 우리를 위해 횃불로 앞길을 비춰주셨으며 우리들에게 귀항(归航)의 길로 인도하셨다.

(3)내 집에도 꽃이 피다

06년 성탄절, 일 년이 넘도록 참혹하게 박해를 받았던 어머니는 노교소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는 자료점이 널리 펼쳐진 형세 하에서 주위의 동수들도 연속 몇 개의 가정 자료점을 꾸려 바로 정규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직접 다운받아 복사해 자료는 더욱 아름답고 제작한 편집도 여러 가지로 늘어났다. 기본상 능히 현지의 동수들이 진상자료 및《명혜주간》등의 수요를 만족시켰다. 동시에 진상자료 중에서 또 선진적인 진상 시디가 많아졌다. 아버지는 바로 그런 내용이 풍부한 시디를 직접 보신 후 사당의 추악한 몰골을 인정하고 대법이 세계에서 홍대하게 전파되어 하늘땅을 진감하는 놀라운 것들을 감수하셨다. 이리하여 부친의 고립무원인 납치범 사당에 대한 공포감이 감소되었다. 이 작디작은 창문으로 그는 희망을 보았으며 서광을 보았다. 점차적으로 그는 강렬히 반대하던 데에서 오히려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부친이 수련을 시작한 그날 저녁, 나는 꿈속에서 사존님이 사진 속에서 나에게 웃는 모습을 보았다.

부친과 주위의 친척들의 변화로부터 진상 시디를 이용하여 중생구도 하는 것이 아주 좋은 효과가 있는 것을 체험했다. 그러나 시디의 수량이 너무 적어서 한 세트로 여러 집에서 번갈아 보아야 했기에 보는 속도가 아주 느렸다. 그런데 신당인 텔레비젼 방송이 우리 구에 보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진상의 작용과 효과를 기타의 진상자료로 대체하려니 힘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나에게 능히 한 대의 편집 제작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능히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을텐데!’ 다만 이런 순정한 일념이 나타났는데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또 한번 나를 도와 주셨다. 2~3개월 후 부친은 나의 중학교 다니는 아들에게 컴퓨터를 사주었다. 사실상 나는 이것은 사존께서 나에게 법기를 부여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컴퓨터를 설치했다. 그러나 도리어 시디 제작하는 것을 설치하지 못해 동수가 자금을 내놓아 한 대를 더 구매하였다. 나는 부친에게 설치하려고 의논을 했다. 그런데 부친은 사당이 두려워 극히 반대했다. 당시 사당에게 그 무슨 꼬투리라도 잡혀, 소란을 피우면서 수색하고 붙잡혀 박해 당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몇 번의 의논에도 실현되지 않자, 나는 약간 낙담해서 심지어 포기하려고까지 생각했다.

그날 저녁 나는 전등을 끄고 조용히 침대에 앉아 벽을 바라보면서 상심하여 눈물을 흘렸다. 만약 저에게 집이 있다면 내가 하기 싶은 대로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할 때 이 집이 내가 수련하는 환경이 아니란 말인가? 부친의 반대가 사악이 그의 두려운 마음을 이용하여 강하게 나의 이 자료점을 꾸리는 것을 저애하게 한 것이 아닌가? 이것은 사악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바로 포기하면 안 되며 도리어 빨리 꾸리라고 알려준 것이 아닌가? 고 생각하였다. 정법의 홍세가 매우 빨리 앞으로 밀고 나가고 있는데 이 천금, 만금의 가치가 있는 보귀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으며 중생 구도를 놓쳐서는 안 된다. 내가 왜 이러한 가상에 미혹될 수 있겠는가? 내가 하는 일은 제일 바르기에 누구도 저애할 수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가부좌하고 앉아서 강대한 발정념으로 사존께서 일체를 주관하고 있으니 누구의 말도 모두 쓸모없다. 오직 사존께서 안배한 노정으로서 나는 반드시 이 자료점을 꾸려야 한다! 이렇게 끊임없는 발정념을 하고 동수들의 정념의 가지를 더하였으며 아들(대법을 지지, 잠시 수련을 하지 않음)의 정의로운 지지아래에 향긋한 한 송이 꽃이 끝내 나의 집에서 피게 되었다. 부친도 하는 수 없이 동의했지만 편집할 것을 가져오는 것에 대하여 제한했다. 후에 그는 내용이 좋은 시디를 더 많이 편집할 것을 건의하면서 지금까지 시디 편집을 도와주었다. 이 기간 사존의 고심한 부추김이 가득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보기에는 우리가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들이 그러한 염원이 있었으므로 사존께서 무조건적으로 제자를 도와 기연을 창조해 끝내 우리들이 하게끔 지도하셨던 것이다. 자비하신 사존의 불은호탕이 없었고, 대법의 인도가 없었다면 우리는 또 능히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현재 우리는 또 한 대로부터 9대의 복사기로 늘어났다. 동수들이 정체에서 협조하고, 배합하면서 자금을 내놓았고, 인력의 지원으로 여러 가지 진상 시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와 천가만호에 배포되었다. 중생구도의 이 노정에서 사존의 요구에 따라 원용하여 진상하면서 대량으로 박해를 폭로하여 사악을 모두 제거했다. 사존의 자비와 보호와 대법 등대의 인도하에 우리는 바른 길에서 구도할 수 있는 중생을 구도하면서 온건하게 반본귀진의 큰길로 나아가고 있다.

위대하신 사존님 감사합니다!

동수들 감사합니다!

허스!

(명혜망 제5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완성:2008년 11월 1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8/11/12/18908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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