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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으로서 가장 의의 깊었던 몇 년

문 / 강소성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10일]

… 을동수가 우리 집에 한번 오기란 차를 타기도 불편해서 아주 힘들다. 그래서 동수의 부담을 덜어주고, 또 신속하게 혼자 힘으로 사부님의 신경문, 《명혜주간》을 받아보고, 정법노정을 따르는데 수월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담하게도 나는, 만약 내가 명혜망에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조건으로 내가 명혜망에 접속한다는 건 “미친 사람의 꿈 이야기”와도 같았다. 기본적으로 우리 집에 컴퓨터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이트에 접속하는 방법조차 모를만큼 컴퓨터지식이라곤 없었다. 컴퓨터는 그냥 TV에서나 보아왔고 명혜망의 주소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뿐만 아니라 언제 우리 촌에 초고속 인터넷장치가 설치될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명혜망에 들어가고 싶은 견정한 나의 정념을 보신 사부님께서는 나를 위해 일체 필요하고 편리한 조건을 제공해 주셨다. 나의 염원이 실현되는 곳곳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배치를 느낄 수 있었다. … 최근 들어 나는 또 “메일 함께 보내는”방법을 터득했다. …

—본문저자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세요!

여러 동수님들 안녕하세요!

나는 여러 방면으로 많이 뒤떨어진 제자이지만 대법은 나에게도 똑같이, 사부님께서는 나를 위해 무한한 아름다움을 주셨다. 나는 길지 않은 시간에 대법수련 중에서 많은 제고를 했으며, 많은 것을 얻었고, 많이 정화됐는데,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대법에 감사드린다! 아래에 몇 년간 겪은 부분적인 일들과 체험을 써내어 동수님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제고하려 한다.

먼저 우리 집은 농촌이다. 나는 1993년에 전신이 점점 마비되는 병에 걸려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었다. 1999년 6월, 내가 법을 얻었을 때 처음에는 완전히 병을 치료하려는 생각이었다. 법을 얻어도 그냥 책만 볼 수 있었지 연공을 할 수 없었고 온몸은 아프기 그지없었다. 법학습을 하면서 대법책 내용이 모두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며, 좋은 사람이 되어 자신과 다른 사람, 사회 모두 좋은 점이 있음을 가르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병의 통증으로 장기간 시달림을 받아 격하고 굴절되고 극단적이었던 심태가 점차 완화되었고 통증도 원래보다 많이 경감되어갔다.

1. 병업이 소업으로 경감되면서 대법은 신기함을 나타내다

내가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악의 박해가 시작되었다. 우리지역에는 법을 얻은 사람이 많지 않았고 또 박해당할까봐 무서워 많은 사람들이 주동적으로 혹은 피동적으로 법학습을 포기하였다. 우리 촌에는 동수가 없고 나 또한 집밖으로 나설 수 없었으며, 나에게 법을 전해 준 동수(갑동수)도 다른 성시에 거주하였다. 긴 시간동안 동수와 연계가 없었기에 나는 그냥 집에서 《전법륜》과 기타 몇 권의 대법책을 보았다. TV에서 대법을 모함하고 요언을 퍼뜨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막연한 상태로, 나는 줄 끊어진 연처럼 되어 그 어떤 대법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게다가 동작을 연마할 수 없고 법학습시 “병 치료하는 강대한 마음”으로 하다 보니 효과는 그다지 현저하지 않았다. 비록 대법이 아주 바른 것과 아주 좋음을 알지만 여러 가지 집착심의 교란으로 점차적으로 나도 법학습을 포기하게 되었다.

2001년 초 나는 대법 서적과 사부님의 법상을 모두 거두어 들이면서 법학습을 그만두었다. 그리하여 또다시 나 자신을 아무 “구속 없이” 방임하였다. 곳곳에서 약을 사먹고 TV를 다시 시청했고 쓸모없는 책들을 뒤적이며 마음대로 그렇게 2년을 보냈다. 처음 법학습을 그만두었을 때 아주 “자유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시간이 길어지자 실의감이 더해지면서 인생의 목표가 없어져 마음깊이 더 고통스러웠다. 2003년 하반년 나는 다시 스스로 거두어들였던 대법서적과 사부님의 법상을 모시곤 혼자서 법학습을 시작하였다. 당시 아직 동수갑과는 아무런 연락이 닿지 않아 어떤 경우엔 혼자서 법학습을 많이 하고, 어떤 때엔 적게 공부를 해 근본적으로 정진을 말할 수도 없었고, 더구나 “세 가지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으며 “정법제자의 책임”도 몰랐다.

하지만 내가 비록 느슨하게 법학습을 했지만 대법은 신기한 효과를 드러냈다. 진통제를 적게 사용할수록 통증도 매일같이 경감되었고 나중에는 진통제를 한 알도 먹지 않아도 몸은 아무런 통증이 없었다. 정말로 신기했다! 이전에는 진통제를 먹어도 고통이 극심해 하루라도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밤에 아파서 잠을 잘 수 없었고, 낮에는 너무 아파 밥마저 먹을 수 없을만큼 하루종일 꼼짝할 수 없었다. 법학습을 시작한 이후 최근 몇 년간 나는 진통제 한 알을 먹지 않아도 아프지 않고 감기마저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다. 이전에 나는 허약체질이라 해마다 심한 감기로 두어 번 시달렸다. 이런 나의 변화를 보고 가족 모두 대법이 너무나 좋고 너무나 신기하다고 여겼다.

더욱 신기한 일은 작년(2007년) 11월 이었다. 하루는 내가 점심을 먹었는데 신물이 올라와 저녁마저 먹기 싫어 조금만 먹었다. 의자에 앉기조차 아주 괴로웠고 머리가 어지러운채 신물이 올라오면서 막 토하고 싶었다. 나는 이전에 위가 아주 나빠 많은 약을 먹었다. 조금이라도 찬 음식은 입에 대지 못했고 규칙적으로 아프고 토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위에서 신물이 올라오면 곧장 약을 먹었지만 지금은 견정한 마음으로 한 알의 약도 먹지 않고 이겨냈다. 나는 위에 있는 많은 업력을 바로 사부님께서 소업 해 주시는 것이었다.

위에서 신물이 돌면서 올라오면 위액마저 모두 토해 너무나 괴로웠다. 어머니는 놀란 나머지 빨리 병원에 가 검사한 뒤 치료를 받자며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 걱정 마세요. 나는 대법이 보호하고 있으니 절대로 다른 일이 없을 거예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한테 소업 해 주시는 거예요.”하고 말했다. 그렇게 날마다 토하면서 그 중 10일 동안은 쌀 한 톨도 넘기지 못했고, 거의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비록 야위어졌으나 여전히 정신은 또렷해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먹은 사람 같지 않았다. 어머니도 아주 이상하게 생각했고, 이웃들도 내 정신상태가 또렷한 것을 보고 믿기 어려워했다. 일반사람은 사흘만 먹지 않아도 맥이 다 풀리고 정신이 없어 하는데 당신은 열흘 동안 쌀 한 톨, 물 한모금도 넘기지 않아도 이렇게 정신상태가 좋다니, 그냥 약간 야윈 것 빼고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정말로 신기하다! 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이것은 모두 대법의 신기한 법력이라고! 어머니도 나의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 네가 다 나아진다면 나는 철저하게 대법을 믿고 복종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토하면서도 나는 조금이라도 힘이 나면 법학습을 하고 발정념을 했으며 사부님에 대한 견정한 믿음에는 추호의 동요도 없었다. 이 병업의 증세(속인은 “암증”이라고 함)에 나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고 있다면 괴로움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극한에 이르렀음을 느꼈다. 쌀 한 톨도 먹을 수 없게 된 열흘 만에 나는 사부님의 법상 앞에 앉아 사부님께 빌었다. “사부님, 저의 업력을 나누어 갚도록 해 주십시오. 저는 더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과연 나는 천천히 회복되어 갔고 그다지 토하지 않았다. 또한 천천히 쉽게 소화되는 것들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몇 주간 나는 특히 더 견디기 힘들어 특별히 괴로울 때 크게 세 번(매번마다 5일에서 1주간 간격으로) 토하였다. 그러나 그 “열흘”에 비하면 괴로운 정도가 경감되었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의 고통을 보시고 정말로 업력을 나누어서 없앴음을 알 수 있었다. 정말로 그 어떤 언어일지라도 사부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부처님의 호탕한 은혜와 홍대한 자비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한 달이 지나자 나는 완전히 나아졌다. 약 한 알도 안 먹었으며 기색도 좋아졌고 밥맛이 돌아와 몸이 원래보다 더 나아졌다. 가족, 이웃, 친척, 친구들은 이번 일을 통해 대법의 신기함을 보아냈으며 더욱 진상을 믿게 되었고 대법을 믿고 복종하였다. 나도 이 사실을 끊임없이 모르는 사람한테 들려주었다. 나 자신의 체험과 함께 진상을 이야기하자 속인들도 더욱 쉽게 받아들이며 믿었다.

2. 가정을 원용하고 친인이 대법을 얻다

내가 공법을 배우게 된 것은 병치료를 위해서였고 가족 모두 비교적 지지해 주었다. 내가 법을 얻은 시기가 늦어 박해가 발생한 후에도 사악은 나에게는 시끄럽게 굴지 않아 법학습을 계속하는 것을 가족들이 그렇게 반대하지 않았다. 2005년 3월 동수갑이 갑자기 우리 집에 찾아왔다. 이는 사부님께서는 내가 정말로 수련하려 하고 법학습을 통해 위로 향하려는 마음이 비교적 견정함을 보시고 나에게 동수갑을 파견해 1999년 이후의 부분적인 사부님의 경문과 몇 권의 《명혜주간》, 진상자료를 가져다주신 것이었다. 후에 또 나한테 《9평》서적과 몇 장의 진상 VCD를 가져다주었다.(그녀는 나에게 같은 도시의 동수들도 소개해 주었다). 나는 더없는 보배를 얻었기에 아주 아껴가면서 정말 세심히 읽어나갔다. 대법에 의해 씻겨지는 그러한 아름다운 감각은 정말로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것으로, 오래도록 잃었던 아이가 부모를 만난듯 했다. 나는 늘 영문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일체 사건의 연유를 알았으며 사부님께서 우리 중생을 위해 수없는 고통을 감당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더욱 사부님의 위대함과 자비로움을 이해하게 되었다.

갓 신경문과 진상자료를 얻었을 때 나는 정법수련에 대해 깊이 있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명혜주간》을 보면서 어떤 동수가 “세인을 구도함에 분초를 다투어야 한다.”는 구절을 보고 나는 곧 “세인을 구도하는 절박함”으로 극단을 걷게 되었다. 나는 직접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그다지 친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하다 후에 진상을 잘 알지 못한 사람이 신고를 했다. 그 결과 7월 어느 날 공안국 정보과 경찰이 우리 집에 찾아와 정황을 조사했다. 그러면서 나의 부모에게 “만약 당신 아들이 불구자가 아니었으면 당장 붙잡아갔을 것이다…”고 떠벌였다.

그렇게 되자 부모님은 놀라서 나의 법학습을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아버지는 심지어 사부님과 대법에 불경스런 말까지 했다. 나는 부단히 발정념으로 그를 조종하고 있는 일체 사악을 제거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자 좀 조용해지면서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손해 가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극구 내가 법학습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친우들도 대법을 원망했고 이웃들도 뒤에서 각자 의논하였다. 기실 많은 속인들이 대법의 진상을 믿으려 하지 않은 것은 악경이 박해하는 것을 한 차례, 한 차례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공포와 무서움 때문에 우리와 진상을 멀찌감치 피해가는 것이었다.

그 한 단락 시기는 나에게 있어서 정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으며 분위기가 십분 긴장되어 법학습 할 환경마저 없어졌다. 나는 냉정히 사고하곤 나 자신이 극단으로 나간 것임을 알았다. 나의 “극단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세인을 구도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많은 사람을 해치게 된 게 정말로 후회막급 하였다. 명석해진 후 나는 엄숙히 자신에게 물었다. “그래도 계속하여 세인을 구도할 것인가?” 나는 속으로 견정히 대답하였다. “할 것이다! 당연히 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지적으로 지혜롭고 냉정하게 힘이 닿는 데까지 하며 그렇지 않으면 세인을 구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의식중에 구도할 수 있는 사람마저 망치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급히 세인을 구도하려는 방식을 바꾸었다. 법학습이 깊어지자 나 자신이 수련을 잘해야 할 중요성을 더욱 느꼈으며, 우리가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대법을 잘 실증할 수 있음을 알았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2002년 보스턴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듯이 “만약 우리 자신들이 평소에 자신의 행위를 주의하지 않으면 당신들의 표현을 속인들은 곧 보게 될 것이며 그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깊이 들어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그는 바로 당신의 표현을 본다. 당신의 한 마디 말, 하나의 표현은 그로 하여금 제도되지 못하게 할 수 있으며 대법(大法)에 좋지 않은 인상(印象)을 가져다주게 된다.” 나는 시시각각 자신의 일언일행이 법에 부합되도록 주의하였고, 가족과 기타 속인 앞에서도 늘 바르게 하였으며,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고, 다른 사람한테 선하게 대하며 언제나 선타후아, 정념정행하여 대법제자로서의 순정하고 사심 없으며 대선대인의 풍모를 충분히 나타내었다.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함에 급해하거나 서두르지 않으며 점진적으로 상대방의 접수능력에 근거해 온화하고 선의적으로 이야기하였다. 상대방이 정말로 접수하지 않으면 그들과 논쟁을 벌이지 않고 화제를 피해 상대방이 흥미를 느끼는 부분으로 돌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집착에 따라 한두 가지 진상을 언급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우리가 온화하고 친숙하고 선량해서 믿을 수 있게 하였다. 상대방에게 우리의 화제가 “파룬궁” 아니면 또 “파룬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이야기 하는 양을 조절하였다. 오직 속인들이 우리가 아주 정상적이고 이지적일뿐만 아니라 아주 지혜롭다고 느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우리가 말하는 진상을 믿으려 할 것이다.

내가 즉각 언행을 바로 잡고 대법이 나의 신체에 나타난 신기한 효과와, 그리고 세인을 구도하려는 길을 비교적 바르게 걸으며 비교적 지혜롭고 침착했기에, 점차적으로 가정환경과 마을환경, 그리고 친척친우지간의 관계도 모두 바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대다수의 친인은 모두 대법이 좋고 바름을 믿다가 점차 대법의 진상을 더욱 믿게 되었다. 허나 소수의 친척들은 그래도 비교적 완고해 진상을 그다지 믿지 않았고 “삼퇴”에 대해 많은 불만을 표시했다.

나는 신체적인 결함으로 그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적고, 또한 나 스스로 “사람이 작아 보이고 언어가 가벼움”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하여 나는 연분있는 친인들이 능히 법을 얻어 그들이 대법을 깊이 이해해 나와 함께 대법을 실증한다면 효과가 더욱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간절했다. 나는 우리 부모가 대법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그들이 구도되어 기타 친인들이 하루빨리 법을 얻을 수 있게 촉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을 수련의 길에 들어서게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움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일찍 《전법륜》을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보여주었다. 여동생은 깨달음이 좋아 대법에 대한 인식이 아주 좋았으며 수련중의 일에 대해서도 모두 믿었으나, 연공과 경상적으로 책을 보는 것을 싫어했다. 어머니는 대법이 아주 좋고 바름을 알고 있으나 깨달음이 차하여 수련중의 이치에 대하여 근본상 믿지 않았으며 “미신”이라고 여겼다. 그 자신도 말하기를 “대법은 아주 좋다. 허나 나는 속인의 마음을 버리지 못하겠다. 뿐만 아니라 신불에 대해서도 그다지 믿지 않는다. 나는 수련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주 의리가 있고 견해가 바른 사람인데 성격이 거칠고 급하며, 쟁투심이 강해 당문화의 독해가 아주 심하다. 아버지 스스로도 속인 중에서 아주 매끄럽게 잘 융화해 “총명이 과”하여 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 타입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가 법을 얻으리라곤 아예 희망을 품지 않았으며 가능성이 아주 적다고 여겼다. 그렇다고 줄곧 내가 완전히 포기하고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기회만 있으면 이쪽 방향으로 인도하려 했다. 아버지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기에 컴퓨터에 들어있는 진상 비디오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 먼저 오락하는 방법을 가르쳐 컴퓨터 다루기를 좋아하게 되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각종 대법에 관계되는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래도 이에 대해선 흥미를 갖지 않았다.

2007년 여름, 나는 컴퓨터로 사부님의 광주 설법비디오를 보면서 아버지에게 함께 보자고 했더니 뜻밖에도 아주 흔쾌히 그러자고 대답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매일 한 강의씩 틀어놓고 아버지와 함께 보았다. 아버지는 보면서도 열심히 보지 않았고 늘 졸고 있었다. 그렇게 9일 동안 보다가 자다가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다 보게 되었다. 나는 그다지 큰 기대없이 아버지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때요? 좋아요? 수련하시겠어요?” 그는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주 좋다. 나도 수련하겠다. 오늘부터 책을 보도록 하자.” 그 말을 나는 정말로 믿기 어려웠다. 정말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 아마 그가 법을 얻을 연분이 성숙되었고, 사부님께서는 이 일체를 보고 계시며 일체를 배치하고 계신 것이었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정말로 법학습을 하고 연공을 시작하는 동시에 카드놀이, 술, 담배를 모두 끊어버렸다.

아버지는 연공을 하기로 결정하곤 도박을 끊었으며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어머니와 여동생도 아주 기쁜 마음으로 따라서 함께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 두 모녀는 그다지 책을 보지 않았으나 매일같이 한 시간의 연공을 견지하였다. 어머니 자신도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더라도 동작만 해도 좋은 점만 있을 것이다.”고 생각해 밤만 되면 우리 네 식구는 조화로운 연공음악에 따라 함께 연공을 했다.(나는 의자에 앉아 연공한다) 이렇게 연공하고 나면 우리 가족은 아주 상화롭고 평화로워졌다. 아버지는 매 번 가부좌할 때마다 다리가 아파 한 단락 시간이 지나자 동요한 적도 있었다. 나와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고무격려 해 그가 중도에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하였다. 아버지는 법학습을 통하여 아주 빠르게 이 고비를 뚫고 나갔으며 그 후로는 어떻게 아파도 모두 참고 견디면서 뒷걸음치지 않았다. 그리고 힘껏 대법의 표준에 근거해 자신을 요구하면서 지금까지 견정하게 수련해 왔다. 아버지는 아직 “정법수련”의 길로 들어서지는 못하고 있지만 필경 법을 얻었으므로 매우 귀한 것이며, 그의 생명이 구도 받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아버지가 수련을 하게 된 소식은 친인들 사이에 아주 큰 진동을 일으켰다. 그들 모두 아버지가 대법에 대해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나의 수련을 극구 반대해 왔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수련을 하기 시작했는가? 나는 아버지가 함께 대법의 아름다움과 순정함을 이야기하자 완고하여 대법진상을 믿지 않던 일부 친인들도 모두 진정으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말이라면 더욱 믿기 때문이었다.

나와 아버지는 인연있는 친인 두 사람에게 수련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집에서 수련하는 게 아주 안전함을 알려주면서 그들의 머릿속에 “수련하면 박해를 받을 것이다”는 우려심을 없애주었다. 특히 그들은 아버지의 수련한 후의 신기한 체험을 듣고 (아버지는 아주 민감하였는데 파룬이 회전하는 것을 느꼈으며, 이는 기실 사부님이 수요에 근거하여 배치한 것이다) 그리고 연공 후 많은 병들, 오십견, 두통, 요통, 피부병 등등이 모두 좋아진 것을 알고 나서는 그들도 차츰 수련의 길에 잇따라 들어섰다. 나는 그들에게 사부님의 설법비디오와 오디오, 연공음악, 1999년 이전의 사부님의 설법서적과 일부 대법제자가 창작한 노래를 복사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MP3사용법을 가르쳐 설법오디오와 연공음악을 넣어주고 늘 법을 듣도록 했고, 연공음악에 따라 연공하게 했다. 나는 또 《전법륜》과 일부 기타 대법서적을 가지고 가 학습하게 했고, 그들더러 대법을 소중히 여기고, 서적도 소중히 여기며, 이 보귀한 수련의 연분을 소중히 하도록 했다. 동시에 왜 속인들한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지 알려주면서 세인을 구도하는 중요성과 긴박성을 알렸고, 그들도 자신의 실제정황에 근거해 조건이 허락되고 시기가 합당한 정황하에 대법을 실증하고 세인을 구도할 것을 바랬다.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도함에 급히 서두르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들 모두 수련을 괜찮게 해 나갔으며 최근까지 아주 평온하고 견정하게 수련의 길을 걷고 있다. 그중 한 친인은 50원을 나에게 주면서 대법자료를 만드는 동수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3. 전력을 다해 세 가지 일을 잘하다

나는 몸이 불구여서 다른 동수들처럼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할 수 없으나 법을 실증하고 세인을 구도하려는 소원은 남들보다 못지않았다. 2005년의 “극단으로 걸은”일이 있은 후 나는 이지적으로 냉정하게 세 가지 일을 해야만 진정으로 사람을 구도할 수 있음을 알았다. 절대로 충동해 무모하게 극단으로 나가거나, 비정상적이고 이지적이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인을 구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해칠 수 있으며 심지어 구도된 사람도 대법을 오해할 수 있어서 그 후과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나는 나의 실제정황에 근거해 전력을 다해 능력껏 법을 실증하고 세인을 구도했다. 사실은 억지가 없어야 하며 과정은 급히 서둘러서는 안 되고, 적어도 나의 과실로 인해 한명의 세인이라도 망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2005년이 되어서야 나는 대법의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그전에는 어떠한 진상도 알지 못했고 세인을 구도하려는 개념은 더욱 없었다. 사부님의 신경문을 학습하고 나서 정법제자는 구도 중생하여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았고, 나도 가서 세인을 구도하고 싶었다. 허나 그 당시에 나는 어떠한 진상자료도 보지 못했으며 컴퓨터도 없었고 아무것도 몰랐다. 게다가 나는 움직일 수 없어서 대문마저 나설 수 없었고 주위에도 동수가 없었다. 동수갑과 을은 1년 내내 나와 한두 번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도함에 모두 아주 바쁘다) 나는 주위의 그렇게 많은 속인들이 아무런 진상도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중생들을 위해 마음이 다급해졌다. 나 자신은 대법을 얻었고 진상을 알고 있으나 효과가 좋게 세인을 구도할 수 없었다. 스스로 응당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느껴졌으며 구도받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중생들한테 미안해졌다. 동시에 나 자신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되었고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 자신의 능력에 근거해 얼마를 구도할 수 있으면 얼마를 구도하는 것으로 중생을 위해 미미한 힘이라도 보태리라 결심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진상자료도 없었는데, 동수갑과 을이 나에게 전해준 대법진상 소책자와 일부 VCD를 보고나서 여동생에게 다른 마을에 가져가게 했다. 나는 친척친우와 이웃들 앞에서 대법의 진상과 대법이 내 몸에서 체현된 신기한 효과를 열심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정황과 부동한 집착에 근거해 그들에게 “삼퇴”를 권하고 평안을 얻게 했다. 나는 지금까지 거의 백여 명 좌우의 사람을 권고해 삼퇴 시켰다.(소선대원에서 탈대한 것도 포함) 아직까지도 삼퇴를 하려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억지로 강박하지 않고 되도록 대법의 진상을 이해하도록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도록 한다. 내가 삼퇴를 시킨 사람에게는 우선 대법의 진상을 알렸다. 동수가 나에게 대법책의 글자를 수개해야 한다고 해 컴퓨터로 프린트할 수 없어서 매점에서 산 “라벨지”를 먼저 책에 붙이고 정확한 글자를 반듯하게 적어 넣었다. 나는 앉아서는 글을 쓸 수 없어서 쌍지팡이를 짚고 솜깔개로 책상에 받치고 서서 힘들게 한 글자 한 글자 고쳐나갔다. 그렇게 나는 아주 힘들게 나에게 있던 십여 권의 대법서적 모두 수개해 나갔다. 후에 동수가 나한테 컴퓨터로 프린터한 글자를 보내왔는데 서적의 미관을 위해, 또한 대법을 존중하는 의미로 나는 여동생에게 이전에 내가 붙이고 적어 넣었던 글자들을 바늘로 전부 떼어 내 다시 서서 풀로 프린터한 글자를 하나씩 세심하게 붙였다. 나는 손발이 민첩하지 못해 글자를 바르게 붙이기 힘들었고 풀도 적당량으로 잘 칠하기 힘들었다. 허나 어떻게 힘들더라도 될 수록 “글자고치기”를 가장 완미하게 하려 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대법의 서적이며 글자를 고치는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한 것으로 이것 역시 수련에서 내가 제고해야 할 하나의 과정임을 깨달았다. 글자를 수개할 때 좀 고생스러웠으나 마음은 도리어 편하고 즐거워 아주 보람차게 느껴졌다!

《명혜주간》에서 대법제자들의 적극적인 투고를 바라는 내용을 보고 나도 자신의 생각과 체험을 몇 편 쓰려고 생각했다. 비록 글쓰기가 아주 힘들었지만 그래도 몇 편의 글을 썼다. 인터넷에 투고하는 동수가 글자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나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거나 서서 먼저 초고를 썼다. 그리고 다시 수개해 나중에는 지팡이를 짚고 서서 책상에 기대어 글을 베껴 썼다. 한 글자씩 띄어 쓰면서 되도록 똑똑히 보이게 했다. 거의 2만 글자를 썼을 때 동수을이 우리 집에 왔다. 나는 그녀에게 인터넷에 올리는 동수한테 원고를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후에 《명혜주간》에 내가 쓴 문장 중 한편이 게재된 것을 보았다. 나는 이 또한 사부님께서 고무격려하신 것임을 알고 있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 원고를 보내준 동수에게 감사한다. 그렇게 바쁘면서도 나를 도와 그렇게 많은 글자를 타자하고, 잘못된 곳은 수개했는데, 정말로 동수의 무사의 표현과 순선의 심경을 명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자료를 만들거나 배포할 수 없으므로 친척친우와 부모님들이 준 용돈을 모았다가 동수을을 통해 자료점에 보내주도록 했다. 그리하여 진상자료를 만드는데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을동수에게 매번 올 때마다 많으면 8,9백원, 적어도 1,2백원을 자료점에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이렇게 지금까지 나는 그녀에게 2천여 원을 전해주도록 부탁했다.

자료점에 돈을 주는 과정에 한 가지 일이 발생했다. 한번은 을동수가 사부님의 경문을 보내왔는데 당시에 나는 단돈 100원만 있었다. 나는 동수가 아주 바빠 나에게 한 번 오기란 힘들다고 생각했고, 또한 동수가 매번 나에게 자료점에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며 “당신은 몸도 좋지 않고 돈도 벌수 없으니 자료점 비용은 우리가 있으니 걱정마세요!”라고 했지만 나는 고집스레 대법의 일에 자그마한 힘을 공헌하는 것이니 그녀에게 받도록 했다. 그녀는 이에 더는 거절하지 않고 재삼 일깨워주기를 “무리하지 말고 얼마라도 다 괜찮네” 라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에는 백원만 자료점에 보내는 게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의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 부모님의 서랍에서 백원을 몰래 꺼내(동수는 모름) 내 돈과 합쳐 이백원을 동수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 을동수가 우리 집에 와서는 먼저 번 이백원을 되돌려 주는 것이었다. “자료점 동수가 당신은 신체도 좋지 않으니 다시는 당신의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네. 나더러 자네한테 돌려주라고 하였네.” 그때 내가 어떻게 간곡하게 말해도 그녀는 나의 이백원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왜 이전에 내가 자료점에 돈을 보낼 때는 다 받았는데 이번에는 거절하는 것일까? 그녀가 돌아간 후 나는 냉정하게 생각해 보고는 그 연유를 알게 되었다. 이백원 중 부모님의 돈 백원을 몰래 넣은 것 자체가 누락이 아닌가? 신성한 일을 바르게 하지 못하였구나. 사부님과 뭇 신들은 무엇이나 다 알고 있는 것으로 사악도 호시탐탐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데 우리의 일언일행 모두가 반드시 반듯해야 하는 것이다. 우주의 대법은 반점의 불순 혹은 부정도 용납 안 되는 것이다! 후에 나는 다시 을동수를 통해 나의 돈을 자료점에 보냈는데 자료점에서는 다시는 거절하지 않았다.

을동수가 우리 집에 한번 오기란 차를 타기도 불편해 아주 힘들다. 그래서 동수의 부담을 덜어주고, 또 신속하게 혼자 힘으로 사부님의 신경문, 《명혜주간》을 받아보고, 정법노정을 따르는데 수월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담하게도 나는, 만약 내가 명혜망에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조건으로 내가 명혜망에 접속한다는 건 “미친 사람의 꿈 이야기”와도 같았다. 기본적으로 우리 집에 컴퓨터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이트에 접속하는 방법조차 모를 만큼 컴퓨터지식이라곤 없었다. 컴퓨터는 그냥 TV에서나 보아왔고 명혜망의 주소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뿐만 아니라 언제 우리 촌에 초고속 인터넷장치가 설치될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명혜망에 들어가고 싶은 견정한 나의 정념을 보신 사부님께서는 나를 위해 일체 필요하고 편리한 조건을 제공해 주셨다. 나의 염원이 실현되는 곳곳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배치를 느낄 수 있었다.

사이트에 오를 수 있게 되면서 나는 사부님의 경문과 동수들의 문장을 읽어보는 외, 명혜망과 청심논단에서 많은 기술을 터득해 지금은 스스로 명혜에 투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삼퇴”성명도 하고 있다. 또 문서다운로드(VCD등 대용량문서를 포함)도하며 VCD진상자료 굽기 외에 보안강화 사용법과 XP 시스템으로 보안을 강화하는 시스템 사용법을 배웠다. 이 모두 사이트 기술을 책임진 동수들의 간고한 지불과 갈라놓을 수 없으며 그들은 정말로 묵묵히 광대한 동수들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 투고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여러 차례 명혜에 투고했다. 나는 타자를 치기가 너무 힘들어 오직 일어서서 그것도 왼손만으로 키보드를 칠 수밖에 없다. 오른손은 반드시 지팡이를 짚어야 하며 그것도 들어 올릴 수도 없다. 그러나 필로 글을 쓰기보다는 많은 힘을 절약할 수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명혜를 원용해야 하며 거기에 자그마한 나의 힘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고무 격려해 두 편의 문장이 《명혜주간》에 발표되었다. 나는 인쇄기가 없어(부모님이 나한테 사주려 하지 않음) 자료를 프린트할 수 없다. 내 컴퓨터는 원래 시디버너가 있어서 일부 VCD진상자료를 굽으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진상하는 VCD문서를 다운로드 받았고, 외지에서 일하는 이웃사람에게 VCD를 수차례 사오게 부탁했다. 이렇게 나는 진상VCD를 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우선 집의 VCD기계에 넣어 시험해 보았더니 품질이 기본적으로 다 좋았다. 나는 진상 VCD에 봉쇄사이트돌파 소트프웨어와 기타 사용설명을 첨부하였다. 그리하여 컴퓨터를 사용하는 속인들이 VCD를 받고 봉쇄된 사이트를 돌파하고 진상을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런 후 신문지로 VCD를 싸고(후에는 VCD씌우개를 사용) 그 위에 “드리는 말”을 적어 넣어 속인들이 진상자료를 받아 볼 수 있도록 계발하였다. 이렇게 다 만들어진 후 여동생에게 이 진상자료를 배포하게 했다.

배포하기 전 나는 진상VCD에 발정념으로 그들이 최대한 정면효과를 발휘해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하도록 했다. 진상VCD를 배포하기 며칠 전이면 나는 여동생이 가려는 곳을 향해 발정념으로 거기에 있는 일체 교란과 사악의 파괴를 청리했다. 그리고 사부님께 가지하여 주실 것을 청하여 여동생이 순리롭게 배포한 뒤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했다. 사부님과 바른 신의 보호하에 여동생은 매번 아주 성공적으로 안전하게 돌아왔다. 진상VCD를 외딴 시골에 배포하는 외에도 나는 매번 친척집이나 외식할 때면 진상VCD를 지니고 가 거기에서 지혜롭게 배포했다. 이렇게 내가 굽어서 여동생이 배포한 진상VCD는 8백여 장에 이른다.

여동생은 나이가 어리고 담이 작은데다 매번 혼자서 진상VCD를 배포하면서 부모님한테 발견되지 않게 하려니 먼 곳으로 갈수 없었다. 그냥 부근의 몇 군데 촌에 배포하여 기본적으로 여동생이 갈수 있는 곳이면 모두 배포하였다. 때문에 대량으로 굽어 놓은 진상VCD가 효과적으로 배포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중생을 구도하는 방식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는 인터넷으로 메일주소, 전화번호를 수집해 명혜망에 보냈다. 검색소프트웨어가 찾아내는 메일주소의 대부분은 사용할 수 없는 것이고, 동수님들이 이전에 검색했던 것으로 쉽게 중복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직접 손으로 메일주소를 수집했는데, 일반적으로 채팅하는 곳이나 블로그를 통해 수집했다.

인터넷에 등재된 많은 핸드폰번호와 친우들의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절묘하게 복사해 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 백원짜리 카드를 구입해 인터넷돌파 소프트웨어를 얻을 수 있는 방법과 동태망 사이트를 메시지로 만들어 그들에게 보내, 더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이해하고 악당에서 탈퇴하도록 했다. 나는 또 동태망의 인테넷 주소를 발송하기 전, 미리 먼저 시험해 본 뒤 어느 사이트주소가 가장 좋고 속도가 빠르며 인터넷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정황에 부딪힐 경우 어떻게 처리하는 방법까지 상대방에게 보내주었다. 그리하여 메시지를 받은 상대방이 최고로 효율적으로 동태망에 성공적으로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경험에 미루어 동태망 인터넷주소는 IP주소보다 더욱 성공적으로 동태망에 오를 수 있다. IP주소로는 왕왕 등록이 어렵다. 다음 사이트주소 중의 영문자모는 대소를 가리지 않으며 성공적으로 사이트에 오를 수 있다. 또 “https://+인터넷주소”로 사이트에 오르게 될 때 “이 사이트의 안전증서는 문제가 있음”이라는 제시창이 뜨는데 메시지를 보낼 때 이것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게 좋다. “계속”을 클릭하면 성공적으로 사이트에 오를 수 있으며 사이트가 아주 안전한 것으로 이것을 조작할 때 아무런 위험도 없다. 왜냐하면 속인은 지금 인터넷바이러스를 아주 두려워해 안전하지 못한 사이트에 접속하려 하지 않는 등등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제시창이 뜰 때 “바라보기”만 하는데, 안전을 위해 그들은 사이트 접속을 포기할지언정 모험을 하려 하지 않는다.

최근에 나는 메일을 “함께 보내기”하는 방법을 익혔다. 이 방법으로 세인의 메일함에 진상자료를 보낼 수 있으며 인터넷돌파소프트웨어나 《구평》과 같은 전자책도 보낼 수 있다. 이러한 중생구도방식은 많은 이점이 있다. 예를 들면 효율이 높고 자금이 적게 들며 구도하는 면이 아주 넓게 되는 등등이다. 기실 메일을 함께 보내기는 아주 쉬운데 인터넷으로 보통메일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면 함께 보내기하는 방법을 쉽게 배울 수 있다. 기술을 아는 동수님들은 이미 우리를 위해 아주 완미한 기술 지도를 준비했다. 심지어 아주 상세하게 그림으로 설명한 부분도 있다. 우리가 두 번 가량 보게 되면 이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동수들이 가르쳐주는 방법으로 엄격히 적용해 해도 아주 안전하게 할 수 있으며, 마치 해외에 있는 친구가 국내에 있는 친구에게 메일을 보내주는 상태와 유사하다.

두서없이 많은 말을 했는데, 최근 몇 년간의 굴곡있는 여정을 써내었다. 원래 이 교류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동수님들이 투고하는 인식을 본 뒤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매우 부끄러웠다. 그리하여 교류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응당 이행해야 할 의무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대법 중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얻었는데 대법을 실증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어찌 밀어내고 시간을 끌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가? 결심하고 어떻게 힘들든지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미안한 것이며 대법이 주신 은혜에 미안한 것이다. 사부님의 대법이 나의 육신을 구도했고 나의 영혼을 건져냈다. 비할 바 없이 더러웠던 내가 대법에 동화됨으로써 이미 많은 것이 깨끗해 졌다. 비록 아직 버리지 못한 많은 집착이 있고 동수와 비할 때 거리가 너무너무 멀다. 하지만 나는 영원히 끊임없이 대법에 동화하여 자신을 정화하며 견정하고 지속적으로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련다. 또한 온 힘을 다하여 “정법제자”의 특수한 수련의 길을 잘, 그리고 바르게 걸어 나가 사부님의 넓고 크신 은혜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명혜망 제5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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