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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서 <<명혜주보>>를 잘 꾸리다

ㅡㅡ가정 자료점을 건립하면서 참답게 수련

글/ 호북 대법제자 유원(悠远)

[명혜망 2008년 11월10일] 현지에서 《명혜주보》가 나오자, 어떤 동수는 부쳐 보내기도 하고, 어떤 동수는 면전에서 배포하기도 했는데 확실히 사악을 진섭하는 작용이 높았다. 박해에 참여한 경찰은 아주 두려워하면서 동수의 가족에게, 그저 학습반(실질은 세뇌 박해다)을 꾸렸을 뿐인데 인터넷에 올리고(명혜망에 폭로), 텔레비전에 내고(신당인에서 이 일을 약 한 주일간 방송), 또 신문에 (현지 《명혜주보》), 나기까지 했으니 야단났다고 했다.

현지에서 《명혜주보》를 만들어 배포한 뒤부터 얻은 효과는 좋았다. 정념이 강한 한 세인은 매 회마다 빼놓지 않고 읽고는 감춰 두면서 장래 당신들(대법제자)에게 견증을 해 주겠다고 했다. 한 세인은 주보를 보고 나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감수했다며 늘 주동적으로 대법제자를 찾아 호신부를 달라고 해 주변의 인연있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 그리고 그녀 본인은 가장 먼저 3퇴 하였고, 지금은 동태망에 접속하여 직접 진상을 보고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본문작자

사부님 안녕 하십니까! 동수들 안녕 하십니까!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은 여 대법제자로 금년에 54살이다. 수련을 해 가면서 나는 점차적으로 파룬따파는 박대정심 함을 깨달았고 그래서 수많은 체득이 있게 되어 동수와 교류하고 싶었다. 지금 나는 가정 자료점을 건립한 심득을 사부님께 회보하고 동수들과 나누어 보려 한다.

1, 가정 자료점 건립

2005년 상반기, 내가 사는 곳에 하나 있던 자료점의 동수가 박해당해 기술을 아는 동수가 없어 외지 동수가 자료를 보내 주는데 의거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사부님의 경문, 《명혜주간》 및 진상자료를 제때에 볼 수 없었고, 사부님의 정법 진행을 바짝 따를 수 없게 되었다. 바로 그 때 나는 명혜에서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날 것을 제창한 문장을 보게 되었고, 스스로 자료를 만들어 보려는 생각이 싹트게 되었고, 아울러 개인 자료점을 만드는 걸 나의 신성한 사명으로 여겼다.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개인의 해탈은 수련의 목적이 아니다. 중생을 구도함이 비로소 당신들이 올 적의 큰 소원(大願)과 정법 중에서 역사가 당신들에게 부여한 책임과 사명이다. 그러므로 대량의 중생들 역시 당신들이 구도할 대상으로 되었다. 대법제자는 정법이 당신들에게 부여한 위대한 책임을 저버리지 말아야 하며, 더욱이 이 부분 중생들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은 이미 그들이 능히 미래에로 진입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므로 모든 대법제자들, 신노 수련생들은 모두 행동하여 전면적인 진상 알리기를 시작하여야 한다.”(《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 나는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진지하게 학습한 후 책임의 중대함과 중생구도 시간의 긴박함을 깊이 느꼈다. 예전에 나는 컴퓨터 배울 생각을 전혀 해 본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컴퓨터를 배우는 게 중생구도의 수요임을 깨닫자 컴퓨터를 어서 배워야겠다는 확고한 일념을 세우게 되었다. 나에게 이런 확고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나를 도와 주셨고, 얼마 안 되어 딸이 남자친구와 함께 천리 밖에서 그녀의 낡은 컴퓨터를 나한테 가져 왔다.

그들이 아주 잘 가르쳐 주었고 나도 재빨리 배우게 됐다. 인터넷 접속법을 배우기 시작하자 딸의 남자 친구는 특별히 인터넷 카페로 들어가 나와 인터넷 채팅을 했다. 내가 그것도 배우게 되자 그들은 몹시 기뻐했고 앞으로 인터넷에서 만날 생각을 했다. 며칠 후 딸과 남자친구가 출근하러 가버리자 나는 얼른 갑 동수(기술을 안다)를 불러다 진상자료 제작방법을 배웠다. 갑 동수는 남편이 집에 없을 때 나에게 열심히 가르쳐줬는데 동수는 인내심으로 세심하게 한 보 한 보씩 가르쳐 주었고 나도 참답게 필기를 하면서 배웠다. 그렇게 배우기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아 나는 칼라 잉크젯 프린터를 사서 《명혜주보》등 단장 자료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 하였다. 나는 만들어 낸 단장을 남편에게 보여 주었더니 그림과 글이 풍부하고 다채로운데다 채색으로 찍었으므로 남편은 기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면서 내가 했다고는 감히 믿지 못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한 거요? 내가 긍정적으로 그렇다고 하자 남편은 칭찬하면서 그래서 날마다 집에서 만지고 있었구나, 정말로 성과를 따냈다고 함께 기뻐해 주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남편의 입을 빌어 나를 고무해 주심을 알고 더욱 신심이 늘었다. 이렇듯 동수의 도움으로 나의 자료점은 정상적으로 운행하게 되었다.

2, 가정을 원용하여 자료점이 온당하게 운행

먼저 나의 남편에 대해 말해 보려 한다. 7.20 이전에 그는 대법을 수련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악이 박해할 때, 그는 두려움 때문에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딴판으로 변하여 나를 교란하며 연공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하여 이틀이 멀다하고 나와 다투었고, 또 형제자매 및 친구를 동원하여 나를 저지했고, 심지어 이혼한다고 나를 협박했다. 하지만 나는 구세력의 음모로 남편을 훼멸하고 나를 훼멸해 버리려는 것임을 알고 단호히 승인하지 않고 전면 부정했다. 나는 사부님께 나의 정념을 가지해 줄 것을 청구하면서 한 쪽으로는 수련에 정진하고 한 쪽으로는 사부님께서 하사하신 신통으로 그의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해 나갔다. 한 단계 시간이 지난 후 남편은 좀 나아져서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가 제거되어 조금 남았을 뿐이다) 집에서 연공하게는 했지만 나가서 진상을 하지 못하게 해 매 번 나갈 때면 검사를 했다. 한 번은 진상자료를 붙이러 나가려는데 그가 나의 자료를 들춰내자 다시 빼앗아 왔다. 후에 나는 지혜롭게 그가 발견하지 못하게 하면서 오랜 동안을 견지하였다. 저녁에 자료를 배포하러 나가면서도 그에게는 시간외 근무를 하러 나간다고 했고 이튿날 아침에 돌아오면 그에게 근무비를 바쳤다.

한 번은 낮에 궁벽한 시골에 가서 진상하고 늦게 돌아오다 남편에게 들켰다. 남편은 노발대발하며 사부님 법상을 불당에서 떼어냈다. 당시 나는 눈물이 줄줄 흘리며 사부님께 죄송했다. 죄다 내가 법공부를 깊이하지 못해 정법 수련과 가정 관계를 바로 놓지 못했고, 남편을 중생의 일원으로 여기지 못했고, 평소에 그에게 진상을 명백히 알려 주지 않고, 법을 실증하는 일을 줄곧 속여 왔기에 구세력에게 틈 탈 기회를 주어 남편이 사부님을 존경하지 않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나 자신의 부족을 찾아내자 나는 즉시 눈물을 그쳤다. 남편이 밥 먹으라고 하기에 나는 사부님 법상을 걸어놓지 않으면 절대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를 향해 발정념을 했다. 내 남편 배후의 일체 사악을 제거하며, 그의 명백한 일면이 빨리 깨닫도록 사부님께서 가지 해 달라고 정념을 발했다. 그렇게 남편과 반나절 대치하고 있었더니 내가 정말임을 알고 남편은 사부님 법상을 꺼내왔다. 나는 남편에게 조용하면서도 엄숙하게 앞으로 더는 내가 나가서 진상하는 것을 교란하지 말며, 사부님께 불경해서는 더구나 안 된다고 일러 주었다. 그 이후부터는 나갈 때 (진상하러) 먼저 당신한테 말하고 나가겠다. 그리고 이전에 시간외 근무를 한다고 나가서 진상을 한 일도 그에게 알려 주자 그는 웃었다. 후에 정말로 더는 나를 교란하지 않았고 (물론 더는 근무비를 바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정정당당하게 나가서 진상을 알릴 수 있었으며, 후에 나를 많이 도와주게 되었다.

나는 점차 소책자 만드는 법도 알게 되었고, 《9평》, 《장쩌민과 그 사람》등을 책자로 인쇄 하였다. 만들어 낸 것이 보기 좋고 대범하여 동수들이 모두 좋아하였다. 그 시기에 나는 기술을 배우려는 욕망이 아주 강렬해, 모든 기술을 단숨에 다 배우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나는 출근하는 사람이며, 게다가 남편의 사업 시간이 아주 길어 늘상 아주 늦게 퇴근 했으므로 집안일은 거의 다 내가 도맡아 해야 했다. 때문에 나의 시간은 아주 빠듯하고도 고생스러웠다. 가급적 빨리 기술을 장악하기 위해 날마다 퇴근한 후 시간을 다잡아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필기한 것을 보면서 반복적으로 조작해 보았고, 동수도 시간만 있으면 건너와서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배우는 과정에서 수시로 많은 사람마음이 나왔는데, 허영심, 환희심, 안일을 구하는 마음, 두려운 마음 등이었다. 새로운 조작법을 만나기만 하면 당황했고, 동수는 끊임없이 나를 고무해 주었고, 나를 도와 정념을 강화해 주고 신심을 수립하게 해 주었다. 나는 이것이 모두 사부님의 고심한 배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주 소중이 여겼다. 나는 진지하게 배웠으므로 얼마 안 걸려 시디 굽기, 프린트, 인터넷 접속과 다운로드(小文件)를 배웠고, 또 상용 소프트웨어의 설치방법도 배우게 되어 기본상 독립적으로 운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아주 순조롭게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모순이 나타나면서 남편이 또 나를 교란 했다. 그는 매번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늘 방안에 갇혀 일하는 것을 보게 되자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종일 방안에서 나오지 않고 밥마저 도둑질 하듯 급히 먹고, 집에서 걸어 다니는 것도 달음박질하는 게 마치 나라 총리 같다는 둥, 또, 이런 걸 만들어선(자료) 뭘 하느냐, 누구를 구할 수 있단 말이냐? 등 듣기 어려운 많은 말을 하였다. 당시 나는 씬씽을 바로잡지 못하고 자신이 수련인임을 잊고 그에게 화를 냈다. 나는 나쁜 일도 하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일은 모두 바른 일인데 당신이 화낼 건 뭔가, 단지 당신에게 밥을 안해준 것 뿐이 아닌가? 남편은 듣더니만 더욱 화를 내며 노기충천하여 설비를 바깥에 던지려 해, 나는 그걸 던지면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멍해지더니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즉시 내가 잘못했음을 의식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당신이 속인과 마찬가지로 다투고 싸우면, 당신은 바로 속인이고, 당신이 그보다 더 하면 당신은 그 속인보다도 못하다”(《전법륜》) 나는 모순이 오게 된 것은 우연한 존재가 아니며, 이는 바로 내가 씬씽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곧 안을 향해 찾았다. 내가 어디에서 잘 하지 못했는가, 나는 자신의 위사위아한 마음을 찾아냈다. 자신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대단한가, 일체 모두 나에게 길을 비켜줘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남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남편의 사업은 아주 고생스러운데 날마다 배고픔을 참으면서 아주 늦어서야 집에 오는데 나는 심지어 바쁘다는 핑계로 그에게 밥도 지어주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우리 이 법문은 모순 중에서 당신 자신이 공을 얻게 하므로, 우리는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해야 하는 것으로, 물질상 당신에게 또 무엇을 진정하게 잃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 물질 환경 중에서 오히려 당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해야 한다.”(《전법륜》) 나는 가정 자료점을 잘 꾸리려면 우선 가정을 잘 원용해야 하며, 이렇게 해야만 식구들의 이해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동시에 친인을 도와 정념을 수립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한편으로 법 공부를 강화하고 한편으로는 시간을 조절했다. 날마다 저녁 퇴근을 한 후 다그쳐 집에 돌아와 6시 정각 발정념을 하고 법공부를 하다가 남편이 돌아올 무렵이면 밥을 지었다. 저녁을 먹는 기회를 타 남편과 마음을 나누었을 뿐 아니라 주동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내가 대법 수련을 한 후의 대선대인을 감수하게 했다. 또 늘 그에게 명혜망에서 소개한, 동수가 가정 자료점을 세운 후 가족들이 지지하고 도와준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의 선념을 계발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자료를 만드는 건 세인들이 진상을 알고 구원받게 하려는 것으로 대선(大善)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어 그로 하여금 서서히 대법의 자비를 감수하게 했고, 그의 정념을 수립해 주면서 한 걸은 한 걸음씩 그를 인도하여 사람을 구하는 일을 돕는데 참가시켰다. 후에 그는 점차 명백해 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를 지지하였고 어떤 때는 정말로 나의 조수가 되었다. 이를테면 시디를 만들 때 처음엔 표지를 만들 줄 몰랐으므로 표지 쓰는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진상 자료를 부칠 때면 봉투 쓰는 것을 도왔고, 또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하기도 하였다. 안전을 고려하여 내가 자료를 만들 때 상관 물품의 포장 처리도 남편이 주동적으로 해 주었고, 퇴근 한 후 내가 한창 바삐 도는걸 보면 그가 주동적으로 밥을 지어 어떤 땐 내가 일하는 방으로 밥을 날라다 주기도 했다.

내가 법으로 자신을 귀정하고 가정을 원용했을 때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에도 길이 열린다고 우리 가족은 재빨리 진상을 알게 되었고, 온 가족은 현지에서 첫 주자로 3퇴를 하였다. 나는 대법의 위력이 이 일체를 원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내가 만든 자료는 현지 수요를 만족시킨 외에도 어떤 땐 외지 동수에게도 공급했다.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 점차적으로 많은 사람마음을 버리게 되었는데 이를 테면, 과시심, 조바심, 일하는 마음, 안일을 구하는 마음 ,두려운 마음 등이었다. 동시에 또 적지 않은 난제에도 부딪혔다. 이를테면, 기계고장, 기술난제 등등이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께서 주신 지혜로 모두 돌파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대법은 못해낼 일이 없으며,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가장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시디를 만들기 시작한 한 동안은 모두 펜으로 표지를 썼다. 하지만 매 한 부의 진상자료마다 모두 중생을 구도하는 제일 좋은 작용을 내게 하기 위해 나는 표지를 인쇄할 생각을 했다. 그 때는 2006년 섣달 그믐 30일 저녁이었다. 마침 딸과 사위가 설 쇠러 집에 왔다. 사위의 컴퓨터기술이 훌륭하기에 그에게 시디 표지를 인쇄할 수 없는지 물었더니 해본 일이 없다고는 하면서도 시험해 보자고 하였다. 그가 한 번 해 보자 곧바로 성공해 나는 너무도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이는 사부님께서 또 나를 도우셨음을 알았다. 나는 재빨리 배웠고, 그 때 만든 게 2006년 성탄 만회라고 기억 되는데 보기에 정중하고도 미관이 아름다워 대법의 아름다움을 더욱 나타내었다.

표지 만드는 것을 배운 것은 나로 말하면 기술상 또 하나의 새로운 돌파여서 당시 나는 몹시 흥분되었다. 후에 또 스스로 그림도 그리게 되었는데 그다지 성숙되진 못했지만 역시 아주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펜으로 시디에다 쓰던데 비하면 또 하나의 커다란 비약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부터 우리는 시디 전부 다 표지 인쇄로 만들어 붙이게 되어 외지 동수들마저도 몹시 좋아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당신들이 순정한 심태하에서 한 일이야말로 비로소 가장 훌륭한 일이며, 비로소 가장 신성한 것이다.”(《정진요지》)

3, 현지 《명혜주보》 창간

우리 지역에서는 금년 5월부터 현지《명혜주보》를 창간해 꾸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명혜주보》를 꾸리게 된 계기는 을동수가 금년 5월 어느 날 세뇌반에 납치돼 가서 박해를 받게 되어 이 곳 동수들이 정체적으로 다방면으로 구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우리가 현지 사악을 폭로하는 진상 자료를 편집할 때 명혜망에는 그녀의 예전에 박해받은 자료를 찾아낼 수 없었고 다만 종합적인 삼언양어만 있을 뿐이었다. 이 동수는 일찌기 3년간 감옥에서 박해를 받았다. 우리는 기타 동수와 그녀의 가족에서 알아내려고 했지만 모두 똑똑하고 상세하게 알지 못해 아주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동수를 구하는 일은 한 시각도 늦출 수 없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나와 갑 동수는 날마다 함께 법공부를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 하셨다. “수련은 어떠한 조건도 없는 것으로 수련을 하려고 하면 그러면 곧 수련하라” 나는 생각 하였다. 동수를 구출하는데도 그래 갖춰진 조건이 있어야 한단 말인가? 동수가 폭로 재료를 써 내지 않았다고 하여 동수를 구출하지 말아야 하는가? 일이 이 지경까지 된 이상 다그쳐 방법을 대어 부족을 메워야 한다. 갑 동수가 나와 교류를 하면서 왜 이 기회에 현지 《명혜주보》를 꾸리지 않는지 물었다. 주보는 큰 편폭으로 특별히 발췌할 필요없이 다방면 내용을 종합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주보의 한 모퉁이만을 이용하여 사악을 폭로해도 사악을 진섭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제의에 찬성했다. 갑 동수는 또 주보를 꾸리는 엄숙성에 대해서도 말하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중도에 중지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나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해 동수와 의견을 일치하곤 재빨리 제1회 현지 《명혜주보》을 만들게 되었다.

현지에서 《명혜주보》가 나오게 되자, 어떤 동수는 우편으로 부쳐 보내기도 하고, 어떤 동수는 면전에서 배포하기도 했는데 확실히 사악을 진섭하는 작용을 일으켰다. 박해에 참여한 경찰은 아주 두려워하면서 을 동수의 가족에게 말하였다. 그저 학습반(실질은 세뇌 박해다)을 꾸렸을 뿐인데 인터넷에 올리고(명혜망에 폭로), 텔레비전에 내고(신당인에서 이 일을 약 한 주일간 방송), 또 신문에 (현지 《명혜주보》), 나기까지 했으니 야단났다.

주보발행을 견지해 가려면 확실히 곤란이 있었다. 처음 몇 회는 필경 나와 갑 동수의 신변에서 발생한 이야기였으므로 비교적 전형적인 자료를 선택할 수 있었다. 몇 회를 꾸리고 나니 곧 소재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와 합작하는 두 동수 모두 출근을 해야 했고, 어떤 땐 법 공부 팀의 재료 수집하는 동수도 재료가 얼마 안 올라왔다고 해 나는 곧 각 법공부 팀에 현지 주간을 위해 투고 할 것을 제안했다. 점차적으로 구두로 혹은 글로 써서 자료를 제공하는 동수들이 있어서 소재 문제도 기본상 해결 되었다.

편집에 대해서도 나는 정규적인 조판은 할 줄 몰랐고 단지 간단히 그림을 붙일 줄 아는 정도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 명혜망에서 직접 만들어진 명혜주보를 다운로드 하여 현지의 내용으로 그 중의 어떤 내용을 바꾸어 넣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글과 그림이 맞아 떨어지도록 하는 게 우리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정말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을 땐 주보의 것을 좀 더 많이 싣고 참조로 하면서 그 중 비교적 합당한 사진들을 차용 하였다. 나는 지면에 선을 긋는 것조차 잘 긋지 못해 주보의 다른 한 곳의 선을 빌려다 쓸 수밖에 없었다. (복사하여 붙임) 그런 다음 동수와 함께 원고를 심사하고 정한 다음 인쇄 하였다. 내가 아직 제대로 잘 할 줄 모를 때 갑 동수가 일이 있어 몇 달간 자리를 비우게 돼 내가 직면한 난이도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수련은 엄숙한 것이므로 난이도가 높다하여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서는 안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역시 사부님께서 이 기회를 이용해 나에게 독립적인 사업능력을 부여해 주신 것이다. 나는 병 동수를 찾아가 함께 합작해서 한 회도 빠짐없이 꾸려 나갔다.

갑 동수가 떠난지 얼마 안 되어 우리 지역의 한 남자 동수가 납치돼 사악의 세뇌반에 압송 되었다. 납치된 동수는 향진에 살고 있었고 나는 현성에 살고 있어 그의 집에서 좀 멀리 떨어 졌으므로 가족과의 연계가 아주 불편 하였다. 바로 그 때 나는 일이 있어 한 주일 출장을 가게 되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병 동수와의 교류를 통해 첫째, 가급적 빨리 납치된 동수의 확실한 상황을 파악해서 방법을 대어 명혜망에 폭로해야 한다. 둘째, 현지 동수를 조직해 정체적으로 릴레이 발정념을 해야 한다. 셋째, 폭로 자료를 써서 현지에 폭로해야 한다. 넷째, 가족과 접촉해 그들에게 빨리 사람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게 해야 한다. 병 동수는 주동적으로 동수 구출을 조직하는 중임을 감당 하였다. 한 주일 후 돌아와 병 동수의 집에 가 보니 세 동수가 마침 동수를 구출할 일을 교류하면서 말하였다. 동수를 구출하려는 데 아직도 두 가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첫째는 동수의 가족을 찾을 수 없고 (외지로 일하러 갔다) 둘째는 폭로자료를 쓸 만한 동수가 없다. 병 동수(70여살)가 초고를 쓰긴 했지만 타자를 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타자를 칠 줄 아는 동수가 외출했다)

병 동수가 쓴 원고를 나에게 건네주었을 때 나는 경의로 충만 되었고, 나는 동수의 그 순수한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속으로 동수 구출을 더는 미룰 수 없으며, 사악이 우리 동수를 마음대로 박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 하였다. 나는 얼른 폭로 자료를 정리하여 타자를 쳤다. 사실 나도 타자를 칠 줄 몰랐고 한어 병음도 익숙하지 못하였으며, 오필(五笔字型)은 더구나 몰랐다.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 먼저 필로 자료를 써 놓은 다음 다시 병음으로 하나하나씩 타자하였고 타자하는 한편 수개 하면서 사부님 가지하에서 겨우 타자를 끝 마쳤다. 타자를 끝내는데 3시간 남짓 걸렸다.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문제는 해결된 셈이었고 본 회의 《명혜주보》에 편입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 스티커로 만들어 배포하거나 붙이었는데 현지에서 사악을 진섭하는 아주 좋은 작용을 일으켰는바, 현지 민중들이 진상을 알게 하였고 얼마 안 되어 납치된 동수도 순조롭게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현지 《명혜주보》를 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배포한 후에 얻은 효과는 좋았다. 아주 정념이 있는 한 세인은 매 회마다 빼놓지 않고 읽고는 감춰 두면서 장래 당신들(대법제자)에게 견증을 해 주겠다고 했다. 한 세인은 주보를 보고 나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감수했다면서 늘 주동적으로 대법제자를 찾아 호신부를 달라고 해서는 주변의 인연 있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곤 하였으며, 그녀 본인은 첫 패로 3퇴 하였고, 지금은 동태망에 접속하여 직접 진상을 보고 있다.

나의 가정 자료점이 오늘까지 평온하게 운행 될 수 있는 것은 모두 대법의 위력과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이 있었고, 또 동수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바른대로 말해서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며, 나는 그 중에서 사부님의 “제자 정념이 강하면 사부에겐 회천력이 있노라”(《홍음》)라는 법의 내포를 심심히 체득 하였다.

조사정법의 제한된 시간에 나는 시간을 바짝 틀어쥐어 세 가지 일을 잘하고, 법공부를 많이 하며, 진정으로 사람의 이 층의 껍질을 벗겨 버리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량한 지혜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세인들에게 펼쳐 주며, 열심히 하고, 최대의 능력으로 하여 더 많은 중생을 구도 하겠다.

이상은 몸소 체험한 나의 조그마한 체득이다. 층차가 제한되었으므로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사부님께 허스 드립니다!

전 세계 동수들에게 허스 드립니다!

(명혜망제5회중국대륙대법제자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 2008년 11월10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11/10/1890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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