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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수련 중에서 대법을 실증한다.

글/산동 웨이팡 대법제자 (동수 대필)

[명혜망 2008년 11월10일] 2006년 어느 날 아침 갓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하늘과 땅이 빙빙 돌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가족들은 나의 안색이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마당에 나와 구토를 멈추지 못했지만 토하고 나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일념이 바르지 않아 좋아지지 않았고 더욱 심해졌다. 줄 곳 오전 10시까지 토하고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이 말인가? 응당 . 깨달은 후 금방 구토는 멈췄다.

나의 책임 특점으로 만나는 동수가 많다. 어떤 때에는 동수가 잘못되어 체포되면 가족들이 걱정했다. 그들이 나의 이름을 말할까 두려워서다. 그러나 나는 종래로 동수를 나쁜 쪽으로 생각하지 않고, 모두 사부님의 제자이므로 잘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들에게 정념으로 가지했다. 불법 노동 교양을 받은 한 동수는 나온 후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 안에서 나는 몇 번이나 사악에게 당신의 이름을 말하려고 했는데 입을 열려고 하면 머릿속에는 사부님의 말씀이 말씀이 떠올라 자연히 입을 다물었다.’ 자비한 사부님이 나를 대신하여 막아 주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바르게 하기만 하면 사부님은 우리를 위하여 할 것이다.

——본문 작자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여러 동수님 안녕하십니까!

1995년, 한 친구가 저의 집에 찾아와 홍법을 했다. 우리는 그에게 《전법륜》 한 권을 빌렸다. 나의 남편이 한번 보고 난 후 연이어 좋다면서 책 속에 모두 진리만 썼다고 했다. 좋다고 느꼈기에 우리도 한 권 모셨다. 남편은 적극적으로 나에게 추천하면서 보라고 했다. 당시 나는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았고 그저 남편이 배웠으면 했다. (남편은 견지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그 일을 뒷전에 놓았다.

1, 대법에 들어와 수련하다

1999년2월, 설이 가까워질 무렵에 나는 애를 데리고 친구네(대법제자) 집으로 놀러 갔다. 애는 잠이 들고 동수는 사부님의 설법 테이프를 틀어 나에게 들려주었다. 나는 들을수록 더 듣고 싶었고 사부님이 하신 말씀이 전부 도리가 있는 말씀으로 이사부님은 평범하지 않고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테이프를 다 듣고 난 후에야 아이가 깨어났다. 지난 후에야 깨달았지만 사부님께서 고심하게 나에게 법을 얻으라고 안배한 것이다. 친구는 내가 열심히 듣는 것을 보고 나에게 《전법륜》을 보거나 설법을 듣는 것은 효과가 같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몇 년 동안 방치한 《전법륜》을 찾아고 이때부터 다시는 내려놓지 않았다.

초기 반년은 집에서 책만 읽고 연공을 하지 않았다. 동수가 그것을 알고 나에게 열정적으로 법 학습만 하고 연공을 하지 않으면 본체를 개변하지 못한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대원만법》을 읽으며 혼자서 동작을 배우고 동수를 찾아 교정을 받았다. 하지만 애가 어렸기에 줄 곳 연공장에 나가지 않았다.

1999년6월 우리 지역 연공장이 사악한 중공당직 유관부서의 교란과 파괴를 당했고 큰 비바람이 몰아칠 추세였다. 이런 상황을 보고 나는 조급한 마음이 들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대법의 일원이므로 응당 나의 힘도 보태어야 한다. 바로 이 소박한 일념이 나를 공원에서 새벽 연공을 하는 항렬에 들어서게 하였다.

두 번째 연공장에 가서 양측 포륜을 하는데 사부님께서는 나의 천목을 열어 주셨다. 나는 연공장의 모든 대법제자의 신체가 금빛 찬란한 것을 보았는데 눈부시게 빛났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이 고무 격려해 준다는 것을 알았다. 며칠이 지나 연공을 할 때 우리를 교란하는 사악한 일당들은 우리의 자전거를 훔쳐 갔다. 처음에는 잃어 버렸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연공 인은 《실》을 말하지 않는가? 그 다음 생각은 나의 물건인데 왜 찾지 않는가? 그것은 악행을 보고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닌가? 즉석에서 자전거를 돌려받았다. 당시에는 이것이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한다는 것을 몰랐다, 다만 응당히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또 한 번은 단체 연공 5장을 하는데 사악은 우리의 귀가에서 고음 스피커를 설치하고 틀어 교란했다. 그날 틀은 것은 노래 ‘자주 집에 가 본다’ 이다, 내 생각은 집에 돌아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한 시간 가부좌를 하고 한 시간 반 동안 울었다.

2, 일상생활에서 평온하게 대법을 실증 하다.

나는 연공장에서 짧게 29일을 연공했는데 “7.20” 사당은 대법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불법 탄압을 시작 하였다. 금방 수련의 길에 들어선 나는 단체 수련 환경을 잃었고, 당시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모두 대법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내용들이었다. 이왕 나도 대법제자가 된 이상 대법을 수호하고 사실 진상을 밝히고 대법을 증실 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2000년, 당시 어떤 동수가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노 수련생을 찾아가 진상 자료를 달라고 했더니 내가 신 수련생이기 때문에 동수는 불인했는지 나에게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진상 할 것을 견지하면서 그에게 애원 했다, ‘괜찮습니다, 저에게 조금만 주십시오, 조심 할게요, 배포를 다 하고 돌아와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당시에는 구도중생이라는 것을 깨eke지 못했고 다만 대법을 실증하려고 했다. 그때부터 줄 곳 진상 자료배포를 견지해왔다, 특별히 2001년부터 2002년 기간에 2~3일에 한 번식 동수를 찾아가 자료를 가져 왔고 거의 매일 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해 종래로 멈춘 적이 없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살이 빠졌다는 말을 했다, 그때에야 정말로 얼굴이 반쪽이 되었음을 발견했다, 저울에 올라가 보니 5kg나 빠졌다. 나는 이런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인식했다, 이것은 구세력이 대법 제자에 대한 박해가 아닌가? 깨달은 후 아주 빨리 회복 되면서 체중이 회복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진상하는 것도 갈수록 안정적이었다.

한번은 새벽 4시에 진상 스티커를 부착하러 갔다. 다 붙이고 다급히 집으로 돌아가 연공 하기 위해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는데 신기한 것은 두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 같았다, 귀가에는 바람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듯이 빨랐다, 불가사의 했다, 집에 도착하여 제시간에 연공하게 되었다.

하루는 막내아들을 데리고 진상자료 배포에 나서서 스티커도 부쳤다. 아파트 단지까지 하고 나니 날은 저물었고 아들은 잠이 들었다. 나의 아들은 뚱뚱했다, 다섯 살인데 체중이 20~25kg되었다. 처음에는 사람 마음으로 가늠해서 애가 잠들어 어떻게 할 것인가? 집까지는 아직 몇 리가 된다. 맨몸으로 가기도 힘이 드는데 잠든 아들을 안고 어떻게 가겠는가. 그러나 바꾸어 생각해보니 요만한 고생이 다 무엇인가, 세인들을 구도하는 데는 이것보다 힘들어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아들을 안고 거뿐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내가 생각지 못한 것이다.

마음속으로 사부님이 제자에 대한 자비로운 수호와 가지에 감사를 드린다. 이것이 대법의 위력의 체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우리의 심성이 법의 요구에 도달하면 대법의 신기함은 우리에게 체현 될 것이다. 다음은 신기하게 관을 넘긴 몇 가지 사례를 적어 여러 동수님들과 함께 나누려 한다.

법을 얻은 초기 어느 날 저녁 생선을 먹다가 조심하지 않아 목구멍에 가시가 박혀 아주 불편 했다. 처음에는 사람의 마음으로 찐빵을 두 모금 먹고 물을 마셔 내려 보내려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다음 생각은 그 다음은 뼈가 곤두박질하듯이 파도처럼 편안히 혀끝으로 밀려 나왔다. 이것은 진정으로 대법의 신기함이다.

한번은 발정념을 하는데 갑자기 기침이 거칠 줄 몰랐다, 어떻게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것은 사악이 청리 당할까봐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나의 정념을 교란 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금방 생각했는데 기침은 멈춰졌다.

또 한 번은 소변부위가 몹시 아파 친정에서 돌아오는데 자전거를 탈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처음 생각은 비뚤게 타고 가려 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맞지 않아 나는 대법제자다, 이런 형상을 속인에게 보여줄 수 없다. 아픔은 좋은 것이다, 아픔은 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심성이 도달하기만 하면 아픔은 금방 소실되었다.

2006년 어느 날 아침 갓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하늘과 땅이 빙빙 돌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가족들은 나의 안색이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마당에 나와 구토를 멈추지 못했지만 토하고 나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일념이 바르지 않아 좋아 지지는 않았고 더욱 심해졌다. 줄 곳 오전 10시까지 토하고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이 말인가? 응당 . 깨달은 후 금방 구토는 멈췄다.

사실 수련 중에서 신기함은 수도 없이 많다, 이것은 다만 그 중의 몇 가지 일 뿐이다.

3, 우리 지역의 협조를 담당한다.

2000년 하반기부터 노 수련생에게서 자료를 받기 시작했고 처음 집으로 가져와 형님(동수)하고 사용했다. 2001년 봄부터 한 동수가 나와 상의해 나더러 우리 지역 동수들이 사용하는 모든 자료를 받아 오도록 해서 나는 주저 없이 승낙했다. 그 후부터는 비바람을 무릅쓰고 자료 받는 것을 견지했다. 동시에 작은 범위의 법을 실증하는 공작을 맡았다.

2003년, 우리 지역에서 자료 받는 거점에서(당시 큰 자료 점에서 자료를 보내온다) 우리 전 지역 몇 백 명 동수의 자료 공급 작업을 했는데 책임이 중대 했다. 책임자의 특수 상황으로 거점의 자료협조인을 새로 선정해야 했다. 원래 책임자는 나의 각 방면 조건이 적합하다고 하여 나와 교류하길 원해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나의 책임 특점으로 만나는 동수가 특별히 많았는데 어떤 때 동수가 잘못되어 체포되면 가족들은 근심을 한다, 그들이 나의 이름을 말할까 두려워서다. 그러나 나는 종래로 동수를 나쁜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모두 사부님의 제자이므로 잘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에게 정념으로 가지했다. 불법 노동 교양을 받은 한 동수는 나온 후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 안에서 나는 몇 번이나 사악에게 당신의 이름을 말하려고 했는데 입 밖에 내려고만 하면 머릿속에는 사부님의 말씀이 말씀이 떠올라 자연히 입을 다물었다.’ 자비한 사부님께서 나를 대신해 막아 주셨음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바르게 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할 것이다.

그때 큰 자료 점에서는 자료 공급을 제시간에 했고 양도 많아 어떤 때에는 한 주에 두 번씩 트럭에 싣고 우리 집에 왔다, 본 지역의 동수들도 한 주에 두 번씩 자료를 받아 갔는데 가족들은 두려워해 심리적 압력이 컸다. 더욱이 나를 위해 걱정을 하면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그들의 정념을 계발한다. 그들에게 모든 일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고 모든 일은 좋게 생각해야 한다며, 우리는 제일 신성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그들에게 많이 들려주었기에 차츰 이해하게 되었다.

동수들이 자주 드나들기에 이웃들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심태는 평온할 수 있는 것은 바른 공간 마당은 그들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큰 자료 점의 동수들은 안전 문제를 고려하여 몇 번 자료 거점을 바꿀 것을 건의 했지만 합당한 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줄 곳 우리 집에서 받았다. 사부님의 자비한 보호 하에 법을 실증하는 사업은 오늘에까지 줄 곳 우리집에서 평온하게 진행되어 왔다. 나의 주변에 퇴직한 몇 명의 노년동수가 열심히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큰 자료 점의 부담을 들어드리려고 자료 점의 제본 작업을 맡아 했다. 약 2003년부터 큰 자료 점에서는 반제품을 우리에게 주면 우리는 몇 백 명이 수요하는 자료를 페이지를 나누고 제본 작업을 하는데 그 지점은 바로 우리 집이다.

2004년11월 《9평》이 세상에 나왔다, 우리는 《9평》을 제본하기 시작했다. 《9평》제본은 다른 자료처럼 간단하지 않았고 폐지도 맞추어야 하고 변도 잘라야 하는데, 작업 순서도 많아 번거롭고 힘이 들지만 기술도 있어야 했다. 초기에는 젊은 남자 동수가 도와주었고 후에는 다른 일이 있어 도울 수 없었는데 나의 남편이 주동적으로 도와주었고 최후는 내가 했다. 재단 양이 많았기 때문에 칼날이 고장 나면 동수가 와서 고쳐주기 기다렸다. 하지만 생각에는 암 걸린 환자도 대법을 수련하면 다 났는데 그러면 대법 일을 하는 공구 역시 초상적이지 않는가? 반드시 더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실험해본 결과 바로 쓸 수 있었다.

2004년 말, 《9평》이 세상에 나옴에 따라 작은 자료 점도 곳곳에서 꽃을 피워 우리집도 만 떨기 꽃밭중의 한 떨기 꽃이 되었다.

우리는 선후로 여러 곳에 자료 점을 만들어 구도중생의 길에서 거대한 작용을 하였다.

4. 진심으로 우수한 가정 수련환경을 창조하다.

대법수련을 시작하여 나는 엄격히 진 선 인 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 하였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종래로 자신을 느슨히 한 적은 없다. 나의 인식은 진 선 인에 따라해야 만이 존사경법(尊师敬法)하는 것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표준에 도달하면 그렇게 가볍고 미묘함을 감수할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전법륜》) 우리는 법의 표준에 따라 하면 모든 것을 개변할 수 있다. 특별히 가정에서 적지 않은 동수들이 자신의 진정한 역할을 있는데 육친 정에 얽매이고 가족들을 중생으로 여기지 않고 가족들 앞에서 법을 증실 하는 것을 홀시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자신의 수련에 장애를 조성하는 것이다.

사당(邪党)이 초기에 파룬궁을 탄압할 때 나를 지지하던 가족들이 압력에 의하여 나더러 수련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견정하게 생각했다. 집에서는 당신들이 마음대로 하지만 그러나 수련은 내 마음대로 하니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형세가 어떠한 변화가 있든지 간에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가족들은 나의 주위에 있는 동수 분들이 박해 사망한 것을 보고 두려운 마음 때문에 더더욱 수련을 못하게 했다. 나의 생각은 사람이 살면 죽음은 한번 있는 것으로 나는 나의 생명을 사부님과 대법에 맡길 것이다, 사부님의 안배에 따를 것이다.

초기에는 가족들에게 직접적인 진상을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당시 말을 하면 마치 그들과 쟁투하는 것 같아 생활상에서 그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졌다. 모든 일에서 관용하고 양보하며 매사에 대법제자의 풍모를 나타냈는데 우리의 평상시 표현이 아주 좋은 진상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남편이 아버지에게 고급담배를 한 보루 사길래 나는 입으로 그는 살수 없다고 하면서 실지 마음속으로는 불평을 토했다. 자기 아버지에게는 이렇게 비싼 물건을 사고 왜 우리 아버지에게는 사주지 않는가? 그러기에 말투도 거칠어 그는 불쾌해 했다. 지난 다음 나는 잘못이다, 이것은 질투심 이익에 대한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대법제자의 풍모란 말인가? 인식한 후 금방 사과를 했다. “이 일에서는 내 잘못이다, 내가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지 못했다, 당신은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천안문 분신 사건이 발생한 후, 나는 당연히 가족들에게 명백히 진상을 해야겠다고 느꼈는바 그들은 더욱 구도 받아야 할 중생들이다! 천천히 그들이 나의 진상을 들었다. 특별히 분신자살 진상을 안 후, 식구들은 나를 도와 진상을 했다.

한 번은 남편이 의심하는 투로 나에게 물었다. 우리 집의 수입과 지출은 왜 맞지 않은가? 당신이 돈을 파룬궁에 선사한 것이 아닌가? 최초에 나는 사실을 감추려 했다. 생각해보니 왜 감추려 하는가? 그이가 알고 화를 낼까 두려워서인가? 이것은 자신을 보호하고 피해를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아닌가? 다시 말하여 정정당당히 자신이 번 돈을 대법을 실증하는데 쓰는 것이 틀린 것인가? 응당 그에게 말해야 한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생각 해 보세요, 한 수련하지 않는 속인은 1년에 병원을 몇 번 다녀오지요? 약을 얼마나 먹고 돈은 얼마나 써야 하지요? 내가 수련을 하고 신체는 튼튼해졌고 약도 안 먹고 침도 안 맞으며 아울러 검소하게 생활을 하죠, 우리 집에 얼마만한 돈을 절약했지요? 절약한 돈 조금을 구도 중생하는데 쓰는데 이것은 덕을 쌓고 선행을 하는 좋은 일이 아닙니까? 당신은 마음을 놓으세요, 우리 수련인은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고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돈을 헛되이 쓰지 않을 것입니다, 집 살림은 잘 안배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마음 놓이지 않으면 당신의 봉급은 당신이 갖고 있으세요, 매월 지출은 저의 수익으로도 됩니다.” 그는 나의 성실한 말을 듣고 이해를 표했습니다. 그 후부터는 다시 돈에 대하여 문의하지 않았다.

차츰 진상을 똑똑히 알았으므로 가족들도 이익을 보았다. 나의 작은 아들은 어려서부터 같이 진상을 다녔다, 어떤 때에는 감기가 오고 열이 나도 나는 일반적으로 약을 먹이지 않는다. 더구나 작은 아들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고 구도중생을 했다. 남편은 나의 작법을 보고 이해를 하지 못하고 나를 욕했는데 그이가 나를 욕할 때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매 번마다 열이 날 때, 낫는다고 하면 금방 나았다, 이런 일이 중복되자 그이도 이점을 관찰하곤 대법의 신기함을 견증하고 다시는 욕하지 않았다.

2001년 봄의 어느 하루, 남편은 심장이 불편하다며 병원에 간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파룬궁은 좋습니다” 를 외우면 낫는다, 병원에 갈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는 견결히 가겠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길에서 “대법이 좋다” 를 외우라고 했다, 결과 병원에 가서 아무것도 검사해 내지 못했다. 그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심장병원에 가서 검사했는데, 병원에서는 모든 기계를 동원하여 검사를 해보았지만 아무 병도 검사해 내지 못했고, 그 후 또 운동기구 위에서 달리기를 하고 검사해 보았지만 아무 탈도 없었다. 원장님도 (그이의 친구)말하기를 당신의 신체는 정말 좋다. 집에 와서 말하기를 정말 대법을 믿겠다. 그 후부터 남편도 다시 약을 먹지 않았고 병원에 가보지 않았다.

한 번은 우리 시의 큰 자료 점의 동수들이 우리 집에 왔을 때 마침 우리가족들이 마당에서 점심밥을 먹고 있어서 나는 동수를 집 안으로 안내 했다. 상을 차리고 반찬을 가지러 나왔는데 미트볼을 사왔기 때문에 나는 작은 소리로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식사를 다하셨죠, 미트볼을 안으로 들여가도 되나요.” 남편은 듣고 싫어하면서 아직 더 먹어야 한다고 해 나는 더 강요하지 않았다.

동수들이 돌아간 다음, 나는 남편을 깍쟁이 라고 나무라지 않고 인내심 있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옛날에 도를 닦는 사람이 길을 걸어가다 목도 마르고 힘들무렵 마침 한 농가를 지나게 되었는데 마당에서는 부인이 배를 따고 있었다. 도를 닦는 사람은 부인에게 목이 마르니 배를 하나 달라고 했더니 부인은 바구니에서 제일 크고 맛깔스러운 것을 골라 공손히 드리면서 도를 닦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빨리 드세요, 다만 저의 시어머니에게 보이지 않으면 됩니다.” 그녀의 선행으로 나중에 부인의 집은 큰 복을 보답 받았습니다. 그 후 집에 다른 동수들이 식사 시간에 오기만 하면 남편은 주동적으로 장을 보고 고기를 사와서 대접했다.

《9평》 발표 된 후, 내가 주동적으로 《9평》제본을 맡은 것을 보고 남편은 《9평》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장쩌민 대법을 박해한 죄악을 들려주고 중공 사당의 죄악도 들려주었다. 남편은 어떤 때에는 듣기 싫어 화를 내고 심지어 나를 때리기도 했으나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인내심 있게 설명 해주었다. 그는 끝내 명백해져 사당 탈퇴도 했고 주동적으로 우리를 도와 《9평》을 재단해 주었다. 한번은 많은 《9평》을 만드는데 늦게 까지 작업을 하게 되어 우리는 모두 잠들었는데 남편은 혼자서 1시까지 일했다. 드디어 2007년 6월에 그이는 대법 수련 항렬에 들어섰다.

일상생활 중에서 우리는 변했고 식구들도 변했다. 우리는 진, 선, 인 표준에 따라 한다, 법은 일체를 개변할 수 있으며 대법의 위력은 체현 될 것이다.

사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동수님에게 감사드립니다. 타당하지 않은 곳이 있으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명혜망 제5차 중국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고발표:2008년11월10일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8/11/10/1890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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