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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중에서 승화하여 떨치고 일어나 줄곧 따라잡다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10일】나는 1996년에 법을 얻었다. 기억에 의하면, 이틀 저녁의 시간을 이용하여 《전법륜》책을 다 보았다. 당시 이것이 바로 내가 줄곧 찾던 정법이구나! 반드시 이 법문을 수련해야 한다는 강렬한 느낌이었다. 그때로부터 나는 하나의 행복하면서 간고한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수련하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은 겨울날 밖에 있을 때 항상 나의 몸을 하나의 따뜻한 에너지 마당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솜옷, 털실 옷과 작별했다.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역시 밖에서 홑옷, 홑바지를 입고 다녔다. 겨울에 옷을 많이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고 놀라면서 대법의 신기에 대해 찬양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2007년에 나는 또 정법의 홍류 속으로 돌아왔다. 막 감옥에서 돌아왔을 때, 원래의 동료가 바로 법공부에 필요한 MP4를 나에게 주었다. 단체 법공부를 통하여 나는 아주 빨리 자신이 정법 노정에서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졌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상이 아직 개인 수련의 단계에 멈춰져 있었고 막 법을 수호하던 때의 상태였다. 그리고 감옥에 들어간 것도 자신의 수련의 노정이라고 인식했었다. 자신은 이렇게 수련의 노정에서 너무나 뒤떨어 졌기에 떨쳐 일어나 줄곧 따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문작자

1. 홍법

득법

나는 1996년에 법을 얻은 제자이다. 기억에 의하면, 나는 이틀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전법륜》을 책을 다 보았다. 당시 이것이 내가 줄곧 찾던 정법이구나! 하는 강렬한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의 행복하면서 또 고생스러운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수련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비몽사몽 중에서 바로 사부님의 법신이 먼저 나를 정주(定住)시키고, 그 다음 나의 배를 주무르고 신장(腎)을 잡았는데 감각이 조금 아팠다. 그러나 편안하였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의 신체를 조절하고 계시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침대에 누웠을 때 몸은 항상 누운 대로 뜨거나 혹은 거꾸로 되어 빠르게 돌고 있는 감각이었다. 어느 한 번은 머리 꼭대기에 하나의 작은 창문이 열려있는 감각이 뚜렷했다. 자신의 호흡에 따라 그 구멍이 열렸다 닫혔다 하였다. 후에 《대원만법》을 보고서야 나는 그것은 꼭대기가 열린 후에 자신과 우주와의 소통이 형성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러 번 사부님께서 나에게 관정(灌頂) 해주신 것을 감각했다. 일반적으로 뜨거운 것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나갔다. 매번 관정한 후에 전신이 이상하게 편안했고 사상은 마치 씻은 것처럼 맑고 깨끗하였다.

홍법

그때 나는 아직 30세가 되지 않았기에 안정된 직업이 있었으므로 무슨 일을 하기에는 쉬웠다. 막 법을 얻고 반년이 되었을 때 동수 갑이 바로 나를 이끌고 나가서 곳곳에 홍법하여 새로운 연공장을 꾸렸다. 우리 둘이 연공을 배우러 온 사람들에게 연공을 가르쳐주고, 단체 법공부를 조직하여 일반적으로 3~4개월의 시간이 지나면 이 연공장이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서게 되는데, 보도원을 선출하여 책임을 맡겨놓고 우리 둘은 또 새로운 지역에 연공장을 꾸렸다. 홍법 중에서 심성을 수련하여 점차적으로 위사위아의 마음을 버렸다. 단체 법공부에서 예를 들면, 그때 나 역시 신수련생이었다. 특별히 보도원, 참장들의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기를 좋아했다. 막 법을 얻은 수련생도 역시 특히 나처럼 이러한 ‘노수련생’들과의 법공부를 즐겼다. 그때 나는 여러 연공장의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였기에 어떤 때에는 보도원, 참장들의 법공부에 참가하는 것을 놓쳤다. 아울러 매번 대면해서 막 법을 얻은 수련생들이 초급적인 문제를 제출하고 이야기하면 나는 모두 마음 깊이 듣고 그것을 법리상에서 깨우쳤다. 이런 가운데서 나는 사존께서 매번 번거로워 하지 않으시고 반복해서 신수련생들에게 문제를 해답해 주시는 그러한 홍대한 자비를 절실히 체험했다.

연공

그때는 모두 막 법을 얻은 수련생들을 이끌기 위하여 일년 내내 밖에서 연공을 견지하였다. 나와 동수 갑은 선두로 겨울철에 밖에서 연공하는 것을 이끌었다. 모두들 법공부를 비기고 수련을 비기면서 서로 격려하였다. 이리하여 나 역시 밖에서 가부좌하고 연공하는 습관을 양성했다. 설령 영하 17~18도이고, 온 하늘에 눈보라가 뒤덮인 새벽 3~4시경일지라도 매일 모두 가부좌를 견지했다. 아울러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가부좌 시간을 더 늘렸다. 어떤 때에는 큰 눈이 내려 나는 하나의 눈사람이 되기도 했고, 또 어떤 때에는 온 몸이 얼음처럼 차가워 마치 쇳덩이 같았지만 좀 지나면 또 온 몸이 크게 더워졌으며, 또 어떤 때에는 업력이 머리부터 줄곧 아래로 내려가면서 없어지는데, 머리를 청결할 때에는 한바탕 큰 난이 일어나는 것 같았고, 가슴을 청리할 때에는 정말로 마음이 가려워 참기 어려웠으며, 복부를 청리할 때는 100개의 발톱이 장을 주무르는 등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인내력이 극도에 이르렀을 때의 거대한 고통은 나의 사상에서 마치 생명이 해체될 때 흩어지는 것처럼 몸도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묵념으로 사무님의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 (《전법륜》), “착한 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거니, 원망도 없고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 (《정진요지》〈경계〉)라고 하신 말씀을 외웠다. 사상은 점차적으로 견강해지기 시작했으며, 몸도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매일 나는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합장하고 연공을 끝내려고 준비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아직 능히 견지할 수 있어?”, “있다!”라고 자문자답 하고는 두 손을 다시 제인 자세를 하고 연공을 계속 견지하였다. 이와 같은 것이 적어도 3번은 되었다. 부단히 극도로 되는 감당력을 돌파하여 업력이 발바닥으로 나가고 나면 온 몸은 비할 바 없이 편안하여 정신은 크게 고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련하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은 겨울날 밖에 있을 때 항상 나의 몸을 하나의 따뜻한 에너지 마당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솜옷, 털실 옷과 작별했다.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역시 밖에서 홑옷, 홑바지를 입고 다녔다. 겨울에 옷을 많이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고 놀라면서 대법의 신기에 대해 찬양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3년이 넘는 대량적인 법공부와 고심한 연공, 또 모순 속에서 능히 시시각각 안에서 찾음을 통해 심성 제고가 아주 빨랐으며, 수련된 좋은 일면은 부단히 격리된 상태로 나타나 바로 한 단계의 신체가 되어 사상 상태가 모두 아주 좋았다. 늘 수련 중에서 법리를 깨달았을 때면 가부좌 시간이 길어졌는데, 갑자기 이러한 상태가 소실되면서 가부좌를 2시간 가까이 하던 것이 40여 분으로 변했고, 수련 중에서 해야 할 일도 신경이 무뎌지면서 오성 역시 차해지는 이러한 상황이 나타났다. 그때는 왜인지 몰랐는데, 후에 사부님의 설법에서 이것은 수련된 부분을 격리시켰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2. 호법

박해

1999년 7.20, 악당은 민심을 고려하지 않고 고집을 부려 대법을 박해하였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이 정사 대전의 세월 속에서 우리는 일찍이 법을 얻은 대법제자로서 단호히 법을 수호하는 홍류 중에 투입되었다. 나는 ‘4.25’ 그때, 중남해 상해로 청원 갔었고, ‘7.20’ 후에도 중국 공산당 중앙 사무국, 중화 인민 공화국 국무원 사무청에도 청원하러 갔었다.

동수 갑이 나를 찾아와서 “오늘 저녁 텔레비전에서 대법을 x교라고 선포한다고 하니, 일찍이 법을 얻은 노제자로서 우리는 또 걸어 나와 법을 수호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였다. 나는 듣고 당시 확실히 주저했다. 이번에 다시 걸어 나와 법을 수호하면 잘못하다간 직장을 잃게 된다. 일단 여유와 안정된 직장을 잃게 되는데, 정말로 어떤 것도 내려놓기 힘들었다. 이전에는 사업을 잘하는 것으로 법을 용해 시켰는데 지금은 직장을 버리고 법을 수호해야 했다. 또 이렇게 한번 지나가면 인신의 자유도 보장받기 힘들었다. 여기서부터 신의 길로 향하는 것으로서, 매 한 발짝 내딛는 것이 모두 그렇게 어려웠다. 버리는 것은 물질상의 이익일 뿐만 아니라 더욱 이익 관념의 집착을 버려야 하였다.

비록 그때는 법을 수호하는 것에 대해 판결하지 않았으며 불법으로 노동교양 하는 것 역시 극소수였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어려운 것이 훗날 보다 훨씬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맨 앞(最前面)의 제자로 돌진하여 법을 수호 하였는데, 그 무슨 방향이 없었다. 대법을 수호하고 안 하고는 모두 제자 자신이 깨닫고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미혹 속에서 깨우쳐야 했는데, 그때는 일종 언어로 표현하기 곤란하였다!

호법

10월 27일, 텔레비전에서는 공개적으로 거짓말로 대법은 x교라고 모욕하였다. 나는 일부 동수들과 교류를 통하여 여전히 중국 공산당 중앙 사무국, 중화 인민 공화국 국무원 사무청에도 청원하러 갔었다. 두 곳의 사람들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청원하러 왔다는 말을 듣고 두말없이 바로 경찰을 불러서 사회 질서를 교란한다는 구실로 모함하면서 우리들을 붙잡기 시작했고 나는 그때 30여일 감금 되었다. 간수소에 20여일 갇혀있던 기간에 사상과 신체 모두가 감당력이 극도에 도달했다. 처음으로 인신 자유를 잃었기에 그러한 자유에 대한 갈망이 아주 강렬했다. 이때 예심원이 나에게 정신상의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면서 잘못했다는 것을 승인하지 않으면 바로 노동교양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짧은 시간에 주춤하다가 나는 견결히 “파룬따파는 정말로 좋아요. 나는 마음과 몸에서 이익을 얻었어요. 사부님을 위하여 나는 몇 년의 감옥 생활을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심원은 듣고 즉석에서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말하였다. 사실, 지금의 표준으로 가늠하면 나의 이러한 감옥에 있으면서 호법하려는 생각이 구세력에게 파괴성적인 구실을 찾아 검증하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간수소에서 나온 후에 회사 영도가 나를 찾아 담화를 하면서 나에게 사상 상에서 전변되기를 부탁했으나 나에게 거절당했다. 나는 회사에서 몇 년 동안 유일한 시급 선진으로 되었었다. 사업하여 5년이 되기 전에 바로 개인적으로 몇 십만 자의 전문 서적을 출판했었다. 이리하여 영도는 내가 가는 것을 아까워하였다. 쌍방은 서로 몇 개월 양보하지 않았다. 그러나 악당들이 부단히 회사 영도에게 압력을 가하였으므로 결국에 나는 또 자신이 애호하는 사업을 잃게 되었다. 회사를 떠날 때 나는 영도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이 수련한 체험을 그들에게 홍법하였다. 대법의 아름다음과 내가 무엇 때문에 법을 견결히 수호 하는지 그 원인을 서술했다. 후에 동료가 말하기를 영도가 나의 편지를 보고 감동받아 탄식했다고 하였다.

1999~2001년은 대법제자들이 호법한 가장 비장한 시기였다. 다른 공간에서는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거대한 마난을 감당하시면서 대면적으로 사악을 소멸시키셨다. 세간에서는 일찍이 법을 얻은 대륙의 제자들이 대폭적으로 앞사람이 쓰러지면 뒷사람이 이어 가면서 몸으로 호법하였다. 천안문에 현수막을 걸어 넣고, 공공장소에 표어를 붙이고, 작은 나발로 진상을 방송하고, 고무풍선으로 진상하고, 전단지를 배포하고, 편지로 진상을 보내 각급 정부 및 민중에게 진상으로 거짓말을 폭로하였다. 그때는 호법 하는데 어떠한 경험도 없었으므로 아주 성숙되지 못하였다. 또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하는 발정념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그러므로 대량적인 손실이 나타났다. 노동교양 당하거나 판결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은 그때에 호법한 제자들이다. 나는 바로 핸드폰 안전 부주의로 악경에게 위치 추적을 당했고, 동시에 또 가짜 대법제자로 가장한 특무에게 기만당하여 악당에게 붙잡혀 중형을 판결 받는 중대한 손실을 조성했다.

굳센 믿음

그 기나긴 감옥 생활 중에서 감옥의 그러한 봉폐된 고압과 일언당(一言堂)식의 거짓말로 기만하는 것에 직면하였는데, 엄한 검증으로 감옥에 들어간 대법제자들은 근본 상에서 사부님과 법에 대한 매 제자의 굳센 믿음의 정도가 검증되었다. 평소에 법공부를 착실하게 하지 않고 실수(實修) 중에서 정진함이 부족한 사람은 아주 쉽게 이러한 환경 중에서 사오(邪悟)를 향해 갔다. 나는 매일 모두 반복하여 법을 외우면서 법으로 자신의 정념을 굳세게 다졌다. 나는《전법륜》 한 강을 채 외우지 못했지만《정진요지》60여 편과 《홍음》중의 모든 시사(詩詞)는 다 외웠다. 내가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또 노파심에서 거듭 충고하신 설법을 회억할 때면 막 수련하기 시작하여 사부님께서 나를 위하여 신체를 조절해준 신기한 감수, 동수들이 단체 법공부하고 연공할 때의 상서로웠던 마당, 모순 속에서 안에서 찾았을 때 경계가 제고된 후 내심에서의 희열, 고통을 참으면서 가부좌 할 때 대법이 몸에서 신기를 나타내는 이런 것들이 모두 눈에 선했다. 이러한 것은 모두 나로 하여금 미혹 중에서 사악의 거짓말을 돌파하게 하였고, 굳센 정념을 나타나게 하였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나의 옆에서 반 보도 떠나지 않고 계셨다. 감옥에서 나는 여러 번 사부님께서 나에게 관정해준 느낌을 감수하였다. 전신을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깨끗하게 씻어 주셨다. 비몽사몽 중에서 불시에 온 몸이 뜨면서 도는 것을 느꼈다. 비록 몇 년 동안 연공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겨울에는 의연히 예전처럼 홑옷을 입었는데 감옥 경찰도 경탄을 금치 못했다.

3. 법을 실증

격차(差距)

2007년에 나는 또 정법의 홍류 중에 돌아왔다. 막 감옥에서 돌아 왔을 때, 원래의 동료이며 역시 대법제자인 동수 을이 바로 나에게 법 공부에 쓸 수 있는 MP4를 보내 주어서 아주 빠른 시일에 바로 단체 법공부에 참가할 수 있었다. 단체 법공부를 통하여 나는 자신이 정법 노정에서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상은 아직 개인 수련과 막 호법하던 때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또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자신의 수련의 길이라고 인식했었다. 발정념하여 구세력을 부정하고 3가지 일을 잘해야 하는 이런 것들을 나는 모두 모르고 있었다. 바로 감옥 중에서 후에 들어온 동수가 우리에게 발정념을 알려줬다. 그러나 그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역시 마음속에 두지 않았다. 지금에야 발정념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으며, 동시에 구세력 배치를 부정해야 하였다.

자신이 호법 할 때를 회상하면 바로 이 방면에서 엄중한 문제가 나타났었다. 그때 늘 나의 신변 동수들이 “우리들이 호법한 이야기를 하면 사당에게 붙잡히게 되는데, 어쨌든 몇 년 판결을 받게 된다.”라고 말했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구하는 마음이 아닌가? 그것이 구세력 바로 기회를 보아 일을 안배하여 당신을 감옥에 넣은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보호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사실은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기억에 의하면, 붙잡히던 그날 저녁에 층계의 복도 전등이 위층으로부터 아래층까지 모두 기적적으로 밝지 않았다. 나는 바로 자료를 손에 쥐고 나를 붙잡으려는 10여 명의 경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스쳤다. 그들은 나를 붙잡으려고 올라오고 나는 자료를 주려고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의심스러운 사람에게 경각성이 없었으므로 즉시 몸을 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던 것이다.

바싹 따르다

자신이 수련의 노정에서 너무나 낙후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분발하여 따라 잡아야 했는데,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많이 해야 했고 동수들과 교류도 하고 매일 명혜망에서 동수들의 교류 문장도 보았으며, 법리를 인식하는 면에서 점차적으로 정법의 노정을 따라가야 했다.

나는 자신의 상황에 근거하여 기타 동수들이 진상하는 사업을 일부 보조하였다. 나는 자신이 저축한 것으로 한 대의 컴퓨터를 샀다.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컴퓨터 지식을 아주 빨리 배웠다.

나는 동수의 전자책, MP4 음향 자료를 복사하는 것을 도와주는 데로부터 시작하여 진일보로 DVD 진상 CD를 굽는 것을 장악하면서 제작방법을 배웠다. 동영상 문건의 양식 전환, CD 프로그램을 여는 것을 제작하는 등을 포함하여 대량의 진상자료를 다운받는 방법을 장악하였다. 대량적으로 진상 DVD, VCD의 진상에 관한 동영상 자료들을 수집했다. 트루크립트(TrueCrypt)를 이용하여 보안강화 문서를 창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집한 진상자료 전부를 보안강화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저장하여 안정되고 믿을 수 있는 진상자료를 창조했다. 허다한 상용 소프트웨어를 수집하여 교과 과정으로 사용하고, 자신이 일부 동영상 교과 과정을 집필하여 기타 동수들이 진상하는 데 관련 있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지식을 배움에 있어 편리를 도모했다. 시스템 설치, 바이러스 소프트웨어, 방화벽 등 조작 방법을 장악하여 동수들로 하여금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잘하게끔 하기 위하여 유력한 기술을 제공했다.

나는 거의 모든 시간을 3가지 일을 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므로 직업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 후에 다른 사람이 하나의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을 소개하였다. 비록 봉급이 동료들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지만 사업 강도가 힘들지 않고 환경이 비교적 느슨하여 나의 3가지 일을 함에 있어서 영향이 없었으므로 나는 아주 만족하였다.

나는 지금 매일 아침 3시에 일어나서 동공을 1시간 하고 적어도 1시간 반은 정공을 하며, 그 다음 한 시간은 법을 베낀다. 나는 이미 《전법륜》을 두 번 베껴 썼고, 《정진요지》를 지금 베껴 쓰고 있다. 퇴근하여 오는 길에 1시간 반을 법을 듣는다. 낮에 출근하여서는 참답게 사업을 완성하고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매일 명혜 교류 문장을 보며 진상과 관련되는 기술을 연구한다. 최근 인터넷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보내기를 시작하였다.

대량적인 법공부, 발정념을 통하여 진상을 하는 이 과정에서 나의 심성의 제고는 아주 빨랐으며 신체도 역시 전면적으로 좋아지고 있다.

원용

심성이 부단히 제고됨에 따라 나는 하나의 대법의 입자로서 주동적으로 대법에 원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다. 나는 큰 성시의 대법제자들 중 컴퓨터 기술이 부족한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의 신변에서 바로 뚜렷이 이 한점을 감촉할 수 있었다. 많은 동수들이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서 아주 정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주 많은 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컴퓨터 기술을 장악함이 부족했다. 예를 들면, 큰 문건 다운로드, 동영상 CD 제작, 소프트웨어 보안강화를 사용하는 것 등을 모르고 있었다. 아울러 몇 년 동안 줄곧 이러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므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방면에서 더욱 좋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나는 바로 이 방면에서 법에 원용되고, 동수들의 부족함을 보충하였다. 동수들에게 이 방면의 기술을 도와 제공할 뿐만 아니라 또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기술을 주동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동수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될 수 있는 한 그들도 능히 컴퓨터를 더욱 잘 이용해 법을 실증하는 효율을 제고하여 되도록 독립으로 운영함으로써 다시는 다른 사람을 기다리거나 의거하고 바라는 등이 없도록 하였다.

이외에 나는 명혜망에 문장을 투고하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채용되고 어떤 때에는 채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채용되든지 안 되든 지를 막론하고 오직 내가 수련 중에서 심득 체험이 있으면 된다. 중생구도, 진상에서의 새로운 생각이 있어 나는 바로 주동적으로 글을 써서 동수들과 교류하였다. 동시에 이 과정 중에서 구하는 것이 없이 무조건 대법에 원용되어야 한다.

승화

현재 하나의 가장 강렬한 감각은 바로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이 법리상에서 인식 상에서 아주 멀리 개인 수련 시기 및 호법 초기를 초과했다는 것이다. 대법이 겪은 거대한 마난은 바로 대법제자들의 위대함을 알려줬다. 나는 수련에 정진하여 법리상에서의 인식이 비교적 좋은 제자라고 인식했다. 현재 법리에 대한 예전의 인식과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를 비교해 볼 때는 차이가 아주 크다. 가장 선명한 것은 바로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수련하는 것은 무사무아로서, 자신이 고난을 감당하면서 또 위험을 무릅쓰고 자비로 세인들을 향하여 진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보편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개인 수련 시기에는 이러한 무사무아의 경계의 요구는 보편적이 아니었다. 바로 마치 나처럼 이렇게 적극적으로 홍법하는 제자였다. 다만 일부를 많이 지출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자유는 여전히 생명이 위협을 받는 상황까지 영향이 미치지 않았다.

해외 대법제자들은 비록 이러한 위협을 받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중생구도는 아울러 대륙 제자들을 도와주는 거대한 지불이다. 마찬가지로 수련된 것은 무사무아의 경계로서 요구 역시 더욱 엄격하다. 마침 사부님께서 《2002년 워싱턴DC법회설법》에서 말씀 하셨듯이 “나는 예수가 아니며, 나 또한 석가모니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천백만의 과감히 진리의 길을 걷고, 과감히 진리를 위하여 생사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과감히 중생을 구도하기 위하여 몸을 바치는 예수, 석가모니를 창조하여 냈다.”이다.

희망

감옥의 그 긴 세월 속에서 그러한 고압의 환경에서 박해받은 수련생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산생되었다. 한 번 한 번의 거대한 지불은 이러한 수련생들로 하여금 자유를 갈망하고 위험에서 멀리 떨어지길 갈망하게 하였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동수가 있었는데, 그들은 지난날 수련에서 아주 정진하면서 대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아주 많은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지금은 정진하지 않고 단체 법공부에 극히 적게 참가하며 진상도 아주 적게 한다. 근본적인 원인은 박해의 그림자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체험으로는, 오직 나와서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3가지 일을 하면,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바로 두려운 마음을 버릴 수 있으며, 위사위아한 마음도 버릴 수 있었다. 그러한 홍법, 호법 중에서 정진하였던 노제자들에게 충고하고 싶은데, 능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계속 용맹정진 하여 ‘정법시기의 대법제자’의 위대한 칭호에 부끄럽지 않고, 역시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가 헛되지 않게 하기를 희망한다.

나는 날이 갈수록 금생에 대륙에서 전생하여 홍법, 호법, 법을 실증하는 이것은 자신이 사전의 큰 염원이며, 역시 자신이 반드시 가야할 수련의 노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법제자는 자신을 해탈하기 위하여서 뿐만 아니라 더욱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면서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바른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명혜망 제5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 2008년 11월 1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11/10/18901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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