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7일】 1997년 봄, 나와 6세의 아들이 동시에 꿈에서 1기의 금빛 찬란한 미륵 불상이 집안에서 돌고있는 것을 보았다. 아침에 일어난 후 아들은 “어머니 나 미륵부처를 보았어요!” 하고 말했다. 꿈이기에 당시 나는 그렇지 않다는 뜻에서 집안 사람들에게 “나도 미륵부처를 꿈에서 보았는데” 라고 말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중생을 구도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속세에 미혹된 우리에게 점화해 주셨던 것이었다.
몇 년의 수련중에서 내가 알게 모르게 사부님께서 나를 위하여 감당한 지출과 한없는 심혈은 얼마인지 모른다. 나에게는 크게 올라가거나 크게 떨어진 수련의 이야기가 없으며, 줄곧 착실히 사부님께서 안배한 길로 걸어왔을 뿐이다. 나의 수련의 지름길은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에서 찾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만약 능히 자신을 내려 놓는다면 자신으로 하여금 법중에 들어가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한 속세를 벗어나 성인의 경지로 들어가는 즐거운 감각이 그중에 있는 것이다. – 본문작자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법의 대문에 들어선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10년이 넘었다. 오랜 세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속에서 나는 모르던 데로부터 시작하여 수련의 간난신고와 뛰어난 절경을 심심히 체득하였다. 더욱 나로 하여금 절실하게 생명으로 하여금 법중에서 들어가면 매 시각마다 진감되고 유쾌하다는 것을 체득하게 하였다. 이러한 황금 계절의 수련에서 나는 수확이 아주 많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법공부하면서 법을 얻고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의 심득과 동수들과의 교류를 통해 무한히 존경하고 자비로운 위대한 사부님께 한 부의 답안을 바치려고 한다.
1. 법을 얻기 전 신기한 한 막
어느 날 저녁, 바로 1997년의 봄이었다. 나와 6세의 아들이 동시에 꿈에서 1기의 금빛 찬란한 미륵 불상이 집안에서 돌고있는 것을 보았다. 아침에 일어난 후 아들은 “어머니 나 미륵부처를 보았어요!” 하고 말했다. 꿈이기에 당시 나는 그렇지 않다는 뜻에서 집안 사람들에게 “나도 미륵부처를 꿈에서 보았는데” 라고 말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중생을 구도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속세에 미혹된 우리에게 점화해 주셨던 것이었다.
몇 년의 수련중에서 내가 알게 모르게 사부님께서 나를 위하여 감당한 지출과 한없는 심혈은 얼마인지 모른다. 나에게는 크게 올라가거나 크게 떨어진 수련의 이야기가 없으며, 줄곧 착실히 사부님께서 안배한 길로 걸어왔을 뿐이다. 나의 수련의 지름길은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에서 찾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만약 능히 자신을 내려 놓는다면 자신으로 하여금 법중에 들어가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한 속세를 벗어나 성인의 경지로 들어가는 즐거운 감각이 그중에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어쩌면 사람들이 늘 말하는 “부처와 연분이 있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되었다. 정말 당시 현실에 대하여 마비되었으며, 이것은 도저히 자신에게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게끔” 만들어 자신으로 하여금 대법의 문 밖에서 아주 긴 시간을 헤메게 하였다. 줄곧 하나의 우연한 기회에 공손히 연속하여 세 번 《전법륜》을 읽은 후에야 나는 꿈속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바로 이 “우연”이, 내가 이미 오래 전부터 기다린 만고의 기연이 사부님의 가없이 넓고 큰 은혜중에서 개척되었다. 사부님께서는 그때부터 이미 오랫동안 먼지 투성이가 된 나의 마음의 문을 천천히 열어 주셨다. “사부님 고맙습니다!” 원 생명의 깊은 곳에서의 감동은 층층이 지나온 공간에서 “나는 법을 얻었어요!” 하고 함성을 질렀다. 법을 얻은 초기 나는 마치 한 오랫동안 굶은 아이가 빵을 본 모습과 같았다. 나는 일체 한가하거나 휴가철 시간을 이용하여 법공부를 하였다. 당시 나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였다. 그러한 사람들의 물건을 파는 떠들썩한 소리속에서도 어떤 때에 책을 보면 나는 도리어 무아지경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의 손을 이끌고 신성한 궁전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가장 나를 진감(震撼)시킨 것은 그러한 평정하고 기쁜 심정이었다. 나는 대법이 나를 위하여 한 차례 전신(全身)의 마음에 세례를 해주시고, 전면적으로 되돌아 가는 길을 펼쳐 놓았다는 것을 감촉하였다.
2. 쩐(眞), 싼(善), 런(忍)에 동화되어 대법을 실증
매일 법공부하면 박대한 법리가 나를 감화시켰다. 만약 내가 고기라면 나는 물을 만난 것과 같았다. 생활중에서 쩐(眞), 싼(善), 런(忍)에 동화되는 과정은 나로 하여금 더욱 많은 감개무량한 일들을 감수하게끔 하였다. “장사군 열에 아홉은 사기꾼이다[十商九奸]”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현재 채소 가게에서 저울을 달때 모자라게 하는 현상은 흔히 보는 일이다. 우리가 집에서 법공부 하기 전에는 자신은 세속에서 깨끗하게 살면서 주견없는 대세에 따르지 않았다고 하였지만. 그러나 물건을 저울에 달때 높아지고 내려가고 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실과 득의 법리는 시시각각 나를 깨우쳐 주기에 나는 자신을 더욱 엄격하게 요구하게 된다. 어느 날 저녁, 퇴근 시간에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특별히 많았는데 한 60세 넘은 노인이 나의 물건을 사고 떠났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와서 화가 나서 욕을 하면서 나의 노점 앞에까지 와서 “내가 세 근을 샀는데 확인해 보니 2.6근 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의 물건들을 때려 부수겠다…….” 하고 말하였다. 노인의 물건을 저울에 달때 나는 분명히 조금도 차이도 없이 세 근을 준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당신의 자전거 광주리에서 떨어져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고 물었다. 그는 듣자마자 화를 냈다. 사실 내가 그의 차 광주리를 보았을때 파손된 것이 없었으며 물건이 떨어질 가능성은 없었다. 이때 노점 앞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온 대청안의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나에게로 쏠렸다. 의심하는 사람도 있고, 호기심이 있는 사람도 있고, 화나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자신은 수련인이기에 절대로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사부님의 “인(忍)”의 법리가 나를 깨우쳤다. 나는 의연히 웃는 얼굴로 그에게 저울을 다시 한번 달아 주었는데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게 분명히 세 근이 맞았다. 옆의 집 저울로 달아 보았는데도 역시 세 근이었다. 노인은 “후후” 하면서 “내가 저기 가서 다시 달아보고 만약 그래도 세 근이라면 돌아와서 내가 사과하겠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노인이 사과하기 전에 나는 그에게 “쩐(眞), 싼(善), 런(忍)이 나에게 사람 됨됨이를 배우게 하였어요”라고 말하였다. 노인의 도리도 없는 책임지지 못하는 욕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눈길속에 마음이 상했을때 나는 ‘대법속에 있으니 정말로 좋다’고 말하고 싶었다.
3. 협조하는 중에서 승화
몇년의 수련중에서 처음에 나는 10여 명 동수들에게 진상자료를 전달하기 위하여 자료를 그들의 손에 쥐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위로부터 아래로 그들의 마음속에까지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부지런히 소통하고 늘 교류하면서 부단히 대법에서 승화되었다. 매 개인은 모두 일심으로 속인들과 접촉하고 일깨워 주면서 자기가 해야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모두 진정으로 “사람은 세속 중에 있지만 생각은 그 밖에 있는 사람이다” (《각지역 설법5》〈2005년맨하튼국제법회설법〉)라는 것을 감수하게 하였다. 우리에게 아주 적은 간격만이 있었으므로 일부 사람의 마음은 모두 아주 빨리 법에 용해되고 있었다. 처음으로 법공부팀이 만들어졌을 때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법공부를 잘한 단맛을 보게 하였다. 기연(機緣)이 성숙되었고, 또 동수들의 도움으로 나는 또 가정 자료점을 꾸리게 되었다. 그후 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자료, 간행물과 신경문을 다운받아 복사하여 전달하는 것을 도맡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동수들과 접촉하는 중에 나는 정체에서의 부족점을 발견했다. 우선 법공부가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법리가 명확하지 못하였으며 관건은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단체로 법공부하게끔 마련한 수련환경을 개척하지 못하였다. 우리 몇 명 동수들이 교류에서 “우선 조건이 있는 동수들은 자기의 주위의 안전에 주의하는 상황에서 법공부팀을 꾸리고 법공부에 참가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법공부팀은 연이어 성립되었다. 예전에 수련하지 않던 동수들도 다른 동수들의 도움으로 다시 수련의 길에 들어왔다. 이것은 또 하나의 협조인의 작용과 관련된 것이었다. 당시 나는 주위 동수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동수들은 아주 적게 접촉하였다. 예전에 나와 접촉하면서 전달하던 한 노년 동수 갑과의 접촉을 통하여, 그는 온 가족의 집안일, 아들을 포함하여, 딸의 집안 일까지 모두 관할하다보니 하루 혹은 며칠간 책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속인의 마음이 많으면 속인의 일이 많아지면서 바로 시간이 있을 때 책을 본다고 하지만 어떻게 능히 마음이 조용해질 수 있겠는가? 또 매번의 신경문은 모두 그가 혼자서 전달해야 했다. 그는 아주 열정이 있었는데 모두들 무심결에 기다리고 의거하면서 무감각하게 그로 하여금 이러한 수련의 생활을 몇 년 동안 지속되게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당신들의 진정한 제고 이는 영원히 모두 제1위이며, 당신들 자신의 수련원만 이것은 영원히 모두 제1위이다” (《2007년뉴욕법회설법》) 라고 말씀하셨다. 법공부를 하지 않고 어떻게 수련할 수 있는가? 법의 가르침이 없이 우리는 또 수련하여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자신을 놓치고 정체를 놓치게 된다. 접촉에서 서로 배합하면서 바로 마치 동수가 말하는 늘 능력이 강하지 못한 것처럼 처음에 나는 그를 피하였다. 나는 예전에 그와 접촉했던 동수를 찾아 교류하였는데, 그 동수는 “그가 자기의 말을 듣지 않기에 나는 그의 그 변이된 물건을 움직일 수 없다” 라고 말하였다.
저녁에 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 하나의 아주 넓은 큰 강이 있었는데 우리는 강의 북안(北岸)에 서 있었다. 큰 강은 남북으로 갈라져 있었다. 내가 있는 이곳은 물이 깊고 넓으며 푸른 물은 가볍에 물결치면서 강변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동수 갑이 있는 그곳은 강을 굽이 돌아 모두 한 층의 두터운 얼음이 쌓여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도피해서는 안 된다고 점화하신 것이라고 깨우쳤다. 물이 얼음을 용해시켜줄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닌가? 나는 사부님께서 나로 하여금 협조인이란 환경을 이용하여 자신을 수련하게끔 하신 것을 크게 깨달았다. 후에 나는 그 동수와 교류하면서 2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몇개 팀으로 나누어 정진하는 동수에게 법리에 명석하고 열심히 하는 동수와 함께 갑 동수로 하여금 몇 사람이라도 책임지게 하여 법공부하는 시간을 더 가지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젊은 청년 을과 접촉하였다. 그는 나에게 몇 년 전부터 본 지역의 정체가 잘 협조되지않아 그가 바로 협조인을 할 생각이라고 하였다. 당시 나는 “그러한 열정만 있으면 모두 함께 나오면 되고요, 정체의 협조는 한 두 사람의 일이 아니므로 더욱 많은 동수들의 참여와 원용이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후에 그는 한 구역의 근 20여 명의 동수들을 협조하게 하였다. 모두들 기일을 정하고 함께 서로 교류하고 연구하면서 수련중에서 각 구역의 경험을 서로 참고로 하고 부족한 지역을 상호 보충하게끔 깨우쳐주면서 공동으로 제고할 것을 의논하였다. 후에 모두들 함께 교류할때 동수들이 갑동수에게 갈 것을 약속하자고 하면 그는 늘 핑게를 대면서 참가하지 않았다. 각 구역에서 동수들이 소통과 교류를 통해 예전보다 평화롭게 제고되는 것이 선명하였다. 그의 그 구역에서……제3차 교류를 하였는데 동수 을이 나에게 “그 갑 동수는 자신이 오지 않을 뿐더러 또 다른 사람에게 로비하여 약정 시간이 7명이었는데 오직 4명 밖에 오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당시 자신은 사람의 마음이 부단히 밖으로 나로면서 입장이 난처하다고 느꼈다. 바로 마치 동수가 말한 것처럼 이것은 기반을 무너뜨린 것이 아닌가? 나는 아주 빨리 자신의 허영심, 나의 마음의 소견으로 인한 집착이라는 것을 인식하였다. 나는 어떠한 일도 모두 수련이 아닌가? 수련인은 모든 매 한 가지 일이 모두 다른 공간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그가 오던 오지 않던 모두 하나의 수련과정이 아닌가? 내가 사업을 함에 어디에 누락이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했다. 나는 우리 매개 수련인은 모두 사부님께서 보고 계시며 그여 자신도 그렇게 큰 염원으로 협조하겠다고 하고는 무엇 때문에……?
사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였지만 실질상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나는 법리는 호언장담 하면서 진상 방면에서는 일년에 3퇴를 몇 명 밖에 권하지 못했고, 진상자료를 한 달에 몇 부 밖에 배포하지 못하였다. 동수들과 교류하고 소통할때 다른 사람에게는 가서 수련하라고 하고는 자신은 실속있게 수련하여 위덕을 얼마나 쌓았는지? 동수들의 상태가 시시각각 나에게 자신을 잘 수련하는 외에 주위의 동수들과 함께 제고해야만 바로 그것이 사부님께서 요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절대적으로 맞고 틀린 것은 없다. 오직 층차의 경계가 부동할 따름이다. 나는 자신이 일을 함에 그 허영심, 자신에 대한 집착의 마음이 허무하게 변했다는 것을 깨우쳤다. 그러나 충만된 마음으로 동수들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인 것은 그 일종의 끝없는 법리가 깊숙히 나를 너그럽게 받아 주었다는 것을 다만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으면서 언어 표달은 하지 못하였다. 나는 오직 진정으로 실속있게 수련한 동수만이 수련과정에서 바로 “수련”이란 두 글자를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상생활에서 능히 항상 자신을 하나의 수련인 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 항상 마음의 집착을 수련해야 하며, 부단히 부동한 층차에서의 부동한 법리에 도달해야 한다. 그렇지만 매 한 관, 매 한 난은 모두 그렇게 넘기 쉬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뼈속까지 침습된 집착을 버리는 수련 과정에서 일찍이 한 차례 한 차례씩 나로 하여금 법리와 사람 마음 중간에서 배회하면서 머물러 있게 하였다.
그때는 주위의 동수들이 침착하게 권고함에 따라서 나는 원래의 협조인을 찾아 교류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입을 열기도 전에 그는 이미 일부 동수들이 전하는 말을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지도자를 하려고 생각한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마음의 일을 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당신이 말하는 사투리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 듣지 못한다……고 하였다. 정말로 당시 집사람들이 나와 어울리려고 하여 나는 거의 집에서 전문 수련하는 제자로 되었었다. 그때 나는 늘 시간이 부족한 감을 느꼈다. 사부님께서 92년에 처음으로 법을 전할 때를 생각하면, 자신은 97년도에야 법을 얻었고 법을 얻은 초기에 정진하지 않아 시간을 낭비하였다. 부단히 한번 또 한번씩 법공부 함에 따라 늘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에 부끄러운 감을 느꼈다. 매일 법공부, 연공, 자료 만들기, 이미 쓴 일부 수련의 체득 투고 원고를 협조하여 명혜망에 보내기 등을 서둘렀다. 하루는 바로 세 가지 일을 하면서 나는 내가 자신의 수련을 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주위의 동수들을 불러 일으켜 함께 제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충족한 마음의 신심이 있었다. 나에게도 사부님께서 무량한 지혜와 능력을 주셨다는 것을 감각하였다. 나는 매일 모두 아주 풍부하게 자신이 법중에 용해된 기쁨을 체험하였다. 나는 동수들과 접촉하는 중에 안에서 찾고, 법에 부합되지 않은 곳을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였기 때문이다…
동수들의 이러한 말을 듣고 나는 협조하는 중에 저애와 모순, 사람의 마음의 마찰과 충돌이 있다는 것을 감촉했다. 나는 문제가 어디에서 생기고, 어느 동수의 몸에서 문제가 나타났을 때는 그의 배후에 다른 동수들의 아주 많은 나와 유관되는 불평의 말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오직 그러한 하지 말아야 할 불평은 오직 동수가 법에서 제고해야만 자생자멸(自生自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불평은 또 다른 불평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그 좋지 못한 사람의 마음, 염두는 아직도 자기도 모르게 마음에서 올라온다. 내가 이렇게 여기 저기 뛰어다니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이것이 그래 내가 수련인의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인가? 예를 들면 내가 세 가지 일을 하려는 마음이 없이 어찌 수련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위축심, 원망하는 마음, 명(名)을 위하는 마음, 매우 불만스러운 마음이 모두 쩐(眞), 싼(善), 런(忍) 앞에서 남김없이 폭로되었다.
“그를 찾아 도리를 따지러 가려고 하였다.”,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전법륜》)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당신에게 전하는 그러한 말은 동수들중에 좋지 못한 영향을 조성하게 된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그들은 다만 일시적인 상태에서 구세력의 이간(离间)책에 구실을 남겨 놓아서는 안 된다”. 변이된 관념의 가상인 나와, 대법에 동화된 진정한 내가 바로 이렇게 겨루었다. 당시 사부님의 실과 득의 법리가 또 한번 나의 머리를 스칠 때 그 후천 관념이 형성한 가짜인 나는 이미 끝없는 법중에 용해되었다. 맞다, 나에게 이러한 모순을 조성하지 않았다면, 나를 도와 이러한 수련의 환경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또 이러한 사람의 마음과 변이된 관념을 폭로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정말로 일거사득(一举四得)이다. 이것은 하나의 전신이 쩐(眞), 싼(善), 런(忍)으로 동화되어야 할 생명으로 놓고 볼 때 이 한없는 대법의 위력은 정말로 마치 하나의 강철을 녹인 물에 하나의 나무가지를 넣은 것과 같았다. 위축되지 않고, 원망하지 않으며, 법으로부터 그러한 상서로움이 나를 포옹하여 나에게 진심으로 “사부님 수고하십니다! 동수들 고맙습니다!” 하고 외치게 하였다. 후에 나는 당시의 동수들을 찾아가 맺혔던 모든 매듭을 법리로서 하나하나 해체하였다. 한 동수는 “이 모두 무슨 일을 하였는가, 이것이 속인의 몸에서 발생했다면 치고 받으며 싸울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나는 온화하게 “그럴 수 없어요, 우리는 모두 수련인이기 때문이예요!” 라고 말하였다!
몇 년의 수련중에서 사부님께서 나를 위하여 감당한 지출과 한없는 심혈은 내가 알게 모르게 얼마인지 모른다. 나에게는 크게 올라가거나 크게 떨어진 수련의 이야기가 없다. 줄곧 침착하게 사부님께서 안배한 길로 가는 길에서 나의 수련의 지름길은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에서 찾으며, 어떠한 모순과 마난에 봉착했을 때 우선 안에서 찾으면서 무엇 때문에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가? 사부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수련하라고 점화하셨는가? 바로 매개 문제가 모두 수련인의 상태에서 법의 기점에서 정법의 각도에서 고려하면서 도피하지 말고, 매 하나의 승화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한 문제에서 맴돌지 말고, 문제가 어디에서 나타났던지를 막론하고, 모두 자신이 더욱 정진하여 세 가지 일을 잘할 것이 수요된다. 사실 전반 수련과정은 생명의 경계의 제고와 승화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만약 능히 자기를 내려 놓고 자신으로 하여금 항상 법중에 용해시킬줄 알아야 한다. 그러한 탈속(超凡)적인 감각의 기쁨은 그중에 있다.
4. 일체를 무작위(随机)로 행하고 자신을 법을 실증하는 길로 가다
우리들의 정법수련은 본보기가 없으며, 편한 차가 없으며, 더욱 크게 환심을 싸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박해가 시작했을때, 나는 진상자료를 많이 얻지 못하였다. 나는 동수와 함께 단체 복사기를 찾아 복사하였다. 후에 단체복사기도 중공의 핍박하에 복사해 주지 않았다. 나는 손으로 자료를 써서 밖에 나가 풀로 붙였다. 주위에 진상자료를 보는 사람들로 꽉 찼다. 나는 한번 또 한번 사부님의 우주 중생에 대한 그 홍대한 자비에 탐복하였다. 후에 외지의 동수가 나에게 진상 인쇄지형, 종이, 스티커, 인쇄잉크 등을 가져왔다. 나는 자신의 제작한 진상자료 제1부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이 수련을 시작할때 바로 매개인의 체내외에 허다한 기능과 기기를 주었다. 우리의 수련중의 일체는 모두 무작위로 행해야만 세 가지 일을 하는 중 우리들이 무엇을 하던지를 막론하고, 어떻게 하던지를 막론하고, 모두 체현된다. 관건은 우리들이 심혈을 기울이는 정도에 있다. 오직 우리들이 가서 하기만 하면 우리들의 지혜는 얼마를 요구하면 얼마가 나타난다. 일체는 전부 그중에 있다. 진정으로 각자가 필요한 만큼 가지면, “얼마나 강한 정념이 있으면 얼마나 큰 위력이 있는 것이다.” (《정진요지2》〈역시두 세 마디를 말하다〉) 나는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 너무 국한된 것이 없었다. 어느 때에 어디로 가던지를 막론하고, 자신이 어디로 가던지를 막론하고 모두 자기가 해야 할 대법제자의 일체 일을 잘해야 한다. 나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체 동력의 원천은 사부님의 간곡한 타이름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생명의 의의는 대법에 동화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쳤다. 수련의 매개 과정은 바로 자기의 생명의 모든 일언일행(一言一行), 일사일념(一思一念)중에서 부단히 법에 동화되는 것이며, 부단히 가서 우주의 법리 쩐(眞), 싼(善), 런(忍)을 실천하는 것이다.
수련중 걸어오면서, 생각해 보면 사부님의 가없이 넓은 큰 은혜와 박대한 법리는 그러한 일종의 원 생명들이 깊은 곳에서 감동되었다. 나는 항상 사부님의 법상 앞에서 할말이 없었다. 어떤 때에는 입을 벌렸지만 도리어 한 마디 말도 못한다. 다만 마음속으로 “사부님, 안녕하십니까!”하고 외칠 뿐이다. 제자는 오직 부단히 법리가 명석해지고, 부단히 자신을 바르게 수련하면서 시간을 다그쳐 중생을 구도하고 마지막으로 위대한 사부님의 정법을 돕는 노정을 잘 가면서 사부님의 자비한 중생구도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명혜망 제5기 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
문장완성 : 2008년 11월 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11/7/188146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