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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따파의 한 입자로 동화되자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1월 1일] 수련한지도 어느덧 8년이 되어 간다. 확고하고도 평온하게 오늘까지 걸어오는 과정에 아주 많은 수련 심득이 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이 만고 대법을 얻을 수 있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또 그렇게 많은 동수들의 사심없는 방조가 있었다. ㅡㅡ나는 오늘 내가 쓰는 문장이 훌륭하던 나쁘던 상관없이 마음속의 진실한 말을 속속 써내려 한다. 대법은 중생을 원용시키고 있는데 제자로서 각개 방면에서 대법을 원용시켜야 하며 사부님이 요구하신 것을 원용시켜야 한다.

1998년 10월 29일, 많은 동수들과 마찬가지로 대법을 얻은 후의 그 희열, 그 격동, 다른 사람도 배우라고 하고 싶은 그 심정을 일일이 다 말 하려고 하지 않는다. 작은 병은 끊임없고 큰 병은 없었지만 일상적으로 약을 먹던 그 ‘내’ 가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얼굴색을 보고 남의 말을 들으면서 가슴속에 늘 울분을 품고 있던 그 ‘내’가 역시 끊임없는 법공부 속에서 법리를 서서히 알게 되었을 때 천지개벽의 변화가 있었다. 법을 얻은 첫해에 남편은 “당신의 신체가 좋아지니 나한테 성도 내지 않는구먼. 연공하라구, 난 반대하지 않을 테니까.”라고 말하였다.

99년 7월 20일 이후, 남편과 집 식구들의 태도가 모두 변했고, 수련을 지지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며 날조이고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할 때에 표정이 아주 격동적이었고, 마음이 평온하게 말한 것이 아니었으며 눈빛 속에 남편을 이해할 수 없게 하는 그런 빛이 흘러 나왔다. 이것이 그 후에 남편이 매번마다 노발대발하면서 성을 낼 때 내뱉는 말이 되게 하였다. 이 법을 위하여 나와 아이마저 싫다는 거지! 그런 눈빛이 난 무서워!(지금은 진작부터 이 말을 하지 않는다. 그가 이 말을 할 환경과 기회가 없게 된 것이다.)

표면으로는 남편의 반대와 무리한 트집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두 내가 버려야 할 사람 마음과 각종 집착이었다. 매번 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어디에서 잘못했는가를 찾을 때면, 딸이 곁에서 말한다. “엄만 잘 못한 게 없어요, 모두 아빠 잘못이야.” 내가 말했다. “아니야, 긍정코 내가 틀린 데가 있어, 그렇잖으면 이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야.” 표면상으로는 누구나 그가 도리가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그것은 속인의 이치로서 나에게 버려야할 그 무슨 사람 마음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안을 향해 찾아보니 내가 정말로 많은 일을 함에 법에서 하지 않았다. 일단 발견하기만 하면 없애 버리려 하였는데 그러면 상황은 곧 개변이 있게 되었다. 씬씽(心性)은 바로 이런 모순 속에서 (그이가 그때의 좋았다 궂었다 하는 성격과 친지들의 각종 태도) 제고를 가져 왔다. 그로부터 그들도 대법은 정말로 좋은 것이란 것을 직접 느끼게 하였다. 신체가 불편 할 때에도 안을 향해 찾았는데, 자신을 찾았을 때면 괴롭던 신체가 즉각 좋아지는 것이었다. 신기한 일은 한번 또 한번 나타나 나의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려는 결심을 더욱 증가시켰다. 수련을 시작한 첫해에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우습게 여겨지는 생각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파룬궁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날이면 나는 모든 억울함을 쏟아 놓겠다는 것이다.ㅡㅡ하지만 지금의 나는 억울함도 없거니와 그런 모순을 만들어낸 사람들에게 아주 감사하게 생각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법 공부를 통해 생명의 근본에 대해, 사람은 어째서 세상에 오게 되었는가 하는 생명의 의의에 대하여 명백히 알게 된 것이다. 사부님이 우리를 위하여 감당하신 것을……

법을 얻어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들에 대해 하겠느냐 안 하겠느냐, 하고 싶으냐 하고 싶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나타났지만 법공부에 대해서는 종래로 하기 싫은 때가 없었으며, 대법 책을 들기만 하면 내려놓기가 싫었다. 이 몇 년 동안 나는 매 주일 <<전법륜>>을 한번 읽고 다시 기타 두 세권의 설법과 신경문을 읽는 것을 줄곧 견지하여 왔다. 예를 들면, 어느 주일에 <<전법륜>>을 읽지 않았다면 그러면 곧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던지 아니면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곤 하였다. 법을 얻은 첫 1,2년 동안에는 장사에 바삐 보내다 보니 법공부는 시간을 짜내야 하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만약 벌어놓은 모든 돈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나는 나의 돈 전부를 덕과 바꾸어 공으로 변하게 할 것이다.

참으로 모든 시간을 법공부와 수련에 모두 쓰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있은 후부터 장사일은 점점 더 적어졌고 이런저런 생각 못했던 일들이 나타났는데, 그런 일들은 표면으로 보건대 모두 나의 원인이 아닌 것 같았으며 여러 사람들도 자연히 돼 가는대로 하고 있었다. 후에 참으로 나에게 속하는 시간이 아주 많게 되었고 경제생활은 도리어 더 좋아져 법을 실증하는 일에 공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련자로서 나의 각종 물욕에 대한 탐욕과 정의 집착은 이미 담담해지고 또 담담해졌으며 마지막에는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원용시켜 주실 수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도하기 위하여 세간의 중생들을 위하여 우리로서는 근본적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난을 감당하셨는데 우리가 무슨 이유로 정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법공부 할 때 때로는 사부님의 어떤 설법에 대해 일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어도 나는 마음속으로 의심 하거나 혹은 꼭 밝혀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당시의 생각이라면, 법공부를 많이 하면 알게 될 것이다 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류 사회에서 윤회전생한 시간이 너무도 길기에 어느 생 어느 세에 무슨 나쁜 일을 하고 무슨 빚을 졌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많은 변이된 관념이 형성되었고 이 완전히 닦아 버리지 않은 허물을 가지고는 우리는 속인을 초월한 이 ‘고덕대법’에 대한 이해가 그렇게 깊을 수 없으며 그렇게 완미할 수 없다. 우리는 오직 정진, 실수(實修)해야 하며, 끊임없이 사람의 물건을 버리면 한 층 한 층의 법리가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손에 든 것은 속인의 책이 아니며, 배우는 것은 속인의 지식이 아니다. 우리 손에 든 것은 인류사회 생생세세에서 얻으려 해도 얻을 수 없었던 우주 대법이며, 배우는 것은 모든 인류의 지식을 장악해도 모두 배울 수 없는 초상적인 법리이다.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하여 심령은 정화되었고, 낡은 관념이 개변 되었으며, 각종 좋지 못한 사람 마음을 내려놓게 되어 공능과 초상적인 화면이 끊임없이 나타나게 되었다. ……
2000년 그때는 사부님의 신경문과 진상 자료를 얻기 어려워 경문은 한 사람이 한 부씩 가질 수 없어 우리는 손으로 베꼈다. 자료가 적으면 우리는 스스로 쓴 다음 인쇄하여, 정교한 예물 종이나 편지 봉투로 포장을 하여 각 집들에 배포하였다. 매 한부를 배포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집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구도되기를 바란다. 더욱 많이는 자신의 친척친우들에게 만나서 얘기해 주었다.

얘기해 줄 때 자신이 법공부를 많이 해야만 부동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얘기해 줄 때 자신의 사람 마음, 사심을 발견하게 되었다. 파룬따파가 어떻게 사람을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 무사무아, 다른 사람을 배려할줄 아는 사람으로 되게 하는가를 이야기 하면 ㅡㅡ그렇다면 이후의 매 시각마다 모두 자기가 말한 그대로 해야 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이 한 말과 자신이 한 일이 같지 않게 될 것이며 그러면 그를 수련인이라 할 수 없을 뿐더러 법을 실증하는 작용을 할 수 있겠는가? 이건 스스로 제 뺨을 때리는 격이 아닌가? 더욱 중요한 것은 대법에 먹칠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면해서 말해 주면 수시로 자신의 깊이 숨겨져 있는 사람 마음을 발견해 낼 수 있을 뿐더러 제때에 없애 버릴 수 있다.

예를 하나 든다면, 언니에게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가서 그녀에게 진상과 자신의 수련 체험을 얘기해 주자 아주 감동하면서 배우려 하였다. 후에 그녀가 나에게 알려 주기를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던 그 이튿날 시에서 회의를 열었는데 각 직장별로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을 보고하라는 것이었다.(그녀는 당시 당 사무실에 있었다) 직장에 돌아 온 후 그녀는 근본 조사하러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왜 조사를 가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게 많은 일을 상관해서는 뭘 해요? 각자 자신의 신앙이 있는데.” 이렇게 되어 그녀는 국에 보고하지 않았다. 그녀의 공장은 몇 천 명 되는 큰 공장이었는데 연공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한 사람도 박해받지 않았다. 듣고 나서 나는 정말로 그녀를 위하여 기뻤다. 05년도에 그녀에게 탈당을 제기했을 때 그녀가 말하였다. “이 며칠을 줄곧 생각해 보았는데 이런 당을 해서는 뭘 하겠어요? 형편없이 나빠요.” 그들 집에서는 모두 ‘3퇴’하였다.

깨우친 것이 하나 있다. 만약 우리가 진상을 알릴 때 마주선 사람이 핍박에 의해 사당의 명령을 집행하여 박해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진심으로 그에게 진상을 알려 주어야 한다. 그의 명백한 일면은 자기를 구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는 곧 대법제자를 보호해줄 능력이 있게 될 것이며, 박해는 점점 더 적어 질 것이고 구도되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 질 것이다. 지금 아직도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가 나타나는데 직면하여 우리는 응당 반성해 보아야 한다. 구체적인 태도에 아직도 법속에 있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도 맞서서 진상을 알릴 때 기회를 놓친 때가 있는데 실지로 그럴 때 보면 자신을 수호하려는 사람 마음이 우세를 차지하고 있을 때이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생각한다. ‘기회를 찾아 방식을 바꾸어야지. 왜냐하면 이 사람은 어떠어떠하게 나쁘다, 저 사람은 문제가 별로 없어도 너무 아무데서나 마구 말하는 게 흠이야.’ 각종 변이된 관념이 뛰쳐나올 때면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하며 발정념을 많이 해야 한다. 누구든 찾아가 진상을 알려 줄 때 만일 그가 나에게 어느 면에서 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가서 그를 구도하려 생각한다면 흔히 효력이 나쁘다. 아무 생각도 없이 말해 준다면 생각 밖으로 좋은 효과가 있게 된다. 법이 우리에게 구함이 없으면 자연히 얻게 된다고 요구한 걸 생각하면 참으로 구체적으로 일을 할 때야만 비로소 사부님이 말씀하신 법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만나서 이야기 할 때면 우리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느 방면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안 다음 다시 그에게 맞는 진상 자료를 선택하여 보여 주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법공부를 잘했다면 부동한 문제에 대하여 적당한 해답을 줄 수 있다. 만일 당시에 해답해 줄 수 없었다면 우리의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명백해 질 수 있어 다시 가서 말해 줄때면 더욱 진일보 머리가 청성하여 해답도 술술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로부터 법리상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제고할 수 있는 것이다. 만나서 말해주는 것의 최대의 좋은 점은 또 있다. 만약 그가 들으려 하지 않거나 믿지 않을 때면 마주서서 마음속으로 발정념을 하여 이 사람이 진상을 듣는 것을 교란하는 배후의 일체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정념 구결을 외울 수 있다. 흔히 이런 사람은 처음에는 무엇이든 믿지 않다가 우리가 발정념 한 후이면 태도가 변하여 믿을 뿐만 아니라 책도 보겠다고 한다. 비록 어떤 사람은 수련에 즉시 들어오진 않아도 그러나 그들이 장래에 법을 얻는데 기초를 다져 주게 된다. 다섯 권의 <<전법륜>>과 일부 진상 자료를 내가 접촉했던 중생 중에서 한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전해 주었는데, 나는 이렇게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녀도 기쁘기만 하고 위안을 느낀다.

물론 진상 알리는 방식은 아주 많다. 나는 만나서 말해주고 간접적으로 말해주며, 편지를 보내고 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을 취했다. 나는 시시각각 자신을 일깨워 준다. 많이 구하지 말며 기뻐하지 말며, 기분상해 하지 말며, 태만하지 말며, 사람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게 하고 믿어 의심치 않게 하려면 우리 자신이 속인가운데서의 구체적인 표현, 즉 만일 우리가 물건을 살 때 고르지 않고 값을 따지지 않으며,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체험 할 수 있다면, 이때면 그들은 내심으로부터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낄 것이며 그로부터 착실하게 법을 실증할 수 있는 것이다.

기실 생활속의 각 방면은 모두 이러한 것이다. 명리정을 담담히 보고 마음속에 담은 것이 중생이지 친정이 아니라면 곧 각자 자신이 있는 층차에서 법이 요구하는 대로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때 당신이 누군가를 찾아가려 할 때 길에서 만나게 될 수도 있으며, 어떤 때는 꿈속에서 생각지 못했던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제시가 당신으로 하여금 아주 쉽게 그를 찾아 낼 수 있게 하여 진상 알리기와 삼퇴가 아주 순조롭게 될 수 있다.

귀천을 가리지 않고 지위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으며, 우리가 접촉하는 매 한사람의 중생에 대하여, 빈부귀천, 문화가 있고 없고 간에, 노인이든 젊은이든, 혹은 겨우 말을 배우는 어린애든 친인이든 아니면 평소 낡은 관념을 끌어안고 남을 깔보았든(매 시각마다 자신의 변이된 관념을 제거할 것을 수요)상관없이 모두 똑 같은 마음으로 구도해야 한다.

우리는 또 보아야 한다. 그들 생명의 부동한 역사시기에 혹은 많게 혹은 적게 당 문화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때 ‘9평’은 가장 유력한 무기로서 그들 사상 가운데 찍힌 흔적을 지워 줄 수 있다. 속인 가운데 학문이 좀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평소 아주 거만하였다. ‘9평’과 시디롬을 보고 난 후에 말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공산당은 끝장이 났구나, 안에서 말한 것이 죄다 정말이다. 보통 사람은 이런 책을 써 낼 수 없다.” 대법제자는 매 시각마다 정념으로 사당 문화의 독소를 제거하는 것도 홀시해서는 안 된다.

총적으로 우리가 얼마를 할 수 있든 지간에 우리는 반드시 법에서 해야 하며 삐뚤게 가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홍음(2)>> (정진정오)에서 말씀하셨다. “법공부 태만하지 않으니 변화가 그 중에 있노라, 확고하게 믿고 움직이지 아니하니 과위가 바르고 연꽃을 이루네.”

(제3기 대륙 대법제자 수련 심득 서면 교류 대회 교류 원고)

문장완성 : 2006년 9월 29일
문장발표 : 2006년 11월 1일
문장갱신 : 2006년 11월 1일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6/11/1/141327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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